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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191화 (191/230)

“여긴데... 흠...”

늦은 밤 다 쓰러져가는 허름한 주막.

객잔이라 부르기도 뭐한 그냥 평상 몇 개 딸린 작은 주점이었다.

그나마 동네 단골이라도 있는지 평상 하나는 누군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줌마 혼자 대작을 하는 모습을 보니 깡따구가 좋구나 싶었다.

이 흉흉한 운남성에서 야밤에 홀로 술이라니.

오늘 하루 돌아다니며 대낮 길거리에서 살인, 폭행만 몇 번을 봤다.

해만 떨어져도 문 잠그고 집 밖을 나오지 않는게 상책이었다.

‘뭐... 정보가 잘못 됐을 리는 없겠지.’

맹에서 소서화가 직접 건네준 하오문과의 접촉 장소니까.

차라리 저 아줌마가 무공 고수고 자신이 있으니 혼자 술이나 기울이고 있다는 게 이치에 맞았다.

그러기엔 느껴지는 기운이 너무나도 작았지만.

“주인장 계시오.”

주막에 딸린 작은 초갓집에 다가가 입을 열었다.

불이 켜져있으니 답을 기다렸는데, 뜻밖에도 평상에 있던 아줌마가 목소리를 냈다.

“여 있소이다.”

설마했는데, 진짜 주인이었나.

천천히 평상으로 다가가 말을 이었다.

“술 한잔 하고 싶은데, 되오?”

“안 될 것 없지요. 따로 상차리기도 귀찮으니 여기 앉으세요.”

얼떨결에 아줌마의 앞에 앉아 잔을 받았다.

넘치게도 따라주는 아줌마.

한잔 쭉 들이키고선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이 주변에서 밤에만 피는 꽃을 판다던데, 혹시 알고 있소?”

내 물음에 아줌마의 눈썹이 약간이지만 꿈틀하는 것이 보였다.

이딴 선문답을 평범한 아줌마가 알 리는 없으니, 제대로 찾아온 건 맞는 듯 했다.

“그런 꽃을 어찌 이곳에서 찾으시는지?”

“여기 운남에서만 핀다고 하길래.”

“요새 꽃값이 많이 올라서요, 값을 비싸게 치루셔야 합니다.”

뭐 큰 일이 터지면 이것저것 가격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니까.

나는 안쪽의 돈주머니를 짤랑거리며 답했다.

“치룰 돈은 충분하오.”

“그런 것 같군요. 헌데, 꽃은 왜 찾으시는지요?”

“내가 그것까지 알려줘야 하오?”

혼자 술마시는 아줌마치고는 질문이 너무 당돌했다.

소서화가 간단한 선문답 후에 바로 어딘가로 안내해준다고 했었는데, 이건 무언가 조금 달랐다.

‘그러고보니, 아줌마 눈빛이 너무 또렷한데.’

뭐랄까... 액면가에 어울리지 않는 사슴같은 눈망울이었다.

내가 올 때부터 계속 술을 들이키던 것 치고는 맑았고.

아무 말없이 기세를 피워올리자 아줌마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술이 조금 과해서요. 안내해드리죠.”

이내 작은 초가집의 안방을 열어 나를 부르는 아줌마.

선선히 일어나 그녀를 따라갔다.

“들어가시지요.”

“앞장서시오.”

“...네.”

아줌마를 앞에 세우고, 안방에서부터 이어진 토굴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일부러 작게 만든 건지, 내가 큰 건지 상당히 불편한 크기.

반면에 아줌마는 적당히 목만 숙인 채 빠르게 나아갔다.

‘두더지가 따로 없구만.’

칠흑을 머금은 내기를 피부에 두른 채 그녀를 뒤쫓았다.

그러기를 한참, 빙빙 도는 게 슬슬 짜증이 나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헌데, 위쪽에서 계속 우리를 따라오는 자들은 뭐요?”

“...감이 좋으시군요. 본 문의 호위입니다.”

이정도 질문은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답하는 그녀.

좀 더 놀래켜줄까 싶어 한 마디를 더 꺼냈다.

“그럼 술에 쓰잘데기없는 산공독을 탄 건 또 뭐고?”

그제서야 그녀의 뒷모습이 흠칫하고 떨리는 게 보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여는 아줌마.

“...독도 통하지 않는 분이시군요.”

“아쉽게도 해독약을 들고 다니는지라.”

이년도 우리 하린이과인가 싶었다.

남자가 싫은 거라면 충분히 그 취향을 바꿔줄 용의가 있는데.

이미 경험이 있으니 두 번째는 쉽지 않을까?

싸늘한 기운을 풍겨내며 말을 이었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뤄줄 수 있소.”

“죄송합니다. 요새 상황이 어수선해서요.”

“그만큼 원하는 정보가 있기를 바라겠소.”

“실망하시지 않을 겁니다.”

역시 보통 아줌마가 아닌 건 확실했다.

슬쩍 살기까지 내비치면서 등을 쿡쿡 찌르는데, 발걸음에 떨림 하나 없다.

“도착했습니다.”

작은 나무문을 아줌마가 열고 지나갔다.

뒤를 따라 문을 통과하자마자 느껴지는 이질감.

“음?”

아줌마는 온데간데 없고, 단출한 방에 들어와있었다.

역시 그래도 사파의 정보를 쥐고 흔든다는 하오문답게 몇 가지 방비가 확실히 되있는 게 분명했다.

난 중앙의 탁자로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뒤를 돌아보니 내가 들어왔던 문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나랑 척 지자는 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미묘하게 나를 시험하는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낯설면서도 익숙한 기척이 방으로 들어왔다.

퇴폐적인 인상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선한 눈망울.

단정한 옷차림의 그녀가 탁자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그새 회춘하셨소이다.”

“이리도 금방 들킬 것, 그냥 본모습으로 맞이할 걸 그랬네요.”

“당신도 독을 먹었군.”

“그것까지 아셨습니까.”

아까 일반인보다 못했던 아줌마의, 아니 내 눈앞의 젊은 여인은 지금 초절정의 기세를 그대로 뿜어내고 있었다.

“뭐... 같이 독을 먹었으니 봐달라, 이런 거요?”

“그런 뜻도 없지 않아있습니다만, 그보단 무당신룡의 실력을 보고싶었습니다.”

“...흠.”

이미 내 정체도 알고.

상당히 당당한 태도에 높은 무위.

딱봐도 비밀스러운 공간.

“그대가 하오문주군.”

“문주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그럼?”

“아직은 부문주지요.”

부문주?

나는 번뜩 떠오른 의심을 확인하기 위해 하나를 더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운도혜라고 합니다.”

몽운루의 루주 운몽.

하오문주의 부문주 운도혜.

여기는 남녀가 역전된 세계니 성은 어미의 것을 따른다.

“어미를 죽이겠다는 거요?”

“정확힌... 할머님이지요.”

“그렇군. 나는 이미 함정에 걸린 거요?”

부문주라면 이미 정보는 문주인 운몽에게 다 들어갔을 터.

손가락으로 나무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마른 입술을 붉은 혀로 축인 운도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머님은, 배신자십니다.”

“배신자라. 어째서?”

“련주께서 목숨을 잃으시고, 연이가 저희를 찾아왔을 때...”

“연이?”

“서문비연은 제 오랜 친우입니다.”

역시, 사파는 모르는 게 많았다.

“아무튼, 제 할머님은... 다른 곳과 결탁해 사파를 집어삼키시려 합니다.”

“그정도면 이미 내가 왔다는 것도 운몽이 알 것 같은데?”

“흔적은 제가 전부 지웠습니다. 할머님은 윗선과의 일로 바쁘시고, 전권은 제가 대리하고 있지요.”

운도혜의 말이 사실이라면 상당히 쓸만한 패였다.

정보를 틀어쥐고, 내가 유리한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운도혜가 얻는 것은 뭘까.

“운 소저께선 하오문주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겁니까?”

“집에 들어온 승냥이떼를 쫓고 싶을 뿐입니다.”

“할머니는, 놔둬도 된다?”

“배신자에겐, 죽음뿐입니다.”

당돌한 여자였다.

선하게만 보였던 눈망울엔 결의가 깃들어 반짝였다.

아랫도리가 뻐근하게 달아올랐다.

“승냥이 떼도 몰아내고, 할머니도 죽이고, 무주공산이 된 사파를 삼키고 싶은 것이오?”

“이전처럼 돌아가는 거지요. 바깥일은 련주가, 안쪽의 일은 하오문주가.”

“련주엔 서문비연이?”

“그 아이가 바란다면요.”

“그럼 내가 얻는 건 뭐요?”

숨을 고른 운도혜가 되물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십니까?”

“사파련주의 자리라면?”

“어차피 연이와도 각별한 사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흠...”

고민에 빠진 날 보며 운도혜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확실히 하오문의 정보력도 괜찮은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내 요구를 말하는 것보단, 우선 정보부터 알아내야겠지.

“우선은 승냥이의 정체와, 내 여자들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오.”

“값이 비쌉니다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목숨값으로 대신 하겠소.”

“...”

내 위협적인 기세를 느낀 무사들이 방안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계속해서 그 자리에 은신해 있던 년들.

품안에서 꺼낸 은전 하나가 무사의 귀를 뚫으려는 순간, 그녀의 고개가 숙여졌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주제넘은 것도 있었으니,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말한 김에 내 요구도 전하도록 하겠소.”

“말씀하시지요.”

“난 그대를 원하오.”

“...네?”

살짝 당황했는지 커다래지는 눈망울.

입을 열기도 전에 말을 덧붙였다.

“더해서 하오문과 사파련. 전부다.”

“건방진 새끼!!!”

“부문주님! 이딴 개소리는 듣지 마십시오!!”

멈칫했던 무사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었다.

내가 절대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알면서도, 무언가 방법이 있는 걸까.

어느새 안색을 회복한 운도혜가 짧게 읊조렸다.

“아까 드신 술이 단순히 산공독이라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순간 방 전체가 나를 짓누르는 듯한 감각과 함께, 운도혜가 작은 종을 하나 꺼내어 흔들었다.

맑은 종소리와 함께 내 몸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컥!!”

“끄악!!”

“꺄아악!!!”

대신 달려든 계집년 셋이 입에서 피를 뿌리며 날아갔다.

살짝 내공을 한 바퀴 돌리니 압박감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의 운도혜가 입을 열었다.

“...만독불침이라도 되시는지요.”

“우연찮게 암혈마라신공을 익혔소.”

“거짓말!!”

그제서야 운도혜의 가면이 깨졌다.

시종일관 여유롭던 면상에 금이 갔다.

“카흑!!”

탁자를 뒤엎고 도망가려는 그녀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단단히 잡은 팔뚝에 푸른 기운이 덧씌워진 수도가 내려쳤다.

깡!!

“아악!!”

“자진해서 팔을 부러트리다니, 상당한 기개요.”

덜렁거리는 오른팔을 망연자실한 눈으로 바라보는 운도혜.

안타깝게도 겨우 초절정 따위가 칠흑갑주에 맨살을 가져가면 부러질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할 생각이 좀 드시오?”

“...여부가, 있을까요... 켈록, 손부터, 놔주시지요...”

점점 목덜미를 조여드는 손가락에 새파랗게 질려가는 얼굴.

그래도 뻔뻔하게 놓아달라는 걸 보니 영 맹탕인 여자는 아니었다.

“켈록, 켈록!! 쿨럭... 카흑...”

“내 요구는 그대로요. 당신, 그리고 사파련과 하오문. 전부 내 것이오.”

“욕심도... 많으시군요.”

“고작 독과 진법 따위로 날 제압하려 했던 운 소저가 욕심이 과한 게요.”

“통하는 걸... 봤으니까요.”

하긴, 나야 암혈마라신공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됐지.

난 침을 흘려가며 연신 기침을 하는 운도혜에게 명령했다.

“우선 충성 맹세부터 받아볼까하는데, 어떻소?”

“고작 제 몸을 취하신다고, 마음까지 뺏길 일은 없을 겁니다.”

“크크, 그건 두고보면 알 일이고, 지금은... 더러워진 내 신발을 청소해줬으면 하는데?”

내 비웃음이 담긴 목소리에 운도혜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야망이 큰 자는 목표를 위해 무엇이든 참을 수 있다.

곧 할짝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에 흘렀다.

“부, 부문주...”

“크흑... 이런 찢어죽일 새끼...”

“저 셋은 죽여도 되나?”

“뭐라!! 이놈이 감... 컥, 허윽...”

“호위는 둘이면 충분하겠지.”

은전이 목울대를 관통한 년이 곧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나는 돈주머리를 찰랑거리며 담담히 물었다.

“뭘 믿고 이렇게 까부는 건지 궁금한데, 도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나 절대지경인 거 모르나?

“...주인님께서 절대에 오르신 걸 안 믿으니까요. 눈으로 보아야 믿는 자들입니다.”

“이제 믿겠군.”

“...네.”

나는 쪼그려 앉아 부러진 그녀의 팔을 맞춰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가서 정보 갖고와. 남은 팔 한짝도 부러트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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