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1화 (11/149)

# 11

11. 티볼 도살자(2).

[티볼(F등급) - 한 번에 20마리의 새끼를 낳고, 2년 후면 성체가 되어 다시 20마리를 낳을 수 있는 무서운 번식력과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지독한 적응력을 가진 소형괴수. 짧지만 근육질의 다리가 네 개나 있어 빠르고, 두 손의 손톱과 이빨이 매우 위협적이다.]

작은 악마가 달려온다.

티볼 한 마리야 F급 헌터 혼자서도 손쉽게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십, 수백 마리가 떼거리로 온다면?

“꾸아아악!”

타타타탕!

펑! 화르르르!

총구에서 쉴 새 없이 불꽃이 번쩍이고, 마법사의 화염이 수류탄처럼 터져 폭발했다.

괴수들의 살이 타는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놈들의 기세는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동족들의 죽음에 더 사납게 달려든다.

‘이거 위험한데?’

나만 느끼는 건가?

달려드는 놈의 목을 찌르고, 다른 헌터들을 슬쩍 쳐다봤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넘치는 그들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다들 당황하고 있어.’

이건 좋지 않다.

갑자기 소총수가 몸을 돌려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제길, 어디가!”

그러자 마법사가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돌아와, 새끼들아!”

윤상희가 소리를 질렀지만, 그들은 지금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도끼로 티롤 한 마리의 머리통을 가르고 나를 보았다.

“너도 튀어!”

그녀 역시 내게 경고하고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괴수들이 달아난 인간들을 향해 달려갔다.

어느새 혼자만 게이트를 등지고 있었다.

진정한 동료가 아니라면, 위기 상황에서 이렇게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순간 뾰로통하고 있을 수진이가 생각났다.

그 녀석이라면 달아나지 않았을 텐데...

티롤 한 마리가 나를 물기 위해 몸을 날렸다.

슬쩍 몸을 틀었다.

그러자 놈이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놈은 다시 들어올 수 없다.

‘그렇지!’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덤벼 새끼들아!”

게이트를 등진 나를 향해 놈들이 겁도 없이 달려든다.

하지만 나는 놈들을 상대하지 않는다.

퍽! 탁!

몸을 피하거나 칼을 휘둘러 놈들을 게이트 밖으로 내보낸다.

사람은 게이트로 한번 들어오면 클리어하기 전까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건 괴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게이트 밖으로 나간 괴수들은 클리어 전엔 다시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한마디로 우르르 몰려드는 놈들을 힘들게 모두 죽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놈들을 게이트 밖으로 밀어냈다.

지금쯤 밖에선 갑자기 괴수들이 쏟아져 나와 한바탕 큰 소란이 일 것이다.

“꾸앙!”

놈들이 더는 달려들지 않고, 주위를 포위한 채 기회를 노리고 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상황이다.

[해체(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관찰(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겁 없는 한 놈이 옆에서 달려들자, 턱을 찌르고 뒷목을 검으로 그었다.

쿵!

몸뚱어리는 안쪽에 머리는 게이트 밖으로 굴러떨어졌다.

관찰 스킬로 놈들의 약한 곳을 찾고, 해체 스킬로 힘을 더해 놈들을 베고 찔렀다.

[티볼 - 459/1,000]

무섭게 달려드는 만큼 카운터 숫자가 빠르게 올라갔다.

아마 다른 헌터들도 괴수와 싸우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이번 던전 공략을 흔쾌히 수락한 목적이 있었다.

자신은 튜토리얼에서 포정 스승님과 소를 잡으며 스킬을 배웠다.

그리고 각성하고 바로 들어간 F급 게이트에서 잠깐 써본 백정 스킬들은 상당히 쓸모가 있었다. 하지만 궁수인 수진이의 도움과 장소를 잘 택한 덕에 쉽게 잡을 수 있었지,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자신의 실력과 스킬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러 온 것이다.

“큭!”

어깨가 쓰라렸다.

티볼이 몸을 날리며 발톱을 그은 것이다.

놈을 발로 차 게이트 밖으로 날려버렸다.

게이트 밖으로 나간 티볼은 카운터에 올라가지 않는다.

안에서 죽인 것만 숫자가 인정됐다.

쉴 새 없이 백정의 칼을 휘둘렀다.

더는 게이트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달려드는 족족 놈들을 죽였다.

놈들의 발톱에 스쳐 곳곳에 피가 나지만, 치명상만 입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는다.

[해체 스킬이 올랐습니다.]

[해체(lv3)]

때마침 스킬이 올랐다.

체력이 늘고 공격력이 늘었다.

처음엔 티볼의 턱 주변과 뒷목에만 숫자가 낮게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몸 전체에 숫자가 낮게 표시되어있었다.

이제 놈들은 몸 전체가 약점이나 다름없었다.

한참이나 놈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그럼에도 몰려든 놈들의 숫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다리와 어깨, 등에 놈들이 할퀸 자국이 늘어갔다.

“그래 오늘 끝장을 보자!”

힘이 다할 때까지 죽인다.

손목이 결리고, 땀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달려드는 놈들을 쓰러트렸고, 점점 놈들의 골격과 몸 구조가 손에 익었다.

‘뼈와 뼈 사이를 찌르고 살을 가른다.’

스승님의 가르침이다.

손이 가는 대로 칼이 따라간다.

이젠 관찰 스킬 없이도, 아니 굳이 보지 않아도 놈들의 약점을 일격에 찔러 힘을 낭비하지 않았다.

얼마나 칼을 휘두르고, 얼마나 발톱에 찢겼는가.

피 칠갑을 한 망나니 백정이 지금 내 모습이 아니겠나.

[당신의 잔인함에 티볼이 당신을 꺼립니다.]

‘뭐지?’

나를 꺼린다고?

이상한 메세지가 떴다.

그러자, 득달같이 달려들던 놈들의 속도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조금은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놈들의 숫자가 줄어든 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현재 카운터 : 티볼 - 1,000/1,000]

게이트 클리어 조건 중의 하나인 티볼 1,000마리 사냥은 진작 끝났다.

“큭!”

신음이 툭 튀어나왔다.

호흡이 가쁘고, 손이 마비될 것처럼 저려왔다.

어느덧 땀이 비 오듯 흘렀고, 현기증까지 밀려왔다.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한 도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연희와 같은 S급 헌터를 목표로 바라보는 자신이 여기서 쓰러질 수는 없지 않은가.

퍼걱!

“께껙!”

사납게 달려들던 한 놈의 머리통을 가르자,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놈들이 더는 달려들지 않고,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뭐지?

[도살자의 체취가 풍겨 티볼이 당신을 두려워합니다.]

[최초로 F급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티볼 도살자]

흡사 사나운 개가 개장수 앞에서 꼬리를 말은 모습과 비슷했다.

내 시선을 받은 놈들이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달려가 칼을 한번 크게 휘두르자, 놈들은 아예 꽁무니를 빼고 달아났다.

‘도살자의 체취? 이것 때문인가?’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그것을 괴수가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놈들은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달아났다.

작은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일이지?

‘상태창.’

[나태준]

- F등급

- 체력 : 58

- 마나량 : 8(18)

- 클래스 : 괴수 백정.

- 클래스 특기 : 관찰(lv2), 도살(lv1). 해체(lv3), 감식(lv1).

- 업적 : 티볼 도살자(F).

티볼 도살자를 클릭했다.

[티볼 도살자(F) : 많은 티볼을 도살한 자. 티볼에게 공포감 +50]

얼마나 많은 티볼을 죽였는지 일일이 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바닥에만 수백 마리가 죽어 있었고 티볼 도살자가 되었다.

아마 일정 숫자의 같은 괴수를 죽이면, 내 몸에 괴수의 체취가 밴다는 말이었다.

이제야 괴수 백정이란 클래스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실감 났다.

남들에게 없는 클래스라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일일이 직접 부딪쳐서 알아내야 했다.

숨을 돌리자, 눈앞에 죽어 있는 티볼이 보였다.

“해체해 볼까.”

게이트에 온 이상 뭐든 실험해 봐야했다.

놈의 배를 갈랐다.

[감식(lv1) 스킬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감식 스킬로 놈의 살과 뼈, 내장을 하나씩 살폈다.

놈은 근육이 많아 고기도 질겨서 못먹고, 내장도 쓸모없는 것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데.

[F급 티볼의 쓸개 - 염증을 완화하며, 몸속 독소를 배출한다. 지방을 분해하는 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

잠깐 지방 분해라면...

‘오! 이거 잘하면 돈 좀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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