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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협지 속 곤륜노가 되었다-226화 (226/230)

“아르르르, 까꿍!”

덩치 큰 사내가 얼굴을 짜부라트리며 소리를 내자, 아기 하나가 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에 반해 옆에 누워있는 다른 여아는 조용히 자신의 아비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더니, 어미가 누군지는 확실하겠군.”

“무린아,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무 방정맞아 보이잖아.”

“보이는데로 말했을 뿐이다.”

“히히, 그러지말구 홍이 안아볼래?”

소유가 아기침대에 누워있던 백홍을 안아들어 혁무린에게 조심스레 내밀었다.

포대기에 쌓여 꼬물거리는 아기가 말똥말똥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유와 무진의 얼굴이 언뜻 보이는.

말랑말랑하고 토실토실한 볼따구가 보였다.

“흠흠...”

“흐흥, 귀엽지?”

무린은 마지못해 팔을 뻗고선 백홍을 안아들었다.

천하를 오시하는 고수답지 않게 무린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팔에 들어온 아기는 너무나도 여리고, 작아서.

조금만 힘을 줘도 그 가냘픈 생명이 꺼질 것 같았다.

무린은 기를 잔뜩 억제하고 혹시나 잘못 힘을 줄까 아예 움직이질 않았다.

“자아, 팔로 여기 몸을 받치고, 목도, 그렇지. 아이참, 몸에 힘 좀 풀어.”

“소, 소유. 이러다 떠, 떨어트리기라도하면...”

“난 무린을 믿어. 천하의 천마가 아기를 무서워하다니.”

“...”

처음으로 사귄 동년배 친구는 서슴없이 다가왔다.

흑천맹 창립을 준비하기 위해 무당파에 머무는 며칠, 어느새 혁무린은 자신의 곁을 소소유에게 내어줬다.

그녀가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토닥였다.

“무린이 엄마가 된 것처럼 생각하는 거야. 따뜻하게 안아줘.”

“...기억나지 않는다만.”

“아... 그래도, 모성애는 본능이래.”

엄마, 라.

혁무린이 가진 최초의 기억은 돌림병으로 다 죽은 마을 한가운데서 울고 있던 기억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또렷이 보였었다.

그것을 쫓아 하루하루 연명하며 살아갔다.

부모는 당연히, 기억나지 않았다.

“본능...”

“응, 본능. 무린도 할 수 있어.”

현실로 돌아온 그녀가 품에 안긴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옆에선 서방님이 여전히 얼굴을 찌부러트리고 있었고, 백세령과 담소율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음... 호, 홍아. 아르르...”

“으아아아앙!!”

“...호, 홍아?”

소유의 아이를 안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백세령은 아직 묘한 눈길로 자신의 아이를 지키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스스럼없이 다가온 이는 소유가 유일했다.

“으아앙, 으앙!!”

“소, 소유. 소유, 이거, 어찌, 해야...”

“음... 일단 다시 홍이는 내가 다시 안아볼게.”

“그, 그래. 어서.”

떠넘기듯 소유에게 아이를 안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홍이의 울음이 멈췄다.

“흐음... 원래 잘 우는 애가 아닌데, 우리 홍이. 다시 안아볼래?”

“...또, 울텐데.”

“그러면 또 달래주면 되지. 얼른, 자.”

삶의 대부분이 무기와 피, 결투와 주먹으로 이루어졌던 혁무린에게 아기는 신세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금 홍이를 안아들었다.

“으아아앙!!!”

“아이구, 우리 홍이. 우쭈쭈, 그래, 엄마 여깄어요.”

결국 소유까지 달라붙어 달래봤지만, 자신에게 안긴 홍이는 방이 떠나가라 울어댔다.

옆에서 천극혜검의 이죽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혁무린이 침울한 얼굴로 소유에게 백홍을 넘겼다.

“...미안해, 홍이가 이렇게까지...”

“아니다. 본좌가... 부족한 탓이지.”

혁무린의 눈에 소유에게 포근하게 안긴 홍이가 보였다.

흉부의 거대한 지방이 아기에게 말로 표현 못할 안락함을 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무린의 시선이 오랜만에 자신의 흉부를 흝었다.

‘...이 패배감은 뭐지.’

서방님의 여자들 중 이정도로 빈약한 여자는 자신뿐이었다.

홍이는 자신을 제외한 누가 안던 간에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서방님조차도.

‘서방님도, 본좌보단 컸지...’

생각보다 아기라는 것들은 영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함에 젖은 무린이 소유의 커다란 젖가슴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봤다.

사마유 때와는 달리 막 억하심정에 쥐어짜고 싶지는 않았다.

그저... 부러울 뿐.

“나 홍이 젖 좀 주고 올게.”

“아, 그래.”

밥 때는 맞춰서 먹이는 듯 세령과 소유가 아기를 안아들고 함께 침대로 올라갔다.

탐스러운 유방이 흔들리고, 아기들이 젖을 물었다.

쯉쯉거리는 소리가 방안에 울렸다.

‘...크군.’

그리고 자연스레 허리를 휘감는 두터운 팔뚝.

서슴없이 엉덩이를 주무르는 남자가 느껴졌다.

“걱정마. 무린과 내 아이는 엄마의 가슴이 좀 작다고 우는 몹쓸 자식은 아닐 거야.”

“...그 말이 더 상처받는다는 걸 모르나, 서방님?”

“그만큼 내가 보듬어주잖아.”

“...그렇군.”

서방님에게만 안기면 냉철한 이성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왜 담소율이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저쪽은 젖 짜라그러고, 우린 다른 거좀 짜러 갈까?”

“...얼마든지, 서방님이 원한다면.”

그의 품에 안겨 속삭였다.

사내의 체취가 어느새 머릿속을 몽롱하게 덥혔다.

갓 쾌락에 눈 뜬 육체는 그가 가져다주는 황홀함에 언제나 갈증을 느꼈다.

그렇게 며칠을 더 짐승처럼 쾌락만을 쫓았다.

그리고 드디어 흑천맹의 창립 전날, 언제나처럼 서방님의 자지에 엉망으로 범해진 날.

그가 반지를 내밀었다.

“이건...”

“날짜 맞추느라 힘들었어.”

백(白)자와 혁(赫)자가 아로새겨진 옥반지.

그러고 보니 담소율과 백세령, 소소유 모두 같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

아마 각자의 성씨와 백(白)이 적혀진 반지겠지.

“자, 손 내밀어봐.”

눈앞의 사내가 얼마나 욕심이 많은지 알 것도 같았다.

그가 애정어린 눈빛으로 손수 반지를 끼워주었다.

“잘 어울리네, 무린.”

“...고맙다, 서방님.”

왼손 약지에 끼인 반지가 어색했다.

‘이게 익숙해지고, 빼면 자국이 남을 정도로.’

이제 그와 함께하겠지.

마교를 위해 천마로 길러진 여인이, 점점 사람다움을 알아가고 있었다.

무린이 고개를 들어 무진을 바라보았다.

“내일이군.”

“응.”

“우리 서방님께서는, 기분이 어떨지 궁금한데.”

천하제일(天下第一).

역대 천마 중에서도 그런 광오한 별호를 받은 자는 없었다.

아니, 전 무림을 통틀어서도.

의문이 담긴 물음에, 그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답했다.

“뭐, 이세계 트립했으면 이정도는 해줘야하지 않겠어?”

“...또 뜻모를 말을 하는군. 굳이 알려주기 싫다면 그러지 않아도 좋다. 이제와서 새삼 노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맞아. 난 내 여자들만 있으면돼.”

“중원무림이 서방님의 것인데도?”

“그냥 해본 거야. 내 즐거운 섹스라이프를 방해하니까.”

말을 더 잇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젖가슴을 유린했다.

까슬한 혀가 유두를 튕기고, 어느새 보지로 들어온 손가락이 음탕하게 안쪽을 휘저었다.

“자꾸 말 하는 거 보니까 힘이 남나본데, 더 해도 되지?”

“그만, 핫... 벌써, 몇 시진 째잖... 하아앙!!”

다음날, 결국 뻐근한 몸을 이끌고 무림맹으로 출발했다.

흑천맹의 건물은 호남에 지어진다고 들었다.

‘그나마 강성한 문파가 없는 곳이랬나.’

그곳에 흑천맹 본단이 지어지고, 서장과 천마신교, 사파의 권역에도 지부가 지어질 것이다.

흑천맹주는, 어떻게 보면 무림의 황제라고도 볼 수 있는 위치였다.

‘무소불위의 권력자.’

들리는 말로는 중화대륙을 지배하고 있는 황제마저도 흑천맹의 창립식에 사절을 보낸다고 했었다.

대륙의 황제의 권위마저 서방님을 인정했고.

그가 죽기 전까지 무림의 평화는 이어질 것이다.

‘흑천맹 본단은, 아방궁이 되겠군.’

먼 옛 시절, 최초로 중화를 통일했다는 진시황제의 아방궁.

대륙의 모든 미소년과 미청년들을 모아놓았다던 주지육림의 궁전.

반대로 이번엔 여인들이 모여들 것이다.

‘뭐, 본좌만한 배필은 없겠지만.’

그 누가 천마를 아내로 두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당파의 전 장문인과 그 제자를 아내로, 무림맹주는 애인으로.

사파련의 후계자와 사천당가의 소가주는 첩이다.

‘화려하군.’

이미 서방님의 여성편력은 전무림이 알고있었다.

흑천맹주로 취임하고, 혼례를 마치면 첩 자리에 무수한 매파가 날아들겠지.

가진 능력껏 배필을 맞이할 수 있는 무림에서, 천하제일이란 말은 천하의 모든 여인을 취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무린, 무슨 생각해요?”

“...아, 둘째 언니.”

“네년은 왜 대체 본녀는 큰 언니라 안하고 세령이는...”

“스승님,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무린이도 마음을 안 열죠.”

“흥, 세령이 너도 저년 편이냐.”

“스승님.”

담소율이 토라지고, 백세령이 그를 달래는 것이 보였다.

이상하게 천극혜검에게는 지기가 싫었다.

“그냥... 흑천맹에서의 삶은 어떨지, 생각해봤습니다.”

“음, 기대되나요?”

“...그런 것 같군요.”

“그래도 뭐, 무진만 있으면 되잖아요.”

“맞습니다.”

“맞기는.”

청출어람이라더니.

무위는 못해도 인성은 천극혜검의 제자인 선녀봉 백세령이 훨씬 나았다.

“아, 도착했나봐요.”

서방님의 부인이 될 네 명의 여인이 탄 마차가 부드럽게 멈춰섰다.

서방님은 대열의 선두에서 말을 타고 가고있을 것이다.

“백무진 대협!! 여길 봐주세요오!!!”

“와아아아아!!!”

“천하제일!!!”

“제 처녀를 가져가 주세욧!!”

“저년 잡아!!”

무림맹 본단에 들어섰는지 서방님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살짝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네 여자의 입가엔 미소가 감돌았다.

“역시 본녀의 제자답구나.”

“소녀는 오라버니를 처음 볼 때부터 알아봤다는 것이에요.”

“소유야, 넌 그때 무진을 보고 허접이니 뭐니 하지 않았어?”

“아앗! 언니!!”

그 서방님에게 허접이라니.

말괄량이 기질이 어디 가는 건 아닌 듯 했다.

곧 멈췄던 마차가 다시금 움직였고, 얼마 안가 멈춰섰다.

“내리시지요.”

소율부터 차례로 네 명의 여인이 마차를 내려섰다.

무림맹 본단 건물이 하늘에 닿을 듯 높이 솟아있었다.

아침 일찍 출발해온 것이라 해는 아직 그 위용을 다 뽐내고 있지 않았다.

‘정오에 시작한다고 했던가.’

이쪽은 본단의 후문.

정문 쪽에 있을 커다란 광장에서 수많은 기척이 느껴졌다.

십만대산에서 교도들 앞에 처음 천마로 모습을 보였을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이번엔 지켜보는 입장이군.’

그럼에도 설레고 떨렸다.

창립식 이후엔 신부로서 저 위에 서게 될테니.

“드디어네요, 스승님.”

“오래 걸렸구나. 쯧, 애까지 낳고 할 줄은 몰랐거늘.”

“그래서 싫으세요?”

“...흥.”

백세령이 팔꿈치로 툭 쳐도 담소율의 입가에 걸린 웃음은 사라질 줄 몰랐다.

“언니, 사숙, 무린아! 얼른 올라가는 것이에요.”

“그래그래. 가자꾸나.”

모두 자신과 같았다.

한 떨기 꽃같은 여인들의 눈동자에 한가득 설레임이 담겨있었다.

혁무린은 가슴 속이 울렁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유의 품에서 달래지던 홍이가 느꼈을 그런, 기분 좋은 흔들림.

네 명의 신부가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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