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4화 (14/149)

# 14

14. 헌터가 된다는 것(3).

마비된 한쪽 다리를 바라보는 카라일.

놈도 당황했는지, 내가 반대편 다리로 달려드는 것을 미쳐보지 못했다.

달려가 칼을 휘둘렀다.

파파팍!

독이 묻은 칼날이 놈의 피부를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백정의 칼이 피부를 뚫고, 살을 저민다.

“쿠와아아악!”

그 순간 놈이 고통스러운 굉음을 지르며 몸을 비틀고 꼬리를 휘둘렀다.

몸을 날려 아슬아슬하게 꼬리 공격을 피해냈다.

공격에 성공했으니, 급할 게 없다.

그리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야! 내려와!”

티볼이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힘이 빠졌나?

물고 있던 입을 놓자, 땅에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께겍겍!”

충격이 클 텐데, 티볼이 벌떡 일어나 거대한 놈을 앞에 두고 짖었다.

저러다 죽지.

아니나 다를까 카라일이 발을 들어서 티볼을 짓밟으려 했다.

다행히 그 동작이 너무 느렸다.

독이 퍼지고 있음이다.

“이리와!”

내가 부르자, 네 개의 짧은 다리로 열심히 뛰어서 다가왔다.

말귀를 알아듣다니, 똘똘한 놈이다.

“기다려!”

티볼을 손으로 제지하고 카라일을 살폈다.

두 다리에 독이 묻었기에 놈이 비틀거렸다.

하지만 쓰러지진 않았다.

놈이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달아나기 시작했다.

카라일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음이다.

‘어딜 달아나려고.’

칼을 들고 뒤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놈이 꼬리를 흔들어 접근을 막았다.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기동력을 잃은 놈은 괴수 백정의 상대가 아니다.

큰 나무를 돌아 처음 공격했던 다리 옆으로 붙었다.

그리고 칼을 휘둘렀다.

독 때문에 연약해진 피부를 찢었다.

“쿠아아악!”

놈이 미친 듯이 발광을 했지만, 일단 칼이 피부를 뚫고 들어가자 그다음은 소를 해체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놈의 힘줄을 잡고, 집요하게 칼을 쑤셔 박았다.

백정의 칼이 뼈와 살 사이에 박힌다.

그다음엔 결을 따라 물 흐르듯이 움직인다.

살을 뼈에서 도려내고, 나중엔 힘줄까지 끊어버렸다.

쿵!

뼈가 탈골되며, 다리가 땅바닥을 끌었다.

놈은 이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

“웃차!”

손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놈의 최대의 장점은 크고 튼튼한 다리였다.

그리고 약점 또한 다리다.

반대편으로 달려가 다른 쪽 다리도 칼로 살을 파고, 근육과 힘줄을 잘라버렸다.

이제 놈은 두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꼬리와 입은 위협적이었다.

내가 앞으로 다가가자, 놈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나를 물려고 했다.

그러나 방향 전환이 느리다.

반대편으로 가 놈의 목을 겨냥했다.

그리고

“도살(lv1)!”

파파팍!

놈의 숨통을 단숨에 끊어버렸다.

쿵!

[카라일 - 1/1]

[도살 스킬 레벨이 올랐습니다.]

[도살(lv2)!]

놈도 죽이고, 필살기라 할 수 있는 도살 스킬 레벨도 올랐다.

도살 레벨이 2가 되자, 위력이 배로 커지고 공격 지속시간도 5초에서 10초로 늘어났다.

상태창.

[나태준]

- F등급

- 체력 : 75

- 마나량 : 3(19)

- 클래스 : 괴수 백정.

- 특성 : 관찰(lv2), 도살(lv2). 해체(lv3), 감식(lv1).

- 업적 : 티볼 도살자(F). 독 수련자(E).

하지만 도살 스킬의 마나 소모량이 3에서 6으로 배나 늘었다.

내 현재 마나량이 19였으니, 최대한 쓴다고 해도 3번이 한계였고, 다른 기술도 써야 했기에 진짜 위급할 때만 써야 했다.

카라일을 죽었으니, 이제 바이퍼 3마리만 잡으면 게이트가 클리어된다.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윤상희가 보이지 않는다?

***

[현재 카운터 : 티볼(F) - 1,000/1,000, 바이퍼(E) - 100/100, 카라일(D) - 1/1]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이 게이트는 24시간 후에 소멸합니다. 남은 시간 - 23:59:59]

[보상으로 회복의 룬(레어)이 나왔습니다.]

[회복의 룬(레어) - 물의 정령이 상처 치료에 도움을 줍니다. 물속에서 회복력 +50%]

게이트 클리어 알람이 뜨자, 나무에 기댄 윤상희가 겨우 눈을 떴다.

“으헉!”

너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자신의 눈앞에 D급 괴수 카라일이 거대한 입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개새!”

하지만 곧 놈이 죽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욕이 절로 나왔다.

자신을 놈 앞에 눕혀놓은 것은 놀라게 하려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걸 혼자 잡았단 말인가...’

게이트 클리어메세지가 떴다.

안에 남은 헌터는 자신과 나태준밖에 없었으니, 그가 혼자서 카라일을 잡은 것이다.

그가 F급 헌터라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다.

자신은 E급 헌터였지만, 카라일에게 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게다가 놈에게 튕겨 나가, 거의 20미터는 공중으로 떴다가 떨어졌다. 초인이라 불리는 헌터였기에 살아있었지, 일반인이었다면 즉사했을 것이다.

“크윽!”

온몸을 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그때였다.

“게르르르!”

작은 티볼 한 마리가 자신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힘겹게 손을 뻗자, 다행히 그 자리에 도끼가 있었다.

도끼를 들었다.

겨우 새끼 티볼에게 죽을 순 없지 않은가.

“안돼! 이리와!”

사람 목소리가 들리자, 티볼이 고개를 돌리더니 꼬리를 치며 달려간다.

그리고 그 끝에 나태준이 있었다.

‘뭐지? 저 새끼는?’

“몸은 좀 괜찮습니까?”

태준이가 다가오자, 그녀가 단단히 화가 난 얼굴로 물었다.

“일부러 그랬지?”

“뭘요?

“날 놀라게 하려고 괴수 대가리 앞에 눕혀 논거지?”

“그럴 리가요. 이렇게 해놓지 않았다면, 이미 저놈들 배 속에 있을 걸요.”

태준이 가리킨 풀숲에 티볼들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은 죽은 카라일이 두려워 접근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준 것이다.

“목숨을 구해줬다고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뭐, 나중에 크게 한턱낸다면 그 정도는 성의라고 생각하죠.”

“쩝. 고마워.”

윤상희가 미안했는지, 고개를 돌려 죽은 괴수를 바라보았다.

“게이트는 네가 클리어했지?”

“네.”

그녀는 약간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게이트에 들어와서 금전적으로 얻은 것이 없었다.

그리고 다치기까지 했으니, 돌아가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그보다 몸은 어때요?”

“그게 갈비뼈가 세 개는 부러진 것 같아.”

“그럼 무리하지 말고 거기 앉아 있어요. 난 할 일이 좀 있으니까.”

인벤토리에서 바이퍼의 간과 물통을 꺼냈다.

칼에 묻은 독과 피를 깨끗이 닦고, 카라일의 다리로 향했다.

“뭐하는 거지?”

“전리품이오.”

[해체(lv3) 스킬을 발동합니다.]

잠시 후 윤상희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저런 스킬이 있다니?’

그녀는 지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칼을 쓰는 것을 봐서는 자신과 같은 전사 클래스가 분명한데, 괴수의 사체를 해체하는 저런 스킬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태준이 칼을 찌르고 휘두르자, 괴수의 살점이 뜯겨나가고, 순식간에 뼈가 드러났다.

뒷다리 힘줄을 잘라내자, 칼날 같은 발톱이 빠졌다.

‘이건 얼마나 하려나?’

발톱이 너무 날카롭고 번쩍여 마치 금속 같았다.

제법 값이 나가 보였다.

윤상희가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든 말든, 태준은 빠르게 카라일의 몸통을 가르고 내장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다른 헌터들이 오기 전에 이곳을 정리해야 했다.

살과 뼈를 가르고, 내장을 하나씩 전부 들어냈다.

그렇게 30여 분을 사투하자 놈을 완전히 해체했다.

아쉽게도 마석은 나오지 않았다.

“휴! 처음이라 그런지 힘들군.”

“게르르릉!”

콱! 쩝쩝!

“윽! 야 이 새끼야! 그걸 먹으면 어떡해!”

티볼이 카라일의 심장을 파 먹고 있었다.

“저리 가!”

카라일은 혈관에 이미 독이 퍼져 있어 심장을 먹으면 바이퍼의 간을 또 줘야 한다.

하지만 배가 고픈지, 말려도 듣지 않았다.

“에휴! 그래 먹어라, 너도 먹고살아야지.”

마나가 1밖에 남지 않았다.

해체한 카라일의 내장이나 살점 역시 이미 중독됐을 수도 있었기에 쓸 수 없었다. 그래도 다음을 위해 감식할 생각이다.

[감식(lv1) 스킬을 발동했습니다.]

놈의 내장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감식 레벨이 부족합니다.]

‘어? 뭐지?’

[감식 레벨이 부족합니다.]

다른 장기를 살펴봤지만, 같은 메세지가 흘러나왔다.

감식 레벨이 1이라 D급 괴수는 감식할 수 없었다. E급 괴수 바이퍼는 감식이 됐으니, 지금 레벨로는 E급까지만 감식할 수 있었다.

‘감식 레벨도 부지런히 올려야겠군.’

티볼은 이빨이 잘 안 들어가는지 괴수의 살점과 씨름하고 있었다.

바이퍼의 간을 한 덩어리 놈 옆에 던져놓았다.

‘그럼 잘 있어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윤상희에게 다가갔다.

“이제 가죠.”

그녀를 부축했다.

게이트 입구까지는 제법 멀었다.

그런데.

“야! 따라오지 마!”

티볼이 계속 뒤를 졸졸졸 따라왔다.

좋아하는 고기도 먹지 않고, 나를 따라온 것이다.

칼을 휘두르며 겁을 줘서 쫓아냈다.

“저 껌딱지 또 따라붙었는데.”

“네?”

하지만 그때뿐이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뒤를 따라왔다.

놈이 게이트 입구까지 따라오자 고민에 빠졌다.

자신을 따라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간 총알 세례를 받고 죽을 것이다. 괴수였지만, 잠깐 사이에 정이 들었다.

내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했다.

“그냥 데리고 가.”

“지금은 작지만, 더 커지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때 다시 게이트에 버리면 되지, 뭘 그런 거로 고민해?”

“하긴 그렇군요.”

티롤의 목덜미를 잡고 배낭에 집어넣으려 했다.

‘응? 이게 뭐지?’

앞쪽 양손 팔목에 뼈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었다.

분명 처음엔 아무것도 없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티볼의 몸에서 나타날 수 없는 것이었다.

놈들을 수백 마리나 죽였고 해체 했기에 자신은 이미 티볼의 뼈와 살, 근육, 내장 등 놈의 몸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특이해, 나중에 다시 살펴봐야겠다.’

“너 찍소리도 하지 말고 있어.”

배낭에 넣고, 지퍼를 닫았다.

처음엔 인벤토리에 넣으려 했는데, 살아있는 것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럼 가죠.”

“잠깐.”

그녀가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

“번호 찍어.”

“에? 미안하지만 전 연상에 관심 없습니다.”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씨! 야, 나도 연하 관심 없어, 나중에 한턱내라며?”

“아하. 진작 말씀하시지.”

번호를 찍어줬다.

“그럼 갑니다.”

게이트를 공략한 지 23시간 만이었다.

해체된 바이퍼 사체를 먼저 게이트 밖으로 던져 나간다고 알렸다.

그리고 윤상희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헐렁한 츄리닝을 입고 활을 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수진아, 내가 여기 왜 있어?”

“치! 헌터가 게이트에 왜 왔겠어요. 공략하러 왔지.”

“뭐?”

게이트 밖엔 수진이 말고도 여러 명의 헌터가 더 있었다.

그들은 나와 들어간 헌터들이 실패할 경우 안으로 들어갈 3차 공략팀이었다.

“제길, 클리어됐네.”

“여기까지 온것도 아까운데, 그냥 서너 시간만 잡고 나오자고.”

“그래.”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클리어된 게이트는 중개료를 낼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게이트가 닫히기 전까지 안에 있는 괴수들을 사냥하며, 실력을 올리고 괴수의 사체를 끌고 나와 소량의 마석을 획득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해서 소멸 시점까지 나오지 못하면, 게이트와 함께 영원히 사라진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고, 사라진 그들이 어디로 갔는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윤상희를 바닥에 내려놓자, 그녀가 옆으로 다가온 수진이를 보며 말했다.

“여자친구? 이쁘네.”

“에?”

그녀의 말에 펄쩍 뛰었다.

“애 아직 고등...”

수진이가 노려보고 있었다.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브로커 이수경이 다가왔다.

“나태준 헌터님, 클리어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나만 멀쩡히 나오자, 약간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헌터들이 게이트에 들어가던데, 던전 청소부는 들어가지 않는 겁니까?”

“던전 청소부요?”

그녀가 살짝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게이트 자체가 신고되지 않은 물건인데 어떤 업체를 부르겠습니까? 지금처럼 대기하고 있던 헌터들이 있다면 이용하는 것 외에는 활용할 일이 없어 그냥 소멸까지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을 듣자, 문뜩 좋은 생각이 들었다.

“이수경씨, 잠깐 이야기 좀 하죠.”

그녀와 위장막 한쪽 구석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네? 그러니까 이미 클리어된 게이트를 독점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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