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연합군은 크게 한 걸음 천마신교를 향해 전진했다.
그 유명한 무당신룡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사실 연합군의 출진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그에겐 많은 소문이 돌았었다.
‘겁먹고 도망간 거지!! 거 사내 자식이 이런 전쟁을 알겠는가!’
‘맞소, 봉룡지회야 뭐... 결국은 대련 수준아닌가.’
사회통념상 남자는 유약하고 연약한 존재였다.
그가 도망친 거라고 말하는 이들도 꽤나 존재했다.
그들 대부분은 봉룡지회에 참가하지 않고, 연합군을 위해 온 무사들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무려 천극혜검님의 제자일세! 스스로도 절대의 위에 오른 강자시지. 이미 패퇴시킨 혈교가 뭐가 무서워 도망치시겠는가!’
‘그래, 무언가 다른 임무가 있으신 게지.’
아직 천마신교의 등장을 모르는 연합군은 결국 후자의 의견에 쏠렸다.
어쨌건 백무진의 활약을 본 이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점심 무렵, 무당신룡은 다시 한 번 자신을 증명했다.
마교의 장로들을 넷씩이나 굴비처럼 엮어 데려왔다.
그들은 미약한 마기를 흘리며 연합군 수뇌부에게 자신들이 마교 출신이란 것을 보였다.
“이건... 틀림없는 마기요. 우리 곤륜이 이들의 기운을 모를 리가 없잖소!”
“아무리 마교가 스러졌더라도, 그 명맥이 아예 끊기지는 않았을 터. 헌데 이 정도 수준의 고수라니...”
신강 바로 옆에 자리 잡은 곤륜파의 도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가 패퇴했다고는 하나, 극마굴에서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온 자들은 몇 있었다.
연합군은 새로운 적의 등장에 술렁였다.
“마교의 팔장로라니!”
“천마신교가 다시 위세를 떨친다는 이야기 아니오. 그럼 우리는...”
“천마와 싸우게 되겠지.”
그가 마교의 장로들을 제압해 돌아온 직후.
연합군의 군영에 천마신교가 혈교를 흡수하고,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정보가 공개되었다.
무수한 자들이 두려움과 의심을 품었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새로운 적을 쉽사리 인정하기 싫었다.
다들 쉬운 전쟁일 거라 여기고 참전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오랜 세월 정파 무림의 떠받히던 두 기둥, 천극혜검과 무림맹주가 직접 이를 공증했다.
“혈교에게 패퇴한 마교 따위, 이미 정파 무림은 혈교를 이겨보였으니 무서워할 것 없다.”
또한 둘은 이러한 논리로 연합군을 설득했다.
연합군에 참가한 세가와 문파들의 눈동자에 슬슬 탐욕이 어렸다.
혈교와 마교가 차지한 땅은 크다.
그 끝과 끝을 걸어서 지난다면 몇 달은 우습게 걸릴 만큼.
그걸 무림맹이 다 통제하겠는가?
결국 참전한 이들에게 땅과 권력이 돌아갈 것이다.
연합군의 두 우두머리는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그럼 모두들 최선을 다해 전쟁에 임해주시오. 이것으로 중원 무림은 모든 악적들의 위험에서 벗어나, 진정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것이오.”
평화, 그것은 대대손손 자신들의 세가와 문파에게 명예와 부를 안겨다줄 것이다.
결국 연합군에 참가한 세력들은 전부 참전에 응했다.
사실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였다.
여기서 빠졌다가 정말 승리한다면?
눈앞에서 백년은 배불리 먹을 꿀단지를 걷어차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난 뒤, 곧바로 함을 챙겨 내 막사로 향했다.
“흐음...”
딸랑.
절대고수마저도 일순간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방울소리.
색금태양공을 익힌 내게는 아무런 효용도 없는 소리였다.
오랜만에 함에서 꺼낸 미색령은 여전히 때깔 곱고 맑은 소리를 울렸다.
“널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계획은 간단했다.
네 장로들 전부 미색령으로 제압한 뒤 마교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치명적인 순간, 그들의 배신으로 마교는 크게 휘청일 거다.
천마에게 부상을 입혀도 좋고, 내 뜻을 따르지 않는 다른 장로들을 죽여도 좋다.
그 흔들림을 타고 정도연합군이 파도처럼 마교를 쓸어버릴 테니까.
“영기(靈氣)를 쓴다는 게 아무래도 거슬린단 말이지.”
내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힘.
악귀같은 것을 내쫓고, 혈기와는 정반대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기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채 내 전신을 가득 채운 칠흑에 삼켜졌다.
“이제와서 뭘 다시 할 수도 없고.”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한다.
혈교주 때도 혈기를 쓸 수 있어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 것 아닌가.
“들어와.”
“네, 공자님.”
안예인이 두 손을 뒤로 묶인 채 막사 내로 들어왔다.
그녀의 얼굴엔 명백하고도 야릇한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묶인 채로 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공자님. 아, 어차피 공자님에게 짓눌려서 못 움직이니 같을까요?”
다른 종류의 의미로 믿을만한 여자였다.
저토록 음란해진 암컷이 내 자지를 포기할 리가 없었다.
이건 수컷의 정점에 다다른 육체를 지닌 내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였다.
“...이리 와서 앉아봐.”
“네.”
안예인이 다소곳이 내 앞에 꿇어앉았다.
옆에 의자도 있는데, 굳이 내 사타구니 앞에.
그녀는 명령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나를 올려다봤다.
“천마가 영기로 무얼 할 수 있다 그랬지?”
저번에 했던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조금 더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안예인이 곰곰이 생각해보다 입을 열었다.
“음... 정말 예지력이라도 있는 듯, 항상 감 이야기를 했어요.”
먹는 감은 아닐 테고.
고수들에게 있다는 그 육감이다.
영기와 합쳐져서 진짜 미래를 보기라도 하는 걸까.
“신기하게도 언제나 들어맞았었죠. 혈교를 먹어치울 때도, 혁무린은 ‘출전해야한다’ 하고선 그대로 모두를 이끌고 혈교로 향했어요.”
“다른 건?”
“그녀의 옆에 있다보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랄까요. 잡념이 사라지고, 목표가 뚜렷해져요.”
내가 거슬리는 건 이거였다.
영기가 악귀를 정화하는 것처럼, 심신 또한 정화하는 걸까.
‘그러면 미색령의 통제도 영기에 사라질 수 있어.’
절대에 오른 혁무린이라면 가능할 듯 싶었다.
거기다 애초에 소율은 스스로 벗어나지 않았었나.
심지어 천마신공은 영기(靈氣)를 사용하는 신공.
미색령의 통제가 그냥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다.
‘근데... 만약 그렇다면, 또 해볼 만한 게 있지.’
난 안예인을 일으켜 세우고, 헐렁한 치맛속으로 손을 넣어 비부를 매만졌다.
이미 나와 만난 것만으로도 푹 젖은 씹보지가 벌름거리며 손가락을 삼켰다.
“흐으읏... 응, 하앙...!!”
“...예인.”
“네엣, 하아, 응... 호옷!!”
채 몇 분도 안돼서 몇 번이고 절정한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는 나를 절대로 배신할 수 없었다.
“너에게 미색령을 쓸 거다. 이건 미약과 동조해 심령을 제압하는 귀물이지.”
“절... 못 믿으시는 건가요, 공자님? 이미 공자님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몸인 걸요...”
그녀가 애처로운 얼굴로 내게 매달렸다.
풀썩 무릎까지 꿇고는, 내 사타구니 사이에 들러붙었다.
“그런 게 아니야. 천마를 한 번 더 속이자는 거지.”
“한 번 더...?”
처음엔 안예인을 제외한 모두를 미색령으로 통제하려 했다.
헌데 천마가 만약에라도 그것을 느낄 수 있다면, 안예인만 따로 놔두는 건 하책이었다.
‘차라리 전부 통제해놓고, 천마가 그 통제를 직접 풀게 만든다.’
스스로에 대한 강한 믿음과 확신이 없다면 고수가 될 수 없다.
혁무린은 그녀의 힘을 믿고, 자신이 통제를 풀어낸 장로들을 좀 더 믿게될 거다.
내 계획을 전부 들은 안예인이 눈을 반짝였다.
“역시 대단하세요, 공자님!!”
“은근슬쩍 바지 벗기지마.”
“힝...”
마교가 당장에라도 쳐들어올 수 있었다.
이미 내 자지에 안달이 난 년의 성욕을 굳이 해소시켜줄 필요는 없었다.
때론 애를 태우는 게 더 효과적이니까.
“헌데 이러면 안려인을 통제해야돼. 방법이 있겠나?”
“제가 한 번 이야기를 해볼게요.”
정 안되면 어쩔 수 없었다.
정도연합군을 탈출하는 건 유미연과 안예인으로 제한해야 할 수도.
나는 안예인에게 공화춘을 먹이고, 미색령으로 심령을 제압했다.
어차피 뭔 음탕한 짓을 시켜도 내 말에 따를 테니 굳이 검증을 하지는 않았다.
“나가서 동생 설득해보고, 철기 데려와.”
“네, 공자님.”
안예인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훔치며 막사를 벗어났다.
나는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이어 들어온 철기를 바라봤다.
멍한 눈빛과 넋이 나간 얼굴.
고개가 뒤로 향한 게 아내만은 또렷이 기억하는 듯 했다.
철기에게도 미색령을 사용했다.
“하명하십시오, 공자님.”
“이제부터 내 명령엔 절대복종하고, 마교에선 네 아내인 안예인의 말에 따르도록.”
“존명.”
아무런 고저도 없는 건조한 목소리.
난 좀 더 사람답게 행동하라 명령한 뒤, 오른팔에서 혈옥을 조금 떼어내 그에게 먹였다.
‘생사혈고 급은 아니더라도, 한방 먹일 정도는 되겠지.’
어차피 최후의 수단이다.
쓸만한 전력을 쉽사리 던지긴 아까웠다.
뒤이어 들어온 유미연도 공화춘을 먹고 미색령에 통제를 당했다.
“걱정마세요, 공자님. 전 공자님을 배신하지 않을 테니까요.”
“일이 무사히 끝나면, 내 방으로 부르도록 하지.”
“...네.”
이제껏 본 것 중 가장 밝은 표정을 한 그녀도 방을 나섰다.
아직 밤이 되기엔 이른 노을이 지는 시간.
미리 소율을 부를까 하던 차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나를 스쳤다.
아니, 연합군 전체를 스쳤다.
그리고 그 감각이 나를 콕 찝어 건드렸다.
‘천마.’
다른 이들은 그를 전혀 모르는 듯 보였다.
나는 곧바로 막사를 뛰쳐나갔다.
*
“...언니,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부군과 내가 모두 살아남으려면.”
안려인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홀로 막사에 갇혀있던 도중, 상기된 얼굴로 찾아온 자신의 언니.
아까의 일만 생각하면 부끄럽고, 수치심에 죽을 것만 같은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야기를 꺼내왔다.
“이제까지가 전부 언니의 계획이었다고?”
“응. 물론 부군의... 상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어. 그이가 나를 여전히 그토록 사랑하고 있을 줄은.”
그 미친 짓과 음란한 짓거리가 모두 계획었다니.
누가 그딴 개소리를 믿겠는가.
“...엄청, 즐기는 것처럼 보이던데.”
“즐겼지. 솔직히 너도 보면 알겠지만, 무당신룡은... 남자로서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는 않을 거야.”
“...”
"날... 여자로 만들어주는 남자였지."
그건 인정 할만 했다.
전신에 단단히 들어찬 근육, 커다란 몸, 두꺼운... 남근.
계집이라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사내였다.
안예인은 결연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고작, 육욕 따위에 이 언니가 수십 년간 키워온 마교를 배신할 거라 생각하는 거니?”
"어... 음... 아니지."
솔직히 보기엔 그랬다.
무당신룡과 몸을 섞는 언니는 계획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암캐 같았으니까.
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마교에 충실한 것 역시 언니였다.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필사적으로 마교를 되살리려 노력했는지 안려인은 전부 보았다.
‘언니가 그랬기에, 나는 극마굴에서 버티고 강해질 수 있었지.’
그런 주제에 아직도 절대에 발을 못 내딛어 미안할 따름이었다.
안려인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이지? 그 계획대로 여길 벗어나서, 마교로 돌아가는 거?”
“그럼, 당연하지. 돌아가면 지존께 용서를 빌 거야.”
“...알겠어.”
결국 가족이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옆을 지켜준.
그저 피가 이어졌다고 대대손손 이 거대한 중원 땅을 다스리는 황제도 있는데.
조금 의심되는 정도로 어찌 핏줄을 내치랴.
안려인은 아까부터 언니의 입가에서 거슬렸던 꼬부랑 털 하나를 떼어주며 말했다.
“칠칠맞게 머리카락 좀 그만 먹으라니까.”
“역시 우리 려인이 밖에 없네.”
꽉 껴안은 언니의 품에선, 조금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