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29. 게이트병(2).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말볼을 따라 계속 달렸다.
D급 게이트.
사실 조금 무리하면 혼자서도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이전에 공략한 공개 게이트에서도 어미 오도나타(C)를 혼자 잡아 클리어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적당히 F급, E급, D급의 낮은 게이트만을 클리어하다간 언제 연희와 반 친구들을 따라잡겠는가.
개개인의 재능과 능력을 떠나 장장 15년의 세월이다.
그 오랜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어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선 일반적인 방법으론 절대 불가능하다.
그랬기에 다음 목표는 C급 게이트를 노린다.
C급 게이트는 “중급 게이트”라 불리며, D급 보다 괴수 종류와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 위험성 역시 몇 배로 늘어난다.
특히 간혹 보스급으로 B급 괴수가 나올 수 있는데, 이놈들은 절대 만만히 볼 놈들이 아니었다.
최규환에게 듣기론 6학년 3반 친구들도 B급 괴수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데만 1년이 걸렸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그보다 빨리 공략에 성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손발이 맞는 팀이 필요했다.
그것도 실력이 매우 출중한 팀.
따라오지 못하면 절대 함께 갈 수 없다.
그게 수진이와 윤상희, 두 사람과 함께 이번 게이트에 온 가장 큰 이유였다.
숲과 들판, 산과 언덕을 달렸다.
이거 끝이 어디야?
벌써 한참을 달린 것 같은데, 말볼은 아직도 달린다.
대체 어디까지 냄새를 맡는 걸까?
놈의 후각에 경의를 표한다.
“저, 저놈 좀 잡아!”
숨넘어가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깜짝이야.
윤상희는 땀에 머리가 젖어 귀신처럼 산발이 됐고, 수진이는 얼굴이 노랗다.
“말볼!”
내가 소리치자, 말볼이 멈춰 나를 돌아봤다.
“이리와! 좀 쉬자.”
내 말을 알아들었나, 말볼이 돌아와 내 앞에 앉았다.
녀석도 힘든지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운동, 아니지 단련 좀 합시다. 얼마나 달렸다고?”
“미친, 우리 지금 네 시간을 달렸어.”
“어? 그렇게 오래됐나? 수진아 주변에 괴수는?”
“헉헉, 괜찮아요.”
우리는 작은 언덕에서 잠시 쉬었다.
그런데 내 체력이 이렇게 좋았나?
상태창에 체력 수치는 큰 변화가 없는데, 난 지치지 않았다.
그동안 틈틈이 마그투스 각반의 능력을 사용해 다리를 단련한 덕분인가보다.
두 사람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기에 주저앉았고, 난 주변을 둘러봤다.
이만큼이나 달려왔는데도 언덕과 초지가 끝없이 이어진다.
‘게이트의 끝은 어딜까?’
갑자기 드는 의문이었다.
끝이 있기는 할까?
던전 청소부 시절까지 더하면 수많은 게이트를 들어가 봤다. 하지만 한 번도 그 끝을 본 적은 없었다.
저 끝에는 뭐가 있을까?
요즘 뭔가 고민하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지만 생각을 계속할 순 없었다.
“게르르르!”
말볼이 먼저 으르렁댔고, 수진이가 천천히 일어나 활에 화살을 메겼다.
언덕 아래로 고개를 돌려보니, 늑대처럼 생긴 괴수들이 사방에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저놈들 우리를 포위하는 것 같은데?”
윤상희가 말하면서 도끼를 들었다.
포위하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이미 포위됐다.
설마 놈들이 우리를 유인한 건가?
“말볼, 저놈을 쫓은 거야?”
가장 뒤쪽에 서서 무리를 지휘하는 거대한 놈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말볼이 끙끙대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저놈을 추격한 게 아니었다.
저놈이 우리를 게이트에서 멀리까지 유인한 것이었다.
사냥하기 좋게 말이다.
어쩐지 클리어 조건이 너무 쉽더라니...
다가오는 놈들을 상태창으로 살펴봤다.
[아키노스(D) - 늑대처럼 무리생활한다. 우두머리를 따라 먹이를 몰아 사냥한다. 어깨높이 1.5미터에 몸길이 3미터로 빠르고 날렵하며,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다.]
[아키노스(E) - 늑대처럼 무리생활한다. 우두머리...]
가장 큰 우두머리는 C급, 그보다 조금 작은놈이 D급, 보통 늑대보다 조금 큰놈이 E급, 종은 같은데 골고루 등급이 나뉘어있다. 진화하는 종인가?
“다들 반대로 뛸 준비해!”
“뭐?”
“달려!”
내 신호에 맞춰 모두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우우우!”
우두머리가 울자, 늑대처럼 따라 우는 괴수들!
먹이의 위치를 알리려는 것인가?
“상희씨 맨 앞으로!”
“오케이.”
수진이를 가운데 두고, 난 맨 뒤에서 달렸다.
“크아아앙!”
한 놈이 무식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백정의 칼이 놈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렸다.
수진이는 달리면서 화살을 쏜다.
나란히 달리던 E급 괴수 아키노스를 향해 바람의 힘이 더해진 화살이 날아간다.
푸푹!
두 개의 화살이 놈의 몸통에 박히자 앞으로 꼬꾸라졌다.
“비켜 이것들아!”
윤상희의 도끼가 앞에서 달려들던 아키노스의 이마를 찍었다.
쩍! 화르르르!
도끼날에서 화염이 쏟아져 놈의 몸을 휘감았다.
괴수는 두개골이 갈라진 상태로 불꽃에 휩싸여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
수십, 수백은 되어 보이는 아키노스들이 좌우로 나란히 달리며 계속 몇 놈씩 우리를 공격했다.
이는 우리를 지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크와왕!”
칼로 옆에서 달려들던 놈의 다리를 잘랐다.
앞발이 사라진 놈이 바닥을 굴렀다.
죽음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것은 등급이 젤 낮은 E등급 아키노스밖에 없었다.
나머지 D등급 아키노스들과 우두머리는 우리가 지치길 기다렸다.
“저기! 외쪽에 건물! 그리로 가!”
내 소리를 들었는지 윤상희가 방향을 바꿨다.
이곳은 사방이 트였기 때문에 놈들과 싸우긴 좋지 않다.
하지만 선두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달리자, 왼쪽에서 달려드는 괴수들의 공격이 더 거세졌다.
우리를 다른 쪽으로 몰고자 함이다.
놈들은 기존에 상대했던 괴수들과 달리 머리를 쓰고 있었다.
윤상희가 놈들을 뚫지 못하고 점점 옆으로 밀렸다.
이대론 안 된다.
“내가 앞으로 간다! 뒤를 맡아!”
헌터가 괴수 놈들의 의도대로 따라갈 순 없지 않은가.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을 사용합니다.]
코끼리처럼 불끈 솟아오른 다리.
앞으로 달리며 다리를 휘둘렀다.
퍼억!
육중한 발이 달려들던 한 아키노스의 옆구리를 차버리자, 놈이 공중으로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덤벼!”
백정의 칼을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놈에게 쑤셔 넣었다.
[비대각(批大卻) 스킬이 발동됩니다.]
파파팟! 촤악!
백정의 칼이 입을 뚫고, 목을 뚫고, 순식간에 몸을 둘로 갈라버렸다.
아키노스의 피가 온몸을 적시고,
놈들을 향해 눈을 부릅떴다.
그 모습에 달려들던 아키노스들이 움찔거렸다.
괴수들의 털이 바짝 곤두선 것이 두려워함이다.
“너희 같은 똥개 새끼들이 감히!”
소리를 지르며 오히려 놈들에게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겁을 먹은 놈들이 주춤대다가 내 칼에 토막이 나자,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왼쪽에 피라미드처럼 생긴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윤상희와 수진이는 건물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콰직!
“깨갱!”
우두머리 아키노스가 나를 피해 달아나던 E급 아키노스들을 한입에 물어 죽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괴수들이 다시 방향을 바꿔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오냐! 네놈은 꼭 내 손으로 죽여주마.”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장소와 시기가 좋지 않다.
두 사람을 따라 피라미드처럼 생긴 건물로 달렸다.
좁은 입구로 수진이와 윤상희가 먼저 들어가고, 나도 가까스로 안으로 들어갔다.
“어딜!”
퍼걱!
내 뒤를 따라온 괴수를 발로 차자, 놈이 밖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우르르르르!
입구 주변에 기둥을 발로 차서 무너트렸다.
그러자 입구가 막혔다.
“휴, 이제 잠깐 쉬자.”
다들 땀과 괴수의 피가 뒤섞여 엉망이었다.
“헉헉, 입구를 막으면 어디로 나가게?”
“정 안되면 벽을 뚫고 나가면 됩니다.”
“어? 말볼은?”
수진이가 옆에 있던 말볼을 찾았다.
나도 분명 수진이 옆에 함께 달려간 것을 봤는데?
“아! 밖에 있나 봐요. 어쩌죠.”
수진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때였다.
“껭께겡?”
안에서 말볼이 튀어나왔다.
“이놈아 걱정했잖아.”
그런데.
입에 뭘 물고 있다?
“뭐야 이건? 뱉어.”
푸른빛이 나는 이상한 풀이었다.
이걸 왜?
이게 황노인이 말한 약재 중에 있었나?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이런 풀은 없었다.
말볼이 내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수진이가 말했다.
“따라오라고 하는데요.”
“나도 알아.”
안으로 들어가 볼까?
반대편에 다른 통로가 있을 수도 있었다.
“수진아, 괴수는?”
“아직 입구 쪽에 몰려 있어요.”
“좋아, 다들 잔뜩 긴장하고, 안으로 들어가 보자.”
말볼이 앞서고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바닥은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있어 폭신했다.
곧 건물 중앙에 도착했다.
천장이 뚫려 있어 빛이 들어왔고, 벽에서 희미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기에 내부는 꽤 환했다.
“어, 이거 뭐야? 캡슐 아냐?”
“그러게 이런 게 왜 여기 있지?”
수백 가닥의 선들이 벽에서부터 중앙에 깨진 캡슐로 이어졌고, 바닥에 푸른 풀이 가득했다.
꼭 SF영화에서 보던 장면 같았다.
말볼이 풀을 뜯더니 내게 내밀었다.
‘왜 또 풀을 주지?’
내가 뭘 놓친 게 있나?
황노인이 내게 보여준 약재 중에 내가 기억 못 하는 것이 있었을까? 그럴 리는 없었지만, 일단 푸른 풀들을 뜯어 인벤토리에 넣기 시작했다.
“태준 오빠! 놈들이 다가오고 있어요.”
“어디?”
텅 빈 건물 내부엔 괴수는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다.
“천장이다!”
괴수들이 건물 위로 이동해 뚫린 천정으로 들어올 생각이었다.
“윤상희씨 이것 받아요.”
“뭔데?”
“도끼요. 그리고 수진이도 이 박도를 받아.”
“어 이거?”
수진이는 한눈에 두 무기를 알아봤다.
이전 공개 게이트에서 암살자들이 쓰던 무기였다.
“둘 다 레어 아이템이니까, 쓸만할 거야. 수진이는 활을 쓰다가 놈들이 접근하면 박도로 바꾸고.”
“넵!”
윤상희가 내가 준 도끼를 들더니 반색했다.
“이 도끼에 힘이 증가하는 기능이 있어!”
나도 안다.
순간적으로 도끼날이 핏빛으로 변하면서 1.5배의 힘이 늘어난다.
시동어는 야수의 광기.
물론 속으로 외쳐도 된다.
“대신 너무 자주 쓰면 손목 나갑니다. 적당히 해요.”
“오케이.”
수진이에게 넘겨준 박도엔 순간적으로 속도가 1.4배가 늘어나는 기능이 있었다.
시동어는 달빛 가속.
둘 다 레어템이라 나중에 팔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여기서 내려오는 괴수를 잡아.”
“태준씨는?”
“난 두목 모가지 따러 갑니다.”
두 사람이 이것조차 버티지 못한다면, 다음 게이트에서는 절대 함께할 수가 없다.
내가 무너트린 입구로 달렸다.
“이거 떨리는데.”
“저도요.”
리더인 태준이 없자, 윤상희도 상당히 긴장한 표정이었다.
“우리도 오랜만에 밥값 좀 하자, 맨날 태준씨에게 기댈 순 없잖아.”
“맞아요. 언니!”
수진이가 인벤토리에서 화살을 잔뜩 꺼내 여기저기 바닥에 박아 놓았다.
‘좋아, 놈들에게 내 실력을 보여주겠어!’
“온다!”
천장에 E급 아키노스 한 마리가 머리를 내밀고, 뛰어내렸다.
푸푸푹!
쿠웅!
놈이 바닥에 떨어졌을 땐 이미 죽어 있었다.
놈의 머리와 가슴에 수진이가 쏜 총 세 발의 화살이 박혀있었다.
윤상희가 수진이의 솜씨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크와앙!”
“크앙!”
그러더니 이제 두 마리가 뛰어들었고, 곧이어 다른 놈들도 아래로 뛰어내렸다.
수진이가 뛰어내리다가 전선에 걸린 아키노스를 향해 화살을 쏘았고, 윤상희는 바닥에 떨어져 정신이 없는 놈들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야수의 광기!”
쩌억!
핏빛 도끼가 아키노스의 목덜미에 제대로 박혔다.
그리고.
화염의 도끼가 연이어 놈의 목에 박히며 놈이 화마에 휩싸였다.
도끼를 흔들어 빼곤 다른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알아서 잘하는군.’
문 뒤에서 잠시 지켜보던 태준은 살짝 웃으며 몸을 돌렸다.
이젠 정말 우두머리를 잡으러 갈 시간이다.
“크르르르! 크왕!”
우두머리의 울음에 괴수들이 계속 피라미드 같은 건물 위를 오른다.
이미 상당한 숫자가 들어갔으나, 내부에서 희미하게 들리는 부하들의 신음과 괴성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대장 괴수가 으르렁거리자, D급 아키노스들도 피라미드를 오르기 시작했다.
톡, 토독.
작은 돌멩이 하나가 입구에서 굴러떨어졌다.
우두머리 아키노스가 그곳을 쳐다보았다.
그 순간.
콰아아앙!
바위와 돌멩이, 먼지가 일제히 앞으로 쏟아지면서, 아키노스의 시야를 가렸다.
휙휙휙!
철컥!
“걸렸다!”
태준이 던진 갈고리와 쇠사슬이 놈의 목에 걸렸다.
그러자, 놈이 당황해 달리기 시작했다.
“헛!”
태준은 몸이 공중에 뜬 채로 놈에게 매달렸다.
[출혈이 생겼습니다. 혈진(hemoconia) 발생. 운동능력 저하-20]
괴수의 목을 감싼 갈고리가 조여오면서 피가 안개처럼 뿜어졌다. 그러자 대장 아키노스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지금이 기회다!’
두 다리에 잔뜩 힘을 주었다.
코끼리처럼 부푼 두 다리는 지금 무언가 기다리고 있었다.
쿵! 콰앙!
놈이 일부러 나무 옆으로 지나가며 나를 공격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찔했지만, 버텨야 했다.
S급 헌터가 될 몸이 개새끼 한 마리 잡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두 다리를 땅으로 뻗었다.
그리고 힘을 주자, 놈의 속도가 느려졌다.
그러다 두 발이 커다란 바위에 닿았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힘을 잔뜩 주었다.
턱! 철컥!
“크앙?”
쇠사슬이 팽팽히 당겨지며, 달리던 놈이 뒤로 넘어졌다.
우두머리 아키노스가 갈고리와 쇠사슬에 목이 졸리자, 목과 얼굴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놈은 고개를 흔들며 일어나 달아나는 대신 몸을 돌려 내게로 돌진했다.
나를 갈기갈기 물어뜯기 위함이다.
“쿠아아앙!”
커다란 입을 벌리며 달려드는 놈의 턱을 향해 발을 올려 찼다.
놈의 주둥이가 닫히며 고개가 들렸다.
그 순간 몸을 숙여 괴수의 아래로 들어갔다.
[해체(lv5) 스킬이 발동됩니다.]
촤릭!
놈의 앞발을 향해 칼을 그었다.
그리고.
“도살!”
놈의 아랫배를 백정의 칼을 세워 그었다.
[도살 레벨이 올랐습니다.]
[도살(lv3)!]
괴수의 배에 선명한 붉은 선이 생기며, 배가 갈라져 시뻘건 피와 함께 몸속 장기가 바닥에 쏟아졌다.
“쿠아아아아아!”
놈의 고통에 찬 비명이 일대를 울렸다.
그럼에도 괴수답게 놈은 죽지 않았다.
쇠사슬을 강하게 당겼다.
놈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곤 달려가 코끼리 같은 발로 놈의 머리통을 밟았다.
쾅! 쾅!
두 번의 큰 충격에 놈은 혀를 내밀고 정신을 잃었다.
“마무리다!”
백정 스킬 비대각(批大卻)으로 놈의 목을 찔렀다.
백정의 칼이 박히며, 살과 근육, 뼈를 헤집고 숨통을 끊어버렸다.
[우두머리 아키노스를 잡았습니다.]
[현재 카운터 : 우두머리 아키노스(C) - 1/1]
[게이트를 클리어했습니다. 이 게이트는 72시간 후에 소멸합니다. 남은 시간 - 71:59:59]
[보상으로 우르크 오크 소환 룬(레어)을 얻었습니다.]
***
바닥엔 방금 죽은 괴수 사체가 가득했다.
하지만.
천장에서 뛰어내린 괴수들과 태준이 뚫은 입구로 들어오는 괴수들!
양쪽에서 달려드는 놈들을 맞이해 두 사람은 복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쿠웨웩!”
괴수의 머리에 도끼를 내려친 팔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윤상희는 이를 악물었다.
포기하면 편해진다는 말...
하도 들어서 귀에 인이 박일 지경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포기하면, 하나뿐인 아들도 죽는다.
평범하게 자랐다면 이제 중학생이 됐을 아들.
게이트만 아니었다면... 괴수들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들은 건강하게 자랐을 것이다.
“이 개새끼들아! 죽어!”
그녀가 울분을 담아 도끼를 내려친다.
피가 튀고, 화염이 쏘아진다.
번지는 화염이 뜨거울 만한데, 그녀는 참고 다른 손의 도끼를 올려쳐 괴수의 턱을 부숴버렸다.
“수진아, 뒤!”
윤상희가 자리를 바꿔 입구 쪽을 막고, 수진이가 괴수의 몸에 박힌 박도 대신에 활을 들고 화살을 메겨 안에서 달려오는 괴수의 눈을 겨눈다.
푹!
“크아앙!”
눈을 맞은 놈이 괴로워하면서도 앞으로 달렸다.
그때 말볼이 D급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팔꿈치에 뻗어 나온 칼날 같은 뼈가 반대쪽 눈을 그었다.
양쪽 눈을 잃은 괴수는 미친 듯이 날뛰며 벽을 들이박았다.
하지만 바람의 화살이 날아가 이마와 목에 차례로 박혀 쓰러졌다.
“헉헉! 말볼 이리와.”
지독한 두 여자의 기세에 괴수들이 양쪽에서 으르렁거리기만 할 뿐 감히 달려들지 못했다.
“저, 이제 서 있을 힘도 없어요.”
“안돼! 절대 주저앉지 마! 약해진 모습을 보이면 놈들이 달려들 거야. 태준씨가 곧 올 거니까. 힘내.”
윤상희가 수진이를 다독였다.
수진이가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수진이의 등에는 괴수의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체육복은 멀쩡했지만, D급 괴수의 앞발에 맞은 그 충격은 그대로 몸통에 전해졌기에 시커먼 피멍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윤상희 그녀 역시도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팔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흔들렸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양반은 못 되는군.”
윤상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갑자기 입구에 있던 괴수가 쇠사슬에 끌려나갔다.
그리고 밖에서 괴수 아키노스들의 비명이 연이어 들렸다.
“지금 고전하는 겁니까?”
태준이 입구로 들어서며 물었다.
“고전이고 뭐고, 안쪽에 놈들 좀 부탁해. 아주 죽갔어.”
태준이 웃으며 안으로 움직였다.
태준이 옆으로 스쳐 지나가며 반쯤 주저앉은 수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헌터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언제든 죽을 수 있었다.
그동안 태준을 의지하며 탐색 스킬이나 썼지, 이렇게 많은 괴수를 죽여본 것은 수진이도 처음이었다.
태준은 복도에 있던 남은 놈들을 도륙했다.
그러자 곧 두 사람이 옆으로 붙었다.
“나 헌터 등급, D등급으로 올랐어.”
“오빠, 난 E등급이에요.”
“두 사람 다 축하해.”
둘 다 상태창에 헌터 등급이 올랐다.
죽은 괴수들이 많이 있다는 건물 중앙으로 들어갔다.
‘이걸 두 사람이 다 죽였다고?’
아무리 레어 아이템을 지원해줬다고 하지만, E급 괴수와 D급 괴수 수십 마리를 단둘이서 잡은 것은 태준이 봐도 대단했다.
그리고 도끼에 묻은 괴수 피를 닦고 있는 윤상희를 새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역시 강하군.’
자, 이제 괴수를 해체하며 본격적으로 돈 좀 벌어볼까.
D급 괴수 아키노스를 먼저 해체했다.
그리고 각 부위를 하나씩 살피며 감식했다.
[감식 레벨이 올랐습니다.]
[감식(lv3)]
드디어 감식 레벨까지 올랐다.
이제 C급 괴수 역시 감식할 수 있었다.
“껭께겡.”
말볼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건 왜 물고 왔어?”
입에 있는 건 C급 괴수인 우두머리 아키노스의 간이다.
“설마 그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