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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15화 (215/230)

-시작해라.

그것이 장로들에게 내려진 명령이었다.

한창 박터지게 싸우고 있던 안예인이 소율을 멀리 쳐내며 한 발 물러났다.

“후우, 후... 뭐지?”

“공자님이 명을 내리셨다.”

“...”

입을 굳게 다문 소율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싸움을 멈추고 대기하고 있는 유미연과 운휘.

그리고 그 갑작스런 소강 상태를 인지한 채로, 죽음 위를 걷고 있는 두 여자가 보였다.

소서화와 왕대식은 피투성이가 된 채 미친 듯이 검을 맞대고 있었다.

“본녀는 그이의 뜻에 따를 것이지만, 네년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일 게다.”

“망설여봤자, 아래쪽 무사들의 희생만 커질 텐데.”

“...”

“고고한 척 하지마라, 천극혜검. 승부를 내고 싶다면, 공자님께서 모든 걸 차지한 후 이어서 해도 늦지 않는다.”

안예인의 신랄한 말에 결심한 소율이 전음을 보냈다.

유미연과 안예인이 지상으로 하강하고, 운휘가 다가왔다.

“...장문인.”

“이건 무인의 대결이 아닌, 전쟁이니라. 헛된 자존심을 내세워봤자 저 여자의 말대로 희생만 커질 뿐.”

“따르겠습니다.”

“먼저 일장로를 처치하도록 하자꾸나.”

“예.”

두 절대 고수가 허공에 홀로 남은 일장로를 쫓았다.

왕대식은 그 모든 걸 지켜보며 거칠게 분노를 터트렸다.

당장 배신자들을 응징하고 싶어도.

눈앞의 느릿한 검은 거미줄처럼 자신을 옭아매어 놓아주지 않았다.

“크아아!! 이 배신자들!! 지존께서 너희를 용서치 않으리라!!!”

쌍검의 마기가 불길처럼 치솟았다.

그런 그녀를 둘러싼 세 명의 여인.

소율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그녀의 죽음을 선언했다.

“서화, 서둘러 처리하고 지상을 정리한다.”

“...그래.”

공허탈백참(空虛奪魄斬)

만유(萬流)

천둔(天鈍)

세 명의 절대지경.

세 개의 법칙이 왕대식을 향해 쏟아졌다.

활화산처럼 피어오르던 보랏빛 마기가 끝끝내 사그라들었다.

*

“꺽...!”

“대주님?!”

그 시각, 지상의 전장에선 섬뜩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쟁을 이끌던 정도연합군의 초절정 고수들의 목이 덧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주변에서 상황을 인지한 다른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모조리 죽인다.’

마교의 사장로 철기.

그의 연검이 낭창일 때마다 십수명의 무인들이 상반신과 하반신으로 분리됐다.

“암살자가 있다!! 모두 경계를... 끅!!”

위험을 알리려 소리치던 무인이 두쪽으로 갈라지고.

‘어서 호각을... 컥!!’

비상용 호각을 입에 물던 무사는 호각 째로 토막나 바닥을 나뒹굴었다.

혼란한 전장에서 기척을 숨긴 절대 고수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철기의 눈동자가 다음 상대를 찾았다.

후방에서 돌아와 기습한 터라 거대 세력의 가주급 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시선이 혼란이 발생한 이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홀로 전황을 바꾸는 능력.

절대 고수로서 그것을 증명한 철기가 눈을 번뜩였다.

‘좋아, 본교가 다시 밀어내고 있다.’

감히 집중력을 흐트러트린 채로 맞설 만큼 천마신교는 나약하지 않았다.

또한 사마유가 명령한 후방의 초절정 고수들도 반 이상 썰어냈다.

나머지는 이상함을 알아차리고 그의 주변에서 벗어났다.

즉, 지금 철기의 주변은 반항 한 번 하지못할 연약한 토끼들만이 존재했다.

그중에서 그가 찾은 것은 도복을 입은 무당의 제자들이었다.

‘도복! 망할 무당신룡의 문파!!’

눈이 돌아간 그가 피묻은 연검을 흔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타고 뱀처럼 쏘아진 검격.

그것이 무당의 제자들을 토막내려는 순간.

주위의 환경이 변화하며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 나타났다.

‘무엇... 진법인가!’

반쯤 미쳤다지만 그의 정신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연검에 맺혔던 폭급한 마기가 주변으로 쏟아졌다.

콰아아앙!!

허나 공간이 조금 일렁였을 뿐, 허허벌판의 모습은 그대로였다.

다시 기운을 끌어올리던 철기에게 은은한 목소리가 울렸다.

“성질이 급하십니다.”

“누구냐!!”

“이리 날뛰시는 걸 보면 사마유의 명을 받고 오셨겠군요, 마교의 사장로 철기.”

“나를 아는 모양이구나. 네년이 제갈여령인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을 깨달은 철기가 조용히 힘을 갈무리했다.

천마에 의해 이지를 조금이나마 되찾은 그가 생각했다.

‘진법의 핵을 찾아 부숴야하는데... 힘으로 밀어붙여야하나.’

제갈여령이 나선 것을 보면 제대로 피해를 준 것이 맞았다.

무당의 제자년들을 죽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이제 다음 목표를 처리해야 할 때.

넘실거리던 보랏빛 마기가 그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총군사가 스스로 나서다니, 정파도 어지간히 인재가 없군.”

기운을 끌어올릴수록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철기.

제갈여령은 진법 속에 숨은 채 얼굴을 굳혔다.

‘더 시간을 끌고 싶지만, 그랬다간 진법이 박살나겠군.’

이 진법의 핵은 바로 자기자신.

그만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테지만, 부서진다면 그녀에게 남은 건 죽음뿐이었다.

이미 처음의 공격으로 내장이 상했다.

다른 군사들에게 서둘러 지원을 요청한 그녀가 속삭였다.

‘환몽은살진(幻夢隱殺鎭) 속에서 죽어가시오.’

제갈여령이 부채를 펼쳐 거칠게 휘둘렀다.

철기는 미약한 돌풍과 함께 눈앞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다.

‘이깟 진법, 부수면 그만...’

무공을 사용할수록 점차 정신이 또렷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를 가슴속에 묻고, 복수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는 그렇게라도 한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찬란한 재능의 소유자였다.

-츕, 츄우웁... 츄룹...

-흐... 맛있소?

-네에, 움, 하웁, 쪼오옵...

그런 철기의 몸이 반사적으로 하초를 딱딱하게 세웠다.

어느새 자리에 눕듯이 앉은 그의 시선에 보여선 안될 무언가가 보였다.

“아, 안돼...”

눈앞에서 사랑하는 아내가, 무당신룡의 커다란 흑자지를 빨고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얼굴로.

명징해져가던 정신이 다시 수렁으로 빠져들어갔다.

검을 쥔 손이 증오와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런 자신을 무시한 채 황홀한 얼굴로 자지를 삼켰다.

‘진법, 진법이다. 고작, 환상일, 뿐이...’

애초에 절대 고수가 이런 환영진 따위에 당할 리가 없었다.

허나 그에게 있어서 아내의 배신은 단 하나 남은 역린이었다.

이지를 되찾은 정신마저 부숴버릴, 그런 치명적인 약점.

“하지마! 하지마아!! 으아아아!!!”

아내는 놈의 정액을 꿀꺽 삼키고선, 자신의 것을 빨았다.

-뱉으시오, 입맛만 버릴 테니.

-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악몽이 되풀이되었다.

이지를, 힘을 되찾은 일은 꿈처럼 흐려졌다.

자신은 여전히 무력하게 아내를 빼앗긴 병신 새끼일 뿐이었다.

-부군의 맛은 어떻소?

-...비리고, 축축해요.

-내 건?

-너무 진해서, 뜨겁고... 머리가, 멍해지는... 맛이에요.

-더 먹고 싶소?

-아래로... 먹게 해주세요, 부디.

아내의 마지막 말과 함께, 철기는 완전히 미쳐버렸다.

본능만이 남은 그가 보기 싫은 눈앞의 장면에 미친 듯이 마기를 휘둘렀다.

아이처럼 새된 비명을 내지르며 투정을 부렸다.

“으아아!! 싫어!! 보여주지마아아!!!”

저도 모르게 강력한 한 방을 먹인 제갈여령의 안색이 시퍼렇게 질려갔다.

‘이대로면, 진법이...’

정신이 무너졌더라도 내공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

검에 담긴 심오한 이치는 사라진 채, 그저 힘만이 격렬하게 진법을 뒤흔들었다.

“쿨럭, 지원은... 아직...”

“돕겠소, 총군사!”

아직 위쪽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그때.

기습 부대로 빼놨던 지부장들이 철기에게로 달려들었다.

상황을 파악한 제갈여령이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적은 이지를 상실한 상탭니다! 기회를 노려 한 번에 목을 베세요!!”

수십의 검이 철기를 향해 그어졌다.

절대 고수라면 응당 한 손으로 열 손을 막아내겠지만.

무식하게 힘만을 휘두르는 아이는 불가능했다.

깡! 카가가각!!

거친 쇳소리와 함께 철기의 연검이 하늘을 날았다.

그는 자신이 손에 쥔 것이 검인 것도 몰랐다.

그저 땡깡 부리듯 몸에 있는 것을 쏟아냈다.

“그만 하고 죽으시오!!”

황보연의 주먹이 터져나오는 마기 사이를 뚫고 그의 가슴팍을 때렸다.

움푹 패인 가슴팍에 피를 토해내는 철기.

극렬한 고통 덕분인지 그의 눈에 살짝 빛이 어렸다.

“예, 예인...”

그의 눈동자가 아직 환상 속에 있는 아내를 향했다.

무당신룡의 자지에 처박혀 헐떡이고 있는, 사랑스러운 여인.

그것을 끝으로, 철기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됐소!”

“총군사, 괜찮으시오!”

“네, 저는 괜찮으니... 이제 전쟁을 서둘러 끝마쳐야 합니다.”

예상 외의 전력이었던 사장로마저 죽었다.

그리고 위쪽에서, 한 인영이 아무런 반응도 없이 낙하하고 있었다.

“저것은...”

쿠우웅!!

뒤이어 세 명의 여인이 지상으로 강림했다.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다가온, 피투성이의 여인.

“맹주님!!”

다른 두 인영은 밀리고 있던 전열에 가세해 천마신교의 고수들을 밀어냈다.

“총군사. 마교의 일장로가 죽었네. 곧 전쟁이 끝날 게야.”

소서화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녀조차도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맞붙고 있었다.

다시 지상으로 향한 눈동자가 저멀리 납사성을 보았다.

“서둘러 마무리를 짓고 기다려야겠군요.”

“그래. 빠르게 움직이지.”

그 시각.

마교의 진영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장로님, 어째서...”

“이미 대세는 기울어졌다. 유 가(家)는 나를 따른다. 중원 무림에 새로운 하늘이 열릴 것이다.”

납사성 안으로 들어온 유미연이 자신의 휘하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천마신교에 충성하는 자도, 그렇지 않은 자도 있었다.

“베어라.”

“커억!”

“끄아악!!”

미리 선별해둔 그들을, 유미연의 직속 무사들이 처리했다.

먼 하늘의 천마를 그리던 그들이 숨을 거뒀다.

아직 갈팡질팡하던 이들은, 볼에 묻은 피를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이의가 있느냐.”

“없습니다!!”

“안 가(家)와 합류해 납사성을 점령한다. 서두르자.”

“존명!!”

유미연이 밖으로 나와 안예인이 이끄는 안 가의 무사들과 합류했다.

그들의 몸에도 피가 묻어있었다.

“팔장로는 어딨죠?”

“제압했어요. 공자님께 드릴 선물이죠.”

“...그렇군요.”

몰라보게 달라진 안예인을 바라보며 둘이 속도를 냈다.

목표는 성 위쪽에서 지휘를 하고 있을 지선 사마유.

그곳에 도착하자, 이미 다른 군사들이 전부 제압당해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지선?”

“보면 모르겠나요, 삼장로? 우리 지선께서도 길을 갈아타신 게죠.”

“맞습니다. 두 분은 이미 무당신룡에게 충성을 바치셨겠죠.”

“맞아요. 공자님에게 내 모든 걸 바쳤답니다.”

사마유는 이미 배신을 염두해두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마교의 두 사군의 배신은 그런 마음을 한쪽으로 쏠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원하는 건 성문을 닫는 것이겠군요.”

“맞아요.”

지선(智仙)이라는 별호답게 이미 무당신룡이 내린 명령을 알아챈 그녀.

사마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나만... 묻죠. 무당신룡의 승리가 확실한가요?”

두 여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을 제압해 군영으로 돌아갈 때, 그가 내보인 기운은 천마조차도 범접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배신 따위는 꿈도 꾸지 말라는 듯.

그는 그렇게 자신의 힘을 그녀들의 머릿속 깊이 새겼다.

그 모습을 바라본 사마유가 일어섰다.

“...성문을 닫아라.”

사마유의 명령에 혈교 시절부터 그녀를 따랐던 무사들이 도르레를 굴렸다.

만 근의 철덩어리가 힘겹게 움직여 마침내.

천마신교의 퇴로가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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