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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13화 (213/230)

“우오오오오!!!”

“마교를 무너트려라!!!”

각자의 기합성을 내지르며 무사들이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각 세가나 문파들의 무사대를 위주로 배치했기에 어긋남은 적었다.

무림맹의 청룡단, 남궁의 창천대, 소림의 나한들, 그 밖의 수많은 무사대들이 마교를 향해 돌진했다.

저쪽도 같았다.

단지 나눠진 이쪽과는 달리, 수천의 무사들 전부가 하나 된 듯 달려오는 것을 빼면.

이내, 두 개의 파도가 강렬하게 맞부딪혔다.

“끄아아악!!”

“죽어라!!”

“신교를 위하여!!”

비명과 폭음, 살점과 핏물이 난무했다.

여기저기 보랏빛 마기와 청명한 기운이 뒤섞이며 폭발이 일어났다.

전열이 뱀처럼 구불거리며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정도연합군과 마교의 첫 격돌은, 백중세였다.

“...희생이 크겠구나.”

“어쩔 수 없어. 지금은 믿는 수 밖에.”

소율이 착잡한 목소리를 냈다.

사랑하는 이의 의지이자, 그녀도 바랜 것이지만.

결국 무수한 이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 것이다.

모든 것을 건 전쟁에 유일한 위안은 하나뿐이었다.

‘승리로서 갚아야 하겠지.’

뱃속의 아이를 위해서라도.

패배란 단어는 오늘 이쪽에 존재해서는 안됐다.

소율은 어깨를 토닥이는 무진의 손길을 느끼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래도 잘 싸우네.”

난 송문고검을 소율에게 돌려주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음 같아서야 아래쪽에 크게 한 방 날려주고 싶다만, 그래서야 이쪽도 개판이 날 거다.

절대 고수들이 서로의 기운을 아래쪽에 쏟으면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다.

서로가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뜻이 통한 그들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이미 각자의 상대를 정한 양 진영이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모두가 자신의 맞상대를 따라 조금씩 나뉘어졌다.

소서화가 자신의 앞에 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바로 무림맹주구려.”

“처음 보는군. 그쪽이 마교의 일장로인가.”

“맞소. 헌데, 무림의 맹주라기엔... 실력이 부족해보이는구려.”

“그런가? 그쪽 장로들도 부족하기는 매한가지던데.”

“크흠...”

왕대식의 도발에도 소서화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정말로 저 뒤에 있는 사내보다 실력이 부족했으니까.

검술의 신묘함은 아직 자신이 더할지 몰라도.

맞서 싸운다면 이제 백무진을 이길 수는 없었다.

소서화는 자신의 말에 마땅한 반격을 하지 못하는 왕대식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일전에 본인의 친우가 신세를 졌었지.”

“그 대단하다는 천극혜검이 꼬리를 만 것이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마음 같아서야 소율에게 왕대식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아직 부상이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애까지 밴 소율로서는 왕대식을 상대하기 위험했다.

무진도 그를 말렸다.

왕대식은 슬쩍 소율을 쳐다보고선 비웃음을 흘렸다.

“정파가 다 그렇지요. 어쩔 수 없다하며, 자신들의 부족함을 무마하려는 것은.”

“마교의 일장로가 이리 혀가 길 줄은 몰랐네만.”

“...그것도 그렇군요. 어디 한 번 놀아봅시다.”

무진의 계획에 따르면 실질적인 전력은 일장로 뿐이었다.

물론 어찌될지 모르니, 위험한 적은 줄일 수 있을 때 줄여놔야했다.

‘단숨에 처리하고 소율을 도와야겠군.’

그리 생각한 소서화의 묵직한 검격이 왕대식이 서있던 곳을 갈랐다.

왕대식은 가볍게 검격을 받아내며 왼손에 쥔 검을 휘두르려했다.

“한 손으로 되겠는가.”

“큭...!!”

순간 무게가 몇십 배로 늘어난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소서화의 허리를 베려던 왕대식의 좌검이 다급히 우검과 함께 검을 받아냈다.

‘이미 공간을 지배했는가!’

거대한 압박감 속, 느릿하게 움직이는 몸을 보며 왕대식 또한 기운을 끌어올렸다.

쌍검에 담긴 마기가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소서화가 지배한 공간에서 기지개를 핀 왕대식의 검이 폭풍처럼 베어나갔다.

“저쪽은 벌써 시작했군요.”

“...검을 들지.”

“창수에게 검을 들라니요. 보는 눈이 없으십니다.”

소율 또한 자신의 상대를 마주했다.

무진이 데려왔던 장로들 중 하나인 안예인.

소율의 눈빛에 흥미와 적의가 동시에 깃들었다.

‘창수라.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겠어.’

동격의 상대라면 길이의 우위를 가진 창이 몇 배는 유리하다.

물론, 절대지경의 수준에 병장기의 우열이 중요치는 않았지만.

소율은 마음을 곧게 세우며 검을 들었다.

점점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적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하구나.’

그녀의 눈동자는 확실히 적을 바라보는 눈빛이었지만, 조금 느낌이 달랐다.

소율은 그 이상함을 잠재우며 검끝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안예인도 창을 휘두르며 자세를 잡았다.

-그쪽이 공자님의 첫 번째 여자로군요. 아주... 부러워요.

안예인의 전음을 듣는 순간, 소율은 깨달았다.

-하지만 공자님은 이제 내 남자가 될 겁니다. 내가 반드시 그리 만들 거에요.

저 눈빛은.

연적을 바라보는, 질투의 눈빛이었다.

“감히!!!”

“아십니까? 마교는 싸워서 쟁취하지요!!! 그것이 돈이든, 무공이든, 남자든 간에 말입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소율이 머리 끝까지 차오른 화를 삭히며 기운을 거세게 끌어올렸다.

감히 자신의 남자를 넘보다니.

옆구리에 베인 상처는 이제 아프지도 않았다.

‘이년이고 저년이고 죄다!!!’

돌아가면 아주 밤마다 설교를 해야할 판이었다.

더 이상 여자 늘리지 말라고!

아무리 영웅은 삼처사첩이라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눈앞의 연적과 남편에 대한 징벌을 다짐한 소율이 소리쳤다.

“여기서 죽여주마!!”

“도사님이 그런 살벌한 소리를 하십니까!!”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창영이 순식간에 소율의 앞을 뒤덮었다.

동생인 안려인과는 하늘과 땅 수준으로 차이가 나는 매서운 창격.

허나 소율은 입꼬리를 비틀며 검을 단단히 쥐었다.

“네년의 창은 본녀의 검을 뚫지 못할 것이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는 듯 입에 담는 그녀.

무형의 흐름이 공간을 휘감았다.

“읏?!”

그 순간, 안예인은 자신의 창이 크게 헛도는 것을 느꼈다.

공간을 뒤덮은 창영이 사라지고 통제할 수 없게 된 창이 제멋대로 날뛰었다.

“하압!!”

안예인이 마기를 폭사하며 창을 곧추 잡았다.

소율의 힘을 떨쳐낸 그녀가 소리쳤다.

“다 늙은 년이 잔재주를!!”

“닥쳐!! 이, 이... 걸레년아!!”

“늙어빠진 도사년!!”

역린을 건드리는 말에 소율의 눈이 돌아갔다.

둘 사이에 원색적인 말이 오가며 싸움이 격해졌다.

그리고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

운휘와 유미연은 서로에게 검만 겨눈 채 주변을 살폈다.

이미 천마와 백무진은 더 높은 상공으로 사라진 채였다.

물끄러미 하늘을 바라보던 유미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모르니 전음으로 물었다.

-우리가 저리 싸울 필요가 있겠소?

-...백 대협의 언질을 받은 거요?

-그렇소. 나 또한 공자님의 여자가 되기로 했소. 그러니 적당히 검만 나눕시다. 이쪽은 아직 부상이 덜 나았기도 하고, 괜히... 힘 뺄 필요있겠소?

운휘는 싱거운 대화에 적잖이 실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진을 거스를 수도 없는 법.

적당히 기운을 끌어올린 그녀가 허공을 격했다.

-대련 수준만 합시다!!

-칫... 알겠소.

휘황찬란한 기운이 서로에게서 뿜어졌다.

실속이라곤 하나도 없는 기술들.

하지만 아래쪽에서 보기엔 천지를 개벽하는 싸움이었다.

“사군께서 정파의 고수들을 격살하고 계신다! 밀어붙여라!!”

“속지마라! 마교의 졸개들이 천극혜검께 무참히 당하고 있다!!”

두 진영의 지휘관들이 검을 휘두르며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마교 놈들의 기세가 장난이 아니구나!’

‘섣불리 물러났다간 몰살이다.’

회의 시간에 괜히 뻗대다가 선봉을 맡은 오대 세가의 일원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가장 많은 전공을 올릴 수 있지만, 반대로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곳.

그렇다고 몸을 빼거나 무사들을 물리면 돌아가서의 질책이 두려웠다.

구파일방과 수많은 약소문파들이 오대 세가를 득달같이 찢어먹을 것이었다.

“몰아붙여라!!”

“정파의 위선자들을 쳐죽여라!!”

한편 마교에서도 전열을 밀어내지 못해 고생이었다.

수십 년간의 평화에 빠져있어 연약해진 줄 알았는데, 독기와 광기가 정파 무사들의 눈에 형형했다.

일치단결된 마교의 힘으로도 쉽사리 밀어낼 수 없었다.

“지선님, 아무래도 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지선, 사마유는 성 위에서 지도를 펼쳐놓은 채 고심했다.

‘역시 고수의 숫자가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에 반해 정파는 여길 봐도, 저길 봐도 초절정 급의 고수들이 즐비했다.

작은 문파의 문주도 초절정이었고, 거대 세력들은 무사대의 대주마저도 초절정이었다.

그 아래는 또 어떠한가.

절정의 끝자락에 이른 이들이 태반이 넘어갔다.

결국 위쪽의 싸움으로 결정이 나겠지만.

이래서야 마교의 무사들이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신도 없는 신교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조금 이르지만... 어쩔 수 없겠군.”

“나를 보내주시오, 지선!”

“아, 사장로님.”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못한 기간 동안 폭삭 늙어버린 사장로 철기였다.

허나 번뜩이는 눈빛만큼은 지옥에서 올라온 야차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는 천마가 요긴히 쓰라며 내어준 패였다.

‘철기라면 전황을 뒤흔들 수 있겠지.’

그는 무진에게 당해 정신이 무너진 동안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몰아(沒我)라고 이름 붙여야할까.

전혀 관심없던 그의 은신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정말 죽은 이처럼 그가 앞에 있는데도 아무런 기척이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정파의 초절정 고수들을 죽이고, 그 뒤에 적의 수뇌부를 치셔야합니다, 사장로.”

“맡겨만 주시오. 저 육시럴 놈이 피눈물을 흘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것이니.”

아내를 빼앗긴 남편의 분노는 처절했다.

퀭하니 움푹 패인 철기의 눈을 바라보며 사마유가 임무를 내렸다.

“이곳, 아니면 이곳에 정도연합군의 총군사 제갈여령과 수뇌부가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아마도 진법이나, 함정이 준비되어...”

“알겠소. 전부 죽이고 오리다.”

무언가 더 말하려던 사마유가 입을 닫았다.

그러곤 싸늘한 목소리로 작게 읊조렸다.

“하여튼, 생각 없는 새끼들...”

제아무리 절대지경의 고수인 철기지만.

오랫동안 무림맹 총군사로 있던 제갈여령이 그리 허술하게 방비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지금 전쟁을 이끄는 초절정급 무인들을 죽이라 했으니 거기서 역전의 발판을 보아야할 터.

‘뭐, 날뛰다가 죽어도 좋겠지. 그의 실력이라면 뭐가 됐든 효과를 볼테니.’

지휘봉을 탁자 위에 내리며 사마유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무시무시한 기세가 그곳에서부터 퍼져나오고 있었다.

‘이왕이면... 쯧, 아니야. 섣불리 길을 갈아탈 필요는 없겠지.’

마교가 조금씩 밀리긴 하지만.

아직까진 백중세였다.

하지만 이 전장의 모두가 저 거대한 기세를 피부로 느끼며 깨달았을 것이다.

‘승패의 향방은, 저쪽에 있으니까.’

그들의 싸움은, 사마유의 머리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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