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2화 (12/149)

# 12

12. 헌터가 된다는 것(1).

감정 스킬에 나온 대로 지방 분해 효과가 탁월하다면 다이어트 약으로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괴수와 게이트가 출몰하는 세상이지만, 비만인은 그대로였고, 날씬해지고 싶은 여자들은 여전히 많았다.

왠지 아주 고가로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감식하길 잘했네.’

원래 티볼의 사체는 돈이 되는 것이 없었다.

그랬기에 마석만 찾으면 나머진 게이트에 그냥 버리거나 소각로에 넣어 없앤다.

그런데 백정의 감식 스킬로 확인하자, 티볼의 쓸개가 의외의 효능이 있었다. 크기가 작고 내장에 둘러싸여 꺼내기 힘들었지만, 해체 스킬이 있는 자신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해체(lv3) 스킬을 발동합니다.]

무서운 속도로 마석과 쓸개만 챙기며 해체를 시작했다.

마석 숫자는 놈들이 죽인 숫자에 비해 적게 나왔지만, 쓸개가 있었기에 왠지 돈은 더 될 것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여를 돌며 죽은 괴수를 해체하자, F급 마석 43개와 쓸개 600여 개를 채취했다.

‘이거 돈이 얼마야?’

마석값만 2억이 넘었다.

3천 내고 들어왔으니, 벌써 대박의 조짐이 보였다.

쓸개만 잘 판다면, 이번 사냥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자신에게 티볼은 작은 악마라 불리는 악귀 같은 괴수가 아니라 귀한 대접을 받는 몬스터가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혼자만 알고 있을 생각이다.

[현재 카운터 : 티볼(F) - 1,000/1,000, 바이퍼(E) - 17/100, 카라일(D) - 0/1]

티볼의 숫자는 더는 오르지 않았다.

이제 잡아야 하는 것은 바이퍼와 카라일.

바이퍼는 게이트에서 가끔 보는 놈들이었지만, 카라일은 자신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바이퍼의 카운터 숫자가 처음보다 꽤 올라간 것이다.

이는 헌터들이 바이퍼를 집중적으로 사냥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다들 게이트 클리어를 노리는군.’

헌터들이 게이트에 들어온 가장 큰 이유는 클리어 보상을 받기 위함이다.

자신이 티볼들을 대량학살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쯤 도망쳐다니거나 티볼에게 죽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자신이 그렇게 많은 티볼을 죽였어도 마지막 카운터를 올리는 사람이 클리어 보상을 전부 받는 막타 독식 구조였다.

한마디로 자신이 괴수들을 다 잡아도 마지막 남은 괴수를 다른 헌터가 잡는다면, 보상은 날아가는 것이다.

다들 바이퍼를 잡고, 마지막에 D급 괴수인 카라일을 노릴 것이다.

“자, 이제 나도 움직일까.’

힘겨운 몸을 일으켰다.

괴수에게 쫓기는 것이 아니라 사냥하러 가니, 이제 진짜 헌터가 된 느낌이 들었다.

헌터들이 흩어진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들과는 최대한 부딪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티볼들은 자신이 두려운 것인지 입구 근처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바이퍼를 찾기 위해 점점 더 험한 숲으로 들어갔다.

스스스슥!

풀숲을 지나는 바이퍼.

놈을 찾았다.

[바이퍼(E등급) - 물리면 5분 안에 죽는다. 겉모습은 킹코브라를 닮았지만, 크기가 2배는 크고 독성은 10배가 넘는다. 위기에 처하면 꼬리에서 산성 오줌을 뿜어내는데 사거리가 10m나 된다.]

독에다가 산성 오줌이라니 살벌한 놈이다.

관찰 스킬로 놈을 살폈다.

그런데,

‘약점이 없다.’

전체적인 방어력은 높지 않았지만, 특별히 약한 곳도 없었다.

도살 스킬을 쓰지 않는다면, 일격에 죽일 수 없다는 소리였다.

이럴 때 활을 쓰는 수진이가 있었다면, 멀리서 놈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역시, 데려올 걸 그랬나.’

[현재 카운터 : 바이퍼(E) - 27/100]

바이퍼의 카운터가 빠르게 오른다.

처음 게이트를 들어왔을 때보다 20이나 늘어 있었다.

다른 헌터들이 속도를 내는 것이 분명했다.

‘차라리 다잡을 때까지 기다릴까?’

독을 쓰는 놈인 데다가 원거리 오줌 공격도 하는 놈이었다.

소총수나 마법사에게는 쉬운 상대였지만, 접근전을 하는 자신이나 윤상희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고개를 흔든다.

원거리 공격을 하는 괴수는 얼마든지 있다.

앞으로 게이트를 공략하면서 수많은 원거리 공격형 괴수와 만날 텐데, 그때마다 피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 한번 해보자.’

놈이 이동하는 길목 나무 뒤에 숨었다.

그냥 달려드는 것보단 기습공격이 나을 것이다.

‘조심할 건 독니와 꼬리인가.’

미끄러지듯 지나는 놈이 갑자기 나무 앞에서 멈췄다.

뭔가 이상을 감지한 것이다.

놈이 고개를 들어 머리와 몸을 잔뜩 부풀면서 몸을 떨었다.

타타타탁!

극도의 흥분상태였다.

‘제길, 밥은 다 먹었군.’

인벤토리를 열어 커피숍에서 산 샌드위치를 꺼냈다.

이걸로 놈을 유인할 생각이다.

놈 앞으로 던지고, 반대편으로 돌아 놈의 목을 향해 힘껏 칼을 휘둘렀다.

쩍!

‘제대로 들어 갔다. 제길!’

하지만 얕았다.

놈의 목이 삼 분의 일밖에 잘리지 않았다.

그때 반대편에서 꼬리가 올라오더니 노란색 오줌을 뿜어냈다.

몸을 날려 반대편으로 굴러 피했다.

치! 치칙!

오줌에 맞은 나무가 녹아 내렸다.

“허!”

살벌했다.

놈이 또다시 꼬리를 들자, 칼을 휘둘렸다.

쩍! 쩍!

두 번 만에 꼬리가 잘렸다.

몸을 돌리자, 놈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쾅!

칼의 면으로 놈의 이빨을 막았다.

그 순간!

찍!

“큭!”

이빨에서 뿜어진 독이 눈에 맞았다.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지만, 눈두덩이가 불에 덴 것처럼 쓰라렸다.

칼을 옆으로 흘리고, 놈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세 번을 내려쳐 겨우 놈의 머리통을 잘랐다.

인벤토리에서 물병을 꺼내 급하게 눈을 씻었다.

한 병을 다 붓자, 쓰라림이 조금 덜하다.

독을 물총처럼 쏠 줄은 몰랐다.

자칫 잘못했으면 실명, 아니 입으로 들어갔다면 죽을 뻔했다.

해체 스킬로 놈의 배를 갈랐다.

[감식(lv1) 스킬이 발동됩니다.]

내부를 살폈다.

원래 이놈은 독성이 심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쓸모없는 건 티볼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티볼은 쓸개라도 건졌으니, 이놈도 혹시 몰라 조심히 살폈다.

[E급 바이퍼의 독 - 신경독으로 뇌의 호흡 중추에 영향을 준다. 물리면 몇 분 이내에 호흡과 심장이 정지되어 죽는다.]

[E급 바이퍼의 피 - 독성이 강해 혈액에 침투하면 전신이 마비된다.]

[E급 바이퍼의 오줌 - 산성이라 닿으면 피부가 녹아내린다.]

독니뿐만 아니라 몸속에 흐르는 피와 배설물까지 독 백화점이 따로 없었다.

그럼에도 놈은 용케도 살아있었다.

이번엔 내장을 살폈다.

심장과 허파, 위 모두 쓸 데가 전혀 없었다.

괜한 짓을 했나 싶을 때였다.

[E급 바이퍼의 간 - 바이퍼의 독을 해독합니다.]

뭐야, 몸속에 해독제가 있었어?

지독한 독을 가지고 있는 놈이 몸속에 해독제를 숨기고 있을지는 몰랐다.

‘먹어 볼까?’

아까부터 계속 눈이 시큰거리고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것 같았다.

놈의 간이 상당히 컸기에 칼로 여러 토막으로 잘라, 하나를 입에 넣었다.

정말 쓰다.

그리고 한 조각을 눈에 붙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자, 시큰거림과 쓰라림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강력한 독을 이겨냈습니다. 독 저항력이 올랐습니다.]

또 알수 없는 메세지가 떴다.

독 저항력이 올랐으니 나쁜 것은 아니었다.

이번엔 해독제를 바로 찾아서 운이 좋았다.

아니지 감식 스킬로 알아냈으니, 이건 실력이다.

바이퍼의 간이 큰돈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바이퍼의 독은?

놈의 독은 강력하다.

그리고 독을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이 그 독에 중독될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해독제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바이퍼의 독샘을 짜서 독을 물병에 담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제 제대로 사냥해 볼까.’

해독제가 있다면, 놈은 그저 큰 뱀 새끼에 불과하다.

뱀이 헌터를 이길 수 있겠는가.

진짜 사냥을 시작했다.

보이는 족족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조심해야 하는 것은 꼬리에 산성 오줌뿐이었기에 물려고 드는 초반에 끝장을 내면,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마석도 얻고, 독도 얻고, 해독제인 간까지 착실히 인벤토리에 넣었다.

자주 놈에게 물렸지만 해독제를 먹고 사냥을 하니 숫자는 순식간에 채워져 갔다.

그렇게 해독제를 먹으며 바이퍼를 착실하게 죽일 때였다.

[현재 카운터 : 바이퍼 - 89/100]

[바이퍼의 독에 대한 내성이 생겼습니다.]

[독이 소용없는 당신을 바이퍼가 꺼려합니다.]

티볼과 마찬가지로 바이퍼가 나를 꺼려한다는 메세지가 떴다.

그리고.

[F급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독 수련자.]

‘상태창.’

[나태준]

- F등급

- 체력 : 67

- 마나량 : 8(18)

- 클래스 : 괴수 백정.

- 클래스 특기 : 관찰(lv2), 도살(lv1). 해체(lv3), 감식(lv1).

- 업적 : 티볼 도살자(F). 독 수련자(F)

[독 수련자 : 독을 이겨낸 자. 독 내성 +30]

티볼과 마찬가지로 바이퍼 역시, 나를 보면 방향을 바꿔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를 두려워한다기보단 자신의 독이 소용없으니 피하는 것이다.

이제 클리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숲을 뒤지고 있을 때였다.

‘뭐지 저놈들은?’

티볼 수십 마리가 커다란 나무 아래 우르르 몰려 있었다.

그런데 놈들이 일제히 나무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공짜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쓸개와 마석을 획득할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일단 놈들을 잡는다.

조용히 접근해 칼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께겍!”

“꿱!”

놈들이 혼비백산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순식간에 이십여 마리를 죽였다.

“하하. 이게 포식자의 위엄이군.”

티볼은 자신을 보자마자 싸울 생각이 없는 듯 꽁무니가 빠지게 달아났다.

마치 자신이 사자 같은 맹수가 된 기분이 들었다.

놈들의 배를 가르고 마석을 두 개 발견했고, 쓸개를 채취해 인벤토리에 넣었다.

정리가 끝나자, 티볼이 쳐다보던 나무 위를 올려다보았다.

‘응? 저건 사람이잖아.’

나무 위에 사람의 다리가 보였다.

누구지?

분명 자신과 함께 들어온 헌터들은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그럼?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사내는 나뭇가지에 걸쳐 죽어 있었다.

<게이트 안에서 죽은 자는 게이트에서 끝내야 하는 법.>

처음엔 그냥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죽은 지 오래되지 않아 보였다.

게다가 헌터가 티볼에게 죽을 정도로 당했다면, 여기저기 물린 자국이 많아야 정상이었는데 겉모습은 멀쩡해 보였다.

다른 괴수에게 죽은 걸까?

확인하지 않으면 찝찝할 것 같았다.

쿵!

시체를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아래로 내려와 시체를 뒤집는 순간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건 검상이다!’

바짝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체의 목부터 가슴까지 긴 줄이 그어 있었다.

괴수에게 물려 죽은 것이 아니라 검에 당한 상처가 깊어 출혈 때문에 죽은 것이고, 이는 분명 다른 헌터에게 당한 것이다.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 하더니...’

헌터끼리 싸움이 난 건가?

아니면, 누군가 처음부터 헌터들을 노리고 게이트에 들어온 걸까?

눈앞에 죽은 자는 살기 위해 달아났지만, 이 나무 위에서 쓸쓸히 죽어갔을 것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E급 게이트였기에 네 명밖에 들어오지 않았지, 중급 이상부터는 한 게이트에 수십 명씩 들어가는 일도 허다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범인을 특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괜히 등골이 오싹했다.

분명한 것은 놈은 동료 헌터를 죽였고, 지금도 이 게이트 어딘가에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앞선 헌터들을 죽인 것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기 위함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나 다른 헌터들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클리어 카운터가 차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카운터 : 티볼(F) - 1,000/1,000, 바이퍼(E) - 92/100, 카라일(D) - 0/1]

그리고 지금 그 카운터가 거의 다 차고 있었다.

이제 다른 헌터들을 노리겠군.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헌터들을 찾아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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