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4화 (4/149)

# 4

4. F급 게이트(1).

“크앙! 크앙!”

자신에게 덤벼드는 놈은 F급 괴수 라팍스.

커다란 입과 날카로운 발톱, 생긴 건 도사견과 흡사했다.

물론 이놈의 체격이 도사견보다 두 배나 컸고, 기형적인 입은 세 배나 컸다.

또 얼마나 사나운지 막고 있던 칼에 입이 베어 피가 흘렀음에도 나를 물어뜯기 위해 쉬지 않고 밀어붙였다.

늘 죽어 있는 놈만 봤지, 살아있는 놈은 처음이다.

‘여기가 숨통이구나!’

숫자가 제일 낮은 곳.

칼을 옆으로 밀며 주먹으로 힘껏 목을 후려쳤다.

퍼억!

“캥! 캐깽!”

놈이 괴로운지 뒤로 물러섰다.

기회다.

“도살(lv1)!”

소 잡는 칼이 목덜미를 뚫고, 뼈를 피해 숨통을 끊어버렸다.

라팍스는 몸을 한번 크게 꿈틀거리더니 그대로 절명했다.

순간 몸에 전율이 일었다.

‘백정 기술이 통하잖아!’

관찰 스킬로 놈의 약점을 파악하고, 도살 스킬로 일격에 숨통을 끊었다.

튜토리얼에서 배웠던 기술이 괴수에게 통한 것이다.

이 순간 자신이 헌터가 되었다는 게 실감 났다.

상태창으로 놈의 정보를 확인했다.

[라팍스(F등급) - 빠르고 민첩하다. 후각이 매우 발달했다. 얼굴의 절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입과 여덟 개의 송곳니가 위협적이다. 한번 물리면 목이 잘려도 절대 놓지 않기 때문에 물리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팔이라도 물렸으면, 그 자리에서 잘렸을 것이다.

촤아악!

망설임 없이 놈의 배를 갈랐다.

백정의 본능인가? 아니면 던전 청소부 때의 습관인가?

이는 마석을 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라팍스의 비장, 개당 100만원에 거래되는 약재.

헌터에게는 큰돈이 아니기에 이것을 채취하는 헌터는 없다. 게다가 괴수 사체는 3, 4시간이면 부패하기에 멀쩡한 비장은 100마리에 하나가 나올까 말까 한 귀한 것이다.

마석은 못 찾았지만, 비장을 채취했다.

[라팍스의 비장 - 심장을 튼튼하게 하며, 신경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쨍그랑!

“끼아아악!”

버스 뒤쪽 창문이 깨지며 라팍스 한 마리가 커다란 입을 내밀었다.

맨 뒷자리에 있던 여고생이 앞으로 쓰러지며 까무러쳤다.

라팍스가 앞발을 내밀어 여고생을 밖으로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가만히 둘 수 있겠는가.

[해체(lv1) 스킬이 발동됩니다.]

서걱!

발과 발목 사이의 연골과 힘줄을 잘라버렸다.

“크아앙!”

놈이 고통에 가득한 괴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성난 라팍스가 깨진 유리 안으로 머리를 구겨 넣기 시작했다.

발목을 자른 나를 물어뜯기 위함이다.

‘어리석은 놈 스스로 좁은 곳으로 들어오다니.’

빡!

칼등으로 놈의 이마를 내려치고, 옆으로 돌아 목에 칼을 찔렀다.

라팍스의 목에 칼이 박혔으나, 죽지는 않았다.

다시 힘을 주어 마무리했다.

‘아직 힘이 부족하구나.’

도살 스킬을 썼다면 일격에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도살 스킬은 마나를 3이나 소모하고 5초 만에 효과가 사라진다. 반면에 해체 스킬은 마나 1을 소모하면서 5분간이나 유지가 된다.

‘상태창.’

[나태준]

- F등급

- 체력 : 38

- 마나량 : 11(16)

- 클래스 : 괴수 백정.

- 클래스 특기 : 관찰(lv1), 도살(lv1). 해체(lv1), 감식(lv1).

총 마나가 16이었기에 도살 스킬을 자주 쓸 순 없었다.

그러니 체력을 올려야 오래 싸울 수 있다.

“으악!”

또다시 비명이 들렸다.

이번엔 밖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여긴 동작대교 위였다.

다리 중간에 생성된 지름 5미터 정도 되는 F급 게이트에서 나온 라팍스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가 차들을 공격하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전철이 지나가자, 전철을 따라 주변에 있던 놈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조용해지자, 깨진 뒤쪽 창문으로 나가 자신이 죽인 놈의 배를 갈랐다.

‘있다!’

F등급 마석.

300g 정도로 개당 500만원은 받을 수 있다.

마석은 괴수 10마리를 잡아야 한두 개 밖에 안 나오는 귀한 것이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비장까지 채취하고 버스에 몸을 기대 주변을 살폈다.

“아, 아저씨.”

버스 안에 여고생이 몸을 일으켰다.

“학생 괜찮아?”

늦은 밤이라 승객이 둘밖에 없었다.

“흑흑, 아저씨. 저 안 죽었나요? 괴물은요?”

“걱정 마. 내가 처리했어.”

여학생은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아저씨도 헌터에요?”

“헌터?”

순간 대답이 망설여졌다.

“뭐, 그렇지.”

내가 움직이려 하자, 여고생이 말했다.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난감한 상황이었다.

버리고 갈 수도 없고.

“학생, 이름이 뭐지?”

“수진이에요. 한수진. 아저씨 이름은요?”

“나태준이다.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다. 겨우 스물여덟이라고.”

“그럼 아저씨 맞네.”

살짝 짜증 날 뻔했다.

“아무튼, 이 아저씨, 아니 오빠는 지금 게이트로 간다. 그러니 헌터들이 올 때까지 여기 가만히 숨어 있어.”

“네? 게이트로요?”

조금 있으면 헌터 부대와 각 기업의 헌터들이 벌떼처럼 몰려올 것이다.

그전에 게이트로 들어가 라팍스를 최대한 사냥할 생각이었다.

수진이가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같이 갈게요.”

“뭐? 난 네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저도 헌터에요. 방금 아저씨와 이야기 나누다가 각성했어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순간 어이가 없었다.

하긴 나도 그 짧은 찰나에 각성했으니.

“무기는?”

수진이가 인벤토리에서 활과 화살통을 꺼냈다.

“튜토리얼은 했냐?”

“그럼요.”

“실전 경험은?”

“고블린을 100마리 잡았어요.”

“그게 다야?”

“그럼요. 보상으로 이 엘프의 활을 받은 걸요.”

역시 튜토리얼이 나완 완전히 달랐다.

그때였다.

“크아앙!”

앞에서 라팍스 한 마리가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피슉!

수진이가 쏜 화살이 날아갔다.

푹!

화살은 놈의 어깨에 박혔다.

하지만 쓰러지지 않고, 오히려 더 사납게 달려들었다.

“크왕!”

퍼억! 쾅!

입을 벌리며 달려들던 괴수가 내가 휘두른 칼등에 맞아 옆으로 쓰러졌다.

놈이 일어설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대로 달려가 목에 칼을 박았다.

눈을 감고 몸을 잔뜩 웅크린 수진이가 눈을 떴을 땐 라팍스는 이미 죽어 있었다.

“야! 헌터가 눈을 감으면 어떡해?”

“죄송해요. 무서워서요.”

칼을 빼며 말했다.

“봤지? 여기 목을 뚫어야 해 아니면 안 죽어.”

“네.”

놈의 몸통을 가르고, 비장을 떼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 모습을 수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아저씨 뭐해요?”

“부업 한다.”

마석을 찾고 있었다.

“아, 마석 찾는구나. 근데요.”

“왜?”

“앞에 괴수가 다가오는데요.”

“뭐?”

고개를 들었다.

보이지 않는다.

“괴수? 어디?”

“저기 좌측 30미터 지점에요.”

“그래?”

그곳엔 차량 석 대가 파손되어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때.

라팍스 한 마리가 코를 킁킁거리며 연기를 뚫고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급하게 수진이의 손을 잡고 버스 앞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곳엔 버스 기사가 머리가 잘린 채 죽어 있었다.

결국, 버스 옆에 섰다.

“그런데 놈이 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스킬이요.”

“무슨?”

수진이는 순간 말하기 꺼리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헌터의 스킬은 가족 사이에도 공유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 있을 정도로 비밀이었다.

“탐색이요. 50미터 이내에 고블린, 아니지 괴수가 있으면 미니맵에 표시가 돼요.”

자신에게 없는 엄청 좋은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주변에 다른 놈들은 또 없냐?”

“뒤쪽에 두 마리 더 있었는데 멀어졌어요.”

“앞에 놈이 얼마나 다가왔지?”

“20미터 남았어요.”

운전기사의 피 냄새를 맡았는지, 놈은 곧장 이리로 오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게이트로 들어갈 거야. 그런데 네가 짐이 된다면, 함께 갈 수 없어.”

단호하게 말했다.

수진이가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네 실력을 증명을 해봐.”

엄지손가락으로 괴수가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게이트로 혹을 데리고 가고 싶은 맘은 없었다.

녀석도 이것이 마지막 기회란 것을 알 것이다.

수진이는 떨리는 손으로 활시위에 화살을 메기며 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작게 읊조리며 버스 옆으로 몸을 드러내 화살을 겨눴다.

다가오는 라팍스가 번쩍이는 화살을 봤는지, 차량 뒤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수진이의 화살도 날아갔다.

챙강!

푹!

“마...맞혔어요.”

상처 입은 괴수가 더 사나운 법.

긴장을 유지하고, 부서진 차를 돌아갔다.

그곳엔 목에 화살이 박힌 채 가쁜 숨을 헐떡이는 라팍스가 있었다.

‘제법인데...’

약점을 가르쳐 주자, 정확히 그곳을 맞춘 것이다.

“저 잘했죠?”

“51점이야.”

“에게. 너무 짜다.”

“아직 안 죽었잖아. 마무리해!”

푹!

수진이의 화살이 놈의 숨통을 끊었다.

다시 길을 가려 할 때였다.

“아저씨, 이건 왜? 배를 안 갈라요?”

“네가 잡은 거잖아.”

“하지만 전 할 줄 모르는 걸요.”

“그래서?”

“나를 구해줬으니, 그냥 아저씨 줄게요.”

“호!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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