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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84화 (184/230)

“후우... 흡!”

카드득, 카앙!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날카로운 검신이 쇄도했다.

칠흑으로 만들어낸 오른팔의 갑주, 그것으로 검을 쳐내자 맑은 검명이 산허리까지 울려퍼지는 듯 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자 눈동자가 조금 붉게 물든 소율이 보였다.

허나 그 눈빛만은 맑고 정순하게 빛났다.

“어디, 이것도 받아보거라.”

그녀의 검이 흐름을 혼잡하게 뒤섞으며 잘게 떨렸다.

순식간에 눈앞을 뒤덮은 수천, 수만개의 검의 환상.

애초에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면 저 환상조차도 보지 못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나는 곧바로 눈을 검게 물들이며 안광을 빛냈다.

그런 내 눈동자를 보고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외치는 소율.

“보인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느니라 욘석아!”

그 많은 환상이 다시금 둘로 갈라졌다.

혈기를 다스리고 싶다는 소율과 매일같이 대련을 해도, 그 끝이 쉬이 보이질 않았다.

끝을 알았다 싶으면 양파처럼 자꾸만 새로운게 튀어나왔다.

"칫... 이렇게 나올 겁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전신에 칠흑을 피워올렸다.

초콜릿에 가까웠던 피부가 흑단빛으로 덧칠해지며 가공할 힘이 차올랐다.

‘전부 허상이고, 전부 실체다.’

저건 마치 미래를 끌어오는 것과 같았다.

난잡하게 퍼진 흐름 하나하나가 전부, 나를 죽일 수 있는 비수로 변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할지 결정하면, 그 흐름을 읽어서 반드시 공격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을 공격한다.’

그동안 쉼없이 몸을 맞대며 깨달은 만유의 능력 중 하나.

거기에, 원래 파괴력은 조금 부족했던 소율의 일격에 혈기가 덧씌워지며 패도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내가 어떻게 할지 결정한다는 건, 결국 내가 우선권을 가진단 소리였다.

소율의 만유(萬流)가 후발선제(後發先制)의 극치라 하더라도.

제압조차 하지 못하게 깨부수면 되는 법.

“흐으읍!”

주먹부터 팔끝까지 날카로운 공륜(空輪)을 덧입히고.

그걸 사방으로 떨쳐내며 소율이 만들어낸 흐름을 전부 무(無)로 되돌렸다.

“이익... 못된 놈!!”

한순간의 틈을 노리던 그녀는 만유가 파훼되자 다급히 평범한 초식을 운용하며 내게 찔러들어왔다.

‘평범하다고는 해도, 내 눈에만 그렇지.’

아마 바깥의 무인들 중 소율의 초식을 받아낼 사람은 손에 꼽을 거다.

무당의 진신절기인 태극혜검이 완전히 녹아든 절정의 일격.

'덧붙여 혈기까지.'

카각, 까가강!!

양팔에 씌운 칠흑갑주와 그녀의 검이 부딪히며 거친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검게 물든 공륜이 마치 톱날처럼 비틀리며 불똥이 튀는 듯했다.

"아읏...!!"

결국 신음성과 함께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소율.

송문고검을 끝까지 놓치 않던 소율이 강한 반탄력에 뒤로 거칠게 밀려났다.

“하아, 하아... 썩을 것. 벌써부터 그리 태사부를 이기고 싶어!”

“후... 아직 다 보여준 것도 아니잖습니까.”

빽하고 소리를 지른 소율이 검을 납도하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지난 한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경지를 안정시켰고, 소율은 내게 혈기를 쓰는 법을 배웠다.

"아직 그건 미완성이란 말이다."

절대에 올랐던 두 여자 중 하나인만큼.

넘치는 재능으로 그녀는 무언가 성과를 낸 듯 했다.

그리고 혈기를 잔뜩 소모할 때마다 자꾸 욕구가 차오르는지 항상 나를 덮쳐오던 그녀.

눈을 시뻘겋게 빛내며 다가오는 소율을 보면 나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왔다.

“흥, 그걸 썼다간 우리 귀한 남편이 다칠지도 모르니 안되느니라.”

“아직 남편 아닌데.”

“뭐라! 바, 반지까지 줘놓고!!”

배신당한 표정을 짓는 소율이 품속에 고이 모셔뒀던 작은 반지를 꺼냈다.

신줏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하는 모습을 보면 귀여워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정식으로 식을 올려야지, 안 그래?”

“이익... 맨날 마누라라고 하는 건 뭐였느냐!”

“그게 좋았어?”

“...흥이니라!”

결국 삐져선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린 소율.

아무리 달래도 안 풀리길래 결국 구석으로 데려가 자궁 깊숙이 애정을 쏟아내고서야 투정을 멈췄다.

"흐흥... 오늘도 가득인 것이야."

"..."

보지 가득한 정액을 한방울도 흘리기 싫다는 듯 바로 속곳을 입는 그녀. 만족스러운 얼굴로 배를 토닥이는 것이 보였다

그 미소에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같이 땀에 젖은 몸을 씻고, 장로각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장문인."

"오냐."

삼장로의 인사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 얼굴로 받아주는 소율. 욕탕에서 또 아기씨를 듬뿍 채워넣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뒤이어 소율이 상석에 앉은 내 무릎 위에 고대로 엉덩이를 붙였다.

"후딱하고 끝내자꾸나. 본녀가 조금 바빠서."

"크흠... 장문인, 맹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말해보게."

"저, 여기..."

그에 삼장로가 대답 대신 전서를 하나 내밀었다.

맹주의 낙인이 찍힌 편지봉투.

소율이 호쾌하게 낙인을 뜯어내고 나와 함께 전서를 읽었다.

-잘 지내느냐. 한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으니 밤마다 외롭구나, 무진아.

"아니 이년이..."

"자, 장문인?"

당황한 삼장로를 무시한 채 전서를 계속 읽었다.

결국 밤마다 보지가 애달프니 와서 좀 박아달라는 의미였다.

-...아무튼 그러하니, 담소율 고년은 내비두고 맹에 좀 들르거라. 내 줄 것도 있다하지 않았느냐.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으마.

소율의 시선이 나를 흘기고는, 뒤쪽에 한장 더 있는 서신을 펼쳐들었다. 이번 건 설설 적은 듯한 글씨가 아닌 정자체의 딱딱한 느낌이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정도연합군이 결성되었음을 알림. 무당에선 장문인 담소율, 흑룡 백무진 등...

그곳엔 각출할 인원에 대해서 써있었고, 출전 날짜와 장소, 시각 등이 적혀있었다.

"흠, 며칠 안남았군요."

"보이는데로 보면 안되느니라, 욘석."

내 볼을 살짝 꼬집고는 암호문이라며 의기양양하게 한 마디하는 그녀. 나 또한 볼에 살짝 입을 맞추고, 소율과 함께 몇 가지 안건을 처리한 후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뜨거운 늦은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울적한 목소리를 내는 소율.

"휴우... 타격이 크구나. 제일 앞선다는 건 존경을 받지만, 그만큼 잃는 것 또한 많다는 소리지..."

"걱정하지마. 그 누구도 무당을 넘보진 못할테니까."

아마 다른 문파나 세가라면 이번 참사로 몇십, 몇백년간 봉문을 할 수도 있는 참혹한 피해였다.

많은 건물이 불타고, 제자들이 죽어나갔다.

허나 작금의 무당은 절대지경을 셋씩이나 보유한 전무후무한 세력을 지닌 문파.

하린과 혈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 한달간 무당의 제자가 되기 위해 호북성으로 무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한다.

"후훗, 전부 네 덕이니라. 요 사랑스런 녀석."

"내가 뭘."

"이리 오려무나."

부러운 얼굴로 지나가는 장로들을 두고 진하게 입을 맞췄다.

"푸흐... 자꾸 달아올라서 어떡하느냐, 이것 참..."

그새 또 야릇한 눈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그녀.

으슥한 숲길로 가려는데 저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칫, 좀만 미루자꾸나."

나도 그녀도 누군지 알아채고선 잠시 기다렸다.

그렇게 자비로운 미소와 함께 다가오는 한 미남.

빡빡이 주제에 잘생기다니.

수만 탈모인들의 죽창에 꽂힐 녀석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여기 계셨습니까, 형님. 담 장문인께서도 안녕하신지요."

"본녀야 뭐, 언제나 그렇지."

"다행입니다. 무당의 위명이 참사 이후 오히려 더 밝게 빛나니 무림의 홍복이지요."

합장을 하며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무양.

은밀하게 전음이 들려왔다.

-완수했습니다, 형님. 주신 미약이 참으로 효과가 좋더군요.

나는 살짝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소율을 먼저 보냈다.

"호북성에 자리를 마련해두었는데 어찌, 확인하러가시겠습니까?"

기막을 치고선 여유로운 얼굴로 묻는 녀석.

시발... 확인을 안 할 수도 없고.

이번 일은 해남파와 남궁세가 모르게 한 일이라 더더욱 신중함이 필요했다.

'뭐, 벌을 잘 받았는지만 보고 살려보내야지.'

무양이 잘 해놨다면 그 두 놈은 우리가 뭐라하든 신의 말씀처럼 믿을 게 분명했다.

그날 밤, 무양과 함께 호북성으로 내려왔다.

"지킬 사람도 없이 냅둔 거냐?"

"빈승을 뭘로 보는 것이오, 형님."

으슥한 장원으로 향하는 무양의 발걸음.

절정 정도의 기세를 가진 기척이 여럿 느껴졌다.

이제와서 무양이 나를 배신할 리도 없고.

뭐가 있든 내 힘으로 이겨낼 수 있으니 거리낌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무양대사님!"

"아이고, 대사님이 오셨소!"

선선한 옷을 걸친 채 맨발걸음으로 달려오는 청년 셋. 그중엔 봉룡지회에 참가한 이들도 둘이나 있었다.

무양을 향해 달려오던 놈들이 날 보더니 대번에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아니!! 이분은 혈교주를 격살한 무당신룡(武當神龍) 백무진 대협 아니시오!!!"

"무당신룡!! 정말이오?!"

"저 밤하늘처럼 새카만 피부를 보시오!! 독특한 머리카락하며, 이 강대한 기운이 그분이 아니면 누구겠소!!"

아니... 이런 고추들의 관심은 별론데...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포권했다.

"반갑소. 무당의 백무진이오."

"오오오!!"

"이 조각같은 근육을 좀 보시오!"

"캬!! 단단하기가 돌덩이 같구려!!"

급기야 내 팔뚝을 쪼물락대는 놈들.

인상이 팍 찡그려지려는 찰나 무양이 손들을 쳐냈다.

"이 무슨 무례한 짓들이오. 백 형님께서 친히 이곳을 찾으신 이유가 있거늘."

"형님이라니, 의형제를 맺었다는 것이 참이었소이까!"

"조용히들 하시오. 경망스럽게 굴지 말고."

-빈승이 돈이 없어 백 형의 이름을 조금 팔았습니다.

살짝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무양.

나는 턱을 살짝 끄덕였고, 무양의 타박에 놈들도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대충 사과를 받고 안쪽의 전각으로 들어갔다.

"모두 이곳에 와서 사귄 벗들입니다. 빈승이 친히 불도(佛道)로 이끌어주었지요. 함께 아미로 돌아갈 것입니다."

어쩐지 씨발. 내 몸 만지면서 얼굴이 붉어지더니.

닭살이 돋은 팔뚝을 쓸어내며 이번엔 지하로 향했다.

"무양, 무양 형님 오셨소!"

"형님 어서오시오! 이 남궁 동생이 오매불망 기다렸소이다!!"

"오늘은 어디로 하는 것이오? 입? 뒤? 어서... 헉."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리는 간절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

피골이 상접한 오도결과 남궁악이 보였다.

"앗... 네, 네놈은!!"

"헉... 배, 백 소협..."

조금 반항적인 눈빛의 남궁악과 무언가 선망이 어린 오도결의 눈동자.

참사 때 기절해있던 걸 몰래 빼돌린 후 무양에게 맡겨두었는데, 두 놈 모두 상태가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다.

"큭... 무양 형님, 이 자를 대체 왜 데려온 것이오!"

"백 소협... 풍채가 더욱 헌앙해지신 것 같소이다."

"미친."

난 오도결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지하를 빠져나왔다.

"어, 어디 가시오! 조금만 더 몸을, 아니 이야기라도 좀..."

뒤쪽에서 들려오는 오도결의 외침.

난 방금 보았던 것을 잊으려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날 보고선 허리를 뒤로 빼고 슬쩍 앞을 가리는 손.

그게 무슨 뜻인지는 같은 남자인 나도 너무나 잘 아는 것이었다.

"허허, 마음에 드시나보오 형님."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저렇게까지 되는 거냐?"

나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진짜 솔직한 심정으로 물었다.

한달 만에 사람이 저렇게 될 수가 있는 건가?

"한달이면 충분하오 형님. 색마의 미약까지 있는데 실패했다면 진즉 내 양물을 잘랐소."

"...그래."

"남궁 소협도 말만 저렇지 속은 이미 암컷이나 다름이 없소이다."

"씹..."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양에게서 한걸음 멀어졌다.

"뭐... 정도연합군에 참여나 잘하라고 하고. 적당히 때를 봐서 돌려보내."

"알겠소이다."

차기 가주급 둘을 복종시켰으니, 앞으로의 일들이 더 편해질 것이다.

혈교를 접수해도, 아직 사파가 남아있고 혹시나 저멀리 신강의 천마신교도 있으니.

'내 평판도 적잖이 회복됐고.'

아까전 청년 셋이 무당신룡 어쩌고하는 걸 보니 앙천화를 죽인 내 업적이 널리 퍼진 모양이었다.

드디어 색룡의 늪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럼 빈승이 직접 둘을 남궁세가와 해남파로 돌려보내겠소이다."

"그래주면 고맙지."

잔잔한 얼굴로 합장하는 무양을 뒤로하고, 무당으로 돌아왔다.

"오셨어요, 흑노... 아니, 백 대협."

조용한 방안에선 세 여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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