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17화 (17/149)

# 17

17. 팀을 꾸리다(3).

봉인된 무기가 있다는 말은 사실 처음 들어봤다.

그동안 헌터 커뮤니케이션에서 습득한 정보는 그냥 수박 겉핥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봉인이라니 그런 것도 있었나?”

“연희가 쓰는 무기 알지?”

“그럼, 염화의 채찍을 모르는 사람도 있냐.”

“그것도 전에는 봉인된 상태였어. 그리고 흡혈의 검 같은 것도 처음부터 레전더리 급은 아니었고, 봉인된 걸 풀어서 된 거야.”

“허! 그럼 혹시 내 것도 레전더리 아이템?”

“아니.”

창수가 피식 웃었다.

“봉인된 무기가 레전더리 아이템인 될 확률은 10% 미만이야. 나머진 그냥 그런 쓰레기 아이템이 되거나, 깨져서 사라지는 거지.”

“아하! 그래도 10%가 어디야.”

앞으론 아이템에 관해서 창수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았다.

자신이 아는 정보나 상태창에 나온 정보는 너무 단편적인 것들뿐이었다.

“근데 이거 봉인은 어떻게 풀지?”

“봉인 해제 룬을 사면 되지.”

“그건 얼마야?”

“글쎄 부르는 게 값일걸.”

“뭐?”

“그게 레전더리 아이템이야.”

“에이, 귀만 버렸네.”

“극악의 확률이지만, 쓰다가 봉인이 풀리는 경우도 있으니 너무 실망하진 마.”

괜히 기대치만 올라갔다.

“그냥 윤상희씨, 도끼나 업그레이드해줘.”

“조수가 필요한데?”

다들 윤상희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무기였으니, 자신이 만드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난 근무 중이라 그만 가봐야 해.”

창수가 나와 수진이를 번갈아 봤다.

“나도 안돼, 마석 가게도 가봐야 하고, 약재상도 들려야 하고 할 일이 많아.”

그럼 남은 사람은.

“휴, 전에 활도 받았으니, 내가 도울게요.”

수진이가 돕기로 했다.

할 일이 정해지자, 윤상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게이트 스케줄 나오는 데로 연락해.”

“도끼는 그럼?”

“그건 내가 알아서 찾아갈게. 그 깡패 새끼들 다시 올지도 모르니, 순찰 겸해서 들리지.”

그녀가 먼저 나갔다.

인벤토리에서 카라일의 발톱을 꺼냈다.

“창수야. 이거 단도로 만들 수 있겠냐?”

창수가 발톱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괜찮은데, 어디서 났어?”

“카라일의 발톱이야. D급 괴수.”

“오, 이게 D급이라고? 이 정도면 B급 괴수까지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는데.”

“그래서 만들 수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뭐 어렵진 않아. 오늘은 조수도 있으니, 금방 만들 거야.”

“그럼 2개 다 만들어줘.”

“세컨 무기로 쓰게?”

“그냥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으려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수진이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봤다.

“아저씨, 아니 태준 오빵.”

갑자기 오빵? 뭔가 불안하다.

“그 단도 하나 내가 쓰면 안 돼?”

“야, 못 들었어? B급 괴수도 상대할 수 있다잖아. 그런 고가의 물건을...”

“아잉잉!”

수진이가 나름대로 필사의 애교를 떨었다.

“야야! 안 하던 거 하지 마라, 그냥 하나 줄게.”

“아저씨, 감사합니다.”

저놈의 아저씨 소리는 언제까지 들어야 하지.

처음부터 하나는 녀석 주려고 했던 거다.

근접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었으니, 궁수도 호신용으로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데 애교라니, 꽤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이야.

“난 나갔다 온다.”

말볼 녀석이 내 뒤를 따라왔다.

“넌 안돼! 여기서 놀아.”

하지만 놈이 계속 따라온다.

할 수 없이 목줄을 하고 책상에 묶어놨다.

녀석이 끙끙대고 발버둥 친다.

옆에 있어도 특별히 하는 것도 없으면서.

할 수 없이 인벤토리에서 쇠고기 등심 한 덩어리를 꺼내 던져줬다.

그제야 고기를 물고 조용해졌다.

식충이 녀석.

***

[약재 시장 골목.]

“조심히 살펴가십시오.”

약재상 황노인이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를 향해 허리를 90도로 굽히고 인사했다.

“뭡니까? 그 과한 친절은?”

“아, 자네 왔나.”

황노인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손님은 왕이야.”

“나한테는 안 그러잖아요.”

“저분은 큰손이야, 고레벨 헌터의 부인.”

“역시, 그런데 하고 다니는 꼴이...”

“부러워서 그래? 세상 돈이면 다 되는 거지.”

온몸에 휘감은 옷과 악세사리만 해도 수억은 넘을 거다.

비싼 것만 처바르니 하나도 어울리지도 않았다.

“자네 마침 잘 왔네. 그 라팍스의 비장 좀 더 없나? 품질이 좋다고 사방에서 찾아.”

“그 많은 게 벌써 다 팔렸어요?”

“사실 좀 남았지만, 전량으로 달라는 놈이 있어서 인벤토리에 넣어놨지. 크크큭.”

황노인이 장사꾼의 웃음을 지었다.

“가만, 인벤토리? 노인장, 헌터였어요?”

“내가 말 안 했나? 10년 전까지 헌터 활동을 했네.”

동네 약재상 노인도 헌터였는데, 나는 그동안 뭐했던가.

“그보다 오늘은 무슨 일인가?”

“바이퍼 해독제가 있는데, 좀 사시겠어요?”

“E급 괴수 말인가?”

“네.”

“그거 찾는 사람이 없던데.”

그럴 수밖에 이미 물린 사람은 죽었을 테니.

“혹시 모르니 하나 놓고 가죠. 인벤토리에 보관했다가 물리기 전이나 물린 후에 그냥 생으로 먹으면 됩니다.”

“알았네.”

바이퍼의 간을 한 덩어리 넘겼다.

그리고 티볼의 쓸개를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아십니까?”

“뭐지? 처음 보는데.”

이곳 터줏대감인 황노인이 모른다면, 다른 약재상들도 모른다는 거였다.

“지방 분해에 특효약입니다.”

“지방 분해? 아, 다이어트.”

황노인이 티볼의 쓸개를 살폈다.

“어떻습니까? 다이어트라면, 여자들이 환장할 텐데요. 분명 비싼 값이 팔릴 겁니다.”

“글쎄, 이건 내 전문이 아니라서, 여기에 어떤 성분이 다이어트에 좋은지 아는가?”

“그건 잘...”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감식(lv1) 스킬로 감식해서 나온 정보로 말한 것뿐이었다.

“먹는 약이나 화장품이라면 성분 분석은 필수네. 마침, 내 친구놈이 꼴에 화장품 회사를 하나 하니. 그곳에 성분을 의뢰해 보겠네. 어떤가?”

황노인은 발이 넓었다.

“네. 그럼 하나 놓고 가겠습니다. 결과가 나오면 전화 주시죠.”

“알았네.”

다음으로 마석 상가들이 밀집한 곳으로 갔다.

“대표님, 살펴가십시오.”

마석 상가들이 밀집한 곳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씨, 하필...’

몸을 돌렸다.

하지만.

“허! 이게 누구야. 나태준!”

도하준이 직원들과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용산 헌터 시장을 찾은 것이다.

“도하준,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인데, 너 같은 일반인이 헌터 시장엔 왜 와?”

“남이사.”

“회사 나가더니 살만한가 봐.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싹싹 빌면, 경비 자리라도 하나 알아봐 줄 수 있어.”

“웃기지 마. 난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네놈은 직원들 등골이나 빼먹지 말고 잘해줘. 아직도 수당 삥땅 치지?”

“뭐? 이 새끼가.”

도하준이 주먹을 들자, 직원들이 그를 말렸다.

“대표님, 사람들이 보고 있습니다.”

주변엔 상인들과 구경꾼들이 많이 지켜보고 있었다.

헌터가 일반인을 때리면 엄하게 처벌받는다.

어쩔 수 없이 도하준이 주먹을 내렸다.

“너 언젠가 나한테 죽도록 맞을 날이 올 거다. 그땐 아주 잘근잘근 씹어서...”

“기대하지. 난 바쁘니까 그럼 이만.”

“너, 너 이 새끼.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더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씩씩거리는 도하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 길로 마석가게 박사장에게 향했다.

“나대리! 아니지 나 헌터, 어서 오게.”

“좀 작게 불러요. 창피하게.”

“헌터를 헌터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나. 오늘은 웬일인가?”

“여기에 마석 말고 무슨 볼일이 있겠어요.”

“뭐? 벌써 마석을 구해왔다고?”

“네, 방금 한성 직원들 왔다 갔죠.”

“그 자식들 말도 하지 마.”

“왜요?”

“99%로 사라고 하길래 오늘부터 거래 끊었다. 양심도 없는 새끼들.”

그들은 이번에 신화 길드의 헌터들에게 클리어된 B급 게이트에서 꽤 짭짤하게 벌었다고 했다. 특히 B등급과 C등급 마석이 수백 개씩 쏟아지면서 신화 길드와 한성 실업은 큰 이익을 얻었다.

도하준 저놈이 한성을 인수하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이 왠지 배가 아팠다.

언젠가 네놈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마.

“오늘은 이게 답니다. 97%죠”

“아니 오늘은 특별히 97.5%에 매입하지.”

“오, 고맙습니다.”

“대신 다음에도 우리 가게로 와야 하네.”

F급 마석 56개와 E급 마석 5개를 팔았다.

3억이 조금 넘는 돈을 받았다.

이로써 여태까지 모은 돈이 10억이 넘어갔다.

일반인에겐 큰 돈이었지만, 헌터 세계에서는 C급 무기나 방어구 하나 사면 끝나는 돈이다.

“커피라도 한잔 타줄까?”

“괜찮아요. 조금 전에 마셨어요.”

“자네 같은 사람이 어서 커서 B등급, A등급 게이트를 공략해야 하는데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쑥쑥 커 드릴 테니.”

돈을 챙기고 나오는 길이었다.

띠리리링!

황노인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나태준입니다.]

[지금 어디야?]

[마석 상가요.]

[자네 지금 당장, 나 좀 보세.]

약재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물건 몇 개나 있나?”

“왜요?”

“내가 전량 사겠네. 친구놈이 꼭 좀 잡아달라고 했어.”

“벌써 분석이 끝났어요?”

“그래 곧 분석한 자료가 올 거야. 그보다 얼마에 팔겠나?”

이럴 땐 얼마를 불러야 할까?

“그 물건이 구하기가 워낙 어려워서, 얼마에 팔아야 하나...”

고민하는 척을 했다.

상대가 금액을 제시할 때까지 뜸을 들인다.

“한 장 어떤가? 다른 데 가도 그보다 더 받진 못할 거야.”

백만원이면 라팍스의 비장과 같은 가격이었다.

티볼이 잡기도 수월하고, 쓸개 크기도 훨씬 작으니 이익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구매를 원할 땐 뭔가 더 있는 거다.

“저를 바보로 아십니까? 최소 두 장은 주셔야겠습니다.”

“뭐, 두 장?”

망설이는 눈빛, 하지만 물건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면, 돈을 내게 되어 있다.

게다가 친구라는 사람이 꼭 잡아달라고 했으니, 최소 한 장 반은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알았네. 이천만원으로 하지. 그런데 몇 개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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