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26. 녹음(綠陰)의 링.
퍽!
용암 화산이 폭발하듯 한 사내의 뒤통수가 터져나갔다.
순간 억겁 같은 침묵이 여섯 사내들 사이를 휘감았다.
“지...진짜 총알이 나갔어!”
“미, 미친!”
태준을 향해 석궁을 겨누고 있던 사내가 단발(單發)에 머리가 터져 죽었다.
남은 사내들은 경악했다.
아무리 등급이 높은 헌터라도 손가락에서 총알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움직이지 마. 이놈 꼴 나기 싫으면.”
내 말에 놈들이 서로를 바라본다.
“이, 이건 속임수야.”
“정신 계열의 헌터인가?”
그들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파악되고 있지 않은 거다.
“이 새끼가!”
옆쪽에서 한 사내가 참지 못하고 지팡이를 들었다.
그러자 태준이 손가락을 겨눴다.
“허허, 그러면 안 될 텐데.”
사내가 마법을 영창 하다 말고 멈칫했다.
그리고.
타앙!
총알이 관자놀이를 뚫고 반대편으로 빠져나갔다.
놈은 쓰러지기도 전에 즉사했다.
그렇게 원거리 공격을 할 수 있는 두 사내가 먼저 죽었다.
하지만.
“저기다! 나무 위에 저격수가 있다.”
들켰다.
앞에서 총을 쏘는 시늉을 했는데, 옆통수에 총알이 박혔으니,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알아차리겠지.
“너희는 저격수를 맡아!”
방패와 검을 든 놈과 창을 든 놈이 저격수가 숨어 있는 숲을 향해 달렸고, 나머지 세 놈이 나를 향해 돌진했다.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를 사용합니다.]
콰득!
발을 딛는 한쪽 땅이 파였다.
무협에 나오는 천근추(千斤錘)의 기술이 이런 느낌일까?
가장 앞서 달려오는 놈이 도끼를 휘둘렀다.
백정의 칼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아주 살짝 앞발을 들어, 놈의 불알을 향해 뻗었다.
퍼억!
쿵! 쿠콰쾅!
놈이 10여 미터나 구르고 굴러 바닥에 널브러졌다.
중요한 곳이 터졌는지, 눈에 흰자만 보였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었다.
‘제길, 아직도 힘 조절이 안 되는군.’
너무 세게 찼다.
아직 사람을 차본 경험은 없었으니,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뒤이어 달려들던 두 놈은 얼음이 된 듯이 그 자리에 잠시 멈춰섰다.
그리고.
“저 새끼 죽여!”
도끼를 든 놈이 먼저 달려들었다.
“야수의 광기!”
놈이 소리치자, 갑자기 도끼날이 핏빛으로 덮이더니 맹렬하게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백정의 칼과 갈고리를 교차하며 도끼를 막았다.
카앙!
치이익!
순간 몸이 뒤로 밀렸다.
놈이 가진 기술, 아니 힘이 어마어마했다.
‘저, 아이템 때문인가?’
잘못해 놈들을 죽일 수도 있었기에 마그투스의 각반은 꺼놓은 상태였다.
이번엔 박도를 들고 있는 사내가 달려와 무기를 휘둘렀다.
칼끝에서 푸른 빛이 일렁이자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다.
“호!”
이것도 박도에 뭔가 기능이 있는 것 같았다.
일단 막기보단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칼은 피했지만, 쉴 틈은 없었다.
도끼를 든 놈이 곧바로 몸을 날려, 내 머리를 향해 핏빛 도끼를 휘둘렀다.
카카캉!
도끼와 백정의 칼이 부딪치며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박도의 공격.
갈고리로 쳐올리며 무마했다.
그렇게 둘의 협공은 톱니바퀴처럼 물려 상대를 쉬지 않게 몰아쳤다.
“으! 이 새끼, 이제 각성한 놈이 맞아?”
“조심해, 그래도 D급 헌터야.”
아니, E급 헌터인데.
두 놈의 움직임을 보니 윤상희보다 훨씬 빠르고 강했다. 그랬다는 것은 D등급 이상의 헌터가 분명했다.
그런 놈들을 일곱이나 보내다니, 도하준 그놈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뒈져!”
박도가 아래에서 위로 둥근 궤적을 그리며 날아왔다.
또다시 푸른 빛이 번쩍하자,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태앵!
아슬아슬하게 막았다.
힘에선 밀리지 않았는데, 방금처럼 놈들이 이상한 스킬을 쓸 때면 제법 위협적이었다.
‘이제 끝내야겠군.’
도끼를 들고 달려드는 놈을 향해 갈고리를 놓고 손가락을 겨눴다.
“뭐?”
“타앙!”
놈이 내 목소리에 멈칫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촤악!
백정의 칼이 어깨와 가슴을 빠르게 지나갔다.
놈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단칼에 절명했다.
동료가 죽자 박도를 든 놈은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셋이 덤벼도 이기지 못했으니, 혼자서는 가망이 없었다.
지금으로선 가장 현명한 판단이지만 너무 늦었다.
촤리릭!
“크윽!”
갈고리가 날아가 한쪽 다리를 휘감고, 놈의 종아리를 찔렀다.
걸렸다.
쇠사슬을 잡아당겼다.
“으아악!”
쿵!
상처 입은 종아리에서 피가 안개처럼 피어오르자, 사내는 크게 당황했다.
[혈전(hemoconia)발생! 운동능력 저하 -20.]
태준이 쇠사슬을 당기자, 사내가 질질 끌려왔다.
“사, 살려줘!”
[포획 성공 공포감 증가.]
그의 눈에는 공포가 어려 있었다.
발로 놈의 몸을 밟고, 박도를 빼앗아 한 번에 제압했다.
“와! 오빠, 대단한데.”
수진이가 다가오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제 오빠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구나.
그녀는 활을 꺼내지도 않았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
“게이트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이런 놈들이야.”
“그런데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머리를 써야 해.”
먼저 원거리 스킬을 가진 석궁수와 마법사를 저격수로 제압한다. 그럼 나머진 직접 공격을 하는 헌터들뿐이었다.
스나이퍼가 엄연히 살아 있는 상태에서 나에게만 달려들 순 없을 것이다.
그럼 자연스럽게 나눠질 것이고, 예상대로 둘은 스나이퍼에게 나머지 셋은 내게 덤빈 것이다.
사실 각반을 쓰고, 백정의 스킬을 이용한다면 놈들을 혼자서도 모두 상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놈들을 전부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닌 생포였다.
그렇게 불알 맞은 놈하고, 갈고리에 잡힌 두 놈을 성공적으로 생포했다.
잠시 후.
심선경 사무관이 자신의 몸보다 큰 스나이퍼 총을 들고 다가왔다.
“이쪽은 벌써 끝났습니까?”
“네. 다른 놈들은?”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이 두 놈 다 죽였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두 놈은 잡았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이놈들이 게이트로 잠입한 것을 아셨습니까?”
심선경은 그게 정말 궁금했다.
게이트 입구를 헌터 사무관과 군인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이 묵인하지 않고는 절대 몰래 잠입할 수는 없었다.
“글쎄요. 헌터의 감이라고 하면 이상하겠지요?”
왼손 약지에 낀 녹음(綠陰)의 링을 만지작거렸다.
이 공개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받은 아이템.
유니크 반지였음에도 특별한 능력은 없어 보였다.
그들의 대화를 듣기 전까진...
[녹음(綠陰)의 링(유니크) - 고대 숲의 드루이드가 지니는 부적이자, 상징. 드루이드는 이 반지를 이용해 숲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화염 저항력 -18, 숲에서 기동력 +10%, 식물 독 저항력 +10%.]
반지를 끼지 전에는 상태창에 저런 설명밖에 나오지 않는다.
솔직히 숲에서 기동력이 조금 올라가는 것을 빼면 노멀보다 못한 쓰레기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반지를 끼면.
[자연 스킬 “숲의 메아리”를 획득했습니다.]
숲의 메아리란 스킬이 생긴다.
[숲의 메아리 - 이질적인 존재가 숲에 들어오면, 숲은 이야길 엿듣길 좋아한다. 나무에 귀를 기울이면, 숲이 내는 이외의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고, 방향과 위치를 알 수 있다.
스킬 시전 범위 - 5km 이내.
소모 마나 - 1, 스킬 유지 시간 - 20분.]
먼저 5km의 어마어마한 범위가 압권이었다.
주변 숲 지역에 있는 괴수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으니, 숲에선 수진이의 탐색 스킬을 훨씬 능가한다. 과연 유니크 아이템이었다.
단점 이라면 강이나 초지, 계곡, 바위 등 숲이 끊기면 그 이후로는 탐색할 수 없었다.
이 스킬로 숲에 사는 쏠라돈이 있는 곳을 바로 알 수 있었고, 놈들을 빠르게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신나게 사냥하고 있을 때, 7명의 암살자가 모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엿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심선경 사무관이 물었다.
“그런데 이 두 놈을 어떻게 할겁니까?”
“글쎄, 포를 떠야 하나? 아니면 내장을 꺼내 씹어 먹을까?”
내 말에 쇠사슬에 묶인 두 사내는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방금 잡은 쏠라돈의 배를 가르고 피 묻은 창자를 꺼내 놈들 앞에 툭 던지며 뱉은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우, 우리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게이트를 잘못 들어왔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내 발에 불알을 맞은 사내의 목소리가 유난히 얇게 들린 건 착각이겠지?
사실 놈들이 누구의 사주를 받고 들어온 것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놈들의 대화에서 이미 도하준의 이름을 들었다.
‘미친 새끼, 아무리 내가 밉기로 사람을 보내 죽이려 하다니...’
정상적인 놈이 아니란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도하준, 반 친구 중에서 유일한 C등급 헌터.
나머진 대부분 A급이었고, S급 헌터도 셋이나 있었다.
놈은 그 열등감을 돈으로 메꾸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었고,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일만은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 행동을 보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잘 들어. 네놈들이 도하준의 의뢰로 이곳에 들어온 건 이미 알아. 그걸 듣고 싶은 게 아니냐.”
“네? 그럼.”
“게이트 안으로 들여 보내준 놈들이 누군지 그게 궁금한 거지.”
두 사람은 서로를 보았다.
“빨리 대답해. 사람 포를 뜨고 싶어지니까.”
“그, 그게 키가 매우 컸어요. 머리가 곱슬머리이고, 정장을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뭐?”
심선경이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짐작 가는 인물이 있습니까?”
“설마, 최태호?”
“맞습니다. 최태호, 그 사람이었어요.”
“확실해?”
“네.”
왜 심선경이 똥 씹은 표정을 짓는지는 조금 후에 알았다.
최태호는 게이트 출구를 경비를 책임지는 헌터 사무관이었고, 심선경의 친구였다.
“개새끼!”
국가 헌터원이 이렇게 썩었을 줄이야.
옆에서 직접 보고도 못 믿겠다.
“그런데 국가 헌터원에 왜 이렇게 첩자들이 많은 겁니까?”
“그놈들은 첩자도 아닙니다. 그저 돈에 매수된 개 쓰레기들이죠.”
“이제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방금 증인을 둘이나 잡았으니, 모두 국가 헌터원으로 데려가 강도 높은 심문할 겁니다.”
“이번 일을 사주한 놈을 꼭 잡았으면 좋겠군요.”
“맡겨주십시오.”
속으로 웃었다.
저들을 아무리 족쳐도 도하준과의 관계는 쉽게 밝히지 못할 거다.
특히 게이트에서 일어난 일은 게이트에서 끝내는 것이 불문율이었기에 헌터법으로도 놈을 잡을 순 없었다.
그래도 자신이 사주한 놈들이 잡혔으니, 도하준도 당분간은 몸을 사릴 것이다.
“이제 돌아가죠.”
그렇게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
[대부도]
여명이 밝아오는 선착장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그들은 기자들과 화제의 헌터이자, 슈퍼 루키인 나태준을 스카우트하려는 길드 관계자들이었다.
“왜 이렇게 안 와?”
“이거 다른 데로 샌 거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분명 풍어도에서 헌터들과 함께 배에 탔다는 제보를 받았단 말이야.”
“배다! 배가 온다.”
배가 부두에 다가오자, 카메라 불빛과 조명이 켜지며 선착장 일대가 대낮처럼 환해졌다.
이미 앞서 도착한 초보 헌터들에게 나태준이 공개 게이트를 클리어했다는 정보를 들었으니, 오랜만에 큰 기삿감이 생긴 것이다.
배가 도착하고, 먼저 군인들이 선착장에 내렸다.
그들도 인간병기란 말을 들을 정도로 단련된 대괴수 부대 군인들이었지만, 헌터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으니, 대우가 그리 좋진 않았다.
“좀 지나갑시다. 비켜주십시오.”
“이봐요. 나태준 헌터는 언제 내린답니까?”
기자가 한 군인을 잡고,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압니까. 때 되면 나오겠지.”
“그럼 이 배에 나태준 헌터가 타고 있는 건 분명하군요.”
“아아, 나도 몰라요.”
군인은 손을 휘휘 저으며 기자들을 뚫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뒤에서 여자 군인이 다가와 말했다.
“태준 오빠 인기 짱인데.”
“인기는 무슨,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골치 아프다.”
주차장으로 나오자, 고급 리무진 한대가 섰다.
찌잉!
“타?”
“뭐야 네가 직접 온 거야?”
최규환이 뒷자리에 타고 있었다.
“국가 헌터원 출신의 영웅이 게이트를 클리어했는데, 당연히 마중 나와야지.”
“다시 말하지만, 난 국가 헌터원에 들어갈 생각 없다.”
“하하하, 알았어. 어서 타, 집까지 태워다줄게.”
수진이와 차에 올라탔다.
“C등급 괴수를 혼자 잡았다면서?”
“아니 여기 있는 한수진 헌터하고 둘이 잡은 거야.”
“그래? 아무튼, 대단한 성과야. 이미 여러 조간신문은 네 기사로 헤드라인을 장식했어. 슈퍼 루키 첫 번째 게이트를 클리어하다! 그런데 막상 네 사진이 없어서 다들 난리야.”
“저번에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 유출됐던데, 그거 가져다 쓰겠지.”
“에이 그래도 그게 되나, 내가 사진작가 몇 명 붙여줄게. 폼 좀 잡고 몇 장만 찍자.”
“왜?”
“그래야 홍보가 되지. 요즘 헌터도 메스컴에 얼굴을 알려야 잘 팔리는 거야.”
“옛날에 6학년 3반 친구들처럼?”
“뭐?”
갑자기 최규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헌터는 연예인이나 아이돌보다 인기가 더 좋다. 특히 영웅 대접을 받는 연희 같은 S급 헌터들은 1년에 버는 TV 광고 수입만 수백억이 넘는다고 한다.
‘이놈도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네.’
최규환 역시 반 친구들 이야기에 표정부터 달라진다.
분명 뭔가 있는데...
“아무튼, 언론이나 여론, 길드 등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해야 해. 그래야 누구든 널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거야.”
최규환의 말이 맞았다.
오늘 당한 일이 떠올랐다.
“맞아! 당하고 가만히 있으면, 호구나 다름없지.”
“뭐?”
“집 말고 다른 데 먼저 가자.”
“어디?”
“한성 실업. 도하준 그 새끼 좀 만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