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3화 (3/149)

# 3

3. 튜토리얼(2).

괴수는 인간을 먹잇감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놈들을 상대해야 하기에 헌터는 괴수를 죽일 때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너에게 훌륭한 백정의 자질이 보이는구나.”

포정 스승님이 나를 칭찬하는 말을 했다.

난 헌터의 자질이 필요한데...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자, 지금부터 배운 걸 반복하고 숙달해라.”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포정 퀘스트 발생.]

[첫 번째 퀘스트 - 소 1,000마리를 잡으시오.]

[보상 - D등급 마석.]

천 마리?

순간 숫자를 잘못 본 게 아닌지 의심했다.

스승님께 따져 물으려 했으나, 연기처럼 사라지셨다.

저 말은 1,000마리의 소를 잡기 전에는 튜토리얼이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도 이런 튜토리얼을 할까?

순간 의문이 들었다.

헌터 커뮤니티나 인터넷에 나와 있는 정보에는 클래스 별로 스킬을 설명하고,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몬스터 몇 마리 잡으면 끝난다고 들었다.

세상의 헌터들이 다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나만 왜 이런 튜토리얼을 하는 건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보상이 제법 두둑했다.

D등급 마석은 10g에 100만원으로 보통 300g에서 400g 사이로 발견된다. 그러니까 소 천 마리만 잡으면 최소 3천만원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좋아 까짓거 해보자.”

관찰 스킬과 도살 스킬을 배우기 전에는 엄두가 안 났지만, 이젠 일격에 소를 죽일 수 있었기에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그날 부터 죽으라고 소만 잡았다.

[1,000/1,000]

그렇게 소 천 마리를 잡았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D등급 붉은 마석을 얻었습니다.]

“휴!”

팔이 떨렸다.

퀘스트가 끝나자, 홀연히 스승께서 나타나셨다.

“훌륭한 백정은 매년 칼을 바꾼다. 살을 자르기 때문이지. 반면 평범한 백정은 매달 칼을 바꾼다. 왜인지 아느냐?”

“글쎄요?”

“그건 뼈를 가르기 때문이다. 내 칼을 보아라.”

보는 것만으로 베일 듯이 섬뜩한 것이, 방금 칼을 간 것처럼 날이 살아 있었다.

“이건 십구 년이 된 칼이다. 이 칼로 소 수천 마리를 넘게 잡았다. 그럼에도 날이 살아 있는 것은 결을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스승님은 소를 잡는데 정말 도가 트신 분이셨다.

“잘 보아라.”

그리곤 직접 소를 잡아 해체하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칼질.

뼈와 살 사이를 칼이 물 흐르는 것처럼 흘러간다. 마치 칼과 몸이 하나인 것이 백정의 길에도 도가 있음이다.

“모든 사물에는 타고난 결이 있다. 이 결을 따라 칼을 움직이면 못 잡을 것이 없다.”

스승의 칼을 따라가며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해체(lv1) 스킬이 생성됐습니다.]

[해체(lv1) - 괴수의 살과 뼈 등을 해체할 수 있습니다. 전투시에 스킬을 실행하면 기본 공격력이 올라갑니다.]

또 다른 스킬이 생겼다.

앞선 도살 스킬이 약점을 찾아 일순간에 적을 제압하는 기술이라면, 해체 스킬은 5분간 기본적인 공격력을 올리는 스킬이었다.

두 가지를 병행해 전투에 이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보았느냐?”

“네.”

“그럼 이제부터 배운 것을 복습하거라.”

“네.”

[두 번째 퀘스트 - 소 1,000마리를 잡고, 해체하시오.]

[보상 - 인벤토리 +50]

스승은 또 사라지셨다.

자기 말만 하시고, 참 바쁘신 분이다.

이번엔 첫 번째보다 몇 배나 힘든 퀘스트가 발생했다.

소를 잡는 거야 어렵지 않았지만, 해체하는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이다.

‘어느 세월에 천 마리를...’

아득히 먼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번에도 보상은 짭짤했다.

자신의 인벤토리의 슬롯은 10개다. 개당 2kg밖에 보관하지 못하기에 20kg밖에 넣을 수 없었다. 하지만 50슬롯이면 100kg을 추가로 보관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며, 소를 잡기 시작했다.

먼저 관찰 스킬로 소의 약한 곳을 살피고, 도살 스킬로 일격에 소를 잡는다. 그리고 해체 스킬로 소의 뼈와 살을 분리한다.

이것이 능숙해질 때까지 계속 소를 잡고, 분해를 반복했다.

그 이후로 스승을 한참 동안 보지 못했다.

역시 퀘스트를 깨야 다음 튜토리얼이 진행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소를 잡고, 해체했는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좋은 소란 단순히 덩치가 크다고 근량이 많이 나오는 게 아니다. 허리를 잘 봐야 한다. 등심 아래 채끝이 있는 쪽에 살집이 잘 잡혀야 좋은 소다.

점점 소에 대해 알아가며, 칼을 쓰는 손놀림도 좋아졌다.

이제 소는 내 눈빛만 봐도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1,000/1,000]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인벤토리가 늘어났습니다(+50).]

천 마리째 소를 잡고, 바위에 앉아 멍하니 폭포를 바라보았다.

그리운 연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뛰어난 헌터가 된다면 그녀 앞에 당당히 나설 수 있을까?

어느새 나타난 포정 스승님께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폭포를 한참 바라보았다.

“소는 안 잡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

“오늘은 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상념에 사로잡혔구나.”

“스승님, 앞으로 얼마나 더 배워야 튜토리얼이 끝날까요?”

“그거야 네게 달린 일이다.”

스승님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에 솜씨를 보여 주마.”

커다란 황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소는 제 죽는 것도 모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스승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칼이 번쩍임과 동시에 소가 쓰러졌다.

소는 자기가 죽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포정 스승님이 소를 해체하더니, 붉은 덩어리를 내밀었다.

“먹어봐라.”

“이게 뭡니까?”

“소를 잡았으니 맛을 봐야지. 이건 소의 간이다.”

스승에게 건네받은 시뻘건 간을 한입 베어 물었다.

비릿한 향에 인상을 찡그렸으나 곧 부드럽게 입속에서 사라졌다.

그때였다.

[감식(lv1) 스킬이 생성됩니다.]

[감식(lv1) - E등급 이하 괴수의 고기를 감별하고, 성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감식 스킬을 실행시키고, 소의 간을 만져봤다.

[소의 간 - 빈혈에 좋으며, 간을 보호하고, 피로 해소에 탁월하다.]

내 눈앞에 상세한 설명이 떴다.

소의 다른 부위를 만지자, 그곳의 설명과 함께 효능까지 나열됐다.

그 순간.

[세 번째 퀘스트 - 소 10,000마리를 잡고 해체하시오.]

[보상 - 포정의 칼]

또 퀘스트?

게다가 이번엔 10,000마리.

경악할 숫자였다.

이번 보상은 칼이었다.

하지만 등급이나 정보가 보이지 않아 얼마나 좋은 칼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스승님께 물으려 했으나, 역시나 사라지셨다.

그 이후로 얼마나 많은 소를 잡았는지, 이제 세지도 않았다.

달인이 되어 간다는 말.

처음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소 한 마리를 잡고 해체하는데,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점점 손이 리듬을 타게 되고, 어느 순간 나도 스승님의 음률을 따라 하게 되었다.

‘아, 결을 따라 칼을 움직인다는 것이 이런 것이로구나.’

나는 소의 결을 따라 무의식적으로 칼을 따라간다.

소를 잡는 내 모습을 본 포정 스승님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소가 보이느냐?”

“이제 소의 온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오직 쇠가죽과 고기, 살과 뼈 사이의 커다란 틈새와 그 빈 곳에 칼을 놀리고 움직여 소의 몸이 생긴 그대로 따라갑니다.”

“하하하!”

포정 스승님이 나를 보며 크게 웃었다.

“네가 이제 긍경(肯綮)에 닿았구나. 이제 하산하거라.”

“정말입니까? 이게 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그러자 스승이 웃으며 말했다.

“축하한다. 너는 비로소 완벽한 백정이 되었다.”

난 분명 각성했고 튜토리얼을 끝냈는데,

헌터가 아니라 백정이 되었다니...

그래도 튜토리얼이 끝났으니 기분은 좋았다.

이제는 스승님과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칼을 내려놓고 스승께 절을 했다.

“고맙습니다. 포정 스승님. 건강하세요.”

그동안 정들었기에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졌다.

[괴수 백정 튜토리얼을 완료했습니다.]

[보상으로 슬롯이 늘어났습니다. +10 슬롯(총 70 슬롯).]

[포정의 칼을 획득했습니다.]

***

주변이 밝아졌다.

눈을 뜨자,

“크아아앙!”

커다란 입을 벌린 괴수가 달려온다.

이곳은 자신이 각성한 그 뒤집힌 버스 안이었다.

“헛!”

급히 몸을 숙이자, 놈이 의자를 깨물었다.

바그작.

의자는 순식간에 뜯겨나갔다.

놈이 다시 입을 벌렸다.

급하게 인벤토리 창을 열어 스승님의 칼을 꺼냈다.

콰앙!

“큭!”

큰 칼을 세워 가까스로 괴수를 막았다.

‘이 새끼 뭐야?’

[관찰(lv1) 스킬이 발동합니다.]

그 순간 놈의 몸뚱어리 각 부위에 숫자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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