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13. 헌터가 된다는 것(2).
[현재 카운터 : 바이퍼(E) - 96/100, 카라일(D) - 0/1]
더는 카운터가 오르지 않았다.
헌터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이는 누군가 카라일과 부딪혀 먼저 잡아주기를 기다림이다.
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누가 카라일을 먼저 잡겠는가.
그리고 지금 위험한 것은 괴수가 아니라 인간 암살자다.
지금도 놈이 어딘가에 숨어 헌터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께겍게!”
근처에서 티볼의 울음이 들렸다.
놈들은 공짜나 다름없는 괴수가 아닌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움직였다.
‘뭐지?’
다섯 마리의 티볼이 몸이 반쯤 녹아 죽어 있었고, 작은 티볼 한 마리가 다리를 끌며 고통스러운 소리를 지르며 기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이퍼는 독이 퍼질 때까지 느긋하게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곳도 엄연한 먹이 사슬이 존재하는구나.
칼을 들었다.
쩍! 쩍!
먹이에 정신이 팔린 놈의 뒤로 다가가 머리를 잘라 버렸다.
[바이퍼(E) - 97/100]
이제 티볼을 죽이려는데...
너무 작다.
새끼라 죽여봐야 쓸개도 안 나올 것이다.
놈을 놔두고 바이퍼를 분해했다.
독을 물병에 담고, 간을 챙길 때였다.
옆에서 놈이 앓는 소리를 냈다.
독이 신경에 퍼지고 있음이다.
‘쪼그만 게 신경 쓰이네.’
간을 조금 짤라 놈에게 던져줬다.
먹고 살던가 아니면, 죽는 거지.
그때 작은놈이 몸을 꿈틀거리며, 간을 향해 기어가더니 덥석 물어 씹어먹기 시작했다.
지옥 같은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지독한 적응력을 가진 놈들이라더니, 참 생존 본능이 뛰어난 놈들이었다.
죽은 티볼들은 마석도 없고, 바이퍼의 오줌에 당했는지 몸이 녹아 쓸개도 건질 수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뿔뿔이 흩어진 헌터들을 찾아 숲을 뒤졌다.
헌터가 있는 곳에 암살자도 있을 것이다.
놈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카라일을 상대할 때 내 뒤를 노릴 것이다.
부스슥!
뒤쪽에서 풀숲 소리가 들리자,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게 조심했건만 뒤를 잡혔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고개를 살짝 내밀자,
“게껙?”
작은 티볼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뭐야? 이거.”
이놈은 내가 목숨을 살려준 그놈이었다.
황당했다.
새끼라 내가 티볼 도살자란 것을 모르나?
자세히 보니 티볼은 털이 전혀 없는데, 이놈은 잔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있었다.
생긴 건 불독의 10배쯤 못생긴 놈이 놈을 배를 뒤집어 까고 애교를 피운다.
개냐?
내가 목숨을 구해준 것을 아나 보다.
그때였다.
“게르르르.”
작은놈이 몸을 일으키더니 풀숲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뭐가 있나?
나무 뒤로 몸을 숨겨 전방을 살폈다.
숲은 조용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무 뒤에서 소총수 나발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한쪽을 향해 소총을 겨누고 있다.
총구가 향한 곳엔 마법사 백상섭이 앉아 있었다.
놈은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혼자 살겠다고 달아나더니, 이제 다른 헌터를 노리고 있었다.
‘그보다 이놈 제법 쓸만한데?’
티볼의 후각과 청각은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괴수가 아닌가.
“죽이기 전에 저리 가. 콱!”
칼을 들고 인상을 찡그리자, 놈이 달아났다.
다시 전방을 살폈다.
마법사를 저격할 시야가 확보됐는지, 나발이 호흡을 가다듬고 총을 겨눴다.
그렇다면 암살자, 그놈은 어디 있지?
헌터가 있는 곳에 암살자가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놓칠 리 없었다.
그때였다.
나무 위에서 검은 인형이 천천히 기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찾았다!’
암살자는 위장능력이 뛰어나다더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별이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마법사의 움직임이 전혀 없다. 그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총수를 노린 덫이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저자는 괴수를 사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냥하러 게이트에 온 것 같았다.
암살자가 검을 뽑고, 소총수 나발을 노리며 천천히 내려온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나도 칼을 들고 숨죽여 소총수에게 다가갔다.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아니 죽여야 한다.
소총수 다음에는 나를 노릴 것이 뻔했다.
그 순간 내가 헌터가 됐다는 말에 연희의 씁쓸해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이런 일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던 건가?
그러고 보니 창수 녀석도 내가 헌터가 됐다는 말에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는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타앙!
소총이 불꽃을 뿜었다.
마법사는 총을 맞자마자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순간 나무 위에 있던 암살자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타타타탕!
“크아아아!”
총을 들고 있던 나발의 팔이 잘렸고, 주인 잃은 소총은 바닥에 떨어져 계속 발사되고 있었다.
무기를 잃은 소총수.
복면인이 땅으로 내려와 그의 목을 향해 검을 찔렀다.
푹!
“커컥!”
나발은 검을 움켜잡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쿵!
“이야!”
풀숲에서 뛰쳐나가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 목에서 검을 뽑으려던 복면인의 당혹한 눈이 보였다.
촤악!
감촉이 있었다.
“크윽!”
놈의 등을 벴다.
함정을 팠을 때, 자신도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복면인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더니 힘없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털석!
첫 살인, 유쾌하진 않다.
주변을 살폈다.
또 다른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법이다.
‘이렇게 비정한 것이 헌터의 세계였구나.’
복면을 벗기자, 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제길, 여자였어.”
수진이와 비슷한 나이나 되려나?
20살 안팎의 젊은 여자였다.
이런 어린 여자가 무엇 때문에 헌터들을 죽였을까?
그녀의 검신에는 붉은 뱀이 그려져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좋은 검임을 알겠다.
그녀의 검과 나발의 소총도 모두 챙겼다.
죽은 자에겐 모두 쓸모없는 물건이니까.
- 게이트 안에서 죽은 자는 게이트에서 끝내야 하는 법. -
시체를 묻어줄 생각은 없었다.
마법사 백상섭은 예상대로 이미 암살자의 검에 죽은 상태였다.
시체를 한쪽으로 몰았다.
이게 헌터가 된다는 것인가?
씁쓸한 물음을 내던졌다.
죽은 자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였다.
“모두 네가 죽였나?”
걸걸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윤상희, 그녀가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아니, 난 하나만 죽였습니다.”
암살자를 가리켰다.
“이년인가? 나도 오면서 다른 헌터가 죽어 있는 걸 봤지.”
퍽! 퍽!
윤상희가 이미 죽은 암살자의 배를 걷어찼다.
“이런 것들이 설쳐대니 혼자 사냥하는 사람들만 불안해지는 거야.”
그래서 헌터들이 큰 길드에 들어 가기 위해 기를 쓰는 것인가보다.
“일단 우리 둘은 힘을 합치지.”
“뭐요?”
“저쪽에서 카라일을 발견했네. 놈을 잡으려 했는데 보다시피 상처를 입었어.”
그녀의 어깨와 팔에 피가 배어 있었다.
“그럼 휴전입니까?”
“휴전? 나를 이런 새끼들과 비교하지 마. 난 최소한 뒤에서 공격하진 않아.”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녀는 그래도 끝까지 나와 함께 티볼을 막다가 경고의 말을 하곤 달아났다.
“카라일은 어디 있습니까?”
“따라와, 내가 안내하지.”
그녀는 앞서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커다란 공룡같이 징그러운 놈이 티볼의 굴을 파고, 티볼을 하나씩 꺼내 잡아먹고 있었다.
상태창.
[카라일(D급) - 5미터의 큰 키, 두 개의 커다란 다리와 짧은 두 개의 팔이 있다. 발 뒤쪽에 낫처럼 세워진 날카로운 발톱이 매우 위협적이다. 점프력이 뛰어나 준비 동작 없이 한자리에서 5미터 높이를 뛴다.]
“저놈은 피부가 너무 단단해 스킬을 쓴 내 도끼도 잘 들어가지 않아.”
[관찰(lv2) 스킬이 발동됩니다.]
윤상희의 말을 이해했다.
관찰 스킬로 본 놈의 방어력 수치가 너무 높았다.
그래도 어딘가 약한 곳이 있을 거다.
정신없이 식사하는 놈을 자세히 살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곳엔 약점이 없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방법으론 놈을 잡기 힘들 것 같다.
“그럼, 먼저 놈을 죽이고, 그다음에 바이퍼를 먼저 잡는 사람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거로 하죠.”
“좋아! 약속하지.”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리고 바이퍼의 독을 꺼내 칼에 발랐다.
“뭐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죠.”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벌써 게이트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우리가 클리어하지 않으면 또 다른 헌터들이 들어올 것이다.
[해체(lv3) 스킬이 발동합니다.]
윤상희가 놈의 후미 좌측에서 난 우측에서 접근했다.
괴수가 식사에 정신을 팔린 지금이 적기였다.
하지만.
거의 다가갈 때쯤 놈이 윤상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젠장, 공격해!”
그녀가 먼저 달려들어 꼬리를 향해 도끼를 찍었다.
팍! 팍!
퍼억!
윤상희가 꼬리에 맞고 날아갔다.
그 틈에 놈의 다리 옆에 붙어 칼을 휘둘렀다.
촤악! 착!
칼날이 놈의 피부에 박혔다.
하지만 깊진 않았다.
여러 번 힘을 다해 휘둘렀지만, 가죽을 뚫지 못했고 작은 상처만 남겼다.
“쿠에엑!”
카라일이 굉음을 지르며 공중으로 뛰어올라, 뒷발에 낫 같은 발톱을 휘둘렀다.
다급히 칼로 막았지만.
카앙!
쿠쿠쿠쿵! 쾅!
“큭!”
놈의 힘이 엄청났다.
바닥을 몇 바퀴나 구르고 나서 나무에 부딪혔다.
숨이 턱 막히는 것이 온몸이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윤상희가 다시 뒤를 덮쳤다.
휙휙휙!
쩍!
손도끼가 날아가 놈의 뒷목에 박혔다.
그녀는 몸을 날려 놈의 등위에 올라타 도끼를 내려쳤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놈의 피부는 너무 두꺼웠다.
“으아아악!”
윤상희가 튕겨 공중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번엔 충격이 클 것이다.
놈이 나를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고 다가왔다.
천근 같은 몸을 일으켜 칼을 겨눴다.
앞으로 달리려는 데, 갑자기 황당한 일이 생겼다.
“께겍께!”
작은 티볼이 괴수의 꼬리를 타고 오르더니 놈의 눈꺼풀을 물어버렸다.
뭐지? 조그만 놈이 겁도 없다.
카라일이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지만, 티볼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기회다!’
황당하고 어이없었지만, 놈이 다른 곳에 신경 쓰는 지금이 기회였다.
앞으로 내달렸다.
그 순간 놈이 나를 발견해 몸을 공중으로 띄우려 했다.
하지만 높이 뛰지 못하고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바이퍼의 독이 효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