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9. 용산 헌터 시장(3).
사내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의수로 얼굴을 가렸다.
“사, 사람 잘못 봤소. 그런 사람 모르오.”
“창수, 너 맞잖아. 왜 그래?”
“그만 좀 괴롭혀. 더는 가져갈 것도 없잖아.”
“뭐?”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창수야, 나 모르겠어? 반장 태준이야.”
“태준이?”
창수가 의수 손가락 사이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 나야. 나태준.”
동글동글한 얼굴에 주먹코.
의수를 치우자, 창수가 분명했다.
그가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고 있다.
“레이짱은 잘 있지?”
창수가 쭈르르 눈물을 흘렸다.
레이짱은 창수가 제일 좋아하는 에니메이션의 여주인공이다.
“너 진짜 반장 맞네.”
“그럼. 진짜지.”
“태, 태준아.”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가까이서 본 창수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두 다리는 절단됐고, 왼쪽 팔도 잘렸는지 의수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온몸에 화상을 입었는지 손등과 목까지 화상 자국이 보일 정도였다.
창수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태준아, 정말 반갑다.”
“나도 반가워,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
창수는 나를 반가워하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다.
녀석은 반 친구 중에서 유난히 오타쿠 기질이 많은 친구였다. 항상 프라모델 완구를 가방에 잔뜩 들고 와서 수업시간에도 몰래 조립하고, 일본 에니메이션에 나온 여자 주인공의 피규어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할 정도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우연히 발견한 거야.”
“우연히?”
창수가 살짝 의심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 나 드디어 헌터로 각성했어.”
15년 전 반 친구들이 모두 각성해 이상한 힘이 생겼을 때, 나만 왕따처럼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 준 것이 연희와 창수였다.
“축하해.”
말과 달리 표정이 그다지 좋지 않다.
녀석도 연희처럼 기쁘지 않은 것 같았다.
왜지?
“그보다 너 정말 어떻게 된 거야? 몇 년 전에 한창 잘나간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게이트에서 사고가 있었어...”
“사고?”
더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그저 짐작으로 게이트에서 사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창수는 도구 계열의 A급 헌터로 유명한 헌터들의 무기를 도맡아 만들었기에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지금 폐인과 다름없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보다 창수 녀석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그런데 옆에 누구? 여자친구?”
“뭐?”
창수의 말에 수진이의 얼굴이 빨개졌다.
“너 미친 거 아냐? 애 고딩이야.”
“왜 이래요. 1년 꿇었다니까요.”
“그래도 고등학생이잖아.”
“나이는 성인이에요.”
이랬다저랬다 애는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안녕하세요. 한수진이에요.”
“와, 예쁘게 생긴 학생이네. 난 태준이 동창 남창수. 반가워요.”
수진이는 화상 자국이 가득한 창수의 오른손과 악수를 할 때도 인상을 찡그리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태준아, 근데 여기 뭐하러 왔다고 했지?”
“애 활 사러.”
활을 만지고 있는 수진이를 가리켰다.
“저도 헌터에요. 어제 각성했죠.”
“아.”
창수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 활이 맘에 들어요?”
“네! 손에 착착 감기는 느낌이 너무 좋아요.”
“그럼 만난 기념으로 줄게요.”
“네?”
수진이가 나를 쳐다봤다.
“야야, 그러지 마. 나도 이제 헌터야. 어제 F급 게이트 클리어해서 돈 좀 벌었어. 이거 얼마야, 얼마면 돼?”
“한 20억쯤 할걸?”
“뭐?”
“하하, 농담이야.”
“야, 살 떨린다. 그런 농담 좀 하지 마.”
“그런데 벌써 게이트를 클리어했다고?”
“그럼 내가 누구냐. 6학년 3반 반장 아니냐. 내가 15년 전에 각성했다면, 지금쯤 연희보다 강해졌을걸.”
“맞아요. 다른 건 몰라도 아저씨 실력은 최고예요.”
수진이가 어쩐 일로 날 칭찬했다.
조금 민망했다.
사실 F급 헌터가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A급 헌터가 보기엔 갓난아이 수준도 안 될 것이다.
“저 활은 그냥 내가 예쁜 학생에게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부담 갖지 마.”
수진이가 날 다시 쳐다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럼 잘 쓸게요.”
“화살도 저기 있으니까 얼마든지 가져다 써요.”
창수가 수진이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태준아, 혹시 마석 가진 거 있냐?”
“뭐?”
튜토리얼을 끝내고 보상으로 받은 마석이 하나 남긴 했다.
“D급 마석이 하나 있다.”
“그거 줘봐.”
“왜?”
“좋은 데 쓰게.”
창수는 수진이의 활도 다시 가져갔다.
“여기 잠시만 기다려봐.”
서랍에서 작은 돌멩이를 꺼내더니, 활에 가루를 뿌리고 망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여 분이 흘렀다.
“자, 다됐다.”
다시 활을 수진이에게 넘겨줬다.
“방금 뭐 한 거야?”
“마침, 바람의 룬이 하나 있길래 마석과 함께 활에 새겼어.”
“바람의 룬?”
“그냥 노멀템이야. 비싼 건 아니야.”
“그거 박으면 뭐가 좋아져?”
창수가 살짝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화살이 두 배쯤 빠르게,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가지. 물론 강도도 더 세지고.”
“야, 너 재주 좋다.”
자신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고마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진이가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좋은 선물, 고맙습니다.”
“뭘요. 대신 가끔 놀러 와요.”
“네.”
수진이는 기분이 좋은지 화살을 몇 개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설마, 여기서 쏘진 않겠지?
“창수야,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 안 해줄 거야?”
“뭐 좋은 일이라고, 천천히 말해줄게. 그보다 헌터증은 발급했냐?”
“아니, 내일이나 하려고.”
“그럼 당분간 하지 마.”
“왜?”
“헌터증, 그거 없어도 게이트 공략할 수 있고, 괜히 회비하고 수수료만 내야 하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게이트가 떴다는 정보를 어떻게 받아? 게이트를 공략해야 돈을 벌지.”
“어차피,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에서 정보를 받아서 가도 이미 다른 길드에서 선점하고 있을 거야.”
어젠 바로 앞에서 게이트가 발생했기에 혼자 독식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이 되는 게이트는 대부분 로비를 많이 한 길드가 선점을 하기 때문에 일개 헌터에게 기회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헌터들이 이름있고, 큰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이었다.
“그럼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헌터증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너무 서두르지 마, 초반엔 내가 도와줄 사람을 알고 있어.”
“도와줄 사람?”
“그래, 그리고 당분간 헌터가 됐다는 것도 비밀로 하는 게 좋아.”
창수가 서랍에서 명함을 하나 꺼내왔다.
“미리 연락해 놓을게. 내일쯤 전화해봐. 도와줄 거야.”
“알았어.”
뭔가 찝찝했지만, 명함을 받아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그만 가야겠다.”
헤어지려니 아쉬웠다.
15년 만에 만나 불구가 된 친구를 바라보는 마음이 좋진 않았다.
“수진아 가자. 화살 챙겨라!”
“네.”
아쉬워하는 창수를 쳐다보았다.
“자주 들를게.”
“그래. 오랜만에 너를 보니까 좋다.”
“또 놀러 올게요.”
“잘 가요. 예쁜 학생.”
두 사람이 멀어지는 모습을 본 창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
“요즘 누가 촌스럽게 이런 구형 폰을 사요?”
“야, 휴대폰이 잘 터지기만 하면 되지.”
“마석 배터리가 들어간 거로 하죠. 돈도 많이 아꼈으면서.”
3천만원짜리 D급 마석을 하나 쓰긴 했지만, 활을 공짜로 얻었으니, 돈을 많이 아끼긴 했다.
매장을 나가는 길에 수진이에게 새 휴대폰을 빼앗겼다.
“뭐하는 거야?”
“내 번호 저장하게요.”
“쩝. 너, 집에 안 가냐?”
“뭐라고 저장할까요?”
“휴, 그냥 알아서 해라.”
[공덕역]
전철에서 내려 힘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왔다.
7평 원룸형 오피스텔.
겨우 이틀 비웠을 뿐인데 집이 낯설다.
10년간 벌어 겨우 마련한 전셋집.
그런데 어제 하루 번 돈이 전세금보다 많다.
새로 산 휴대폰을 열었다.
‘허, 예쁜 수진이?’
꼬맹이가 웃기는군.
단축번호 1번에 딱 저장되어 있었다.
하긴 수진이가 이쁜 편이긴 하지.
씻고 침대에 눕자, 낮에 창수를 만났을 때 일들이 자꾸 떠올랐다.
‘누가 창수를 괴롭힌다는 걸까?’
어쩌다 A급 헌터가 저 지경이 됐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게이트를 공략하다 보면 죽거나 다치는 헌터는 너무 흔했다.
하지만 창수는 비전투 요원인 도구 계열 클래스다. 저렇게 다칠 일이 거의 없었다.
연희는 괜찮을까? A급 게이트는 클리어 하는데 수십 일이 걸린다는데...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
띠리리링!
잠에 취해 머리가 어지럽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나태준 헌터시죠.]
[네?]
잠이 확 깼다.
내가 어떻게 헌터라는 걸 알았을까?
아니 내 번호는 또 어떻게 알았지?
[누구시죠.]
[이수경이라고 합니다. 어제 남창수씨 소개받고 전화하는 겁니다.]
[아.]
[지금 집 앞인데, 시간 괜찮으시면 이야기 좀 나누시죠.]
[지금이요?]
[네, 급하게 공략 가능한 게이트가 있습니다.]
[알았습니다. 지금 내려가죠.]
‘그런데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