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
23. 공개 게이트(1).
“이놈 잘 놀고 있었냐?”
“께겍겡!”
나를 본 말볼은 미친 듯이 꼬리를 친다.
뭐가 저리 좋을꼬?
“왔어?”
하지만 창수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나 헌터증 나왔다.”
“그래.”
“D급이야.”
자랑하듯 흔드는 헌터증 가운데 알파벳 D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네 실력이라면 그 정도는 나올 것 같았어.”
창수는 놀라지도 않았다.
아니 이미 이런 결과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창수도 모르는 게 있었다.
자신의 백정 스킬 말이다.
괴수와 똑같이 생긴 더미를 박살 내는 것만 봤지. 실제로 괴수의 약점을 발견하고, 놈들의 뼈와 살을 해체하며, 고기와 내장을 감식하는 진짜 자신의 클래스 스킬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각성자 테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신 계열 헌터들의 능력으로 구현됐기에 괴수가 실제와 같은 능력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뼈와 살, 근육이 없었다.
“아무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너 알고 있었냐?”
“뭐?”
“최규환이 헌터원 국장이었다는 거.”
창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났어?”
“일부러 나를 국가 헌터원으로 보낸 거야?”
“솔직히 말하면, 그래.”
“이유가 뭐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최규환이 네 가치를 알아본다면, 네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어. 아니었어?”
창수가 되물었다.
마치 최규환이 내게 제안한 것을 알고 하는 말 같았다.
순간 눈앞에 이놈이 내가 알던 창수가 맞나 헛갈렸다.
초등학교 때 이놈은 왕따였다.
덩치는 산만한데, 에니메이션 여주인공 피규어를 여자친구라고 소개하고 다녔으니, 누구라도 가까이 지내기 어려웠다.
그러던 놈이 15년 만에 전신에 화상을 입고,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없는 모습으로 나타나 날 놀라게 하더니, 다음엔 뛰어난 A급 도구 계열 헌터의 모습으로 소름 돋게 했다.
그러더니 이젠 최규환을 붙여 줬다고?
점점 창수가 누군지 모르겠다.
“왜지? 왜 날 돕는 거지?”
“어서 네가 강해지기를 바라니까.”
“그게 다야?”
처음엔 내가 그를 돕는 느낌이었다.
비참한 모습으로 사는 놈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창수가 나를 맹목적으로 돕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얼 바라는 거지? 그냥 우정인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금의 내 모습을 동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데, 태준이 너만은 날 평범하게 대해줬어. 어렸을 때도 그랬지, 그건 정말 고맙게 생각해...”
쑥스럽게 옛날이야기를...
“지금 당장 너에게 원하는 건 없어. 그저 네가 잘 되고 빨리 성장하는 게 내가 원하는 거야. 너 혼자 늦게 각성했잖아.”
“나중에는 원하는 것이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네가 정말 강한 힘을 얻는다면 그땐... 그땐... 네게 뭔가 부탁할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창수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잘린 두 다리와 흉측하게 일그러진 화상 자국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떨었다.
“으...으윽! 야, 약을...”
서랍을 가리켰다.
“으아아아!”
창수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서둘러 서랍에서 약을 꺼내 창수에게 달렸다.
“크아악!”
약을 먹였지만, 바로 괜찮아지진 않았다.
창수는 고통에 온몸을 떨었고, 식은땀까지 흘렸다.
괴로워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보였다.
“큭! 그런 동정 어린 표정 짓지 마!”
“뭐?”
“넌 아무것도 몰라, 진짜 동정을 받아야 하는 게 누군지, 우리가 어떤 지옥을 견디며 괴수를 죽였는지.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갔는지.”
“갑자기 무슨 말이야?”
창수가 고개를 숙이자,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게 되는 거야. 누구를 탓할 수도 없지. 우리, 아니 녀석들을 괴물로 만든 건 그들이니까.”
창수가 머리를 흔들며 계속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내가 그들을 편들었기에 이렇게 된 거야. 미안해! 크흑흑... 이것도 다 내 업보(業報)고, 인과응보야! 하지만 이 고통은 너무 끔찍해!”
“창수야 정신 차려, 대체 왜 그래?”
창수는 머리를 움켜쥐며 필사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다 몸에 떨림이 멈췄다.
그는 영혼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바라봤다.
“미, 미안해. 가끔 발작이...”
“이제 괜찮아?”
“괜찮아.”
창수가 진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태준아, 그만 가봐. 난 내일 어딜 좀 가야 해서, 그만 쉬어야겠다.”
“방금 이야기는 뭐야? 알아듣게 이야기 좀 해봐.”
내가 계속 물었지만, 창수는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지금은 피곤해, 다음에 다녀와서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가방에 전투복 종류별로 몇 개 만들어 넣었어. 수진이 것도 있으니까 네가 전해줘.”
“이런 몸으로 어딜 가려고?”
“그냥, 누굴 좀 만나야 해서.”
“정말 괜찮은 거야?”
“그렇대도.”
나를 위해 애써줬는데, 녀석에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했다.
“그리고 방금 내가 한 말, 마음에 두지 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떻게 담아두지 않겠는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피곤해하는 창수의 어깨를 다독이며 일어났다.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오고, 약은 인벤토리에 넣어. 급할 때 찾지 말고.”
“그래. 고맙다.”
창수를 뒤로하고, 말볼을 데리고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우리라고? 창수가 말한 우리는 6학년 3반 친구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고? 또 인과응보는 뭐지?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늘 TV에 나오고,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칭송받는 반 친구들에게 어떤 말 못할 비밀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아저씨!”
“어? 수진이 네가 여긴 웬일이냐? 아깐 잘 들어갔어?”
“지금 집으로 가지 마요. 기자들과 방송국 사람들이 아저씨 오피스텔 아래에 몰려 있어요.”
이게 무슨 일이지.
아무리 각성자가 D급 헌터가 된 일이 처음이라지만, 너무 과한 것 같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아저씨가 대단한 줄 알았지만, 단번에 D급이라니, 놀랐어요. 난 F급인데...”
“너도 2마리만 더 잡았으면, E급 헌터가 됐을 거야. 내가 직원들이 하는 이야기 들었어.”
“정말이요? 아쉽네. 그냥 칼로 죽일걸. 인벤토리에서 화살 꺼내다가 죽었네.”
“그러니까 너도 그 단도를 쓰는 법을 더 단련해야 해. 괴수가 언제 달려들지 모르니까.”
“네, 그래야죠. 근데 아저씨가 가르쳐 줘야죠. 내가 어디서 배워요.”
“그래? 그럼, 날 잡아서 알려주지. 참고로 난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친다.”
“그럼 김밥은 내가 싸갈게요.”
순간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 아니. 맨날 얻어먹기만 했으니, 내가 준비하지.”
“아저씨가요? 그래요 그럼.”
“그리고 며칠 안에 게이트 공략 들어갈 거니까 준비해.”
“게이트요? 이수경씨가 이젠 더 공략할 게이트가 없다고 했는데?”
“공개 게이트야. 경쟁이 치열할 테니까 단단히 준비해.”
“아! 저 탐색 스킬 레벨 올랐어요. 이제 미니맵 범위가 75m로 늘었어요.”
“그래? 잘됐네.”
일단 수진이는 탐색 스킬이 있으니 함께 데려갈 생각이었다.
‘그보다 오늘 어디서 자지?’
***
[대부도]
외제차와 고급 승용차 수백 대가 선착장 주차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다 뭔 일이래?”
“풍어도에 게이트가 떴다는구만.”
“게이트? 그럼 이 사람들이 다 헌터들인감.”
“아무래도 그렇겠지.”
버스에서 먼저 내린 수진이가 나를 바라봤다.
“아저씨 돈도 많으면서 차 안 뽑아요?”
“면허 없다.”
“뭐 했어요. 그 나이 되도록?”
“일했다.”
“치! 그리고 아저씨는 블랙 슈트인데, 난 왜 까만 체육복이죠?”
“그건 창수에게 물어봐. 네가 늘 체육복을 입고 다니니까 그걸로 만들었나 보지.”
수진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저건가 보다.”
선착장에 커다란 쾌속선 한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중무장한 경비함이 선착장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헌터들이 차례로 쾌속선을 탔고, 우리도 승선했다.
그런데 배에 타자마자, 한 남자가 노려보고 있었다.
저놈이 여길 왜 왔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성기용 사무관님이 아니십니까?”
“네놈이 나를 제보했다고?”
“헌터원에 입 싼 새끼들이 많군요.”
“네놈 때문에 정직 먹고, 조사받고 있다. 나를 물 먹이고도 무사할 줄 알아?”
“글쎄. 무사할 것 같은데.”
“뭐? 윽, 나 성기용이 아직 안 죽었어.”
피식 웃어줬다.
그리고.
“저 여기요.”
입구에 직원을 불렀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이 배에 민간인이 타도 되는 겁니까?”
“네?”
“여기 민간인이 있어서요.”
성기용을 쳐다봤다.
“저분은 저희 헌터원 직원이신데요?”
“정직 받은 거로 아는데요. 그럼 민간인 아닙니까?”
“그, 그건 맞지만...”
“무슨 일이야?”
그때 거구의 한 남자가 다가왔다.
“헌터 사무관 심선경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여기 민간인이 타고 있어 제보했습니다.”
심선경의 시선이 성기용에게 향했다.
그러자, 성기용이 웃으며 말했다.
“나 알지? 헌터 사무관 21기 성기용이야. 여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심선경이 고개를 돌려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지금 누가 민간인을 배에 태우라고 했어!”
우레와 같은 목소리에 직원들이 당황했다.
“어서 안 내려보내!”
“네, 알겠습니다.”
직원들이 성기용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거 안 놔! 나 정직 풀리면 그땐 모두...”
“비리로 조사받는 새끼가 말이 많군.”
“무...뭐?”
심선경이 다가가 성기용의 멱살을 한 손으로 잡아 들었다.
“커, 컥! 너...너.”
성기용은 발버둥 쳤으나, 심선경의 완력이 너무 강해 공중에 떠 있었다.
“너 같이 돈만 밝히는 새끼들 때문에 우리 헌터원이 헌터 협회에 발리는 거야. 꺼져! 죽고 싶지 않으면.”
쿵!
“크윽!”
“뭐해, 어서 끌어내.”
“네!”
직원들이 성기용을 배 밖으로 끌어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나태준 헌터님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최규환 국장님께서 특별히 모시라고 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
D급 게이트.
풍어도 끝자락에 작은 산이 있었고, 그곳에 검은 구멍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회관 앞에 300명이 조금 넘는 헌터들이 모였다.
모두 이번 게이트 발생으로 각성한 헌터들이었다.
심선경 사무관이 나와 규칙을 설명했다.
공개 게이트 공략 규칙은 간단했다.
모두 한꺼번에 들어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것.
게이트를 클리어한 사람은 상금으로 5억과 국가 헌터원이 확보한 게이트 하나를 우선 공략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한다.
이건 최규환의 말대로였다.
게이트 안에선 최대한 자유로 사냥을 하지만, 관리하는 헌터 사무관의 제지가 있을 경우 사무관의 말을 듣는 것이 유일한 규칙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입거나 자신이 없는 경우 게이트 안에 마련할 베이스 캠프로 돌아오면 보호받을 수 있다.
이번에 관리자로 참가한 사무관들은 모두 C급 헌터들로 게이트 공략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먼저 헌터 사무관과 중무장한 군인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먼저 베이스 캠프를 차리는 동안 헌터들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 D급 헌터가 된 각성자도 참가하는 건가?”
“하겠지. 실력을 보일 기회잖아.”
“그런데 누굴까? 소문엔 키가 2미터가 넘는 거인이라고 하던데.”
“에이, 그거 다 뜬소문이야.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린 거래.”
“거짓 정보라니?”
“이제 각성한 헌터가 어떻게 D급이 되냐고? 그게 말이 돼. 이건 국가 헌터원이 신입 헌터들을 끌어모으려는 수작이야.”
헌터 협회에서 헌터증을 받은 헌터들이 입을 모았다.
“그건 맞아, 우리 천재 태성씨도 E급인데 말이지.”
주변에 있던 헌터들의 시선이 일제히 몰렸다.
이태성.
그는 이번에 각성한 헌터들 중에서 유일한 E급 헌터였다.
게다가 재계 순위 8위의 산하 그룹의 막내아들이자, 그룹에서 운영하는 산하 길드에 입단 예정인 천재 헌터.
특히 여자 헌터들의 시선은 노골적이기까지 했다.
준비가 모두 끝났는지, 심선경 사무관의 목소리가 울렸다.
“지금부터 게이트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헌터들이 앞다퉈 들어갔다.
“오늘 괴수 피 좀 보겠군.”
“괴수 새끼들 다 조져버릴 거야!”
기운 넘치는 초보 헌터들이 호기를 부렸다.
“아저씨, 들어가요.”
“아니, 기다려.”
하지만 태준은 게이트 옆으로 비켜서 기다렸다.
300여 명이 다 들어가는데도 10여 분이나 걸렸다.
“이렇게 늦게 들어가도 돼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는 말 알아?”
“그럼요. 내가 바본 줄 알아요.”
“그러니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 괴수도 잡아본 놈이 잡는 거고, 게이트도 클리어해 본 놈이 하는 거야.”
태준은 슈트 차림에 백정의 칼을 꺼내 들었다.
“자, 간만에 괴수 포 좀 떠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