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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17화 (217/230)

하늘에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거신(巨神)과 천마(天魔).

천상을 제패하려는 두 존재의 일권(一拳)이 맞부딪혔다.

주먹이 닿기도 전에 몰아친 기운이 공간을 찢어냈다.

깨어져 나간 절대의 법칙이 주변 공간을 죽음으로 뒤덮었다.

천마의 힘에 부서지고, 깨어진 하늘을 불길한 어둠이 감싸안았다.

지상의 무사들이 보았다면, 순간 밤이 찾아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름이 흩어지고 하늘이 열렸다.

막대한 힘에 모든 것이 밀려나 생긴 공허.

‘...’

사내가 여인을 보았다.

보랏빛으로 하얗게 일어난 천마의 굳센 주먹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금 주먹을 뻗었다.

지워낼 수 없는 어둠을, 지워내기 위해서.

천마신교니, 중원이니 하는 것들을 버리고.

순수하게 이기기 위해 내뻗는 강렬한 의지.

소리가 들리기 전에 주먹이 나아가고.

그 위를 다시금 주먹이 덮어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흐아아아아아아!!!’

그녀의 영혼이 발악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승리를 갈망하는 비명이 귀가 아닌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사내가 가진 것은 우주(宇宙).

모든 것을 품기 위해 텅 비어버린 공허(空虛).

칠흑이 거세게 일어나고.

거신은 도전자인 짐승의 주먹을 여유롭게 받아내며 반격했다.

콰득.

일권에 짐승의 육신이 허물어지고, 공허가 상처로 스며들었다.

‘하아아악!!’

옆구리 쪽이 통째로 날아간 짐승이 바람빠진 비명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모든 것을 불사르듯 짐승이 이빨을 번뜩이며 손톱을 휘둘렀다.

다섯 개의 선이 허공에 그어지고, 빗금이 새겨졌다.

허나 그 위를 다시금 칠흑이 덮는다.

그야말로 무적(無敵).

보랏빛 기운이 사그라들며 서서히 천마의 형태가 뭉개져가기 시작했다.

‘끝낸다.’

칠흑으로 덮인 사내의 뒤로 진정한 거신이 일어났다.

후광이 비치듯 떠오른 거신이 무아지경에 빠진 사내를 따라 무겁게 손바닥을 찍어눌렀다.

‘크아아아아아!!’

짐승의 비명이 울리고.

천마(天魔)가 추락했다.

칠흑빛 거신이 무진의 정수리로 빨려들어갔다.

별빛처럼 빛나던 그의 눈에 동공이 돌아왔다.

“후우우... 드럽게 힘드네.”

순간 무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진한 탈력감이 엄습해오는 육신을 다잡아 지상으로 향했다.

그의 시야에 옷이 반쯤 찢어져 뽀얀 피부가 드러난 여인이 보였다.

정신을 잃은 채 추락하고 있는 혁무린.

검은 머리카락이 매서운 칼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우효wwwwwwwwwwwww 네 번째 마누라 겟또다제!’

몸에 상처 안 입히고 이기느라 진땀을 뺐다.

마지막에 각성이라도 했는지 기운이 뭉클 올라와서 꽤 고전했지만.

그 어려움을 감내한 만큼 혁무린의 육체엔 큰 상처가 적었다.

“음...”

떨어지던 그녀를 공주님 안기로 들어안자 작은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파르르 떨리던 눈썹이 힘겹게 들어올려졌다.

보랏빛으로 반짝이는 아름다운 눈동자.

창백해진 안색과 대비되는 붉은 입술이 열렸다.

“...졌군.”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체념한 것 같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오묘한 보랏빛 눈동자가 다시 감겼다.

“...본좌가, 졌다니.”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어조였다.

곱게 휜 눈꼬리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그리도 승리를 바랬으니 울만했나 싶었다.

어떻게 위로를 해줘야하나 싶던 찰나, 감긴 눈동자가 천천히 열렸다.

조금 붉은 기운이 도는 눈동자가 깜빡거리며 나를 보았다.

그렇게 빤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혁무린이 평소의 여상한 말투로 돌아와 말했다.

“그래도 얼굴은 남자다우니 나쁘지 않겠군. 패배했으니, 네 여자가 되도록 하마. 마음대로 하도록.”

“그 말, 후회할텐데.”

장난끼 어린 내 말투에 혁무린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아마 나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나 보다.

창백해진 볼에 살짝 홍조가 돈 그녀가 답했다.

“...어쩔 수 없겠지. 무공이라도 이긴다면 모르겠으나, 본좌가 졌으니. 마음껏... 해도 좋다.”

“마음껏, 뭘?”

“짓궂은 소리를 하는군. 색룡.”

“씹...”

알고 있을까 했는데 아는구만.

점점 가까워지는 지상을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정정했다.

“앞으론 서방님이라고 불러.”

“하루 한 번 본좌와 대련을 해라. 그럼 순순히 바꿔주지, 색룡.”

“아니, 마음껏 하라매.”

“그건 배필로서의 의무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호칭은 별개의 문제지.”

결정했다.

스스로 서방님이라 부를 때까지 박아준다.

엉엉 울면서 서방님이라 부르겠다고 무릎 꿇고 도게자 할 때까지 박아주지.

천마의 보지가 삼류인지 일류인지는 금방 알게 될 거다.

‘고금제일보지라도 되지 않는 이상 무리지.’

내 자지는 고금제일자지니까.

가볍게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속삭였다.

“일단은 쉬어라. 서방님이 다 정리해둘 테니까.”

“색룡이다. 아무튼, 이걸 받도록.”

그녀가 찢어진 옷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옥패를 하나 꺼냈다.

천마(天魔)라 적혀있는 신패.

“본좌를 증명하는 것이니, 그대가 가지고 있다면 증명이 되겠지.”

“그래.”

내가 패를 품에 갈무리하는 것을 본 그녀가 나직이 말했다.

“그럼 좀... 쉬겠다.”

그러곤 픽 고개를 숙여 내 가슴팍에 안기는 혁무린.

까탈스러운 넷째 마누라를 품에 안은 채 조용해진 전장을 내려다 보았다.

칠흑을 끌어올려 강렬한 기세를 납사성 앞 평원에 흘려보냈다.

내려오는 나를 바라보고 있던 모두의 긴장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새로운 천마시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마...”

그 목소리에 이끌리듯 누군가가 속삭였다.

딱히 천마패도 안 보여줬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헌데 천마신교 쪽 무사들이 자진해서 무릎을 꿇고 우렁차게 외치는 것이 들렸다.

“천세! 천세! 천천세!!”

“새로운 천마!! 흑천마(黑天魔)께서 강림하셨다!!!”

언뜻 보인 그들의 시선이 내 뒤로 향해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자, 언젠가의 꿈에서 보았던 칠흑의 거신이 떠올라있었다.

무슨 부처님 후광비치듯 서있는 거신.

칠흑을 일으키자 저절로 피어올랐다.

‘뭐야, 씹...’

난 당황한 표정을 숨기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뭐가 됐든 알아서 설설 기어주니 나쁠 건 없었다.

천마패를 꺼내 가장 앞에서 절을 하고 있는 안예인에게 날려보냈다.

“헉, 천마패...”

그리고 깊게 잠든 혁무린을 뒤쪽의 정도연합군에게 보냈다.

반쯤 찢어졌더라도, 저 비싸 보이는 보랏빛 장포는 천마의 상징적인 옷.

천천히 떨어지는 그녀를 소율이 받아냈다.

-무진아, 괜찮느냐.

전음을 보내는 그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좌중을 살폈다.

천마신교 쪽에는 지선 사마유를 비롯한 모든 장로들이 나와있었다.

심지어 안려인조차도 지금의 상황을 보고는 체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정도연합군 쪽에서는 승리의 희열이 엿보였다.

쓰러진 천마와 오롯이 서있는 나.

승리는 명백했다.

‘그리고, 지금이 최적의 시기겠지.’

이곳에 정마의 모든 머리들이 모여있다.

사파는 어차피 개판나고 내가 접수했으니 상관 없고.

괜히 뻗대는 새끼들이 나오기 전에 도장을 쾅 찍어놔야했다.

나는 목소리에 내공을 담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천마 혁무린은 패배했소이다. 나 백무진에게 쓰러졌소.”

나직이 울리는 선고.

연합군 쪽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오기 전, 무겁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또한, 본좌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 천마의 자리에 올랐소. 그러니...”

환호에서 당황으로 바뀐 연합군의 기색이 느껴졌다.

이번엔 천마신교 쪽에 희색이 어렸다.

기세등등해진 그들이 무언가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을 이었다.

“이제 중원 무림은, 더 이상의 다툼을 그만두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것이오.”

내 손짓에 맞춰 정도연합군과 천마신교의 절대 고수들이 허공을 딛었다.

파천검선 소서화, 천극혜검 담소율, 무당의 이장로 운휘.

그리고 마교의 남은 두 장로 안예인과 유미연까지.

미리 정해진 것처럼 그녀들 모두가 내 곁에 섰다.

다섯의 절대 고수가 지상의 모든 무사들을 압도하듯 내려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신강의 천마신교, 서장의 혈교, 운남의 사파련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맹을 창설하겠소. 맹의 이름은 흑천맹(黑天盟). 이곳에 계신 모든 이들이 흑천맹의 일원이 될 것이오.”

이번엔 환호성이 터져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천마신교는 어쨌든 새로운 천마의 등장과 더불어 명줄이 늘어났으니 나쁜 분위기는 아니었다.

불만을 품은 눈초리는 대부분 정도연합군에서 나왔다.

하지만 그 누가 다섯의 절대 고수 앞에서 감히 입을 나불거리겠는가.

심지어 다섯을 제하고도, 내가 있었다.

나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며 친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선 전장부터 정리하도록 합시다.”

기운을 끌어모아 납사성의 성문을 열어냈다.

그그그긍,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천천히 벌어졌다.

천마에 필적하는 신위에 신교의 무사들이 넙죽 몸을 엎드렸다.

안예인과 유미연을 그쪽으로 보내고, 연합군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기어코 해버렸구나.”

“뭐, 이만한 시기가 없었죠, 누님.”

“그렇긴 하다만... 정파쪽에서 반발이 심할게야.”

“괜찮습니다. 목줄만 차두고, 자유롭게 풀어주며 간식거리를 던져주면 됩니다.”

어차피 나도 무슨 철권통치를 가할 생각은 없다.

그냥... 해보는 거지.

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래, 이미 중원 무림 전토가 무진이의 손에 들어왔느니라. 무슨 걱정이더냐.”

“하긴... 대단하구나, 무진아. 내 살아있을 적에 무림이 통일되는 걸 보다니.”

서화 누님의 말대로 신강의 천마신교, 서장의 혈교, 운남의 사파련.

그리고 무림맹까지도 내 손에 들어왔다.

내가 들어온 떡협지의 이름처럼, 진정으로 ‘무림일통’을 한 것이다.

그 네 글자가 기분 좋게 심금을 울렸다.

‘무주공산이 된 서장과 사파련 쪽을 좀 던져주면 불만은 가라앉겠지.’

흑천맹이 천년만년 가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냥 내 새끼들이 다 클 때까지만이라도 멀쩡히 있어주면 된다.

‘뭐, 오래가도 좋고.’

어쨌든 내가 세우고, 내가 이끌게 될 맹이니까.

허투루 관리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날이 저물 때쯤 정도연합군이 활짝 열린 납사성으로 들어서고.

정마대전(正魔大戰)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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