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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16화 (216/230)

구구구궁...

거대한 굉음이 전장에 울려퍼졌다.

여유가 있는 자들은 모두 그 소음의 근원지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성문이... 성문이 닫히고 있잖아!!”

“무슨 소리냐! 성문이 왜 닫혀!!”

천마신교의 무사들에게서 소란이 일었다.

작은 웅성임이었던 그것은, 다들 한 번씩 뒤를 돌아보고나선 커다란 혼돈으로 바뀌었다.

연합군을 밀어붙이던 천마신교의 철벽같던 전선이 흔들렸다.

“한 대장님!! 대체 성문이 왜 닫히는 겁니까!!”

“이것도 지선의 계획인 겁니까!”

일치단결된 그들이라도 상하관계는 존재했다.

일백의 무사들을 맡은 한씨 성의 백인대장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저런 계획은 듣지도 못했다.’

그의 시선이 재빨리 거대한 성의 망루로 향했다.

그곳에 있던 지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성 위의 인기척이 전부 사라졌다.

‘이 망할 혈교의 빨갱이년!!!’

정황상 그 지선인지 뭔지하는 화냥년이 배신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고보니 사군들께서도 안 보이신다. 혹시...’

사마유의 배신을 알아차리고 응징하러 가신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래도 성문이 닫히는 것은 패착이었다.

이미 일장로의 시체가 하늘에서 떨어져 육편으로 화했고.

뒤이어 내려온 정도연합군의 절대 고수들이 전선을 무지막지하게 밀어내고 있었다.

법칙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절대로 막아낼 수 없는 불가항력의 폭풍.

천마신교는 바람 앞의 촛불같은 상황이 되었다.

“버텨라!! 모든 것은 지존의 계획이시다!! 밀어내라!!”

그래서 백인대장은 그리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저것마저 배신의 일환으로, 자신들이 닫힌 성과 연합군에 밀려 갇혀죽을 것을 알면 사기는 바닥을 친다.

그 뜻을 깨달은 다른 백인대장들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천마신교의 무사들은 우후죽순으로 죽어나갔다.

결국, 굳게 닫힌 성문 앞까지 밀린 천마신교.

한껏 축소된 전장에 맑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다들 멈추어라.”

동시에 하늘로 떠오르는 선녀같은 자태의 여인.

“본녀는 무당파의 장문인, 담소율이다.”

거짓말같이 전장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니, 입을 열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그들이 육성으로 내보낸 소리가 어떤 흐름에 휘말려 사라지고 있었다.

‘이게... 천극혜검인가.’

초절정에 다다른 마교의 천인대장 중 하나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이 전장 전역에 천극혜검의 법칙이 미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녀의 검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끝을 예감한 천인대장의 귀에 따뜻한 목소리가 울렸다.

“더 이상의 싸움은 멈추거라. 정도연합군 수장의 명령이다.”

나긋하지만 강한 음색에 정도연합군의 무사들이 기세를 죽였다.

그것을 바라본 소율이 천마신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천마신교. 그대들도 더는 무익한 싸움을 하지말라. 이 이상 피를 흘리는 것은 무의미하니, 항복을 선언하시게.”

소율의 휴전 선언에 천마신교 쪽에서도 누군가 나섰다.

마교의 오장로, 곽혜연이었다.

“신교는 물러서지 않는다! 설사 지존께서 목숨이 끊어지시더라도, 마지막 한명까지 너희들을 도륙낼 것이다!!”

“그럼 그대는, 이대로 신교의 동량들이 전부 죽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갑작스레 미약한 산들바람이 일어나 서늘하게 목을 스쳤다.

모두가 그것이 하늘에 선 선녀의 검임을 알았다.

“당연히...”

그럼에도 곽혜연은 당연히 그렇다 외치려 했다.

천마신교는 그런 곳이니까.

강한 힘을 숭앙하고, 그 정점에 선 지존의 명이라면 목숨마저도 내놓는다.

질 것이 뻔한 전쟁이라도 적의 수급을 하나라도 더 취한다.

하지만, 입을 연 그녀의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들이 꽂혔다.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마른 침을 삼키며 곽혜연이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마.’

‘더 싸우기 싫어. 죽기 싫어.’

‘살려준다잖아, 그만해.’

‘네가 뭔데 우리 목숨을 버리라 마라야.’

약자들의 눈빛이었다.

패자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새로 태어난 천마신교는 아직, 천마신교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나가고, 믿고 있던 절대지경의 고수들은 사라진 채였다.

더욱이, 지존은 저 위의 하늘에서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었고.

“...끝이군.”

곽혜연은 절망함과 동시에, 모든 기운을 끌어냈다.

목표는 저 하늘의 천극혜검.

저 계집의 목숨이라도 취한다면, 신교의 무사들은 다시 정신을 차릴 것이다.

한 자루 거대한 검이 되어 날아오는 그녀를 보며 소율이 읊조렸다.

“본녀가 보증하지. 이 이후로, 죽는 자는 없을 것이니라.”

한줄기 보랏빛 섬광이 되었던 곽혜연이 눈을 감았다.

검을 겨눈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닿지 않는가...’

소율의 송문고검이 유려한 곡선을 만들어내며 섬광을 갈랐다.

잔인한 장면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보랏빛 섬광은 잦아들었고, 목에 붉은 실선이 그어진 곽혜연의 시체가 천천히 지상에 내려앉았다.

자는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본녀의 마지막 자비일세.’

마교의 남은 장로들이 나와 그녀의 시체를 수습했다.

그들이 검을 떨어트리며 말했다.

“천마신교는 항복을 선언하겠소.”

안도의 탄성과 긴장이 풀려 털썩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그쯤되어서 납사성에 있던 안예인과 유미연이 등장했다.

눈치가 빠른 자들은 그녀들 또한 배신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마교는 나와 삼장로가 통제하겠소.”

“...그러시오.”

아까전까지만 해도 눈을 부라리며 욕을 해댔던 둘이 서먹한 얼굴로 걸음을 돌렸다.

마교의 무사들은 무장을 해제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도연합군 또한 검을 납도한 채 긴장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

“하악, 하악...”

드높은 상공.

보랏빛과 불길한 흑색이 맞붙었다.

‘강하군. 정말로 강해.’

혁무린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내 고개를 털어 잡념을 떨쳐낸 그녀가 다시금 달려들었다.

“하아아!!”

지쳐버린 몸은 기합성이라도 내질러야 힘이 났다.

우득, 꾸드드득...

손 끝에 걸린 공간이 짓이겨진다.

그대로 사선으로 공간을 갈라내며 눈앞의 사내를 노렸다.

사아아...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던 균열이 불길한 어둠에 가로막혀 흩어져갔다.

아니, 흔적도 알아볼 수 없이 사라졌다.

그에 닿기 전 다급히 손을 빼냈다.

어떻게든 공간을 짓이겨 어둠을 떨쳐낸다 해도.

그 뒤엔 팔이 없어질 것이다.

‘저것은 지워낸다. 무엇이든.’

그의 말대로였다.

저것은 막아내선 안되는 공격이었다.

사실 공격이라 하기도 애매하다.

그 또한 그저 공격에 대응해 앞을 막았을 뿐이니까.

“크윽!!”

자신의 차례가 지나가자 사내가 몸을 움직였다.

그가 움직인 길을 따라 먹빛이 하늘에 퍼져나갔다.

눈에 보이듯 뻔하고, 그 경로가 머릿속에 훤했다.

“크하악!!”

허나 지독히도 빠른 먹빛이 볼을 스쳐지나간다.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삼키며 거칠게 허리를 비틀어 피해냈다.

그 앞을 공간을 우그러트려 막아내지 않았다면 안면이 지워졌겠지.

손바닥에 배인 식은땀을 식히며 말했다.

“하아, 하아... 흐으, 봐주는 건가. 감히 본좌를.”

혁무린이 숨을 헐떡이며 그리 물었다.

사내가 불길한 어둠을 끌어낸지 벌써 한 시진.

한계까지 천마기를 끌어낸 몸은 덜덜 떨렸고, 그의 공격을 받아낼 때마다 전신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한 치만 빗나가도 그대로 저 먹빛에 지워져 버릴 것이다.

사선 위를 끝없이 달리는 경주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무료했던 천마 비동에서의 수련이,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위한 듯 느껴졌다.

“더, 더 본좌를 몰아쳐라!! 알량한 생각으로 손속을 봐주지 말란 말이다!!!”

생명이 깎여나가는 이 전투에서 천마의 정신은 더없이 고양되었다.

까만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매섭게 일렁였다.

"싸우는 꼴은 영락없는 천마군."

무진이 낮게 읊조렸다.

꽤 오래 싸웠음에도 그의 여력은 충분했다.

"귀한 몸이 더 다치기 전에 끝내주도록 하지."

아니, 남아있어야 여력이지 처음과 별반 달라진 것도 없었다.

하늘과 가까워진 지금 무진의 힘은 진정으로 무량(無量)했다.

"본좌에게 그리 말할 수 있는 자는 천하에 그대 뿐일 것이다."

"네 남편 될 사람도 나뿐이지."

"징글맞군."

"애정표현이라고 해두자고."

혁무린의 얼굴이 상황에 안 맞게 살짝 달아올랐다.

이토록 열렬한 구애는 그녀의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녀는 그 달아오름을 애써 전투의 흥분으로 치부하며 단전의 밑바닥을 긁어냈다.

'그래도 조금씩, 익숙해져간다.'

처음엔 받아칠 여유조차 없었지만 지금은 가능했다.

다만 자신의 몸이 그때까지 기다려줄지 의문이었다.

내상을 입은 속과 피투성이가 된 바깥.

전신을 가득 메우던 천마기는 실낱같이 남아있었고, 적은 여전히 강대했다.

허나, 그럼에도 그녀는 굳게 주먹을 쥐었다.

'생각치마라. 본좌는 천마다. 반드시, 승리한다.'

올곧은 의지와 정신이 혁무린의 오성을 일깨웠다.

너덜너덜해진 몸을 움직였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턱밑에 걸린 죽음의 대낫이.

찬란하게 빛나는 천마의 재능이 이 순간에도 그녀를 이끌었다.

한걸음 한걸음.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기운이 커져갔다.

이내 천마.

하늘을 부수는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간다."

그에 맞서 무진도 칠흑으로 전신을 덮어갔다.

넓게 퍼졌던 새카만 공허가 그에게로 몰려들었다.

그 모습은 흡사 과거 그가 보았던 칠흑의 거신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완연한 거신의 형상을 한 무진의 두 눈동자가 별빛처럼 반짝였다.

"그래, 이제 그만 끝을 내지."

다가오는 짐승을 향해 사내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천마의 발걸음마다 공간이 부서지고 하늘의 파편이 깨어져나갔다.

진정으로 하늘 위에 군림하려는 짐승이 거대한 손아귀를 펼쳐냈다.

천마강림(天魔降臨)

붕세경천권(崩世驚天拳)

땅을 흔들고 하늘을 부수는 일권이 거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애매한 주먹질로는 내가 죽겠군.'

실로 놀라운 재능의 총아였다.

주먹을 나눌 때마다 그녀가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이제는, 한참 우위에 선 자신마저도 오싹하게 만드는 권격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응당 그에 맞는 대접을 해야할 터.

무진의 주먹이, 지금껏 배워온 모든 것들을 담아냈다.

'정면에서 박살낸다.'

그것은 제일 처음 배운 태극권도, 소유에게서 알아낸 파둔의 힘도, 그 밖의 다른 무언가도 아니었다.

오롯한 그의 의지.

굳건한 주먹에 담긴 것은 그저 힘.

어떠한 잡념도, 티끌만한 의심도 없는 일격.

무진류(武進流)

일권(一拳)

거신과 천마의 주먹이 하늘을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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