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 반창회.
세상 참 불공평해.
누군 게이트가 열리자마자 각성해 헌터가 되고, 누군 죽을 똥을 싸며 노력해도 맨날 이 모양 이 꼴이고.
“오늘은 초대한 분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
너 따위가 들어올 곳이 아니다.
호텔 보안 요원의 표정은 꼭 그랬다.
“여기.”
초청장을 내밀었다.
“아, 죄송합니다.”
당황한 사내의 표정에 묘한 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하고.
“죄송합니다만 감식반이 올 때까지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사내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이 초청장이 가짜일 거라는 믿음이 엿보였다.
내 옷차림이 그랬다.
부아아아앙!
굉음을 내며 푸른색 날렵한 스포츠카가 호텔 앞에 정차했다.
부가티 시론.
30억이 넘는 저런 차를 누가 탈까?
‘하필 저 새끼가.’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여, 이게 누구야! 우리반 반장 나태준이!”
“상국아, 오랜만이다.”
“여기서 뭐 해, 어서 들어가자.”
“저, 아시는 분이십니까?”
나를 막아선 보안 요원의 말에 상국이가 인상을 구긴다.
“이 새끼가 그럼 내가 모르는 사람을 아는 척할까?”
“죄, 죄송합니다. 들어가십시오.”
상국이 놈과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잠깐.”
상국이가 몸을 돌려 입구로 돌아갔다.
“이 씹새끼가 아무리 사람이 없어 보여도 그렇지. 내가 아는 척을 했는데도 막아?”
퍽! 퍽!
“으윽!”
정강이를 걷어차인 보안 요원은 바닥을 굴렀다.
옆에 있던 다른 보안 요원은 고개를 돌리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보안팀장한테 말해서 이 새끼 자르라고 해.”
상국이가 한층 밝아진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아, 저 새끼 죽이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저놈은 A급 헌터고 난 일반인.
게다가 저 밥맛 없는 놈은 이 호텔의 주인인 신화그룹의 장남이다.
“태준아,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그냥, 뭐.”
나보다 작은놈이 억지로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쭈그리가 된다.
“오랜만에 반장이 왔으니, 다들 좋아하겠다. 그치.”
맨 꼭대기 층 문이 열리며, 화려한 파티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먼저 온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와 반장!”
“살아 있었네.”
반 친구들이 나를 반긴다.
이들은 모두 상위 랭커 헌터들로 우리나라 헌터계를 이끌어 가는 거물들이다.
15년 전 서울 상공에 게이트가 처음 열린 날, 나를 제외한 반 친구들 전원이 헌터가 됐다. 왜 나만 각성하지 못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 회사 주식을 사라니까. 이번에 신입 헌터만 천 명을 뽑았어. 앞으로 더 오른다니까.”
“야야, 말도 마 A급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마력탄이 떨어져 죽을 뻔했다니까.”
나와는 다른 세계.
처음 나를 반겼던 친구들이 지금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한쪽 구석 창문에 서서 서울 시내를 내려다본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 연희 왔네.”
“어서 와.”
친구들이 우르르 입구로 몰려갔다.
‘왔구나. 나의 연예인. 내가 죽도록 좋아했던 그녀.’
기둥 뒤에서 힐끔 그녀를 보았다.
숨 막힐듯한 자태,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S급 헌터였다.
조용히 한쪽에서 술잔을 들었다.
이곳의 비치된 술은 한 잔만 마셔도 내 몇 달 월급을 상회한다.
하지만 오늘따라 술맛이 쓰다.
“태준아.”
연희의 목소리.
술잔을 내려놨다.
“어, 왔어. 오랜만이네.”
“그동안 뭐하고 연락도 없었어?”
“그냥 사는 게 바빴지.”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나도 그날 헌터가 되었다면, 연희 앞에 당당해졌을까?
“나, 초등학교 때 너 많이 좋아했었는데.”
훅 들어온 그녀의 말에 얼굴이 뜨겁다.
“아, 알아.”
“알았다니 조금은 창피하네.”
국민 헌터라 불리는 그녀는 초등학교 때 나를 따라다녔다. 물론 동창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조금은 어색해진 분위기.
“태준이 여기 있었네.”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사장이자, 동창인 도하준.
‘오늘 못 간다고 나더러 꼭 가라고 하더니... 어떻게 왔지?’
“하준이 오랜만이네.”
연희가 아는 척을 하자, 도하준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연희야, 언제 우리 회사에 한번 놀러 오라니까. 여기 태준이도 함께 있어.”
“아, 그래?”
“일전에 내가 인수한 던전 청소업체에 태준이가 일하고 있더라고,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곧 본사로 올리려고.”
“그렇구나. 잘 됐다. 동창끼리 서로 도우면 좋지.”
아, 저 새끼. 평소 아는 척도 안 하는 놈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친한척하나 했더니...
그때 상국이가 다가왔다.
“뭐야? 태준이 너 아직도 괴수 사체 처리하는 일 하냐?”
“그렇지 뭐.”
“새끼. 내가 호텔 관리직 하나 준다니까 그거나 하지, 위험하고 힘든 일을 왜 하냐.”
“그건 걱정하지 마. 이젠 내 직원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이 새끼나 저 새끼나, 다들 짜증 나는 새끼들만 모였구나.
결국, 연희에게 잘 보이려고 날 이용하고 있다.
둘은 초등학교 때 존재감도 없는 놈들이었다.
내가 헌터만 되면 네놈들을 꼭 눌러주마.
하지만 현실은...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는데.
친구들이 하나둘 연희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헌터들만 아는 이야기로 날 다시 따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싫었지만, 연희를 가까이서 한번 보고 싶었다. 매일 TV 화면에서만 보다가 직접 보니, 주책이게 심장이 뛴다.
하지만 오래 있고 싶진 않았다.
이곳엔 나를 이용해 자신을 돋보이고 싶은 녀석들 천지다. 특히 김상국, 도하준 저 새끼들 꼴 보기 싫어서 결국, 몰래 파티장을 빠져나왔다.
‘제길, 오늘은 소주나 빨아야겠다.’
간만에 야근이 없어서 좋아했건만.
기분이 더럽다.
게이트에서 일하면 헌터로 각성할 확률이 높다는 말을 믿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던전 청소부가 됐다.
하지만 이 짓도 벌써 7년째.
‘이제 헌터는 포기해야 하나...’
헌터 100만 시대. 대한민국에서만 20만 헌터가 존재한다. 게이트가 열릴 때마다 어디선가 각성자가 나온다는데, 내게는 그런 행운이 오질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달리는 버스 창문에 기대 잠이 들었다.
위이잉.
‘모르는 번호?’
받을까 말까 고민이다.
이번 달 대출 이자는 냈을 텐데.
통화버튼을 누르고 귀를 가져다 대고 가만히 듣고 있었다.
[태준이니?]
[누구?]
[나야 연희.]
[아,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어?]
[하준이한테 물었지.]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왜 이렇게 빨리 갔어.]
[내일 근무라 일찍 쉬어야 해서.]
[그래도 10년 만에 만났는데, 차라도 한잔...]
끼익!
“헛!”
[태준아, 왜 그래?]
버스가 크게 흔들렸다.
“게, 게이트가?”
[뭐?]
콰아앙!
[태준아 무슨 일이야!]
수화기 너머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다.
눈을 뜨자, 전복된 버스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시커먼 괴수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쨍그랑!
괴수 한 마리가 버스 유리를 깨고 커다란 입을 벌리며 내게 곧장 달려들었다.
그 순간.
[축하합니다. 헌터로 각성했습니다.]
[튜토리얼로 입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