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10. 티볼 도살자(1).
아래위 깔끔한 블랙 정장에 뒤로 질끈 묶은 머리.
작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것이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수경입니다.”
“나태준입니다.”
악수는 하지 않았다.
그녀 앞에 커피잔이 두 개.
자리에 앉자, 그녀가 물었다.
“커피 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아침 커피는 독약이라죠.”
“...”
내가 한 말에 반응이 없다?
그녀가 자연스럽게 커피잔을 들어 향을 느끼더니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모닝커피조차 마시지 못할 바에 죽는 게 낫죠.”
어지간히 커피를 좋아하나 보다.
“남창수씨가 소개하신 거니까 믿고 말하겠습니다. 저희는 게이트를 중개하는 업체입니다. 간단히 설명해드리면 수수료를 받고, 게이트를 독점이나 연합 형태로 공략할 수 있게 제공하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중개인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가 사실이었다.
불법 게이트를 소개하는 브로커가 있다는 소문 말이다.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한지 막힘없이 설명했다.
“그럼 소개는 이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전에 묻죠. 어떻게 우리 집을 알았습니까?”
“저희는 정보로 먹고삽니다. 전화번호로 주소를 아는 것쯤은 쉬운 일이지요.
“그럼 제 뒷조사도 했겠군요.”
“저희가 하는 일이 워낙 조심스러운 일이라서요. 그게 같이 일하는 데 문제가 됩니까?”
그녀의 물음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이수경씨가 지금 이 자리에 오셨다는 건, 전 아무 문제 없다는 말인가요?”
그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과 관련되지 않은 것은 확실하더군요.”
지독히 사무적인 말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철저히 교육을 받은 사람 같았다.
“일은 없던 거로 할까요?”
“아니요. 나 같아도 조사를 했을 겁니다. 계속하시죠.”
“그제 발생한 게이트 중에 적당한 등급에 처리 안 된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제요?”
“네.”
내가 각성할 때 생긴 게이트 중의 하나일 것이다.
게이트는 매일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규칙적으로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생길 때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군데 생기는 것이 특징이었기에 곧바로 발견하지 못하는 게이트도 있었다.
“물건은 E급 게이트로 장소는 경기도입니다. 현재 섭외된 공략 인원은 F급 헌터 둘에 E급 헌터 한 명입니다.”
“저 혼자 하는 게 아니군요?”
“이번 게이트는 이미 세 명이 등록된 상태라 독점은 불가능합니다. 독점을 원하시면, 다음에 먼저 제안을 드리죠.”
“그래 주면 좋겠군요.”
“대신 독점은 금액이 많이 올라갑니다.”
“그렇겠지요.”
“제가 말씀드릴 정보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시겠습니까?”
“비용을 아직 못 들었는데요.”
“E급 게이트는 한 사람당 3천입니다.”
모르는 사람들하고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이트 안은 무법천지에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하지만 다음 게이트 발생이 언제인지, 얼마나 걸리는지 모르는 데다, E급 게이트를 혼자 공략하긴 아직 이른 감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헌터의 공략 방법을 경험 삼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좋습니다. 하죠. 언제 출발합니까?”
“지금 차가 대기 중입니다.”
일 진행이 일사천리였다.
게이트로 가는 길에 깨톡이 왔다.
근데 난 이 앱을 깐 적이 없다.
수진 - 아저씨 어디에요?
- 몰라도 된다.
수진 - 설마 나 빼고 게이트 가는 건 아니죠.
헉, 여자의 육감이란...
- 그냥 피곤해서 쉰다. 너 학교 안 가냐?
수진 - 오늘 토요일이거든요. 말 돌리는 게 수상한데...
- 아무튼, 난 잔다.
귀신같은 녀석.
‘데려올 걸 그랬나?’
***
[경기도 가평]
“다 왔습니다. 내리시죠.”
주변을 둘러봐도 게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 스타렉스에서 내리자, 작은 산기슭이었다.
“저를 따라오시죠.”
이수경이 앞으로 나섰다.
그런데.
‘사라졌다?’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된 거지?
“그냥 앞으로 걸어오시면 됩니다.”
그녀의 말소리를 향해 걸었다.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자 지옥의 구덩이 같은 커다란 게이트가 보였고, 그 앞으로 이십여 명의 중무장한 사람들이 보였다.
“여긴 위장막으로 가려져 있어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죠.”
그녀 말대로 정말 감쪽같았다.
곳곳에 이상한 장치가 홀로그램 같은 것을 쏘아, 밖에서는 그냥 평범한 산기슭으로 보였다.
“이번에 함께 게이트로 들어갈 분들입니다.”
남자 둘과 여자 하나.
군복을 입은 체격 좋은 사내가 말했다.
“피차 통성명은 하지 맙시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삭막한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서로를 모르는지, 떨어져 앉아 있었다.
E급 헌터는 어느 쪽일까?
“모두 모였으니, 진입할 준비해 주십시오.”
헌터들이 일어났다.
다들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미리 경고해 두는데, 10미터 이내로 다가오면 괴수와 싸우고 있더라도 그놈부터 죽일 거야.”
몸에 짝 달라붙은 가죽 재킷을 입은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호리호리한 사내가 말했다.
“그래도 보스가 강하면 함께 싸워야 하지 않을까?”
“지랄, 그럴 능력이 안 되면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아야지.”
“뭐, 뭐요?”
여자의 말에 사내는 얼굴이 붉어졌다.
E급 헌터는 이 여자일 가능성이 컸다.
다시 거구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게이트 클리어 조건이 뭔지 모르겠지만, 저 여자 말대로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냥합시다. 나도 뒤통수 맞는 것은 싫으니까.”
게이트가 생긴 지 15년.
처음 5년은 그저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여 헌터들과 인간들이 똘똘 뭉쳐서 게이트에서 출몰하는 괴수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다음 5년은 헌터들의 숫자가 많아지고, 고레벨 헌터들의 등장으로 게이트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게이트는 더는 미지의 세상이나 공포의 대상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게이트는 사업이자, 가장 큰 돈벌이가 됐다.
그때부터 독버섯처럼 생겨난 것이 배신과 야합이었다.
게이트 밖에서 헌터들은 법을 준수하는 모범시민처럼 보였지만, 게이트 안에서는 때론 포식자로, 폭군으로, 악마로 변했다. 이제 게이트는 그 어느 곳에서보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세상이 펼쳐졌고, 괴수보다 헌터를 더 조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한 가지만 묻죠. 이곳에서 나온 괴수가 뭡니까?”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어떤 놈들을 상대해야 할지 궁금했다.
이수경이 대답했다.
“비활성 게이트라 아직 밖으로 나온 괴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에 괴수 숫자가 상당히 많겠군요.”
“글쎄요. 그건 직접 들어가서 확인해 보시죠. 자 다들 진입 준비하세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 오랜만에 스킬을 모두 발동시켰다.
[관찰(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해체(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감식(lv1) 스킬이 발동됩니다.]
괴수 백정, 나만의 스킬이다.
‘응? 저건 뭐지?’
게이트 주변 풀숲에 연한 붉은색들이 반짝였다.
가까이 다가가 슬쩍 만져봤다.
[E급 바이퍼의 피 - 독성이 강해 혈액 속에 침투하면 전신이 마비된다.]
‘이건 괴수의 피잖아.’
감식 스킬로 괴수의 피를 발견했다.
이수경은 비활성 게이트라 괴수가 나온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곳곳에 나무가 부러져 있었고, 바위 위에 다른 괴수의 녹색 피도 보였다. 그리고 자신과 헌터들 외에 중무장한 사람들이 십여 명이나 있었다.
한 마디로 이건 비활성 게이트가 아니었다.
왜 속인 거지?
“자,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잠깐!”
이수경이 또 왜라는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읍시다.”
“질문이 너무 많으시군요. 말씀하시죠.”
“우리 앞에 들어간 헌터가 몇 명입니까?”
“네?”
여태 차갑고 냉정해 보였던 이수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자 서슬 퍼런 도끼를 든 여자 헌터가 물었다.
“무슨 말이지? 우리가 처음이 아니라고?”
내 말에 다른 헌터들까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하긴 2일 차인데 공략팀이 우리밖에 없다는 것도 이상하네.”
“그럼 한 팀이 벌써 실패한 게이트란 말인가?”
그들은 스스로 정보력이 우수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주 수입은 게이트 중개료다.
게이트에서 터져나온 괴수까지 처리하고,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 모르게 게이트를 위장시켰다는 것은 초기에 발견해 입구를 지켰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틀이란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을 그냥 날려 보냈다는 것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이수경이 살짝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태준씨 말처럼, 게이트가 발생하고 얼마 후에 네 명이 팀을 이뤄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나오지 않아 실패로 생각하고 다음 팀을 꾸린 겁니다.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물론 문제가 됩니다. 헌터들이 나오지 않은 이유가 2가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헌터들이 정말 괴수들을 다 잡지 못하고 전멸했을 가능성이 첫 번째요. 일부러 나오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두 번째입니다.”
여자 헌터가 나를 보고 물었다.
“전멸은 그렇다고 치고, 일부러 나오지 않을 이유가 있나?”
“게이트를 일부러 클리어하지 않고, 입구 주변에 잠복해 다른 헌터를 노릴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헌터들의 무기와 장비는 비쌌다.
헌터란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장비를 구함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던전 청소 업자로 일하면서 게이트 안에서 발견한 것은 괴수 사체뿐만이 아니었다. 인간의 무기에 당한 헌터들의 시체도 자주 발견된다.
하지만 그들의 시신을 수습하진 않는다.
<게이트 안에서 일어난 일은 게이트 안에서 끝낸다.>
이것이 헌터 세계의 불문율이었다.
“젊은 친구 말이 일리가 있군.”
호리호리한 사내가 말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들어갈 수도 없고, 그럼 우리가 들어가서 어떻게 하면 좋겠나?”
그는 내게 묻고 있었다.
다른 두 헌터도 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린다.
내가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뭉쳐 있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매복한 헌터들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땐 각자 사냥을 하러 가는 거죠.”
“만약 매복한 헌터가 있다면?”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겠죠?”
헌터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다들 무기 점검하지.”
철컥!
마력 소총을 든 거구는 인벤토리에서 탄창을 꺼내 허리춤에 넣었고, 호리호리한 사내는 지팡이를 꺼냈다.
여자는 한 손엔 전투 도끼를 다른 손엔 투척용 손도끼를 들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통성명부터 하죠. 전 나태준입니다.”
인벤토리에서 칼을 꺼내 전사 클래스라고 각인시켰다.
호리호리한 사내가 말했다.
“난 백상섭이네. 보다시피 마법사고, 화염계열이지.”
총을 든 거구도 입을 열었다.
“나발이라 불러주게. 클래스는 궁수고, 마력 소총을 쓰네.”
모두의 시선이 여자를 향했다.
“윤상희, 전사, 도끼를 쓰지.”
소개가 끝났다.
“그럼 윤상희씨와 제가 전면을 맡고, 좌측은 마법사가 우측은 소총이 맡죠.”
“좋아.”
“어떤 놈들이건 나를 노린다면, 대갈통을 갈라 허연 뇌수를 보여 주지.”
윤상희의 살벌한 말에 다들 움찔했다.
“자 갑시다.”
나와 윤상희가 앞섰다.
***
“좌측!”
“클리어.”
“우측!”
타탕! 타타타탕!
마력 소총이 불을 뿜었다.
“괴수가 온다!”
일제히 우측을 바라보았다.
밀림의 작은 악마라 불리는 소형괴수 티볼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리고 상태창이 떴다.
[사라진 도시(E등급)]
[클리어 조건 : 티볼(F) 1,000마리, 바이퍼(E) 100마리, 카라일(D) 1마리를 잡으시오.]
[현재 카운터 : 티볼 - 316/1,000, 바이퍼 - 7/100, 카라일 - 0/1]
[보상 : ?]
이번에도 랜덤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