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20. D등급 게이트(2).
사내가 나무를 부러트린 왼쪽 발을 땅에 딛는 순간.
투둑!
“어?”
몸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분명 아무런 이상도 전조 증상도 없었다.
그런데, 뭔가 어긋나는 소리가?
발목이, 각반 아래 발목이 바깥으로 꺾여있다.
무지 아플 것 같은데,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그 순간.
촤르르르르!
사납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 바로 갈고리가 풀리는 소리였다.
“으앗?”
어리둥절하던 사내의 몸이 갈고리에 걸려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이어 세차게 얼굴부터 바닥에 내려꽂혔다.
“크헉!”
머리통이 깨진 듯 코가 부러진 듯 얼굴이 한순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이, 이 새끼 주, 죽인다!”
사내가 벌떡 몸을 일으켜 오른쪽 발을 땅에 디딜 때였다.
두둑!
갑자기 오른쪽 무릎이 힘없이 안쪽으로 꺾였다.
촤르르르...
날아드는 괴이한 음향, 일어서려던 놈이 다시 날아든 갈고리에 걸려 이번에는 뒤로 벌렁 자빠지고 말았다.
“커하악?”
“거기까지다. 어차피 끝난 거지만, 더하면 더 빨리 끝날 거야.”
사실대로 이야기해줬지만, 사내는 믿지 않았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사내가 다시 억지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주인 없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질 않았다.
“왜, 이렇지? 이럴 리가 없는데...”
그때 갑자기 부풀었던 다리근육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각반이 그대로 있는 것을 봐서는 능력을 끄고 켤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으...으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오아시스를 울렸다.
각반의 효과가 사라지자, 엄청난 고통이 몰려옴이다.
푸슉!
살갗이 찢어지고, 아직 회복되지 못한 근육은 끊어진 채로 뒤엉키고, 여기저기 핏줄이 터지면서 피가 사방으로 뿜어졌다.
“내 다리! 크아아악!”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사내의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입에선 비명을 지르고, 다리는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각반은 그저 능력을 빌려주는 것일 뿐, 그것을 감당할 몸이 준비가 안 된다면, 눈앞에 사내처럼 최후를 맡게 될 것이다.
어쩌면 저 각반은 악마의 물건일 수도...
갑자기 놈이 엎드려 두 손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으커커컥!”
“뭐야? 달아나는 거야?”
어이가 없었다.
놈의 상태는 이미 틀렸다.
너무 많은 피를 흘렸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놈이 세워진 제단 옆을 지날 때였다.
탁!
겨우 나뭇가지 하나를 건드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끽!
거대한 제단이 놈 쪽으로 갸우뚱거렸다.
“어? 아......안돼!”
끼이이잉!
쾅! 파직!
제단 아래로 시뻘건 피가 흘러내렸다.
가만히 있었다면 5분은 더 살았을 것을...
죽은 길드원들의 원혼이 그를 데려간 것 같았다.
묵념해줄 가치도 없는 놈.
그에게 희생당한 자들을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죽은 자의 다리에서 각반을 벗겼다.
상태창.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 - 잔뜩 흥분한 A급 괴수 마그투스의 10톤 힘이 고스란히 담긴 물건. 다리 근력이 강화되어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 단, 신체적인 한계를 넘어가면 뼈와 근육이 손상될 수 있다.]
뭐? 겨우 뼈와 근육이 손상될 수 있다고?
미친!
이거 완전히 사기나 다름없었다.
계속 쓰다간 다리가 걸레가 되고, 죽을 수 있다고 적어야 했다.
이걸 차고 전투를 벌였다간 한계를 모르고 힘을 쓰게 되고, 결국 저 제단에 깔린 놈처럼 되는 것이다.
이거 당장 쓰기엔 좀 애매한데.
팔까?
아니지 일단 다리 힘을 기르는 데 사용하면 되겠다.
각반의 기능을 사용하게 되면 폭발적인 힘을 내기에 평소보다 근육과 힘줄 등 다리 힘을 많이 쓰게 된다.
그러니 평소에 차고 다니며 근력부터 왕창 늘리고, 위급할 때 사용하면 뭔가 비장의 아이템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각반을 차고 바지를 내렸다.
‘완벽히 가려지는군.’
상태창에서 마그투스 각반 사용하기를 클릭했다.
그러자, 점점 다리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가만 놔두다간 헐크처럼 바지를 다 찢을 것 같았다.
기능을 끄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휴! 아찔한데.”
순간이었지만, 정말 다리에 엄청난 힘이 느껴졌다.
마약을 먹는 느낌이 이럴까?
심장이 거칠게 뛰고, 다리를 박차면 산을 뛰어넘고, 힘을 주면 바위도 부술 것 같았다.
이래서 중독이 되는구나.
심호흡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무래도 단련을 위해선 바지를 큰놈으로 사야겠다.
주인이 사라져 바닥에 떨어진 두 자루의 검도 챙겼다.
그때 풀숲을 헤치는 인기척이 들렸다.
“께겍! 껙!”
말볼이다.
놈이 달려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든다.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놈을 안아 들었다.
솔직히 바위가 총알처럼 날아올 때는 정말 죽을 수도 있다고 느껴졌다.
말볼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네가 사람보다 백배 낫구나.”
이놈은 괴수 주제에 너무 충직하다.
못생긴 놈이 내 얼굴에 잔뜩 침을 묻혔다.
이번만 용서해주기로 했다.
“헉헉! 아저씨!”
수진이와 검을 든 이수경이 보였다.
“괘, 괜찮아요?”
나를 바라보는 수진이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뭐, 보다시피.”
“그놈 어딨어요?”
“저기.”
제단 아래 깔려 피떡이 된 놈을 바라보았다.
“세, 세상에! 지금 D급 헌터를 이긴 거예요?
수진이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신과 태준, F급 헌터 둘이 덤벼도 D급 헌터는 절대 못 이길 것 같았다. 그게 상식이었다.
아니면 헌터 등급을 왜 나눴겠는가.
그래서 태준이 시키는 대로 도움을 청하기 위해 게이트 밖으로 달린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결과는 의외였다.
“잠복한 오크는?”
“어? 어떻게 알았어요? 말볼이 놈들이 숨어 있는 곳을 알려줘서 멀리서 한 놈씩 저격했어요.”
수진이가 말볼을 데리고 간 것이 신의 한 수였다.
“나태준 헌터님, 죄송합니다.”
이수경이 고개를 숙였다.
검을 쓰는 헌터였군.
“이 게이트는 제가 독점하기로 했을 텐데요. 어째서 들어오지 못하게 막지 못한 겁니까?”
따져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깐 이 문제로 상부에 보고하는 사이 무턱대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나 봅니다. 따라 들어갔더니, 이미 시야에서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러다 여기 수진씨를 만난 것입니다.”
“뭐, 일단 이곳 상황은 정리됐고, 이일은 그쪽 책임이니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적절한 보상을 받으실 수 있도록 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원하시면 담당자를 바꿔드리겠습니다.”
“아니 그 말이 아닙니다. 이왕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으니, 나를 좀 도와줬으면 합니다.”
“네?”
그녀를 보자마자 좋은 생각이 났다.
뜨거운 햇살 아래, 이수경의 검이 번쩍였다.
촤악!
“퀙!”
D급 도마뱀 괴수 카나헤의 머리가 떨어졌다.
알고 보니 이수경은 C급 헌터였다.
커피 중독자였지만, 한 자루 검을 기가 막히게 썼다.
게다가 흰색 브라우스에 검은색 슈트가 검과 꽤 어울렸다.
저런 복장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잠시 상상에 빠졌다.
검은색 슈트를 입고, 등엔 강철 배낭을 메고, 한 손엔 백정의 칼, 또 다른 한 손에 쇠사슬 달린 갈고리. 그리고 그 앞에 못생긴 말볼 한 마리......
헐, 이 무슨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인가.
고개를 흔들어 상상에서 빠져나왔다.
“아니 그 실력으로 왜 게이트 브로커를 하는 거죠? 헌터로 나서도 상당히 잘할 것 같은데.”
“다 각자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지금의 자리에 만족합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할 수도 있지.
하지만 자신은 헌터의 정점을 찍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진아.”
파파팍!
화살이 연이어 모래 위에 박히자, 도마뱀처럼 생긴 카나헤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와 동시에 내가 던진 갈고리가 놈의 목을 낚아챘다.
쿵!
놈이 게이트 뒤쪽 마른 땅에 떨어져 바둥거렸다.
그러자 이수경이 달려들어 단칼에 목을 잘라냈다.
모래 밖으로 나온 괴수 카나헤는 힘을 쓰지 못한다.
특히 눈이 나빠서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갈고리에 포획되면 공포감이 올라가기에 판단력이 떨어진다.
이때 이수경이 달려들어 칼을 휘두르면 끝!
이런 낚시 방법으로 여태 잡은 카나헤가 쉰 마리가 넘었다.
덕분에 해체 스킬도 레벨 4로 올랐다.
“휴!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합니까?”
힘에 부쳤는지, 이수경이 숨을 거칠게 쉬었다.
“게이트가 소멸하기 전까지! 그리고 머리만 정확히 잘라요. 눈알이나 뇌는 팔아야 하니까.”
무료인력이니 끝까지 부려먹어야겠다.
사실 내가 해도 되는 일이지만, 그놈하고 싸울 때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20마리가 채워지면 내가 가서 놈들을 해체한다.
D급 마석은 하나에 3천만원, 놈의 눈과 뇌, 허파 등 쓸모 있는 부산물이 제법 많았으니, 돈은 제법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수경은 내가 괴수를 해체하는 모습에 경악했고, 왜 내가 공략이 끝난 게이트에 들어가고 싶은지 알았다.
하지만 지은 죄(?)가 있었기에 비밀을 지키기로 했다.
이번 클리어된 게이트는 처음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특히 공략이 끝난 게이트에서도 충분히 경험치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창수가 만든 장비가 괴수나 소환수, 그리고 같은 헌터에게도 통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창수에게 아이템을 업그레이드 받으면 자신의 실력은 더욱 빠르게 올라갈 것이다.
이날 D급 마석 19개와 각종 부산물을 얻고, 유니크 아이템까지 얻었다.
각반을 넘겨준 사내는 게이트에 다시 들어갔다가 죽은 거로 처리했다.
***
“어머! 강아지 정말 못생겼다.”
“게르르르!”
말귀를 알아듣는 걸까?
말볼이 여자를 향해 으르렁댔다.
“이놈 사람 물어요.”
여자가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서, 서둘러 사라졌다.
말볼에게 개 옷을 입혔고 목줄까지 했다.
그랬기에 매우 답답할 텐데.
놈은 산책하는 것이 더 좋은지, 참고 강아지처럼 빨빨거리며 다닌다. 그리고 예쁜 강아지들만 보면 침을 흘린다.
이놈 분명 수놈일 거야.
“좀 쉬자.”
벤치에 앉았다.
모처럼 게이트에서 돌아와 괴수나 헌터 일을 잊고, 커피 한잔을 들고 공원에 오니 자신도 다시 일반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지나가면서 말볼을 한 번씩 다 쳐다봤다.
나도 안다고, 이놈 못생긴 거.
“크르르릉! 왈! 왈!”
커다란 핏불테리어 한 마리가 주인과 함께 내 앞에 섰다.
놈이 하도 말볼을 향해 사납게 짖어서 신경이 쓰였다.
“그 개 좀 저리 치우죠?”
하지만 노란 머리 사내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곳은 흡연이 금지된 공원이었다.
게다가 맹견임에도 입마개를 하지 않았다.
사내는 담배를 다 피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싸가지없는 놈.
그런데.
“안돼!”
목줄을 놓쳤는지, 핏불테리어가 무서운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왔다.
그 순간 말볼이 스스로 목줄을 풀고 풀숲으로 달렸다.
맹견은 방향을 바꿔 말볼을 추격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릴 틈이 없었다.
“말볼!”
서둘러 말볼을 찾아 나섰다.
“민식아! 이리와!”
사내 역시 자신의 개 이름을 불렀다.
그때였다.
“아우! 깽깽!”
공원 화장실 뒤쪽에서 개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민식이 아범과 달려갔다.
그런데...
믿지 못할 광경.
핏불테리어 위를 말볼이 올라타고...
이건 교미...
그 순간 말볼이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내려왔다.
사돈이 된 민식이 아범을 쳐다봤다.
“뭐, 뭐한 거야? 우리 민식이는 수놈이라고!”
참, 저놈 이름이 민식이었지.
그렇게 두 부자를 피해, 서둘러 말볼을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먹을 것을 사고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뭐지?’
우체부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2121호 주인 되세요?”
“네.”
“성함이?”
“나태준입니다.”
“맞네요. 등기 왔습니다. 여기 사인 좀.”
사인하고, 봉투에서 탄산음료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더운데 한잔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편지를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발신자가.
“국가 헌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