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22화 (22/149)

# 22

22. 헌터증(2).

스피커에서 똑똑히 들린 목소리에 컨트롤룸의 직원들은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강팀장이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나를 호출한 거야?”

직원들은 방금 일을 보고했다.

그러자 강팀장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실수한 직원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새끼 일부러 그런 거지, 나 다음 달에 사무관 승진 대상인 거 몰라?”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D급 프로그램을...”

한 명의 실수로 치부하기엔 일이 너무 커졌다.

되돌릴 방법은 없었고 안에 있는 각성자는 더욱 큰 소리를 내고 있었다.

- 거기 안 들립니까? 난 멀쩡하니까 다음 E급 테스트를 주란 말입니다. -

“어떡하죠?”

강팀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 성기용 사무관님, 왜 다음 테스트를 안 주시는 겁니까? -

“뭐 성기용 사무관님이라니? 무슨 말이야?”

직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게 방금 성기용 사무관님께서 이곳에 다녀가셨습니다.”

“뭐? 우리 부서도 아닌 사람을 왜 이곳에 들였어?”

“그게...”

직원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헌터 사무관은 국가 헌터원의 중간 관리직이었다.

지금은 성기용이 외부 게이트를 돌고 있지만, 언제 다시 돌아와서 자신들의 상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를 막을 순 없었다.

“팀장님, 저 각성자는 어떻게 하죠.”

스피커는 차단했지만, 항의하는 게 분명했다.

강팀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뭘 어떻게, 이거 새어 나가면 너희들 다 잘리는 거 몰라? 그냥 F급 줘서 내보내.”

“하지만 D급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인데요?”

강팀장의 말에 한 직원이 손을 들고 말했다.

“아무리 이제 각성했다곤 하지만, 저 괴수가 D급 인지 금방 알아차릴 겁니다. 저 헌터가 밖에 나가서 떠벌리면, 일이 더 커질 텐데요.”

“영상 삭제하면 되잖아.”

“감사에서 100% 걸릴 텐데요.”

“기계 오류 몰라? 그걸로 보고하고, 이 새끼가 커피라도 쏟았다고 말을 맞춰.”

그는 실수한 직원의 목덜미를 꽉 쥐고 있었다.

“영상 삭제할까요?”

“아니! 잠깐 기다려봐. 아씨, E급이라도 줘서 입막음해야 하나.”

강팀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띠-----!

“뭐야?”

“국장님, 직통 전환데요.”

“뭐?”

황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강팀장은 정말 공손히 두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럼요. 곧 데리고 올라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강팀장은 한숨을 쉬었다.

“각성자가 D급 테스트 통과하면 국장실 보고 가는 거 있었냐?”

직원들도 서로를 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E급 테스트 통과하면 팀장님한테 보고 올라가는 것만 알고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각성자 테스트 프로그램이 생긴 이후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었으니, 팀장도 모르고 있었다.

“아씨, 이거 어떤 새끼가 프로그램한 거야.”

“팀장님, 영상 삭제할까요?”

“너 미쳤어? 국장님께서도 아시는데, 영상 백업하고, 저 각성자 회복실로 보내.”

“저, 등급은요?”

“영상하고 종합능력치 안 보여?”

잠시 후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 나태준, 최종 판결 D급 헌터. -

헌터 역사상 최초로 각성자가 D급 헌터가 되었다.

***

어렴풋이 침대 아래로 굴러가는 바퀴의 진동이 느껴졌다.

의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를 물 먹이려 했단 말이지.’

성기용이 자신을 보며 겉으론 웃고 있어도 적대적일 거라는 것은 당연했다.

그날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그를 만났을 때, 그는 나와 시비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제제 없이 그냥 보내주었다.

그건 게이트 안에 마석과 부산물들을 던전 청소업체에 소개하면 20~30%의 이익을 헌터 대신 자신이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텅텅 빈 게이트를 봤을 땐 어떤 표정이었을까?

실제로 성기용은 도하준이 대표로 있는 던전 청소업체 한성 실업을 불렀다.

대형 차량과 마흔 명의 직원들이 도착했고, 보안직원들까지 안으로 진입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는 자신의 피 같은 돈을 토해냈다.

하지만 신이 도왔는지, 용산 헌터 시장에서 나태준과 도하준이 거리에서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싸움을 옆에서 지켜봤다.

그 순간 자신이 날린 돈을 복구하고도 더 벌 방법을 생각했다. 물론 나태준이 국가 헌터원으로 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헌터 협회로 간다면 전혀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이제 D급 헌터란 말이지.’

태준은 웃음이 지어졌다.

사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지금도 상태창을 열면, 자신의 등급은 F급으로 적혀 있었다.

D급 헌터는 전사 계열 테스트로 얻어진 결과였으니, 뭐가 진짜인지 조금은 헛갈렸다.

그리고 조금 전 처음부터 D급 괴수를 왜 들여 보냈느냐고 항의했다면, 나중에 성기용이 그 일로 꼬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제 각성한 자가 어떻게 D급 괴수를 알아볼 수 있었냐고 따지고 들 수도 있었고, 이미 수년 전에 각성해 불법 게이트만을 이용해 D급 괴수까지 처리할 실력을 쌓았을 거라고 오히려 나를 범죄자로 몰 수도 있었다.

이번 연기는 그런 사소한 꼬투리까지 원천 차단하기 위한 연극이었다. 그리고 뒤를 캐다 보면 내가 불법 게이트를 이용한 것도 나올 수 있었으니. 선수를 친 것이다.

“나태준씨 정신이 드십니까?”

“누구시죠? 성기용 사무관님은 어딜 가시고?”

“아, 강하늘 팀장입니다. 제가 담당입니다.”

“네? 그럴 리가요. 성기용 사무관님이 담당이라고 하셨는데.”

“뭔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무튼, 이제 모두 끝난 건가요?”

“먼저 축하드립니다. D급 헌터가 되셨습니다.”

“네? D급이요? 그럴 리가 없는데요. 전 이제 각성해 F급 테스트를 받았습니다만.”

“그게 저희가 최근 시험하고 있는 최첨단 시스템이 있습니다. 각성자의 자질과 능력을 고려해 프로그램에서 자동으로 맞는 등급 테스트를 시행하는 것이죠. 나태준 헌터께서는 자질이 훌륭하셔서 컴퓨터가 자동으로 D급 테스트를 시행한 겁니다.”

“아, 어쩐지 괴수들이 강하더라.”

어디서 말을 잘 만들어 왔다.

공무원들의 특성인가...

역시나 일을 해결 하기 보단, 묻기 위해 쉬쉬하고 있다.

이제 이건 비밀로 해달라고 하겠군.

“물론 이것은 아직 대외비라, 비밀은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러죠. 그럼 이제 가도 되는 겁니까? 동료가 기다려서요.”

“저, 지금 밖으로 나가면, 기자들과 대형길드, 대기업 스카우터들에게 둘러싸일 겁니다.”

“네?”

“어떻게 소문이 새어 나갔는지, 이미 대기하고 있더군요. 그리고 동료분은 먼저 안전하게 집으로 모셔다드렸습니다.”

강하늘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지금 저희 헌터원 국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국장님이요?”

“네. 대한민국 최초로 각성자가 D등급 헌터가 된 것이니, 윗분들께서 벌써 관심이 많으십니다.”

헌터원 국장이라면 넘버4 정도 되려나?

정확한 건 모르지만, 상당히 높은 자리임은 분명했다.

“좋습니다. 앞장서시죠.”

***

똑똑.

“들어오게.”

“최국장님, 나태준 헌터님 모시고 왔습니다.”

“고맙네, 아무도 들여 보내지 말게, 자네도 나가보고.”

“네.”

헌터원 국장이란 사내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당히 젊은데?’

국장이라면 머리가 희끗희끗한 50, 60대라 생각했다.

그런데 뒷모습만 봐서는 많아야 30대 정도밖에 안 보였다.

“거기 앉지.”

목소리도 젊었다.

“태준이 너도 헌터가 됐구나.”

“누, 누구?”

왠지 불안했다.

나를 알고 있다. 설마?

최국장이 몸을 돌렸다.

“너, 최규환?”

“오랜만이네.”

반 친구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규환은 모를 수가 없었다.

전교 회장이었으니까.

“네가 정말 국가 헌터원의 국장이라고?”

“왜 어울리지 않아 보여?”

“...”

6학년 3반 영웅들이 어느 자리에 있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최규환은 대한민국 유일한 A급 정령 술사였다.

그저 갑작스러운 만남에 약간 당황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놈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최규환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먼저 축하해야겠지. 헌터가 된 걸 축하해.”

“고마워.”

“매우 놀라운걸, 각성하자마자 D급 헌터라니. 어디서 불법 게이트라도 털고 다녔나 보지?”

인상을 찡그렸다.

“이거 축하 자리가 아니라, 심문 받는 자리였군.”

“하하하! 농담이야. 지난 10년간 네 기록을 보니 너무 깨끗하더군. 던전 청소부로 일한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이미 자신의 지난 과거에 대해 조사가 끝났다.

“그보다 밖에 저 사람들은 왜 불렀어?”

“누구 기자들? 왜 내가 불렀다고 생각하지?”

“그 이유까지 말해줘야 해?”

“하하, 아니. 내가 부른 거 맞아. 각성자가 최초로 D등급을 받았는데, 이렇게 좋은 홍보 거리가 없지.”

“이게 국가 헌터원에 홍보가 된다고?”

“그래, 헌터 협회와 비교하면 우리가 헌터들과 국민들에게 인기가 없는 거 너도 알잖아.”

하긴 자신도 헌터 협회에 가서 헌터증을 발급받으려 했다.

사실 국가 최고 기관인 국가 헌터원이 있음에도 무슨 일인지 헌터 관련 일에선 헌터 협회를 더 알아줬고, 실제로 입김도 더 셌다. 특히 헌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이트를 확보하는 숫자에서 2배 이상 차이가 벌어졌다.

최규환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있어서 날 부른 거 아냐?”

“맞아. 한데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야.”

최규환은 살짝 입술을 씰룩거렸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지. 반 애들이 전교 회장인 나보다 반장인 너를 더 많이 따랐잖아.”

갑자기 오래전 일을 들추는 의도를 몰랐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 국가 헌터원으로 들어오는 게 어때? D급 헌터라면 바로 사무관 자리 정도는 내 힘으로 넣어줄 수 있는데. 아, 그리고 최고급 자동차에 운전기사, 그리고 강남에 집도 하나 구해주지.”

이게 말로만 듣던 낙하산이구나.

게이트 발생 전이나 후나 여전히 정치권하고 국가 기관은 썩어 있었다.

이러니 헌터 협회로 사람이 몰리는 것이다.

평소에 관심도 없던 곳이라, 대답은 바로 나왔다.

“거절하지.”

“왜? 내 제안이 별로인가?”

“솔직히 제안도 별로고, 아직 어딘가에 얽매이는 건 싫어서.”

“그럼 혼자 활동하려고? 쉽지 않을 텐데... 아니면 헌터 협회나 어디 다른 길드를 생각해 두고 있는 건 아니지?”

지금 보니 이놈도 헌터 협회에 피해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한 곳은 없어. 하지만 어디든 게이트를 많이 소개하는 곳하고 일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슬쩍 미끼를 던졌다.

“게이트에 욕심이 있군.”

“헌터라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늦게 시작한 만큼 부지런히 달려야 해서.”

최규환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란 놈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

“게이트라 그거라면 내가 조금 도와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또 영입 제안인가?”

“아니, 투자라고 말하고 싶군.”

“게이트라도 주려고?”

“그것도 아니야. 아무리 나라고 해도 게이트를 마음대로 줄 수는 없는 법이지.”

규환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틀 전에 D등급 불법 게이트를 하나 덮쳤는데, 그걸 이번에 각성한 헌터들만 공략할 수 있게 공개 게이트로 발표하지.”

공개 게이트, 자신도 들어 본 적 있었다.

뒤늦게 발견된 낮은 등급의 게이트를 일반 헌터들에게 공개해 등급 업을 유도하고, 경험을 쌓게 하는 것이다.

이 공개 게이트는 게이트 등급보다 높은 헌터는 참가하지 못하고, 그 등급 이하의 헌터만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가 헌터원 소속의 고레벨 헌터가 함께 들어가 관리를 하기에 안전했고, 헌터들 간에 치열한 싸움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다.

“거기서 네가 경쟁을 뚫고 게이트를 클리어한다면, 나도 위에다가 말해서 게이트를 소개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

“일종의 테스트인가?”

“뭐, 비슷한 거지. 높으신 분들은 실적이나 타이틀 같은 걸 좋아하거든.”

국가 헌터원의 국장보다 높은 사람이면 누굴 말하는 걸까?

단장? 원장? 아니면 그보다 위?

어쩌면 눈앞에 규환이 자신을 도와줄 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믿을 순 없겠지만...

일단 제안은 반가웠다.

게이트를 공략하는 것이라면, 뭐든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좋아, 한번 해보지. 대신 게이트 소개 약속은 꼭 지켜.”

최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더 볼 일은 없는 거지?”

“공개 게이트 참가 신청 관련해서는 곧 전화가 갈 거야. 같이 갈 사람들이 있으면 미리 말해놔.”

“알았어.”

친절한 규환씨로군.

“그리고 지하에 내 차를 타고 나가게 조치해 뒀어, 물론 메스컴에 나서고 싶다면, 정문으로 나가도 되고.”

“차를 이용하지. 아직 인터뷰할 멋진 말도 생각 안 했거든.”

밖으로 나가는 태준을 보며, 최규환은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나태준, 역시나 특이해. 왜 저놈만 보면, 이상한 경쟁심이 생기는 걸까. 그보다 이거 잘만 하면 뭔가 변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가 손가락을 들자 벽과 천장, 바닥과 문을 덮고 있던 얇은 물들이 손가락 끝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 물은 커다란 빈 어항을 채웠다.

그때였다.

탈깍!

나태준이 다시 들어왔다.

“왜? 할 말이 남았어?”

“국장님께 공익 제보하나 해도 될까?”

“제보? 뭔데?”

“아주 비리가 차고 넘치는 놈을 내가 하나 아는데. 성기용 사무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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