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8. 용산 헌터 시장(2).
[용산 헌터 시장]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헌터 시장이 이곳 용산에 있었다.
15년 전 게이트가 발생하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피해가 가장 컸고,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한 한국과 일본이 세계 헌터 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중국 역시 지키는 지역이 넓었기에 피해가 컸고, 지금은 회복해가는 단계였다.
용산역 뒤쪽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100미터 아래 지하로 내려갔다.
지상에 괴수 출몰이 잦았기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하에 거대한 상가가 자리 잡았다. 이곳뿐만 아니라 정부의 주요 시설과, 대기업, 호텔, 대형상점 등도 10년 전부터 지하에 건설되고 있었다.
지하라 어둡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먼저 화려하고 번화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명동이나 강남 거리를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회사 일과 상사 심부름으로 이곳에 수십 번은 더 와봤기에 거리 구조는 빠삭했다.
번화한 거리를 지나, 복잡하고 굽이진 골목을 계속 들어갔다.
[괴수 약재 상가 골목]
“라팍스의 비장?”
“네, 싱싱한 겁니다.”
인벤토리에서 비장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오! 방금 잘라온 것 같군.”
황노인이라 불리는 약재상이 눈에 이채를 띄었다.
인벤토리 내에서는 절대 썩거나 부패하지 않아 처음 집어넣었을 때 상태로 꺼낼 수 있었다.
“그거 보세요. 상태 좋다니까.”
“좋아, 100만원 주지.”
물건을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왜 그러나? 그거 시세가 100만원이야.”
“150. 그 이하론 안 됩니다.”
“어허. 시세가...”
“물건 보실 줄 모르시는 분이라면 다른 데 가서 팔겠습니다.”
황노인의 인상이 구겨졌다.
확실히 괴수 사체 처리업체에서 가져온 물건보다 훨씬 크고, 좋아 보였다.
“어디서 구한 건가?”
“그거야 영업비밀이죠. 안 사실 겁니까?”
“하나는 아니겠지?”
“원하는 숫자를 말해 보시죠.”
“10개? 아니 20개?”
피식 웃어줬다.
“이 약재 거리에서 제일 통이 크시다고 들었는데, 실망이군요.”
“몇 개나 있는데 그러는가?”
“88개 있습니다. 모두 매입하실 거 아니면, 다른 데를 찾아보죠.”
“허, 너무 많은데... 현금으로 줘야겠지?”
“물론이죠. 대신 전부 구매하시면 다음에도 이곳과 거래하죠.”
모두 2시간도 안 돼서 채취한 물건이었다.
헌터들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시간이 꽤 필요했고, 던전 청소부들이 들어가서 괴수 사체를 처리하는 시간까지 더해지면, 마석과 뼈 말고는 멀쩡한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랬기에 우황청심원의 10배의 효능이 있다는 라팍스의 비장도 가격이 높은 것이다.
황노인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좋아. 반드시 다음에도 꼭 우리와 거래해야 하네.”
“그러죠. 그리고 이것도 팔고 싶은데요.”
라팍스의 송곳니를 내밀었다.
송곳니는 그냥 시세대로 팔기로 했다.
“깨진 것 없이 잘 뽑아왔군. 혹시 다른 물건도 있나?”
“지금은 없지만, 곧 여러 종류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좋아, 물건이 생기면, 꼭 우리 가게로 와야 하네. 내가 넉넉하게 현금을 준비해 놓겠네.”
현금으로 1억 6,720만원을 받았다.
“오. 아저씨, 대단한데요.”
처음부터 옆에서 지켜본 수진이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실 조금 더 받을 수도 있었어, 하지만 같이 남겨 먹어야 장사지.”
“그럼 이제 활 사러 가는 건가요?”
“쉿, 조용히 말해. 용팔이들에게 걸리면, 바가지 쓴다.”
다시 다른 골목길로 이동했다.
[마석 상가 골목]
“박사장님,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한성의 나대리가 아닌가. 자네가 여긴 웬일인가?”
“마석을 좀 팔려고 왔습니다.”
“마석? 미안하지만, 우린 장물 거래는 하지 않네.”
“장물이라니요?”
“그 마석, 괴수 사체 처리하다가 삥땅 친 거 아닌가?”
“하하. 아닙니다. 저 각성했습니다.”
“뭐? 헌터가 됐단 말인가?”
“네. 이 마석은 모두 제가 직접 구한 겁니다.”
“이런 축하하네. 헌터님께서 마석을 파시겠다면, 후하게 쳐 드려야지.”
F등급 마석 9개와 E등급 마석 하나를 꺼냈다.
“숫자가 많군. 첫 거래니 시세에 97%만 받지.”
“아니요. 95%에 팔겠습니다.”
“뭐?”
돈을 덜 받겠다는 소리에 박사장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신 장난 안 치는 무기 상인을 소개해 주십시오.”
“하하, 자네 이제 보니 장사를 할 줄 아는군.”
박사장이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참, 무슨 무기를 구하지?”
그 순간 수진이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휴, 활이요.”
“활? 활이라...”
박사장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 이 바닥에서 한때 유명했던 장인을 한 명 알긴 알지. 그 사내가 요즘은 활을 만들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리 가보게.”
“믿을만한가요?”
“에이, 이 사람아. 요즘 용산에 믿을만한 장사꾼이 어디 있나. 그나마 그 사람이 가격 장난한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으니, 추천하는 거야.”
“거기가 어딥니까?”
***
[로빈 후드]
상가 이름은 잘 지었다.
하지만.
“이거 금액 실화냐?”
“왜요 비싸요?”
그래 활 더럽게 비싸.
그동안 모아 놓은 돈까지 탈탈 털어도 3억이 간당간당했다.
그런데 D등급이라고 적혀 있는 활의 가격이 5억이 넘었다.
“아 손님, 물건 고르는 안목이 있으시군요. 사실 그 물건은 없어서 못 팔죠. F등급부터 C등급까지 무난히 사용할 수 있는 활이죠. 최첨단 오토 타겟팅 시스템을 탑재했고, 탄성력이 뛰어난 아라크네 실로 시위를 만들어 당기는 힘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또, 활대의 재질은 특수강으로 만들어 웬만한 충격에도 부러지지 않고 탄력이 좋아서 힘과 민첩함을 동시에 잡은 물건으로 도구 장인이 한 땀 한 땀 흘리며 만든 명궁이죠.”
직원의 쉼 없는 설명에 수진이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다른 가게에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입니다.”
“이거 길 건넛집에도 팔던데?”
내 말에 용팔이가 웃는다.
“하하, 겉모습이 같다고 속으면 안 됩니다. 저쪽에서 파는 건 구형 시스템이 탑재된 모델이고, 저희는 신형 시스템이 탑재되어. 0.1초 만에 상태창에서 목표물을 확인할 수 있죠.”
“그 가게에서도 같은 말을 하던데?”
“아, 하지만 가격은 우리 집이 훨씬 쌉니다.”
“가격도 같던데.”
용팔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더니 계산기를 꺼냈다.
최첨단 헌터 시장에 구형 계산기라니...
“원래는 **인데 손님은 인상이 좋으시니 **에 드리죠. 대신 어디 다른 데 가서 절대 말하면 안 됩니다.”
“너무 비싸네. 다른 활은 없습니까?”
직원이 내 모습을 위아래로 흩어보더니, 구석으로 안내했다.
“이 활은 어떠십니까? 특별 할인을 하는 물건인데요. E등급 헌터들이 가장 많이 쓰는 활입니다. 원래 1억 5천인데, 지금은 반값도 안 되는 7천 만원에 팔고 있죠.”
5억짜리를 보다 이걸 보자, 한눈에 봐도 물건이 후줄근해 보였다.
게다가 원래 수진이가 가지고 있던 엘프의 활보다 못해 보였다.
“더 싼 건 없습니까?”
용팔이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손님, 지금 바쁜 사람 데리고 장난해요? 돈이 없으면 직접 만들어 쓰던가. 지금 내가 용팔이라고 우습게 보는 건가? 나 이래 봬도 D급 헌터야. 물건 살 거야, 안 살 거야?”
D급 헌터 다 죽어나보다. 용산에서 물건이나 팔고 있고.
역시 용산의 용팔이는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저거 한번 쏴봐도 되겠죠?”
“뭐?”
신호를 주자, 수진이가 5억짜리 활에 화살을 걸고 용팔이를 겨냥하고 있었다.
“하, 학생 그거 내려놔.”
“D급 헌터니까 F급 헌터의 화살 정도는 피할 수 있겠죠.”
“헉! 안 사도 되니 제발 쏘진 마라.”
“쏘진 마라?”
“아니 쏘지 마세요.”
용팔이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수진아. 그만하고 가자.”
“네.”
활을 내려놓자, 용팔이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니 왜 가르쳐 준 곳은 안 가고, 이런 대만 가요?”
“아무리 소개받고 가는 곳이라도 주변 시세는 한번 알고 가야 하지 않겠냐?”
“아! 준비성 한번 개쩌네요.”
본격적으로 마석 상점 박사장이 알려준 길로 한참을 들어갔다.
이곳은 자신도 처음 오는 후진 곳이었다.
‘여긴가?’
간판도 없었다.
게다가 이곳은 땅을 추가로 파서 확장한 불법 골목이었다.
그 한구석 상점 안에서 거구의 한 사내가 등을 보이며 무언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익숙한 그림이다.
“실례합니다.”
인사를 했지만, 사내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저 활을 사러 왔는데요.”
사내가 손을 들어 한쪽 벽면을 가리켰다.
“저기.”
그는 한쪽 팔이 의수였다.
그 순간 실력은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사내가 가리킨 벽엔 십여 개의 활이 어지럽게 걸려있었다.
활들이 모두 단순하고 투박해 보였고, 큰 상점에서 팔았던 화려하고 최첨단 기술력이 들어간 활 같은 건 팔지도 않았다.
게다가 활에 이름과 가격도 적혀 있지 않았다.
“아저씨, 다른 데 갈까요?”
“왜? 이왕 왔는데, 자세히 살펴봐.”
박사장에게 저 사내가 한때 도구 계열의 장인이란 소릴 들었다.
뜻하지 않게 사고를 당해 두 다리와 한쪽 팔을 잃었기에 지금은 이런 뒷골목에서 활이나 만들고 있지만, 값싸고 좋은 물건이 한두 개쯤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진이가 검은 활 하나를 들어 시위를 당겨봤다.
티잉!
“와! 손에 착 감기는데요.”
“그래?”
“네. 당기는 힘도 덜 들고, 탄력적이고 아주 가벼워요.”
수진이가 맘에 드는지, 활시위를 연거푸 당겨다가 놓았다.
“근데 아까 상점에서 본 자동 타켓 시스템 같은 건 필요 없어?”
“그런 건 활이 무거워지기만 하고, 쓸모없어요. 그리고 언제 조준하길 기다려요. 그냥 느낌 왔을 때, 팍! 쏘는 거지.”
“젊은 아가씨가 활을 보는 안목이 있군.”
사내가 나무망치를 두들기면서 말했다.
“이 활 얼마나 합니까?”
“알아서 주고 가쇼.”
“예?”
사내는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럼 여기 있는 화살은 얼마나 합니까?”
폭발 기능이나 마법이 걸린 화살은 아니었다.
괴수를 잡기 위한 크고 날카로운 화살촉이 박힌 기본에 충실한 화살들만 있었다.
“그것도 형편 되는 만큼만 놓고 가져가쇼. 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인생 다 산 듯한 사내의 목소리는 의외로 젊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사내의 옆모습이 어딘지 낯이 익었다.
사내의 옆으로 돌아갔다.
“창수?”
사내가 이름을 듣더니 갑자기 몸을 떨었다.
“6학년 3반 남창수? 너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