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15. 팀을 꾸리다(1).
이수경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공짜로 쓰겠다는 건 아닙니다. 적절한 금액을 내죠.”
“하지만 클리어한 게이트는 돈이 되지 않을 텐데요. 소멸의 위험성도 크고.”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하는 거죠. 어떻습니까?”
클리어 보상도 받지 못하는 게이트를 공략하는 헌터는 없었다.
남아 있는 괴수에게 잘못해 다치기라도 한다면 게이트와 함께 소멸할 수도 있어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클리어된 게이트는 던전 청소부라 불리는 전문 괴수 사체 처리 업체에 맡겨진다.
“글쎄요. 돈까지 지급하신다면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겁니다. 먼저 윗분들과 상의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긍정적인 대답이었다.
일반인들과 헌터들은 던전 청소부를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과 끈이 닿아야 할 수 있는 엄청난 이권 사업이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다른 게이트 나와 있는 건 없죠?”
“게이트요?”
그는 이제 게이트에 나온 사람이었고 치명상은 아니지만,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그럼에도 또 게이트를 들어갈 생각이라니 어지간히 돈이 급하거나, 싸움에 중독된 사람 같았다.
“죄송하지만, 아직까진 없습니다.”
“그렇군요.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다음 게이트가 발생하면, 독점으로 하나 부탁드립니다.”
“네, 그것은 이미 접수되어 있습니다. 금액이 비싸다는 것은 아실 테니, 현금을 많이 준비하셔야 할 겁니다.”
“물론이죠. 그럼 이제 집에 데려다주는 겁니까?”
“네. 차가 대기 되어 있습니다.”
위장막을 나가자 검은색 스타렉스 두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진이와 윤상희가 대화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상희 언니, 그럼 다음에 봐요.”
“그래 수진이도 화이팅!”
두 사람이 다정히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벌써 상희 언니?
여자들은 왜 저렇게 빨리 친해지지?
참, 이상한 일이었다.
윤상희가 차를 타기 전에 내게 말했다.
“다음에 일이 있으면 알지?”
“치료나 잘 받으세요. 몸 상태도 정상이 아니면서.”
“내 장점이 빠른 회복력이야, 아무 때나 사람 필요하면 콜하라고.”
“네네.”
“아참, 이거.”
내가 잠시 맡겨뒀던 배낭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차를 타고 사라졌다.
“아저씨, 그 배낭은 뭐죠?”
“이거, 사연이 길다. 나중에 말해주마.”
수진이와 함께 차에 탔다.
“근데, 저 아줌마하고 무슨 말을 한 거야?”
“별거 없어요. 저 언니가 우리 엄마하고 네 살 차이에요.”
“뭐? 그럼 나이가 몇이야?”
“정확히 마흔이래요.”
나보다 많은 건 확실했지만, 띠동갑 아줌마였을 줄이야.
그녀는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그런데, 왜 저 아줌만 언니고, 난 아저씨냐?”
“뭘 그런 걸 물어요. 내가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부르는 거지.”
“휴, 그래 가자, 피곤해서 말싸움할 여력도 없다.”
“그러게 나를 데려갔어야죠. 내 탐색 스킬이 없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쉿.”
수진이를 조용히 시켰다.
방음이 되는 차도 아니었고, 헌터의 스킬은 될 수 있으면 알려지지 않는 것이 좋았다.
이번 게이트 공략으로 자신의 한계와 스킬의 활용 등 여러 가지를 경험했지만, 가장 큰 성과는 게이트 안에서 헌터들의 비정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다음에도 게이트 공략하러 갈 거야?”
“그럼요. 나도 헌터에요. 인류를 구할 사명이 있는 거죠.”
인류를 구할 사명이라...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말이었다.
“게이트는 네 생각처럼 만만한 곳이 아니야. 보다시피 나도 죽을 뻔했고...”
“그래서요. 게이트에 가지 말라고요? 치, 아저씨도 다른 어른들처럼 말하시네. 괴수와 싸우는데 나이가 어디 있어요.”
수진이와 말하다 보니, 자신이 죽인 여자 암살자의 얼굴이 떠올라 씁쓸했다.
자신이 말려도 수진이는 게이트를 공략할 것이고, 어쩌면 그 암살자처럼 죽을 수도 있었다.
“누가 가지 말래, 앞으로 나와 함께 가자는 거지.”
“정말요?”
“그래, 대신 열심히 단련해야 한다.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면 그다음부턴 데려가지 않을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셔.”
“뭐?”
“알았다고요.”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온몸이 노곤했다.
“수진아 난 한숨 잘 테니, 간이욕조 살만한데 좀 알아봐.”
“간이욕조요?”
“그래 몸이 다 잠기는 거로.”
그렇게 한참 달려 서울로 돌아왔다.
욕조 파는 데가 없어 튜브 욕조를 사서 방 한 칸짜리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매트리스를 밀고 방 가운데 욕조를 놓고 물을 채웠다.
‘효과가 있으려나?’
회복의 룬을 들고 물속에 들어갔다.
피곤한 것도 문제지만, 괴수의 발톱이나 이빨이 물린 상처도 제법 많았기에 치료가 시급했다.
그렇게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잠을 잤다.
***
지금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눈은 떴지만, 움직이기 싫은 날.
눈동자를 돌리자, 모서리가 처참하게 뜯어진 침대 매트리스가 보였다.
범인은 “말볼” 저놈이다.
티볼 새끼 이름을 말볼로 지었다.
외국 담배 이름이 아니다.
“말썽꾸러기 티볼”을 줄여서 말볼이다.
두루마리 휴지가 사방에 눈처럼 내려앉았고, 내 양말과 옷들이 뜯어져 걸레가 되었다.
‘휴, 내가 왜 저놈을 데려왔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그냥, 콱! 죽여버릴까?
“께게겍?”
이런 일을 벌인 가증스러운 놈이 내게 다가와 혀를 내밀며 꼬리를 흔든다.
게다가 내가 조금이라도 소리치거나 인상을 찡그리면, 배를 보이며 벌러덩 눕는 것이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강아지 새끼였다.
하지만 개 사료는 절대 안먹는다.
쇠고기 정도는 던져줘야 입에 게거품을 물고 먹는다.
입이 고급이다.
말볼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더니, 내 옆에 기대서 곤히 잠들었다.
괴수라곤 하지만 아직은 잠 많은 새끼였다.
띠리리링.
촌스러운 휴대폰 벨소리.
말볼이 깰까 급하게 통화를 눌렀다.
[여보세요.]
[접니다. 이수경.]
브로커 이수경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일감이다.
[게이트인가요?]
[아니요. 전에 저희에게 말씀하셨던 건 말입니다.]
[아, 네.]
공략이 끝난 게이트 독점권을 말하고 있었다.
이 또한 기다리던 일이었다.
[지금 다른 헌터들이 공략 중인 D등급 게이트가 있습니다. 그 게이트 클리어 후에 들어가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D등급이요?]
조금, 아니 많이 부담스러웠다.
이전에 들어간 E급 게이트에서도 상당히 고전했다.
그곳에 티볼이나 바이퍼, 카라일까지 만만한 괴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번엔 게이트 클리어 보상도 없고, 시간도 짧았으니 돈을 벌려면 괴수를 많이 잡아야 했다.
‘그럼 팀을 꾸려야겠군.’
당장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독점 금액은 얼마로 정해졌습니까?]
[D급 게이트 1인 참가비인 7천으로 책정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리고 언제 게이트가 클리어 될지 모르니 미리...]
[알겠습니다. 준비하고 있죠.]
전화를 끊자, 순간 고민이 밀려왔다.
괜한 짓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F등급이나 E등급이었다면, 혼자 시도해도 되는 일이었기에 비용의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D등급은 클리어된 게이트라도 아직 혼자서는 무리였기에 도움이 필요했다.
휴대폰을 다시 켰다.
역시 전화 온 데는 한 군데도 없다.
다만 깨톡에 수진이의 메시지만 가득했다.
- 며칠 안에 일감이 생길 것 같다. 관심 있으면, 용산 창수네로 와.
수많은 메시지의 답 대신 메세지를 남겼다.
수진 - 넵!
그리고 전화해서 도끼를 쓰는 윤상희를 불렀다.
헌터는 치유력이 높았다.
게이트에서 나온 지 이틀이 지났으니,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됐을 것이다.
자신의 몸은 지금 날아갈 것처럼 가뿐하다.
회복의 룬(레어) 효과가 좋았다.
하루 정도 물 속에 있자, 몸에 생긴 생채기는 거의 없어졌고 깊은 상처는 아물었다.
아무래도 이 회복의 룬도 팔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배낭에 말볼을 넣었다.
그리고 엉망이 된 자신의 집구석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밖으로 나갔다.
***
용산역 광장에 내리자, 검은색 옷을 입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이번에 생긴 게이트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결식 단상을 보았다.
그곳엔 수백 명의 사진이 올려져 있었다.
나도 그날 각성하지 못했다면, 저기에 사진이 올라와 있었겠지.
더불어 수진이도...
갑자기 기분이 가라앉았다.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정상이 아니었다. 게이트가 생기면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이 죽어가고, 지금도 강원도 고성에서는 연희와 많은 고레벨 헌터가 A급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다.
낮은 등급과 다르게 높은 등급의 게이트는 클리어하는데도 수십 일이 걸린다.
당장 연희를 도울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서 내가 더 강해져 그녀를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돌아설 때였다.
“실례합니다. 신분증 좀 봅시다.”
“에?”
무장한 여자 경찰이 다가와 대뜸 신분증을 요구했다.
“신분증은 왜?”
그런데 얼굴이 낯익다.
“어? 윤상희씨, 경찰이었어요?”
“왜 이렇게 놀래? 헌터는 경찰, 아니지 경찰은 헌터 하면 안 되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경찰 제복을 입은 그녀가 어색했다.
솔직히 상당한 반전이었다.
“근무 중에 잠깐 빠져나온 거야. 어서 앞장서.”
“그러죠.”
***
[용산 헌터 시장]
“몸은 괜찮습니까?”
“아직 쑤시긴 하지만 끄떡없다. 그보다 돈은 확실히 주는 거지?”
“준다니까요. 그런데 어쩌다 경찰이 불법 게이트를 이용하는 거죠?”
“말하기 귀찮아. 그냥 대충 넘어가.”
뭔가 사정이 있는 듯했다.
“오늘 수진이도 오는 거야?”
“네, 아무래도 궁수의 지원이 있어야, 일이 더 수월할 테니까요.”
와장창!
골목에 들어서자 유리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저긴 창수네다!’
서둘러 달려갔다.
창수 가게 밖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안에선 험상궂은 사내들이 창수를 둘러싸고 있었다.
“지금 다른 쪽 팔도 잘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좋은 말 할 때, 세금을 내면 서로 얼굴 붉히지 않고 좋잖아.”
그들은 창수를 겁박하고 있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