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18화 (218/230)

납사성 홍궁.

한때 혈교의 교주가 기거했고, 천마신교의 천마가 거쳐간 거대한 전당.

그곳의 가장 높은 옥좌에 한 사내가 느긋한 얼굴로 몸을 누이고 있었다.

-읏... 이, 이 못된놈, 여기서까지 그러고 싶더냐...!

사내가 몸을 뉘인 옥좌엔 한 여인 또한 앉아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입은 제대로된 무당파의 도복.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지도 않았고, 조금 몸을 숙인다고 비부가 보인다거나 하지않는.

괜스레 젖가슴 위쪽을 가릴 일도 없는 정갈한 의복.

여인은 하도 벗고 다닌 탓에 살결을 스치는 도포자락의 감각이 예민하게만 느껴졌다.

"앙... 흡..."

풍성한 치맛자락 아래로 굵고 두꺼운 손가락이 여인의 비부를 매만졌다.

한참을 괴롭힌 듯 애액으로 흠뻑 젖어든 음모가 거친 손가락에 쓸렸다.

-다들 쳐다보는데도 이렇게 푹 젖은 주제에 말이 많으십니다.

-흐긋, 마, 망할 노옴...

조용한 전당에 찔꺽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새어나왔다.

일반인이라면 못 들을 정도의 작은 소리지만, 이 전당에 있는 이들은 최소 초절정에 오른 고수들.

다들 표현은 안하지만 옥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천극혜검이란 별호를 가진 지고한 무인이, 한 사내의 손에 천박한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이, 미, 미친 색마놈... 이제 더는 숨길 것도 없다는 게로구나.’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련이 그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났다.

무당신룡 백무진은 천마까지 이겨내며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의 자리에 올랐고.

그와 동시에 중원 전토를 아우르는 흑천맹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 거대한 위명 앞에서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라는 이름은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오히려 이전의 반항이 들통날까 노심초사할 뿐.

다들 자신과 같은지 저 무례한 짓에도 고개를 숙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전당의 문이 열리고, 총군사와 지선 사마유가 둘둘 말린 종이를 잔뜩 들고 들어왔다.

“늦었습니다, 맹주님.”

“아닐세.”

“흐읏... 응...!”

“슬슬 시작하지.”

기다렸다는 듯 소율을 가볍게 보내버린 무진.

쾌락의 여운에 축 늘어진 그녀를 품에 안으며 제갈여령을 바라보았다.

“그럼, 지금부터 논공행상을 시작하겠소.”

제갈여령이 지난 며칠간 고심하며 짜낸 종이를 들었다.

워낙 참전한 이도 많고, 얻어낸 것도 많아 방금에서야 겨우 완성한 것이다.

자신과 혈교의 지선 사마유, 그리고 수많은 군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써낸 논공행상.

그리고 흑천맹의 설립에 관한 것들.

제갈여령은 졸지에 모두의 앞에서 가버린 담소율의 체면에 명복을 빌며 둥글게 말린 교지를 펼쳐냈다.

“먼저, 구파일방 중 가장 많은 공을 세운 무당파부터 시작하겠소. 무당신룡 백무진, 혈교주 천화령 살(殺), 천마 혁무린에게 승(勝), 정도연합군의 수장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노골적인 찬사가 글에서 터져나왔다.

일반적인 병사들의 전쟁이 아닌 땅을 가르고 강을 베어내는 무인들의 전쟁.

그런 초인들의 전쟁에서 우두머리를 둘 다 잡은 것은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공적이었다.

그 밖에도 언제 다 보았는지 제갈여령이 각각의 문파와 세가들의 공을 일일이 열거하며 상을 내렸다.

약소문파들은 자기들도 기억해준다는 것에 감사했고.

거대 문파들은 그래도 전리품을 챙겼다는 것에 미소를 지었다.

“다음으로, 흑천맹의 설립에 관해 이야기를 하겠소.”

제갈여령이 새로운 교지를 펼쳐들었다.

전당 안의 모두가 올 것이 왔다는 눈빛을 했다.

옥좌 아래에 버티고 선 다섯의 절대 고수.

그리고 양옆으로 진영에 따라 늘어선 천마신교와 정도연합군.

기나긴 무림의 역사에 이 모두가 한 존재에게 고개를 숙인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제갈여령은 새 시대를 연다는 거친 떨림을 품에 안으며 교지를 읽어내렸다.

“흑천맹(黑天盟)은 맹주 무당신룡 백무진 휘하의 신강의 천마신교, 서장의 혈교, 운남의 사파련, 섬서의 무림맹이 연합해 결성한 새로운 조직으로, 중원 무림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무게감 있는 어조로 전당 안에 울려퍼지는 목소리.

다들 제갈여령의 말에 시시각각으로 표정들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각 문파와 세가의 후계자들은 모두 흑천맹에서 직접 맹주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며, 흑천맹은 군림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율령에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한 인간이 중원 전토를 지배한다는 게 말이 안됐다.

결국 하부 조직들을 그대로 두고, 위에만 서있겠다는 말에 다들 안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후계에게 직접 가르침을 준다는 말에 희색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천마와 혈교주를 이겨낸 천하제일인의 가르침을 누가 거부하겠는가.

물론 숨은 뜻을 헤아린 몇몇은 째릿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또한 중원 전토를 다섯 개의 지부로 나눌 것이고, 지부장은 단상에 계신 다섯의 절대 고수들께서 우선 맡으실 것입니다.”

소서화, 운휘, 유미연, 안예인.

그리고 내 옆의 소율까지.

혁무린도 한 자리 넣었으면 했는데, 그녀는 더 이상 귀찮은 게 싫다며 거부했다.

지금은 나와의 싸움에서 얻은 깨달음이 중요하다며 훌쩍 사라져버렸고.

‘가기 전에 자지맛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 뒤로도 흑천맹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이 제갈여령의 입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맹주님의 취임식과... 혼인식은, 같은 날 이루어질 것입니다.”

“응?”

“이상으로 흑천맹에 관한 교지를 마치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제갈여령이 살짝 몸을 떨더니 덧붙여진 단어 하나.

소율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더 이상의 정처는 없느니라. 전부 첩이다, 알겠느냐.

소율의 단호한 말투에 설설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싱긋 미소 지으며 나를 쓰다듬는 그녀.

제갈여령이 마지막으로 거대한 종이 하나를 들고와 펼쳤다.

가장 위에 흑천맹이라 적혀진 백지.

사마유가 검은 먹과 붓을 들고왔다.

나는 소율을 앉혀두고 백지 앞에 섰다.

“흑천맹의 기치 아래에서 설 자는 이름을 적으시오. 후에 가주직인과 장문직인을 따로 받을 것이오.”

먹과 붓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내 앞으로 수많은 문파와 세가의 머리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일필휘지로 이름을 써내렸다.

구파일방, 오대세가, 사파련의 운도혜와 다른 중소방파들.

그리고 천마신교의 장로들도 이름을 적어냈다.

빼곡하게 채워진 백지.

제갈여령과 사마유가 그것을 곱게 접어 내게 바쳤다.

“고맙소.”

백지였던 종이를 쥔 손을 보며 이곳에 온 첫날이 떠올랐다.

우락부락한 흑인의 몸뚱이를 가지고 철창이 둘러진 마차에서 깨어났을 땐, 얼마나 놀랬던지.

그것도 흑인 노예라니.

‘애진 누님이었나.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군.’

나중에 찾아서 뭐라도 쥐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험난한 무림에서 처음으로 만난 여자니까.

상념을 털어내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내 뒤로 떠오른 거신의 휘광을 바라보며 천마신교의 무사들이 넙죽 엎드렸다.

“천세! 천세! 천...”

“그만.”

또 시끄럽게 외치는 걸 멈추게 하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감히 나와 눈을 못마주치는 와중에, 슬쩍슬쩍 눈웃음을 흘리며 웃어보이는 여인들이 보였다.

당하린, 연화란, 주서현, 비연.

어차피 그쪽으로 돌아갈 텐데 힘들게 아픈 몸을 이끌고 온 그녀들.

다 와버린 것을 보니 세령과 소유가 없는 게 아쉬웠다.

‘쩝, 아직 홍이랑 무령이 100일도 안됐으니까.’

멋진 남편의 모습은 돌아가서 보여주기로 하고.

전당을 나서며 말했다.

“창립식때 뵙겠소, 다들.”

다섯의 절대 고수가 내 뒤를 따르며 밖으로 나왔다.

명실상부한 절대자의 모습에, 전당 안의 모두가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

“드디어 이뤘구나, 욘석.”

새벽녘, 소율이 잠이 안오는지 홀로 밖에 서있던 나를 뒤에서 껴안았다.

폭신하게 감겨오는 말랑한 여체를 마주 껴안으며 속삭였다.

“다 소율 덕분이지.”

“네놈이 이뤄낸 것이지, 본녀는 한 게 없느니라.”

“아니야, 소율 덕이야. 무당으로 와서 소율을 만났으니까.”

내 아이가 잠들어있는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며 떠올렸다.

처음 그녀와 관계를 맺을 때부터, 지금까지.

소율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기 힘들었을 거다.

“그런 녀석이 여자는 이리도 많이 끼고 자느냐!”

“따뜻하고 좋잖아.”

그게 무슨 문제냐는 듯한 말투에 소율이 볼을 뾰로통하게 부풀렸다.

그녀의 뒤쪽 반쯤 문이 열린 침소 안에 홍조 띤 얼굴로 널부러진 여자 다섯이 보였다.

각자 비부에서 허연 정액을 흘리고 있는 게 인상깊었다.

“좋기는, 못된 놈이...”

“자자, 얼른 들어가서 자시지요. 아기가 피곤해 합니다요.”

“읏... 이렇게 안지 말래두.”

휙 들어서 공주님 안기로 안아주니 발개진 볼이 보였다.

그렇게 소율을 야한 냄새가 잔뜩 배인 침대에 뉘이고 밖으로 나왔다.

“색룡이란 별호가 어디 가진 않는군.”

숙소 앞 너른 정원엔 어느샌가 고아한 인상의 여인이 서있었다.

전보다 깊고 단단해진 보랏빛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무린, 슬슬 혼인식도 해야되니까 이제 그만 약조를 지켜줬으면 하는데.”

“약조는 지킬 게다. 단지 본좌가 더더욱 바라는 것이 그대와의 결투일 뿐이지.”

“밤에 침대 위에서 하는 결투도 재밌을텐데.”

“흥, 후사를 위해서라면 그대의 아이를 배어주겠지만, 그 이상은 원하지 말도록. 어차피 본좌말고도 후사를 이을 계집은 수두룩하지 않은가?”

“난 무린을 보고싶은 건데.”

“...헛소리 그만하고 따라와라.”

볼이 붉어진 그녀가 몸을 휙 돌려 숙소를 벗어났다.

보나마나 깨달음을 정리하고서 한판 붙자는 의미겠지.

당돌한 그녀가 내 아래에서 헐떡일 모습을 그리니 자지가 딱딱하게 솟아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서방님이라고 부르게 해주지.’

천마의 첫 경험이 야외섹스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밝게 뜬 보름달을 보며 혁무린의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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