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7화 (7/149)

# 7

7. 용산 헌터 시장(1).

꿈에도 그리던, 괴수가 달려들던 위기의 상황에서도 아련하게 떠오르던 그녀가 눈앞에 있다.

“태준아 무사했구나.”

“연희야, 네가 여기 어떻게?”

그녀가 바이크에서 내려 찰랑거리는 머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전화가 그렇게 끊겼는데, 어떻게 그냥 있어.”

연희가 왠지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설마 나를 걱정해서?

괜스레 미안해지고, 가슴이 설렌다.

“아, 미안. 휴대폰이 부서져서 바로 연락을 못 했네. 어차피 게이트 안에서는 연락도 못 했겠지만.”

“게이트?”

“아참, 나 각성했어. 나도 이제 헌터야.”

“진짜? 아... 축하해.”

나를 빼고 반 친구들이 모두 각성한 지 15년 만이다.

그동안 얼마나 헌터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가.

드디어 오늘 그 결실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축하한다는 말과 달리 연희는 왠지 기뻐하진 않는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씁쓸해하는 느낌이었다.

“기쁘지 않아?”

“아니 기쁘긴 한데. 이제 위험한 일에 끼어들 텐데...”

가슴과 어깨에 난 상처를 본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많이 다쳤네.”

“별거 아니야. 그냥 스쳤어. 그보다 여긴 어떻게 찾았데?”

“서울에 뜬 게이트가 세 개밖에 없길래...”

보아하니 그 세 개의 게이트를 전부 돌아보고 온 것 같았다.

꼭 연희가 나를 좋아했던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연희를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내준 적이 있었다. 그날부터 연희는 6년 내내 나를 쫓아다녔었다.

그때 그녀의 마음을 받아 줬다면 어땠을까?

살짝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그때도 지금처럼 우리 두 사람은 어울리지 않았다.

“어서 치료해야 해, 괴수의 발톱이나 이빨엔 독성이 있어.”

“알아. 지금 병원으로 가려고.”

그녀가 나를 걱정해주는 말을 하자 조금은 어색해졌다.

“근데 옆에 누구야?”

“아, 이쪽은.”

내가 소개하기도 전에 수진이가 끼어들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이연희 헌터님 맞으시죠. 전 한수진이에요, 한수진 헌터!”

수진이는 일부러 헌터에 힘주어 말했다.

“반가워요. 학생.”

“아! 저 고등학생 아니에요. 성인이에요. 성인.”

“응?”

“1년 꿇었어요.”

쟤는 여기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가 다 창피할 지경이다.

“그리고 오늘 여기 태준이 아저, 아니 오빠와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했죠.”

“아 그랬구나. 수진양이 우리 태준이에게 도움을 많이 줬겠군요.”

“우리 태준이요?”

“우린 초등학교 동창이거든요.”

이럴 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멍해졌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느낌에 남산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 검은색 헬리콥터가 빠르게 다가왔다.

투다다다다다!

“저 헬기, 이리로 곧장 오는데? 혹시 연희 너 태우러 오는 거야?”

분위기를 바꾸려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그래, 맞아.”

“맞아?”

그냥 한번 찔러본 말이 정말이었다.

“강원도 고성에 큰 게이트가 출현했나 봐.”

“아.”

분명 A급 이상일 것이다.

A급 이상의 게이트가 뜨면, S급 헌터는 의무적으로 게이트가 발생한 곳으로 집결해야 한다.

긴급 상황인데도 나를 먼저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는 것에 가슴이 울렸다.

야속한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머리 위에 서고, 줄이 내려왔다.

“난 이제 가봐야겠다. 아무튼, 태준이 네가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꼭 치료받고.”

“알았어.”

그리고 연희가 수진이를 바라보았다.

“수진양도 반가웠어요.”

“아, 예.”

“태준아 다음에 보자.”

“그래, 너도 조심해.”

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밧줄을 잡았다.

헬리콥터는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괜찮겠지?’

그녀가 다칠까 걱정이다.

처음엔 헌터가 되면, 바로 그녀 앞에 당당히 나설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그녀처럼 최소한 S급 헌터가 되거나, 상국이 놈처럼 대한민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의 길드장 정도는 돼야 그녀와 어울리는 남자가 되겠지.

다시 한번 헌터로 성공할 다짐을 해본다.

“훗, S급 헌터에게 조심하라니...”

“웃지 마.”

한수진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웃고 있었다.

“이 꼬맹이가.”

“꼬맹이요? 제 키가 171에요. 힐 신으면 아저씨보다 클걸요.”

수진이가 썩소를 짓는다.

아, 요즘 애들 발육상태가 너무 좋다.

“수진아, 택시 잡아. 일단 병원에 가야겠다.”

***

[한성 실업]

한성의 고문재 상무는 지금 괴로워 죽을 지경이었다.

‘성기용, 개새끼! 그동안 내가 쓴 술값이 얼만데, 어제 나를 제대로 물 먹였겠다.’

어제 성기용 사무관에게 연락받고, 괴수 사체를 처리하려고 출동했는데, 게이트 안에 괴수의 배가 전부 갈라져 있었고, 마석도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쓸만한 괴수의 부산물까지 죄다 쓸어갔으니, 고가의 장비를 실은 5대의 대형 트럭과 마흔명의 인력만 움직이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기에 아침부터 20살이나 어린 그룹 사장에게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래서 어떻게 내가 고상무에게 경영을 맡기겠습니까.”

“그래도 손해액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게 지금 무슨 말입니까? 지금 내가 돈 몇 푼 때문에 이러는 것 같습니까? 정신상태가 문제가 아닙니까. 정신상태가!”

도하준은 답답한지 책상을 내려쳤다.

띠!

“나태준 대리 출근했다고 합니다.”

“올려보내요.”

도하준이 고상무와 이사들을 노려봤다.

“에휴, 이게 회삽니까? 일개 대리가 10시 50분에 출근을 했습니다. 고상무님, 대체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한 겁니다. 이러니 허탕이나 치고 돌아오지. 이번에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있을 테니 다들 각오들 하세요.”

“죄, 죄송합니다.”

똑똑.

“들어와요.”

나태준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사들이 일제히 나태준을 노려봤다.

이는 노골적인 적대감이다.

“휴!”

한쪽 팔에 깁스하고 면티를 입고 나타난 나태준을 보더니, 도하준의 한숨이 깊다.

“나태준씨, 복장이 그게 뭡니까? 지금 회사에 놀러 왔어요?”

“저희 자유 복장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여긴 회산데...”

“괴수 사체 처리하는 사람 복장이 이 정도면 양호하죠.”

“뭐?”

도하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자 이사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고상무가 작게 말했다.

“나대리 뭐하는 거야, 사장님께 말대답하지 말게.”

“말대답이 아니라 할 말을 하는 거죠.”

도하준, 저놈이 어제 파티에서 뭔가 고까운 일이 있었나 보다.

평소엔 내 급이 낮다며, 아는 척도 하지 않는 놈이 이렇게 고상무와 이사들 앞에서 자신을 불러 놓고 까는 것은 그답지 않았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맨 앞자리에 앉아 존재감이 전혀 없던 아이었다. 그러던 놈이 헌터가 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 하지만 놈은 헌터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동창들은 대부분 A급 이상의 헌터가 됐는데, 혼자 C급에 머물렀다.

대신 사업 수단이 좋아 지금은 1,000억대 헌터 관련 회사를 셋이나 굴리고 있었다.

도하준이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럼 오늘 지각은 어떻게 설명할 거지? 변명거리가 있어?”

“물론, 어제 집에 가는데 게이트가 발생했어.”

“게이트?”

게이트 발생 때문에 늦어지는 경우는 천재지변으로 치기 때문에 지각이나 결근으로 치지 않았다.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증인도 있는데?”

“증인?”

“연희에게 물어봐, 어젯밤에 게이트로 날 찾으러 왔더라고.”

“뭐? 그럼 너 때문에 연희가 어제 일찍 간 거야?”

도하준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먼저 반말을 했기에 반말로 응대한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연희 때문에?

저놈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연희를 좋아해 지독하게 따라 다녔다는 것은 반친구 모두 알고 있었다.

“나대리, 자네 오늘 대체 왜 그러나?”

“그러게 어제 괴수라도 만나 머리라도 다친 거야?”

“아, 정말 머리를 다쳤을 수도 있겠어. 병원부터 가보게.”

고상무와 이사들이 나를 말렸다.

평소에 나는 회사에서 가장 말을 잘 듣는 직원이었다.

야근하라면 하고, 회식자리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비상소집이 있어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더는 그를 필요가 없지.

“나태준, 넌 오늘부터...”

“잠깐!”

도하준의 말을 막았다.

“내가 먼저 한마디 하지. 야! 도하준, 잘 먹고 잘살라는 말은 못 해주겠다. 평소에 넌 너무 밥맛없었거든. 사람이 좀 사람 냄새 나게 살아.”

“무...뭐?”

도하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품속에 늘 간직한 꼬깃꼬깃해진 사직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짤리기 전에 내가 먼저 그만 두는 거니까. 퇴직금은 늦지 말고 넣어.”

손을 흔들며 문을 나섰다.

그 순간.

“너 이 새끼, 거기 안 서?”

이사들이 달려들어 사장을 결사적으로 말렸다.

도하준은 헌터로 일반인을 폭행하면, 가중처벌을 받는다.

그는 아직 나태준이 헌터가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기분 좋게 사표를 던지고 정문을 나섰다.

이 맛에 직장인들이 사표를 가슴에 품고 있나 보다.

“이제 끝나요?”

“앗! 깜짝이야.”

학교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수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뭐야? 왜 집에 안 갔어?”

“집엔 전화했어요.”

“너 설마 가출했냐?”

“내가 어린앤가요. 가출하게.”

“그럼 학교라도 가던가. 오늘 금요일이야.”

“헌터가 학교 공부 같은 거 해서 뭐해요. 괴수나 잘 잡으면 되지.”

“너 솔직히 말해, 학교에서 공부 못했지?”

수진이의 눈이 가늘어지며 나를 노려봤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버스에 올라탔다.

그러자 수진이도 따라 탔다.

“왜 계속 따라와?”

“활 사준다면서요?”

“누가 떼먹냐.”

“아저씨한테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서, 못 사줄 수도 있죠.”

왠지 지옥까지 따라붙을 표정이었다.

“너 나중에 사채업자 하면 잘하겠다.”

“그게 고등학생에게 할 말이에요?”

“너 성인이잖아.”

“하지만 신분은 학생이죠.”

요즘 애들은 말로 이길 수 없다.

“그래, 용산으로 가자. 마침 팔 것도 있으니...”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헌터 시장인 용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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