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2. 튜토리얼(1).
‘여긴?’
떨어지는 폭포수에 푸르른 나무와 바위들.
널찍한 바위에 도사처럼 머리를 뒤로 묶고, 흰옷을 입은 중년인이 커다란 칼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나는 어느새 그 아래 무릎을 꿇고 있다.
“내 이름은 포정(庖丁)이다. 백정이지.”
걸걸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가 네게 가르침을 줄 것이다. 앞으로 스승님이라 부르거라.”
“저 실례합니다. 이거 튜토리얼이 맞는 건가요?”
이곳으로 오기 전에 헌터로 각성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니 분명 튜토리얼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 나와 있는 튜토리얼 설명과 달라도 너무 다르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미녀 엘프나 천사가 아니라, 왜 아저씨지?
‘뭔가 불안한데.’
스르릉!
포정이란 내 스승은 큰 칼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옆에 커다란 황소 한 마리가 생겼다.
“무엇이 보이느냐?”
“황소요.”
“너는 아직 멀었다.”
“네?”
스승은 다자고자 큰 칼을 들고 황소에게 다가갔다.
포정의 신형이 움직였다.
칼이 번쩍하더니 소에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으로 누르며 칼을 움직였다. 그 동작이 얼마나 섬세하고 거침없는지,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어느덧 신들린 듯한 동작이 멈추고, 소는 도의 경지에 이른 스승의 칼날에 분해되고도 자신이 죽는 지를 모를 지경이었다.
‘뼈만 남았는데 소가 살아 있다니...’
눈앞에서 보고 있는데도 믿을 수 없었다.
포정 스승은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날 내려다보았다.
“보았느냐? 앞으로 네가 평생을 노력해 이뤄야 할 경지니라.”
무슨 소리지? 헌터라면 괴수를 잡아야지,
소를 왜 잡아 소를?
“하지만 제가 잡아야 하는 건 이런 소 따위가 아닙니다. 전 괴수를 잡아야 합니다.”
“괴수가 뼈가 있느냐?”
“네.”
“그럼 살도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럼 잡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
어느덧 스승은 사라지고, 큰 칼과 자신이 도축할 커다란 황소 한 마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설마, 지금 이게 튜토리얼이라고?’
***
상태창.
[나태준]
- F등급
- 체력 : 15
- 마나량 : 10
- 클래스 : 괴수 백정.
상태창이 뜨는 걸 봐서는 각성한 게 분명한데.
괴수 백정이란 클래스는 처음 들었다.
왜 남들처럼 검사나 궁사, 마법사, 초능력자, 샤먼, 네크로맨서 같은 평범한 클래스가 아니고, 백정이란 말인가?
설마 내 직업이 괴수 사체를 처리하는 던전 청소부라 각성도 이따윈가?
15년이다.
지난 15년간 헌터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오죽하면 게이트에서 일하면 빨리 각성한다는 말을 듣고, 던전 청소부가 됐겠는가.
그런데 괴수 백정이라니...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대답이 없다.
“포정 스승님?”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고,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일어서 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시 그 자리다.
이곳에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결계 같은 것이 있나?
정말 저 소를 잡아야 튜토리얼이 끝나려나?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런데 저걸 어떻게 잡지.’
소가 나를 보며 큰 눈을 깜빡인다.
맨날 괴수 사체만 분해했지, 살아 있는 놈을 잡은 적은 없었다.
가만히 소를 쳐다보았다.
목은 짧고 두껍다.
머리는 몸체에 비하여 작고 짧으며 이마는 넓고 콧대는 길고, 귀는 작았다.
네 다리는 짧으며 뒷발보다 앞발이 크고 우람하며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으나, 엉덩이가 빈약하고 경사진 것이 아쉬웠다.
[관찰(lv1) 스킬이 생성됐습니다.]
[관찰(lv1) 스킬이 발동됩니다.]
“응? 뭐지?”
갑자기 스킬이 생기며, 소의 부위에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어떤 것은 숫자가 크고, 어떤 것은 숫자가 낮았다.
상태창에서 관찰 스킬을 선택하자, 친절한 설명이 나왔다.
[관찰(lv1) 스킬 - E등급 이하 괴수의 신체 능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숫자가 높을수록 방어력이 강하고, 숫자가 낮을수록 방어력이 약합니다.]
‘아, 이거 튜토리얼이었지.’
이제야 괴수 백정의 튜토리얼이 이런 것임을 알겠다.
관찰 스킬를 실행하고, 소를 자세히 살폈다.
몇 군데 숫자가 아주 낮은 부위가 있다.
‘아! 저기가 이 소의 약점이네.’
신기했기에 몇 번이나 관찰 스킬을 실행해 소를 살폈다.
하지만 보는 것만으로 소를 잡을 순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바닥에 놓인 큰 칼을 잡았다.
놈을 잡아야 튜토리얼이 진행된다.
하지만 막상 소를 내려치려니 꺼리는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포정 스승님이 옆으로 다가왔다.
“소가 보이느냐?”
“숫자가 보입니다. 이젠 어디를 쳐야 죽을지 알 것 같습니다.”
“드디어 살(殺)을 보기 시작했구나. 하지만 너는 아직 멀었다.”
“그런데 저 불쌍한 생명을 어떻게 잡습니까?”
“너는 그럼 이 소를 위해 굶어 죽을 수 있느냐?”
“네? 그, 그건 좀...”
사실 나는 소고기 스테이크를 아주 좋아한다.
비싸서 못 먹지.
포정 스승님은 내 칼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소를 잡기 전 두 손을 모아 엄숙히 예를 치르기 시작했다.
“내 직업은 비천한 백정이다. 하지만 내가 소를 잡을 때의 칼질은 도(道)에 닿아있었다. 고통 없이 소를 죽이는 것 또한 백정의 도이다.”
그리곤 일격에 고통 없이 소의 숨통을 땄다.
스승은 내게 칼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죽은 소 대신에 살아 있는 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승님의 말을 듣고, 관찰 스킬로 소의 가장 약한 부분을 찾아 내리치려 할 때였다.
“멈춰라.”
“왜 그러십니까?”
“지금 너의 근력으론 이 소를 고통 없이 죽일 수 없겠구나.”
“네?”
“소를 잡기 전에 힘을 길러야 한다.”
갑자기 소가 사라지고, 나타난 큰 칼.
스승이 쓰는 칼보다 서너 배는 크고 무거워 보였다.
“이것을 휘둘러라.”
지금 내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헌터의 튜토리얼이란 클래스의 스킬을 익히고, 그것을 실험하며 괴수를 잡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난 소를 잡아야 하는가?
의문을 뒤로하고, 어느새 난 폭포 앞에서 큰 칼을 허공에 휘두르고 있었다.
“칼을 휘두름에 있어 손목과 팔만 쓰는 것이 아니다. 어깨의 힘이 좋아야 하고, 튼튼한 허리가 있어야 힘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허리를 씀에 있어 하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그 또한 힘을 받을 수 없다.”
몸 전체를 단련해야 한다는 말을 어렵게 돌려서 하고 있었다.
그렇게 큰 칼을 휘두르며 체력을 단련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칼을 휘두르다 보면, 근육이 끊어질 것처럼 힘들다가도 잠시 쉬면 몸이 정상으로 돌아갔다.
이곳은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밤낮이 구분 없고, 바람 또한 불지 않았다.
밥을 먹을 필요도 없고, 잠을 잘 필요도 없다.
하지만 단련을 할수록 근육은 붙고, 점점 몸이 좋아짐을 느꼈다.
15였던 체력 수치도 어느새 30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살(lv1) 스킬이 생성됐습니다.]
[도살(lv1) 스킬 - 괴수를 잡을 때, 집중력과 힘이 늘어난다.]
드디어 다른 스킬이 생겼다.
그러자 포정 스승님이 홀연히 나타났다.
“이젠 소를 잡을 준비가 됐구나.”
인간이 소를 잡아먹고, 곡식을 먹으며, 물을 마시는 것 모두 다 자연의 섭리다.
소를 고통 없이 죽이는 것이 백정의 도리라는 말을 새기면서 칼을 들었다.
“좋아 까짓거. 한번 해보지.”
일단 마음을 잡고 칼을 들었다.
숫치가 가장 낮은 부분이 보였다.
“도살(lv1)!”
큰 칼을 내리쳤다.
단 일격에 소가 고통 없이 쓰러졌다.
‘해냈다!’
스승님이 죽은 소를 향해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
나도 스승님을 따라 예를 표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살(殺)을 실행했다.
역시 이것은 튜토리얼이 맞았다.
내가 뭔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