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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90화 (190/230)

운남성의 기루 중 제일 큰 성세를 자랑하는 몽운루.

몽환적인 분위기의 기루가 마치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한 운남 최고의 기루답게 기녀들과 남창들의 수준은 최고를 자랑했다.

이곳에선 자신이 원하는 모든 취향을 맞출 수 있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까.

그리고 이 커다란 기루의 주인이 바로 운몽이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벌써 몇십년 째 이곳의 대모를 맡고 있는 여인.

일신의 무력은 초절정에 달해있었고, 그 미색 또한 뭇 남자들과 여자들의 마음을 동시에 뒤흔들 정도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 오랜 인연이 찾아와있었다.

“...쿨럭, 쿨럭. 하아... 할멈.”

“소인이 그 표현을 싫어하는 것을 잘 아실텐데요, 소주(少主).”

하얗게 물든 백발이 인상적인 운몽의 손에, 피묻은 칼이 쥐어져있었다.

이미 누군가의 뱃속을 한번 쑤시고 돌아온 칼에서 진득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왜... 왜야? 어머니가, 할멈을... 못되게 대한 적은 한순간도 없잖아...”

“그렇지요. 전(前) 주인은 사파답지 않게 심성이 고우셨으니.”

“그러니까 왜!!! 커흑, 쿨럭!!”

“소리지르지 마세요. 배의 상처가 벌어집니다.”

운몽의 시선이 옛주인의 딸에게 향했다.

풀어헤쳐져 산발이 된 머리와, 자신이 직접 수놓은 붉은 피꽃이 하얀 옷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로 부러진 칼을 쥐고 선 여인과.

무기를 빼앗긴 채 바닥에 눕혀진 여인 하나가 보였다.

“봉황이란 말도 이젠 옛것이군요. 저희 아이들에게 손도 못 쓰고 당하시고.”

“닥쳐!! 당신이, 할멈이 독을... 카하윽...!”

“죽은 주인께서 안 알려주시덥니까? 사파에서 믿을 것은 없다고.”

“커흐윽... 하아, 하아...”

결국 눈앞에 선 소주마저도 무릎을 꿇었다.

특별할 것 없는 산공독이지만, 믿는 이에게 당한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대체, 대체 왜...”

“무기와 짐을 빼앗고 목숨만 붙여놓거라.”

“존명.”

검을 쥔 기녀와 남창들이 움직였다.

소주와 함께 들어온 두 여인이 형편없이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이미 혈도를 제압당하고 상처에 몸은 엉망이었지만, 눈빛만은 형형히 빛나고 있었다.

곧 죽어도 무인이란 것인가.

저 대쪽같은 성정이 새 주인에게 쓸모가 있을까 싶었다.

“연검이라. 꽤나 재밌기는 하다만, 실력이 이래서야 본좌에겐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쓰러진 여인의 뒤로 안개처럼 흩날리는 듯한 검을 양손에 쥔 사내가 걸어나왔다.

그는 동류의 무사를 오랜만에 보아 즐거운 듯한 얼굴이었다.

“그렇습니다, 철 대인. 아직 어린 것들일 뿐이죠.”

“하하, 운몽 루주께서 일을 잘해주셨어요. 그분께서 상을 내리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분이라니... 할멈, 대체 누굴...”

피로 붉게 물든 소주에게서 운몽이 시선을 돌렸다.

심한 상처에도 형형한 눈빛에 누군가가 떠올랐다.

저멀리 대륙의 반대편에 위치한 운남의 몽운루와 절강의 사파련.

그 두 세력의 주인은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친우였다.

시간이 지나 한쪽은 사파의 주인이 되었고, 한쪽은 커다란 기루를 세웠다.

친구는 주인과 수하의 관계로 바뀌었고, 떠나간 사파련주에게 자신은 대모이기도 했다.

배를 쑤신 아이에게는 한줄기 동아줄이었을 테고.

‘이젠...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다.’

운몽은 하얀 천을 꺼내 검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기루를 나섰다.

아직 새벽의 안개가 가시지 않은 시간.

쓰러진 아이들에게 차를 대접한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

그로부터 며칠 뒤, 거대한 체구의 사내가 운남의 한 객잔에 들어섰다.

솥뚜껑같은 손에 머리 한 대 맞으면 죽을 것 같은 그 사내에게로, 작은 점소이가 오들오들 떨며 다가갔다.

“대, 대인... 저희 객잔은 그... 까루보나라? 그, 그런 것은 팔지 않습니다요... 혹시 착오가...”

“흠.”

“히이익...”

검은 옷의 사내가 내쉰 한숨에 점소이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당최 그 까루보나라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지를 사내의 탓으로 돌려선 안됐다.

허옇게 질린 얼굴이 불쌍할 정도였지만, 아무도 나서진 않았다.

저런 애새끼 하나 죽어나가는 것이야, 이 성에선 일로 쳐주지도 않았다.

얼마 안 가 사내의 손이 하늘 높이 들렸다.

“사, 살려...”

주둥아리를 잘못 놀려 이승을 하직한 선배 점소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점소이의 눈앞엔 아직 5살 난 어린 여동생이 눈앞에 아른거릴 뿐이었다.

턱.

허나 골통이 깨지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한손에 머리를 부숴버릴 것같은 커다란 손이 점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뭇 따스한 손길에 점소이의 굳은 몸이 풀어졌다.

“미안하다. 객잔에 앉으면 꼭 해보고 싶은 거여서.”

“아, 아닙니다 대인!! 소인이 죽을 죄를...”

“됐다니까. 그냥 가서 소면이나 하나 말아와.”

“예, 예!!”

점소이는 새롭게 얻은 생을 만끽하며 주방으로 튀어나갔다.

‘...드립 좀 잘못쳤다가 애 잡겠네.’

예전에 목우객잔에선 못해봐서 지금 해본 건데.

저런 애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벌벌 떨 정도면 지금 사파가 얼마나 흉흉한지 알만했다.

곧 아까 그 점소이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소면을 들고왔다.

달달 떨리는 발과 손으로 안 흘리고 온 게 용했다.

나는 대놓고 반질반질한 비단 돈주머니를 꺼내 은전 꾸러미를 빼냈다.

“자, 가서 맛난 거 사먹어라. 동생 있으면 당과도 사다주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대인!!”

꾸러미를 뜯어 은전 다섯 개 정도를 녀석의 손에 쥐어줬다.

고작 그정도도 바닥에 떨어질까 한껏 벌리는 작은 손.

무령이와 홍이는 저보다 더 작은 손이었다.

‘새끼들, 눈깔 돌아가는 거 봐라.’

점소이가 다시 일을 시작하고, 나를 보는 눈길이 많아졌다.

애새끼의 코묻은 돈보다야 다른 게 눈에 띌 거다.

위압감 넘치는 육체와 비싼 돈주머니.

생각이 있는 놈이면 뒤가 있다는 걸 알고 빠지겠지만, 여기는 생각 없는 놈들 천지다.

‘쩝, 사파는 아는 게 없으니...’

원작에서 잘 나오지 않는 곳이 바로 사파다.

애초에 정파와 혈교 이야기가 주류이기도 하고, 서문비연 빼고는 별 연결점도 없는 곳이니까.

결국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고, 빠르게 정보를 취하기 위해선 수를 써야했다.

가장 생각 없는 새끼가 누굴까.

“다음에 또 와주십쇼, 대인!!”

“그래, 수고해.”

소면을 다 먹고 점소이의 배웅을 받으며 객잔을 나섰다.

이젠 한 몸처럼 익숙해진 오른팔의 칠흑갑주.

여전히 가끔씩 환상통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젠 진짜 내 손발처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갑주를 몇 가지 모양으로 변화시켜보며 혼잣말을 뱉었다.

“언제쯤 따라오려나?”

마침 으슥한 저녁 시간.

아직 여름인지라 해는 남아있지만, 점점 짧아져 가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 걸어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객잔을 나선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어이, 형씨!”

“이런 조루 새끼들.”

두 명쯤 지나갈 골목길을 막아선 사내 여섯명.

사파는 그래도 남자놈들이 조금 일을 하나 싶었다.

“거기 시커먼 형씨! 돈 좀 있나?”

살짝 놀랬다가, 내 얼굴이 아니라 옷을 보고 말한 걸 깨닫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릉, 하는 쇳소리와 함께 칼 든 사내 여섯이 내 앞뒤를 포위했다.

그리고 대장격으로 나서는 뻐드렁니 하나.

놈이 짐짓 무서운 척을 하며 위협적으로 칼을 흔들었다.

“형씨, 여서 그렇게 돈꾸러미를 보인다는 건, 우리 누님들에게 상납하고 싶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소잉.”

“누님? 니들끼리 일하는 거 아니야?”

“먼소리여? 여기 운남은 우리 운몽 대모님께서 꽉 쥐고 계셔잉. 고추고 보지고 다 대모님 아래여.”

행색이 추레했지만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마침, 비연이 찾아갈 곳이 몽운루라는 것도 마음에 걸렸었다.

그곳의 주인 이름이 운몽이니까.

“그럼 요 근래에 몽운루에 무슨 일은 없었나?”

“아따 이상한 걸 물어보셔잉. 시커먼 형씨는 그냥 대모님께 바칠 꾸러미 하나, 여기 형님들에게 바칠 꾸러미 하나. 고렇게 내놓고 가면 되쇼잉.”

“욕심이 너무 큰데. 조루 새끼 주제에.”

“이 작자가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마잉!! 야들아, 쳐라잉!!”

남역세계여도 조루라는 멸칭은 통하는 듯 했다.

욕심만 덕지덕지 껴있던 눈동자에 잠깐 분노가 깃들었으니까.

'어차피 초단위 아닌가 근데?'

뭐 나랑은 상관 없는 이야기다.

곧 1분도 되지 않아 그들의 분노는 사그라들어 자취를 감췄다.

“아따 지가 형님으로 모시겠쇼잉!”

“이야, 너 볼이 이렇게 부었는데 말 잘한다.”

“이건 일상이지라!”

따귀 한 방에 한 놈씩 날려보내고, 뻐드렁니를 무릎 꿇렸다.

진짜 살짝 쳤는데 얼굴 절반이 팅팅 부은 걸 보니 조금 미안했다.

나는 애잔한 얼굴을 지우고 녀석의 앞에 쭈그려앉아 입을 열었다.

“뭐... 됐고, 딱 날 보면 견적이 나오지 않냐? 왜 덤빈 거야?”

“그것이... 상납이 두 배로 늘었지라.”

“그... 운몽 대모가?”

“예. 한달하고도 좀 더 인가? 그쯤부터 갑자기 늘었지라잉. 여 동생들 밥 쫄쫄 굶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지라...”

하긴, 척 봐도 꽤 굶어보이긴 했다.

아무튼 한달하고도 좀 더, 라면 분명 혈교주가 죽은 그때쯤이다.

그때 사파련주도 함께 죽었고.

누군가 그 사실을 알고 사마회를 앞세워 사파를 먹기 시작한 걸텐데...

‘운몽이 욕심을 드러낸 건가?’

주인은 죽고, 정파는 혈교를 토벌한다고 바쁘니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머리가 돌아간다면 혈교 토벌 후, 모인 정파의 전력이 어디로 향할지 알고서 미리 힘을 결집하는 것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애들은 운몽에게 잡혀있겠군.’

돌아온 옛 주인의 딸.

운몽이 시체에도 충성심이 넘치는 암캐가 아닌 이상, 배신은 예정된 수순이다.

몰락한 전 주인을 따르느니, 잘나가는 기루를 거점으로 사파를 집어삼키는 게 훨씬 낫다.

“니들, 몽운루랑 운몽에 대해서 아는 거 싹다 말해봐.”

“알았지라!”

“아, 사마회도.”

그렇게 몇 시간에 걸쳐 뻐드렁니와 수하들에게 정보를 알아내고, 은전 꾸러미를 하나 던져줬다.

“아이고!! 감사하지라 행님!!”

“내가 왔다는 거, 물어본 거, 다 비밀인 거 알지?”

“당연하지라.”

“새어나가면, 그 은전이 니들 머릿속에 박힐 거다.”

콰직.

간단한 손 튕기기로 옆쪽의 벽에 은전을 깊숙이 박아놨다.

놀란 얼굴들을 뒤로 하고 조금 더 새벽에 가까워진 시간, 몸을 움직였다.

‘얻은 게 많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하린이가 준 정보에 비하면 별로다.’

겹치는 것도 많았고, 쓸만한 건 몇 개 되지 않는 수준.

그래도 사마회와 운몽루의 최근 동향은 알아냈다.

‘사마회가 위다, 라.’

최하층인 만큼 그 상하관계나 눈치에 민감한 이들일 거다.

그들은 사마회의 복장, 즉 저 검빛과 보랏빛이 섞인 무복을 입은 자들이 운몽루의 위에 있다고 말을 해왔다.

분명 사파련주가 죽은 뒤 사파를 차지하려 했을 운몽.

기회고, 시간이고 당연히 먼저였을 그녀가 굴복했다면 좀 더 거대한 조직이 있을 게 뻔했다.

‘대체 어디지? 뭐 시발 여기도 황궁에서 나오는 새끼들이 있나? 아니면... 마교?’

문득 생각났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교는 아니다 싶었다.

첫 번째 혈사 때 혈교는 마교를 완전히 묵사발을 내놨다.

뒤탈이 없으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했으니까.

그러니 어디어디교가 아니면, 보통 황궁세력이 아니던가.

내가 황제라도 씨발, 이 무림조폭들 정리하고 싶긴 할 듯 했다.

“아무튼... 하오문을 가봐야겠네.”

정파는 개방, 사파는 하오문.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선 여기를 가봐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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