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18. 헌터는 장비빨이지.
그 한 장이 이 한 장이었어?
티볼 쓸개 가격이 200만원이 아니라 2,000만원이라니...
놀랐지만, 절대 놀란 척을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걸 구하다 목숨을 몇 번이나 잃을 뻔했습니다. 이거 정말 싸게 사는 겁니다.”
“거, 되게 생색내는군. 몇 개나 있냐니까?”
물건이 너무 많으면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600개가 넘었지만.
“200개 있습니다.”
“모두 주게.”
“현금인데 가능하시겠어요?”
황노인이 나를 보며 웃는다.
옆에 있던 오래된 전화기를 들더니.
“지금 40억 가져와.”
5분도 안 돼서 한 사내가 양손 가득 돈을 가져왔다.
“자네야말로 이렇게 큰돈을 어떻게 가지고 다니려고 하나?”
“제 인벤토리가 좀 큽니다.”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앞으로 어떤 물건이든 생기면 우리에게 오게. 자네가 가져온 거면 최고가로 매입하지.”
“그럼요. 항상 잘해주시는데, 이리로 와야죠.”
“글쎄, 자네 같이 욕심 많은 사람이 다른 가게 안 들린다는 건 거짓말인 것 같고, 여러 군데 다니며 더 알아봐도 좋아. 아마 자네 물건의 가치도 몰라볼걸.”
황노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하하.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 그렇게 욕심 많은 놈은 아닙니다.”
황노인이 나를 살짝 째려봤다.
“그렇다고 해두지.”
물건을 넘기고 40억을 받았다.
기존에 10억까지 인벤토리에 돈이 50억이 됐다.
“허! 그 돈이 다 들어가다니. 자네 F급 헌터 맞나?”
황노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말이 50억이지 5만원권으로 100kg에 해당하는 무게였다.
내 인벤토리가 140kg까지 넣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지, 보통 F급 헌터들은 20에서 40kg밖에 넣을 공간이 없었다.
전체 인벤토리 70칸 중 50칸은 백정 튜토리얼을 하면서 소 1,000마리를 해체한 보상이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다음에도 무조건 이리와야 해.”
“네네.”
인벤토리에 50억이란 돈이 있었다.
던전 청소부는 평생 가도 만져보지 못했을 거금이었다.
돈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어디에 써야 할지 막막할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랬다.
‘C급 장비를 사야 하나, 아니면 조금 더 모아서 B급 장비를 살까?’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게다가 인벤토리에 아직 티볼의 쓸개가 450개 정도 있었다.
그것을 팔면 90억이니 50억을 합치면 140억, B급 장비도 살 수 있었다.
돈이 생기니, 뭔가 자신감이 생기고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이래서 다들 헌터가 되기를 바라는 거구나.
문제는 이 돈을 계속 가지고 다닐 순 없다는 것이었다.
곧 게이트 공략이 있을 거고, 괴수의 부산물을 넣어야 했으니 인벤토리를 비워야 했다.
이 돈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며 걸을 때였다.
쿠앙!
귀를 찢는 스피커 소리에 인상이 찡그려졌다.
“다크로드를 찬양하라!”
“올라!”
“다크로드는 자비로우시다!”
“올라!”
“게이트는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신께서 내린 형벌이요. 괴수들은 악마의 자식들이다!”
“다크로드께 생명을 바쳐야만, 게이트가 사라지고 우리 영혼이 구원을 받으리라!”
말세다.
수십 명의 젊은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 있었다.
게이트 발생 횟수가 점점 늘어나자, 사이비 종교집단들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그중에서 다크로드 교는 흑마법 계열의 헌터 이강섭이 교주로 있는 꽤 세력이 큰 집단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회사도 소유하고 있었고, 자신들의 종교 홍보에 아이돌을 이용하고 있었다.
젊은 신도들이 많은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일 것이다.
‘어? 수진이하고 닮았는데?’
제니?
한쪽에 세워져 있는 아이돌 사진이 수진이와 정말 똑 닮았다.
쌍둥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에이, 요즘 애들이 다 비슷비슷해서 그런 거겠지.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거리를 지나, 한적한 창수네 가게로 돌아왔다.
“다녀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말볼이 달려와 꼬리 쳤다.
그런데 묶여 있지 않았다.
“얘 목줄 누가 풀었어?”
“내가요.”
일이 끝났는지 수진이가 책상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말볼.”
수진이가 부르자, 놈이 귀를 쫑긋 세웠다.
뭐지?
“주워와!”
공을 던지자, 놈이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리고 공을 물더니 수진이한테 달려가 배를 보이며 갖은 아양을 떨었다.
개냐?
“말볼, 너무 귀여워요.”
“뭐? 그놈이 귀엽다고?”
“네, 하는 짓이 귀엽잖아요.”
저 못생긴 놈이 귀엽다니...
다리는 짧고, 얼굴에 주름은 왜 이렇게 많은지.
게다가 침은 좀 많이 흘리냐.
응? 자세히 보니 처음보다 뼈가 많이 자랐다.
팔목에 튀어나온 뼈가 전보다 두 배는 길어졌다.
게다가 조금 날카로운 느낌까지.
아무리 봐도 보통 티볼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수진이가 공을 다시 던지며 말했다.
“말볼이랑 가끔 놀아주죠. 보니까 스트레스 장난 아니게 쌓인 것 같던데.”
스트레스?
그래서 집안을 그렇게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았나?
말볼에게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맨날 좁은 집구석에 있어야 하고, 이동할 땐 갑갑한 배낭에 있어야 하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것이다.
다음 게이트에 가면 풀어줘야 하나?
“일은 다 본 거야?”
창수가 작업실에서 나왔다.
그의 손에는 단도 두 자루가 들려있었다.
“벌써 완성됐어?”
“그래.”
카라일의 발톱으로 만든 단도가 완성됐다.
손님이 없으니, 금방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파리 날려도 되는 거냐?”
창수는 대답 대신 살짝 웃었다.
자신도 어쩌다 소개로 왔지. 이런 외진 가게까진 오지 않았을 것 같다.
“그동안 어떻게 먹고살았냐?”
“돈은 쓸 만큼 있어.”
“어련하실라.”
수진이와 카라일의 단도를 하나씩 들었다.
보는 것만으로 베일 것 같은 날카로움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오, 칼 죽이네. 얼마면 돼?”
“뭐?”
“고생했으니, 수고비는 줘야지.”
“됐어. F급 헌터가 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어.”
“나 돈 많아.”
“그래? 그럼 장비에 좀 투자해. 요즘 맨몸뚱이로 뛰는 헌터가 어디 있어? 다 장비빨이지.”
창수의 말이 맞았다.
헌터는 누구보다 장비가 좋아야 오래 산다.
“그건 나도 아는데,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 뭘 사야 하는지 모르겠다.”
창수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따라와 봐.”
“어딜?”
“수진아, 잠깐 가게 좀 봐줄래.”
“네, 말볼하고 놀고 있을게요.”
***
창수가 데려간 곳은 밖이 아니라, 작업실이었다.
“버리지 않고, 가져오길 잘했네.”
“뭘 가져와? 그리고 여기서 뭐 하려고?
“기다려봐.”
창수가 작업대에 망치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작업실이 통째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건 비밀 엘리베이터였다.
“내가 연희나 다른 유명한 헌터들의 장비를 만들어 준거 들었지?”
“그야 나도 알지.”
녀석이 갑자기 분위기를 잡았다.
사실 창수의 사지가 멀쩡할 땐, 도구 계열의 헌터 중에서 탑클래스였다.
아래층에 도착해 벽이 열리자, 100여 평이 넘는 널찍한 방에 여러 가지 괴수와 인간의 모형이 보였다.
“잠시만.”
끼잉!
창수의 휠체어가 갑자기 반으로 갈라지더니, 트랜스포머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곧 창수가 두 발로 섰다.
“너 일어설 수 있었어?”
“물론, 보조 도구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끼잉! 철컥! 철컥!
창수가 걸어서 한쪽 벽으로 이동했다.
그럼 지금까지 휠체어를 탄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한 것이었나?
“태준아, 이제 무기를 꺼내 저 더미들을 공격해봐. 가지고 있는 기술이나 모든 스킬을 다 써서.”
“뭐?”
시키는 대로 포정의 칼을 꺼냈다.
그러자 괴수와 인간 모형의 더미들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앞으로 달려들었다.
관찰 스킬과 해체 스킬을 발동시키고, 도살 스킬까지 써서 모형들을 상대했다.
생명이 없는 것들이라 더욱 강렬하게 공격했다.
그렇게 칼을 찌르고, 휘두르자 어느새 더미들이 바닥을 굴렀다.
“휴, 이 정도면 됐냐?”
상당히 비싸 보이는 더미를 모두 박살 냈는데, 창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지금 당장 뭐가 필요한지 알겠다. 아주 기막힌 무기가 생각났어.”
“뭐? 무기? 그건 됐어. 난 이 칼이 좋아.”
괴수 백정에게 포정의 칼이 있는데 다른 무기는 필요 없었다.
하지만 창수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 장비라는 건. 쓰던 주 무기를 강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보조 무기를 갖추는 것도 필요해.”
A급 도구 계열의 헌터가 한 말이라 그런지 뭔가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리고 도구 계열 헌터라는 건, 단순히 의뢰인이 주문하는 장비만을 만드는 게 아니야. 일류 이상이라 불리는 도구 계열 헌터라면, 오히려 의뢰인의 움직임을 분석해서 본인도 모르는 필요 장비를 파악할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
“이걸 장비 컨설팅(Equipment Consulting)이라고 부르지. 난 헌터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 본인도 모르는 습관이나 장점을 발견해 그에 맞는 장비를 만들 수 있어. 지금 네 움직임을 보고 떠올린 장비를 함께 쓰면 넌 지금보다 몇 배는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몇 배? 그 정도야?”
“물론. 지금까지 네가 깨닫지 못했던 네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 테니까.”
새삼 창수가 달라 보였다.
그리고 오늘따라 녀석이 생기 넘쳐 보였다.
“만드는 건 내가 할 테니, 넌 필요한 재료를 사와.”
“알았어. 바로 다녀올 테니 목록이나 적어줘.”
하지만 창수가 적어준 재료의 가격을 보자, 욕이 절로 나왔다.
“너 미친 거 아냐? 재료 하나에 억 단위라니...”
“돈 많다며?”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 그리고 이 재료는 또 뭐야?”
“모두 네가 입을 방어복 만들 재료야. 모두 투자라고 생각해. 게이트에서 죽으면 돈이 무슨 소용이야.”
창수의 말이 맞긴 하지만, 씁쓸했다.
이 재료를 다 사려면, 돈을 아주 많이 써야 했다.
하지만 강해질 수 있다면, 돈이야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자신은 겨우 F급인데, A급 이상의 헌터 장비만 만들던 창수가 직접 장비를 만들어 주기로 했다. 기대감에 가슴이 뛴다.
‘과연 어떤 장비일까?’
시장에서 사기 쉬운 재료는 직접 샀고, 구하기 어려운 장비는 발이 넓은 약재상 황노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티볼의 쓸개 200개를 더 팔았다.
돈도 부족했고, 시간도 없었다.
***
띠리리링!
벨이 울렸다.
기다리던 전화인가?
하지만 이수경이 아니었다.
[창수냐.]
[장비 완성됐다.]
[벌써?]
[알았다. 금방 가마.]
이렇게 빨리?
재료를 사다 주고, 겨우 이틀이 지났을 뿐이었다.
창수네 가게 문을 열었다.
“어서와.”
창수가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장비 어디 있냐?”
“급하긴 따라와.”
지하 비밀 작업실로 이동했다.
“이게 네 장비야.”
쇠사슬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한쪽 끝은 배낭처럼 생긴 상자가 있었고, 반대편엔 갈고리가 달려 있었다.
이건가?
상태창.
[티탄의 갈고리(Titan Hook] - 봉인된 티탄의 사슬 끝에 강철 갈고리를 달아 포획에 용이하게 만들었다. 평소엔 보조 무기로 갈고리만 떼서 사용할 수도 있고, 쇠사슬 끝에 달면 먼 곳에 적을 당겨와 직접 공격을 할 수도 있다.
사정거리 20미터. 무게 30kg.
배낭 아래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감긴다.]
“이게 나와 어울리는 무기라고?”
“그래, 지금은 돈과 재료가 부족해서 가장 중요한 갈고리를 강철로 만들어 달았지만, 네 칼과 함께 쓰면 빈틈을 보완해줘서 레어 등급 이상의 효과를 낼 거야. 나중에 갈고리는 돈 모아서 꼭 유니크 템으로 구매해.”
“알았다.”
유니크 아이템을 사기엔 아직 돈이 많이 부족했다.
눈앞에 티탄의 갈고리를 어떻게 내 백정 스킬에 적용할지 고민이었다.
일단 한번 착용해 보기로 했다.
먼저 등에 쇠사슬이 담긴 배낭을 멨다.
육중한 것이 상당한 무게였다.
왼손에 갈고리를 들고, 마지막으로 포정의 칼을 꺼내 들었다.
‘무겁기만 하고 뭐 별거 없는데?’
레어 아이템 이상의 효과를 낼 거라고 하더니, 살짝 실망스러운 생각이 들 때였다.
[괴수 백정 클래스에 어울리는 새로운 무기가 조합됐습니다.]
[티탄의 갈고리에 새로운 기능이 추가됩니다.]
[백정의 칼과 함께 사용 시 완벽한 조화 발동. 기본 공격력 2배]
[갈고리 포획 시 공포 +20]
[갈고리 공격 성공 시 5% 확률로 스턴 효과 발생.]
[출혈 시 혈진(hemoconia)발생. 운동능력 저하 -20]
상태창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4가지나 옵션이 붙었다.
특히 백정 스킬을 사용 시에 공격력 2배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였다.
창수의 말대로 갈고리만 유니크 템으로 업그레이드하면, 그 위력이 얼마나 좋아질지, 벌써 기대가 됐다.
그리고 다른 기능들이 괴수와의 전투에서 어떻게 쓰일지는 게이트에서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창수야! 새로운 기능이 많이 생겼다!”
창수는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원래 그런 거야. 이제 그 보조 무기를 숙달하면 너는 훨씬 더 강해질 거야.”
이게 도구 계열 A급 헌터의 장비 컨설팅 효과인가.
창수는 새로운 기능이 생길 줄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다른 장비들도 사용자의 성향이나, 무기, 아이템, 스킬 등의 조합에 따라 이런 추가 기능들이 시스템적으로 생기는 것이었다.
이것이 도구 계열 헌터들의 무서운 점이었다.
역시, 이 녀석을 팀에 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여기서 훈련해도 되지?”
“물론. 더미는 얼마든지 만들어 줄게 마음 놓고 부숴.”
100평의 넓은 공간과 괴수 모형의 움직이는 타겟까지 있었으니, 훈련장으로도 그만이었다.
단점이라면, 티탄의 갈고리와 강철 배낭의 무게가 50kg에 육박했기에 자유자재로 쓰기 위해서는 체력 단련은 필수였다.
그렇게 열심히 단련하고, 티탄의 갈고리를 손에 익히고 있을 때였다.
띠리리링!
[여보세요. 이수경입니다.]
기다리던 게이트 브로커의 전화가 왔다.
드디어 새로운 장비를 시험해볼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