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24. 공개 게이트(2).
이 게이트에는 또 어떤 괴수가 나올까?
적당한 긴장감과 나쁘지 않은 기대감에 심장이 뛴다.
“가자.”
게이트 안으로 먼저 몸을 날렸다.
어둠이 지나고 곧 빛이...
“으헉!”
무언가 거대한 힘이 작용해 아래로 밀려 내려간다.
이건?
“커허헉!”
“으아아아아!”
앞서 들어간 헌터들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나 또한 거대한 물살에 밀려 내려가고 있었다.
퍼걱!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 헌터의 머리가 깨지며, 바위에 피가 번졌다.
그 순간 내 앞을 가로막는 바위가 보였다.
이건 좀 위험하다.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을 사용합니다.]
다리에 힘이 솟는다.
바위를 딛고 순식간에 그 위에 올라섰다.
엄청난 급류의 힘을 이겨낸 것이다.
“휴!”
“커헉! 태준 옵...빠!”
내 뒤를 따라 흘러내려 오는 수진이가 보였다.
연신 물을 먹는 게 위험해 보였다.
생각할 틈 없이 티탄의 갈고리를 꺼내 급하게 던졌다.
촤르르르르!
“잡아!”
아래로 떠내려가는 순간 수진이가 가까스로 갈고리를 잡았다.
조금만 늦었다면, 떠내려갔을 것이다.
수진이를 바위 위로 올리자, 시스템 메세지가 떴다.
[요람의 골짜기(D등급)]
[첫 번째 클리어 조건 : 어미 오도나타(C)를 죽이시오.]
[두 번째 클리어 조건 : 쏠라돈(D)을 죽여 요람의 분노를 잠재우시오.]
[세 번째 클리어 조건 : 240시간을 버티시오.]
[현재 카운터 : 오도나타(C) - 0/1, 쏠라돈(D) - 0/10]
[클리어 시까지 남은 시간 : 238:42:31]
[보상 : 첫 번째 조건 클리어 - 녹음(綠陰)의 링(유니크), 두 번째 조건 클리어 - 화염의 룬(레어), 세 번째 조건 클리어 - 체력의 룬(노멀)]
뭐지 클리어 조건이 세 개나 된다고?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수진아, 괴수는?”
“우웩! 없어요.”
수진이가 먹은 물을 토해내며 대답했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양옆으로 가파르고 높은 계곡이 이어져 있었고, 거대한 급류가 아래로 굽이굽이 흐르고 있었다.
“올라가도 별거 없겠는데...”
뾰족한 봉오리들이 연이어 이어지고 있었다.
위로 올라가도 길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휩쓸려가는 헌터들이 보였다. 이미 몇몇은 죽었는지 시체처럼 떠내려가고 있었다.
던전 청소부 생활 7년, D급 이하의 수많은 던전을 들어가 봤지만, 이런 게이트는 처음이었다.
겨우 정신 차린 수진이가 몸을 일으켰다.
“헉헉, 수영도 못하는데 죽을 뻔했네.”
“자식, 그래도 활은 놓치지 않았네.”
“생명줄인데 놓치면 큰일이죠.”
수진이가 젖은 머리를 뒤로 넘기며 배시시 웃었다.
“구해줘서 고마워요.”
“말볼도 놓고 왔는데, 너라도 있어야 내가 편하지.”
짓궂은 말로 대답했지만, 수진이는 싫지 않은 표정이다.
“수영 하나도 못해?”
“네.”
“어쩌냐? 다시 물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에?”
“여기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아래로 내려가 다른 헌터들하고 합류하는 게 좋겠다.”
수진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갈고리를 인벤토리에 넣고, 포정의 칼 하나만 들었다.
“업혀! 내가 아래까지 데려가마.”
“나 무거운데...”
“이 오빠 다리 힘이 장난이 아니거든. 꽉 잡아!”
수진이도 마그투스의 각반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이는 자신만 알고 있는 것으로 비밀 무기였다.
“간다.”
수진이를 업고 급류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위험할 때마다 다리를 이용해 방향을 틀자, 어렵지 않게 내려왔다.
한참을 내려가자, 곧 물살이 약해지더니 넓고 깊은 호수로 이어졌다.
그리고 호숫가로 헌터들이 하나둘 올라가고 있었다.
“나와!”
“어서 호수에서 나오란 말이야!”
게이트로 먼저 들어간 헌터 사무관과 군인들이 소리쳤다.
뭐지?
그때였다.
“오빠! 사방에서 괴수가 다가와요!”
수진이는 겁에 질렸다.
“꽉 잡아!”
다리에 힘을 주어 빠르게 저었다.
그러자 앞으로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바로 뒤에 한 마리가 따라와요.”
그때 다리가 땅에 닿았다.
“밖으로 뛰어!”
수진이는 호숫가로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검을 들고 뒤로 돌아섰다.
파앗!
물속에서 커다란 놈이 튀어나왔다.
놈의 모습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백정의 칼을 수직으로 그었다.
“도살!”
쩌억!
놈이 두 동강이 되어 물 위에 떨어졌다.
[오도나타의 유충(F) - 오도나타의 알에서 깬 유충. 여섯 개의 다리로 물속에서 빠르게 유영할 수 있으며, 강력한 이빨로 먹이를 잡아먹는다. 물속에서 공격력 +20]
반으로 가른 오도나타의 유충을 물 밖으로 끌고 나왔다.
“오빠, 괜찮아요?”
“난 괜찮아.”
하지만 초보 헌터들은 그러지 못했다.
“으악!”
“사람 살.. 흡!”
헌터 사무관들과 헌터들이 총이나 활을 쏘아보지만, 물속에 있는 놈들이라 소용없었다.
미쳐 물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헌터들과 죽은 헌터들의 시체가 순식간에 물속으로 사라졌다.
“모두 물에서 떨어져!”
심선경이 소리를 질렀다.
이미 물속으로 사라진 헌터들은 가망이 없었다.
“사주 경계하고, 저쪽에 방어막 구축해!”
“네!”
가장 뒤늦게 들어온 심선경이 총지휘관이었다.
그가 지시를 내리자, 다른 헌터 사무관과 군인들이 주변을 경계하고, 호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바위 지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주변에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봐요?”
“쉿. 조용!”
반으로 갈린 오도나타 유충의 구조를 감식 스킬로 살피는 중이었다.
처음엔 상당히 당황했다.
이놈들은 곤충형 괴수.
몸속에 뼈가 없다.
방금 잡은 이놈은 껍질이 그리 단단하지 않았기에 단칼에 반으로 가를 수 있었지만, 등급이 높은 놈들이라면, 칼이 박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거 껍데기가 뼈 같네. 어딘가 약점이 있을 텐데...’
놈들의 피부는 뼈처럼 단단했고, 몸속에는 아예 뼈가 없었다.
피부 안쪽에 근육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몸과 다리를 움직이는 구조였다.
“다들 이쪽으로 모이세요!”
심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헌터들이 하나둘 진지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심선경은 잔뜩 주눅 든 초보 헌터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섭겠지. 다리는 후들거리고, 몸은 말을 듣지 않을 거다.’
헌터로 각성했다지만, 겨우 튜토리얼을 거치고 온 애송이들.
진짜 괴수를 처음 본 헌터들이 대부분 이었으니, 오늘같이 특수한 상황에 40여 명이 죽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헌터들이 대부분 앞으로 모였다.
“예상치 못한 게이트 구조에 당황하셨겠지만, 처음 계획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지금부터 이곳이 베이스 캠프입니다. 헌터분들은 클리어 조건을 확인하고, 자유로 사냥을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자신 없는 분들은 이곳에 남아 있어도 됩니다. 질문 있습니까?”
헌터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수십 명의 헌터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자유 사냥을 하라고요?”
“맞습니다. 이거 이벤트가 아니라 우리를 사지로 모는 거 아닙니까?”
“이딴 거 싫어. 집에 가고 싶다고!”
고딩으로 보이는 헌터는 아예 땡깡을 부리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헌터들이 거칠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심선경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지금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우리가 지금 초등학교 소풍 온 줄 알아!”
그의 크고 박력 있는 목소리가 헌터들을 압박했다.
“우린 괴수를 잡으러 왔다. 지금 이건 튜토리얼이나 테스트가 아니라 실전이야. 괴수를 죽이지 못하면 죽는 것이 헌터의 운명!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아무도 나가지 못해!”
그가 단호하게 외쳤다.
그러자 헌터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었다.
“어린애들처럼 징징대지 말고, 저기 저 사람처럼 헌터답게 굴란 말이야.”
심선경의 시선이 호숫가를 향하자, 헌터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검은 정장을 입고 괴상한 칼을 든 한 헌터가 오도나타의 유충을 닥치는 대로 잡고 있었다.
‘마디 쪽이 약하구나.’
구조는 곤충과 거의 흡사했다.
머리, 가슴, 배.
각각의 피부는 단단했지만, 껍데기가 맞닿은 부분은 유기적으로 겹쳐져 근육을 움직여야 했기에 살짝 틈이 있었다.
한마디로 뼈와 뼈 사이에 근육이 살짝 보이는 느낌.
헌터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집요하게 마디 사이에 칼을 쑤셔 박으며 놈들의 몸 구조와 칼의 감각을 손에 익히고 있었다.
“헉! F급 괴수를 일격에 죽이고 있어!”
“누구지?”
“혹시, 저 사람이 그 D등급 헌터 아냐?”
“그런데 뭐하는 거지? 저 유충은 아무리 잡아도 클리어되지 않는데?”
태준이 헌터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태성이 인상을 찡그리며 눈치를 주자, 이태성과 함께 산화 길드에 들어갈 헌터들이 나섰다.
“우린 이태성씨와 쏠라돈을 잡으러 갈 겁니다. 함께 갈 사람 있으면 모여 주세요.”
헌터들이 다시 쑥덕이기 시작했다.
태준이 괴수를 잡는 모습에 다행히 싸울 마음이 생긴 것 같았다.
“이태성? 그 E급 헌터 말이지.”
“우리끼리 C급 괴수는 잡기 힘들겠지?”
“무슨 소리야 E급 괴수도 힘들 거야.”
“이태성은 잡을 수 있을까?”
“그럼 클리어 보상은 어떻게 되는 거야?”
그때 이태성의 꼬봉이 큰소리로 외쳤다.
“이태성씨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함께한 헌터들에겐 모두 2억씩 지급하고, 쏠라돈을 잡는 사람에겐 5억을 지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뭐? 2억에 5억?”
헌터들이 쑥떡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우리끼리 클리어도 못 하는데, 이태성하고 함께 하면 2억은 받을 거 아냐?”
“그런가?”
“그래 차라리 모여서 D급 괴수를 잡는 게 낫겠어.”
헌터들이 하나둘 이태성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제법 숫자가 모였다.
심선경과 헌터 사무관들은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고, 베이스 캠프 안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좋아! 10마리만 잡으면 클리어야!”
“돼지 새끼들 잡으러, 가자!”
이태성과 그 무리가 100여 명이나 되는 헌터들을 이끌고 쏠라돈을 잡기 위해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다른 큰 길드에 들어갈 예정인 헌터들이 몇몇 그룹을 만들어 다른 방향의 숲으로 들어갔고, 나머지 자신 없는 헌터들은 그냥 베이스캠프에 남았다.
떠나는 이태성의 무리를 모습을 보고 헌터 사무관들이 떠들었다.
“역시 이태성이군요. 벌써 큰 무리의 우두머리가 됐습니다.”
“저건 돈의 힘이지. 이태성의 능력은 아니잖아.”
“무슨 소리, 돈도 능력이야.”
“그런데, 나태준은 왜 저기서 클리어 조건하고 아무 상관 없는 F급 괴수를 잡는 거죠?”
“그러게 말입니다. 주위에서는 저 나태준에게 게이트를 밀어주기 위해 만든 이벤트라고 소문이 돌던데, 이러다 이태성에게 빼앗기는 거 아닌가요?”
심선경이 인상을 찡그렸다.
“누가 그런 말을 해. 이건 공개 게이트야 누가 클리어해도 상관없는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도 최규환 국장으로부터 받은 명령이 있으니, 뭔가 찜찜했다.
“사주 경계 철저히 해, 초보 헌터들 잘 지키고.”
“네.”
***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태준은 계속해서 오도나타의 유충을 잡고 있었다.
한 50마리 정도 쌓이면, 해체해 마석과 부산물을 챙겼고, 점점 곤충 괴수에 대한 이해도 올라갔다.
[쏠라돈(D)을 잡았습니다.]
[쏠라돈(D등급) - 돼지처럼 생긴 괴수로 목에 사자의 갈기처럼 이십여 개의 촉수가 꿈틀거린다. 쏠라돈이 불을 뿜을 때면 갈기가 펼쳐지는데 그 모습이 꼭 태양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카운터 : 오도나타(C) - 0/1, 쏠라돈(D) - 3/10]
‘쪽수가 깡패로군.’
이태성의 무리인가?
벌써 D급 괴수 세 마리를 잡았다.
“심 사무관이 오고 있어요.”
“알았다. 우리도 잠시 쉬자.”
“넵.”
태준은 괴수 해체를 중지하고 허리를 폈고, 수진이는 유충 사체를 끌고 가 한쪽에 쌓인 언덕에 던졌다.
심선경이 다가와 죽은 괴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 대체 이게 몇 마리입니까?”
“글쎄요. 한 400마리 정도 되지 않을까요?”
“네?”
아무리 D급 헌터라지만, 단시간 내에 이렇게 많은 괴수를 잡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대량 살상 마법이나 소환수를 여러 마리 소환한 것도 아니고 칼 한 자루로만 잡은 것이니, 더욱 대단해 보였다.
“뭐, 도와 드릴 일은 없습니까?”
“글쎄요. 보다시피 혼자서도 충분합니다.”
“그렇군요.”
태준의 대답에 심선경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왜? 무슨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저, 그게 제 입으로 말하기 민망한데, 최 국장님께서 태준씨가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게 최대한 지원하라고 말씀하셔서요.”
“그런데요?”
“그런데 여기서 F급 괴수만 계속 잡고 계시니, 어떻게 클리어를 하실지 사실 걱정입니다.”
“보다시피 저는 지금 게이트 클리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 새끼가 이렇게 떼거리로 죽어가는데, 어미가 가만히 있을까요?”
“네?”
심선경은 마치 머리에 망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럼 이게?”
“큰 물고기를 낚기 위해서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거죠. 호수에 제 놈이 낳은 새끼들이 다 죽어도 나오지 않을지 두고 보죠.”
자신은 왜 저런 생각을 못 했을까?
새끼를 잡아 어미를 노린다!
아니 이곳에 들어온 누구도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최규환 국장이 왜 나태준을 지켜보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심선경이 돌아가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오도나타의 유충을 600마리 정도 잡았을 때였다.
[해체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체(lv5)]
처음으로 레벨이 5나 되는 스킬이 생겼다.
그리고.
[괴수 해체(lv5) 스킬이 긍경(肯綮)에 닿았습니다.]
[백정 스킬 - 비대각(批大卻)을 익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