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16. 팀을 꾸리다(2).
덩치들이 일제히 자신을 노려봤다.
“저 새낀 뭐야?”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형님.”
두둑.
목을 좌우로 꺾으며 가장 덩치 큰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좆만 한 게.”
턱!
뺨을 때리려는 놈의 손목을 잡았다.
“어쭈 잡아?”
“좋은 말 할 때 가라. 인간을 포 뜨고 싶진 않으니까.”
사내는 지금 태준이 얼마나 무서운 말을 했는지 몰랐다.
“뭐라는 거야? 이 병신이.”
덩치가 손을 빼려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될 리가 없었다.
태준의 악력은 이미 일반인의 것이 아니었다.
“윽! 그, 그마안아아아!”
놈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힘을 준 손을 놓자, 덩치가 무릎을 꿇고 바닥을 굴렀다.
“칫. 헌터냐?”
두목으로 보이는 자가 인상을 찡그렸다.
“알았다면 지금 당장 꺼져!”
“웃기시네. 헌터가 일반인을 폭행하면, 가중처벌되는지 몰라? 애들아.”
두목의 말에 다섯 명의 덩치들이 웃통을 벗었다.
“실컷 맞아 드려라. 돈 좀 벌게.”
그들은 깡패였다.
헌터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열심히 일할 생각도 없었다.
그랬기에 헌터가 판치는 세상에 나름 살아남는 방법을 터득했다.
각성한 헌터가 일반인과 싸우면 아무리 일반인이 잘못했더라도 헌터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묻는 것이 헌터법에 명시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헌터들은 게이트 밖에서는 절대 일반인하고 시비를 붙지 않았다.
덩치들이 뒷짐을 지고, 맨몸으로 바짝 붙었다.
“때려봐! 때려봐 씹새야.”
“오늘 헌터 주먹맛 좀 보자.”
밖에서 주변 상인들과 지나가던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놈들은 이미 이런 상황이 익숙했다.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주먹을 들자, 창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여기서 소란이 벌어지면, 자신이 각성한 것을 세상이 다 알 것이다.
그때 두목이 창수 옆에서 떠들었다.
“봤지? 헌터라고 해도 별수 없어. 내 부하들은 내가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는 놈들이야. 그러니까 이 병신 새끼야. 좋게 말할 때 세금 내라.”
“주지.”
창수가 입을 열었다.
“줄 테니까. 자네도 그만하지.”
“뭐? 자네도 그만해?”
여태 한마디도 하지 않던 창수가 입을 열자, 두목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이, 이제 그만들 하지.”
밖에서 뒷짐만 지고 있던 윤상희가 안으로 들어왔다.
경찰을 보자, 두목이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하겠다면, 나도 나설 수밖에 없어.”
그들에겐 헌터보다 무서운 게 경찰이었다.
사실 무섭다는 것보다 귀찮다는 게 맞았다.
“그만 가자, 세금을 내겠다는데 굳이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없지.”
덩치들이 옷을 주워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태준은 그들을 그냥 곱게 보낼 생각이 없었다.
문을 막아서며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때 도살자의 눈빛이 쏘아졌다.
“헉!”
두목과 덩치들이 태준의 살기를 느끼자,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우, 우리를 건들면 가중 처벌되는 거 몰라?”
“맞아. 저기 경찰, 보고만 있을 거야?”
그들은 윤상희에게 오히려 보호를 요청하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저놈들을 건드리면, 더는 게이트 소개 못 받아. 그리고 여긴 저 사람의 가게잖아,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폐를 끼치는 거야.”
순간 창수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하지 말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윤상희가 다시 작게 말했다.
“이곳 시장엔 엘리베이터와 큰 길 말곤 CCTV가 없어. 사람들만 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모르지.”
그 순간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조용히 처리하라는 말이었다.
자리를 비켜섰다.
그러자 두목과 덩치들이 몸을 떨면서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은 나가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상황 끝났습니다. 다들 해산하세요.”
윤상희가 한마디 하자, 밖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창수가 부들부들 주먹을 떨고 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소란 피우지 마. 저런 놈들은 어디 가나 있어.”
“넌 왜 A급 헌터면서 저런 놈들한테 당하는 거야?”
두 다리가 없고, 한쪽 팔이 없다고 해도 A급 헌터가 일반인에게 당하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저놈들은 그냥 돈 몇 푼 쥐여주면, 끝나는 놈들이야. 진짜 나쁜 놈들은 따로 있지.”
남창수가 잘린 자신의 두 다리를 보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게이트에서 당한 사고 때문이라고 하더니,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난 잠깐 나갔다 올게.”
“그러지 마, 헌터는 일반인과 싸우면 안 돼.”
“아니, 오늘 난 좀 풀어야겠어.”
평생을 참으며 살았다.
불의를 보고 불합리한 상황을 지켜보며, 늘 힘이 없음을 원망했다.
헌터만 되면 당장 그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또 참으려니까 속이 뒤집혔다.
놈들을 쫓아 밖으로 나가는 길에, 윤상희가 한마디 했다.
“멀리는 못 갔을 거야, 그리고 카메라 조심해.”
밖으로 나가, 놈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상인들이 손가락으로 한쪽 방향을 가리켰다.
답례로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놈들의 뒤를 따라갔다.
퍼걱! 콰직!
“으헉!”
“으아아악!”
비명?
놈들이 또 누군가를 괴롭히나 보다.
이젠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이성의 끈이 풀렸다.
서둘러 골목을 돌자, 익숙한 체육복이 보였다.
“어? 수진아, 네가 여길 어떻게?”
“아저씨, 나 마중 나왔어요?”
“뭐?”
수진이 뒤쪽으로 두목과 덩치들이 바닥에 쓰러져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런데 저들의 상태가?
대부분 팔다리 어디 한 군데가 부러져 있었고, 얼굴이 피떡이 되어 있었다.
특히 두목은 그 전 얼굴을 도저히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고, 양팔이 기괴한 모양으로 부러져 있었다.
“이놈들은 왜?”
“아, 내 탓이 아니에요. 글쎄 내가 열심히 싼 도시락을 이 어른들이 쳐서 떨어트린 거예요. 그래서 사과하라고 했더니, 대뜸 으쓱한 골목으로 데리고 오더라고요.”
“그래서 따라간 거야?”
“카메라도 없고, 보는 사람도 없는 곳으로 가는데, 저야 좋지요”
허! 더는 듣지 않아도 알겠다.
건달들이 이렇게 예쁜 여자애를 그냥 보냈겠는가.
수진이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막가는 고딩이라더니...
“그런데 너 단련 좀 했구나.”
“매일 활만 만 발씩 쏴봐요. 이젠 체력에 자신있어요.”
“알았다. 그만 가자.”
놈들에게 참교육을 시켜주려 했지만, 이미 의식을 잃은 자들이었다.
때려야 기억도 못 할 거다.
“잠시만요.”
수진이가 두목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두목이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떠는 게 보였다.
“아저씨들, 한 번 더 이곳에서 만나면 그땐...”
으드드득!
수진이의 주먹에서 짐승의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렸다.
“으커커컥! 다시는 뵐 일 없을 겁니다. 암요.”
두목이 땅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수진이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아저씨 가요.”
뭔가 억울했다.
내가 풀어야 하는데...
때론 법보다 주먹이 나을 때도 있다.
***
“아씨, 3시간이나 쌌는데.”
그녀의 짜증과 살기가 느껴졌다.
건달들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다시 한번 피바람이 불었을 거다.
한쪽으로 눌린 김밥들이 볼품없었다.
“그러게 인벤토리에 넣지 왜 들고 왔어.”
“화살을 잔뜩 넣어 자리가 있어야죠.”
자신은 포정의 퀘스트를 완료했기에 인벤토리 슬롯이 70개였다. 한 개에 2kg이니, 140kg까지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 F급 헌터들은 슬롯이 10개에서 20개밖에 없었다.
“와! 맛있겠는데. 무슨 김밥이야?”
“고등어 김밥이요.”
“고등어?”
윤상희가 분위기를 풀며 한 개를 입에 넣었다.
그 순간 그녀의 입술이 미묘하게 떨렸다.
수진이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물었다.
“어때요? 맛있어요?”
“그, 그래. 아주 맛있네, 태준씨도 먹어봐.”
그녀의 이마에 식은땀을 봤다.
먹고 죽는 것이 아닐까.
하나를 입에 넣고, 씹었다.
그 순간 온몸에 세포가 반응했다.
어떻게 김밥에서 산업폐기물 맛이 날 수가...
“맛있죠?”
도저히 대답할 수 없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가까스로 삼켰다.
“넌 왜 안 먹냐?”
“김밥 싸면서 몇 개 집어 먹었더니 배불러요.”
큰일이다.
도시락통이 세 개다.
하지만 내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손을 까딱하자, 풀어놨던 말볼이 또르르 테이블 밑으로 다가왔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이놈을 써먹겠는가.
김밥을 하나 말볼에게 던졌다.
그런데...
놈이 몇 번 씹더니 바닥에 뱉어버렸다.
그리곤 끙끙대며 나를 향해 으르렁댔다.
설마, 너도 못 먹을 정도란 말이냐?
이런 티볼답지 않은 녀석.
그때였다.
“오! 김밥 맛있네.”
창수 놈이 김밥을 두세 개씩 집어 먹기 시작했다.
과거를 떠올려보니.
‘이 새끼 초등학교 때 땅에 떨어진 것도 먹던 놈이었지.’
놈의 초등학교 별명이 떠올랐다.
먹깨비.
그래도 싸 온 성의를 생각해서 무려 다섯 개나 먹었다.
윤상희는 다이어트 중이라며 두 개만 먹었고, 나머진 창수 이놈이 다 먹었다.
맛있는(?) 김밥을 다 먹고, 자판기 커피 타임을 가졌다.
내 제안을 듣고, 윤상희가 물었다.
“7천만원?”
“아직 얼마나 벌지 몰라서 그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부족한가요?”
“뭐, 부족한 금액은 아닌데, 한 사람당 7천씩 주고 태준씨가 남는 게 있을까?”
그녀는 나를 걱정했다.
“그거야 제가 알아서 하는 거죠. 어때 할거죠?”
“그럼 난 콜.”
“저도 좋아요.”
수진이도 찬성했다.
창수를 쳐다보았다.
“왜 날 봐?”
“너도 같이해야지.”
“뭐? 나도?”
“네 경험과 솜씨가 필요해.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무기들을 꺼냈다.
마력 소총과 검 두 개, 마법사의 화염 지팡이, 방패, 철퇴, 전투 글러브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이것들 좀 팔 수 있을까?”
“허! 내가 장물아비냐?”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윤상희가 무기를 보고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게이트에서 이걸 다 챙겼단 말이야?”
“제 인벤토리가 좀 큽니다.”
그녀가 카라일의 공격에 기절했을 때, 태준은 암살자에게 죽은 헌터들의 무기를 전부 챙겼다.
“그래서 처분 가능해? 불가능해?”
남창수가 물건을 한번 훑어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버려, 이런 건 돈이 안 돼. 아니다 무기를 꺼내봐. 수진양건 빼고.”
“무기는 왜?”
“그냥 이 재료들 가지고, 무기나 업그레이드시켜줄게.”
“그런 것도 가능하냐?”
역시 도구 계열의 A급 헌터였다.
내 칼과 윤상희 도끼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창수가 먼저 도끼를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에휴, 용케도 이런 도끼로 괴수를 사냥했네요.”
“그게 튜토리얼에서 받은 거라...”
윤상희가 창피한지, 고개를 돌렸다.
“가만있자, 이 도끼는 철퇴와 전투 글러브, 그리고 화염 지팡이를 이용하면 뭔가 나오겠다.”
그리고 포정의 칼을 집어 들었다.
“어?”
창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뭐가?”
“이럴 순 없는데...”
“무슨 소리야. 속 시원하게 말해봐.”
“이건 업그레이드할 수 없어.”
“왜?”
“네건 봉인된 거야.”
“뭐? 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