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
30. 게이트병(3).
바로 감식(lv3) 스킬로 살펴봤다.
[우두머리 아키노스(C)의 간 - 인간의 호흡기에 좋고, 상처를 빠르게 아물게 하며, 혈액을 생성한다. 간기능, 비뇨생식기 계통에 매우 뛰어난 효과가 있다.]
아쉽지만, 게이트병에 관련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비뇨생식기라...
황노인이 비싼 약재라며 보여줬던 기억이 났다. 워낙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100g에 1억원을 호가한다는 말에 어디에 좋을까 했는데...
결국, 정력에 좋다는 말이었어.
D급 아키노스의 간도 살펴보았다.
이건 비뇨생식기란 말이 없다.
C급이 귀한 약이긴 하군.
고생하며 괴물 늑대를 잡은 보람은 있었다.
D급과 E급의 괴수 감식까지 끝나자, 이제 해체할 일만 남았다.
수진이와 윤상희가 괴수들을 한데 모으면, 나는 열심히 해체해 마석과 괴수 부산물을 챙겼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괴수를 이렇게 빨리 분해하는 거야?”
괴수를 옮기던 윤상희가 나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한번 해볼래요? 그렇게 어렵진 않아요.”
“됐어. 살아있는 놈이나 죽은 놈이나 징그럽기는 마찬가지야.”
윤상희는 손을 내저었다.
그녀도 징그럽긴 한가 보다.
“그런데 수진이가 걱정인데.”
“왜요?”
“아까 괴수의 앞발에 등을 제대로 맞았거든.”
그러고 보니 말도 없고, 일하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자식,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면 될 것을...
“수진아 이것 먹어봐.”
피가 뚝뚝 흐르는 D급 아키노스의 간을 내밀었다.
“우웩!”
“어서 먹어. 안 그럼 너 먼저 게이트 밖으로 나가야 해.”
“네?”
수진이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게이트 밖으로 먼저 나가란 말에 억지로 간을 입에 넣었다.
“이제 좀 쉬고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수진이는 겨우 10여 분을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괴수 사체를 날랐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단 한 번도 불평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어떨 때 보면 어른 같단 말이야.
그렇게 서로 도와가며 6시간쯤 지나자, 괴수 해체 작업이 끝났다.
이번에도 제법 많은 마석과 부산물을 챙길 수 있었다.
“작업 다 끝났으면 이 풀들도 좀 뜯어봐요.”
두 사람은 괴수 잡는 일이 아니라며 잠깐 투덜대기는 했지만, 내가 시키는 일이라면 다했다.
푸른 빛이 나는 신기한 풀을 전부 뽑아 인벤토리에 넣었다.
영특한 말볼이 찾아낸 것이니, 황노인이 보여준 약재 중에서 비슷한 것이 있을 것이다.
게이트 클리어 후에도 시간이 많이 남아 게이트 주변을 다니며, 아키노스들을 닥치는 대로 잡았다.
우두머리가 없는 놈들은 너무 약했다.
사냥하다 피곤하면 피라미드 건물로 돌아와 쉬었다가 다시 사냥을 반복했다.
그렇게 이틀을 사냥하고, 게이트 소멸 4시간을 남기고, 게이트 출구로 이동했다.
“자, 보너스에요. 받아요.”
“뭐?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냐?”
1억을 건넸다.
“경찰도 그만뒀다면서요. 그리고 오늘은 수입이 짭짤해서 주는 겁니다.”
“......”
내겐 큰돈은 아니었지만, 윤상희에게는 당장 아들의 연명치료에 큰 도움이 될 거다.
“다음엔 C급 게이트에 갈 거예요.”
“뭐?”
역시 그녀의 반응은 놀람이었다.
“빠져도 상관없습니다.”
C급이 주는 무게감은 헌터라면 모두 잘 알고 있었다.
끝없는 괴수 웨이브에, 상급 괴수까지.
지금까지 들어가 본 게이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대부분의 헌터가 D급 게이트까지는 개인적으로 도전하지만, C급은 길드가 아니라면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금액은 얼마지?”
“한 사람당 2억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불법 게이트를 참가하는 데는 돈이 들었고, 클리어하지 못하는 헌터는 많이 벌진 못했다. 게다가 그마저도 요즘엔 물건이 없었다.
그에 반해 태준은 계속 게이트를 구해왔고, 오늘처럼 성과가 좋으면 보너스도 챙겨줬고, 선금도 주지 않았는가.
그녀는 누구보다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많이.
이번엔 수진이를 바라보았다.
“수진이도 너도 마찬가지야. 다음엔 내가 보호해주지 못할 수도 있어 그러니 빠져도 좋아.”
“나도 무조건할 거에요. 내가 빠지면 아저씨, 아니 태준 오빠를 누가 지켜줘요.”
수진의 말이 맞긴 맞았다.
수진이의 탐색 스킬은 레벨이 3으로 올라, 이제 사방 100미터 이내의 괴수를 미니맵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괴수의 규모와 위치 등, 미니맵의 효용이야 두말하면 숨차다.
그녀의 탐색 스킬은 게이트 안에선 발군이었다.
“그럼 이제 나갈까.”
윤상희가 도끼를 내밀었다.
“잘 썼어.”
“그건 일단 빌려드리죠.”
“정말?”
“나와 일을 계속할 때까진 빌려드릴 테니, 손에 완전히 익혀놔요.”
“고마워.”
대답하자마자 그녀의 눈에 살짝 이슬이 맺힌 것을 봤지만, 모른척해 줬다.
거듭된 내 호의에 감동했나?
난 내가 필요하니까 빌려준 건데.
“수진이도 빌려주는 거니까, 틈틈이 박도도 단련해.”
“네.”
그렇게 성공적인 D급 게이트 공략을 끝냈다.
***
[국가 헌터원]
“뭐? 게이트를 클리어하자마자, 게이트를 또 달라니?”
최규환은 도끼눈을 뜨고 있었다.
“던전 청소 업체도 부르지 않아서 우리도 손해가 막심이야. 그런데 또 게이트를 달라고?”
“뭐야, 헌터원 국장이 그 정도 능력도 안 되는 거야?”
최규환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C등급부터는 중급 게이트야, D급하고는 완전히 레벨이 달라. 너 혼자서는 어림도 없어.”
“나도 알아.”
“안다고? 그럼 팀은 있고?”
“일단 두 명은 구했어. 뛰어난 사냥개도 있고.”
“나도 그 사람들이 누군진 알아, 어림도 없어, C급 헌터 10명이 들어가도 클리어 확률이 30%밖에 안 돼. 권장은 B급 헌터를 포함한 C급 헌터 20명 파티야.”
최규환이 침을 튀겨가며 나를 만류했다.
“공략할 헌터는 몇 명 더 구할 생각이야.”
“그럴 거면 차라리 길드에 들어가지그래? 내가 크고 괜찮은 길드를 추천해줄 수 있어.”
“아니, 당분간 내 힘으로 하고 싶어.”
최규환이 소개해준 길드는 안 봐도 국가 헌터원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내가 강해지기 전에는 어느 한쪽과 직접적으론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불법 게이트도 계속 이용할 생각이라 길드에 소속되면 움직임에 제약이 생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더 강한 게이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로지 한 몸처럼 움직이는 내 팀이 필요했다.
“헌터는 어떻게 구하려고?”
“헌터 일보에 공개적으로 광고하거나 헌터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구해 보려고.”
최규환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 일보는 헌터 협회에서 운영하는 일간지로 국내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헌터 관련 신문사였다.
“날벌레 같은 놈들이 끼어들 텐데, 도하준 그놈도 이를 갈고 있을 테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냐? 강한 게이트에 들어가야 빨리 크지. 그리고 정 찜찜하면 네가 뒷조사 좀 해주면 되겠네.”
“뭐? 너는 무슨 국가 헌터원 국장을 수족 부리듯이 부려 먹냐?”
“보니까 일도 별로 안 하더구먼, 싫으면 말던가.”
최규환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C급 게이트를 구해줄 순 있어. 하지만 네 팀에 내가 한 사람 추천하지. 그게 조건이야.”
“좋아. 대신 그 사람 돈은 네가 줘라.”
최규환의 눈이 또다시 작아졌다.
“쩝, 알았다.”
***
[용산 헌터 시장]
나를 본 황노인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이고, 나태준 헌터! 안으로 들어오게. 뭐 마실 것 좀 줄까?”
“아닙니다. 물건부터 보여드리죠.”
“오, 벌써 기대가 되는구먼.”
먼저 적당한 가격을 받을 부산물을 꺼내 흥정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C급 아키노스의 간을 내밀었다.
“이...이건?”
“이렇게 싱싱한 건 처음일 겁니다.”
황노인이 자신의 인벤토리에 있는 것과 비교했다.
“와, 이거 정말 물건이군.”
“그거 정력제죠?”
황노인이 씨익 웃었다.
“효과가 아주 끝내주지. 돈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인기야.”
“얼마 주실 겁니까?”
“무게가 제법 나가니까 10억 정도는...”
“15억 주십시오.”
“응?”
“상태를 보십시오. 물건이 최상이니, 팔 때도 더 받을 거 아닙니까.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귀한 겁니다.”
황노인이 입을 씰룩거렸다.
“좋아. 자네니까 이렇게 주는 거야.”
거래를 다 끝내고, 인벤토리에서 반짝이는 푸른 풀을 하나 꺼냈다.
“이건 뭔가?”
“부탁이 있습니다. 이걸 분석해 주십시오.”
“뭐 어렵진 않네. 친구놈에게 부탁하면 되니까.”
“그리고 전에 보여줬던 약재들 좀 다시 보여주십시오.”
“약재는 왜?”
황노인은 영문을 몰랐지만, 돈을 많이 벌어주는 단골이었기에 귀한 물건들을 다시 꺼내 보여줬다.
“말볼, 냄새 맡고 똑같은 거 찾아봐.”
풀냄새를 다시 맡게 하고, 황노인의 약재 중에서 찾아보라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전에 보여줬던 게이트병 치료약이 보이지 않는데요.”
“그건 이제 위험해. 한 번 더 공기 중에 노출되면 못쓰게 될 수도 있어.”
“아주 잠깐이면 됩니다. 한 번만 보여주십시오.”
“흠... 정말 잠깐만 보여주는 거야.”
황노인이 게이트병의 치료 약을 살짝 꺼냈다.
그러자 말볼이 코를 킁킁거리며 달려들었다.
황노인이 놀라 급하게 인벤토리로 다시 넣었다.
그리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말볼의 반응을 본 황노인의 두 눈이 갑자기 배로 커졌다.
“서, 설마 그...그거?”
“일단 분석부터 해보시죠.”
“아, 알았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딜 가려고? 이 중요한 시기에.”
“결과 나오면 연락 주세요. 근처에 있을 테니.”
“그래, 알았네.”
황노인이게 반짝이는 풀을 넘기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
마석 가게를 들려 마석을 팔고, 자연스럽게 창수 가게로 향했다.
연락도 없는 놈이었기에 가게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리 향했다.
응? 뭐지 불이 켜져 있다?
창수가 돌아왔나.
문을 향해 달려갔다.
‘아, 뭐라고 해야지?’
만나면 해줄 말이 참 많았는데...
녀석,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젠 그만 방황하라고?
아니면 잘 돌아왔다고?
뭐라고 말을 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고생했다 말하며, 힘내라고 한번 안아줘야 하나.
아, 그건 너무 오글거리겠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게 좋겠다.
힘껏 문을 열었다.
“창수...어?”
곰 같은 창수와는 완전히 딴판인 여우 같은 젊은 여자가 가게를 청소하고 있었다.
“누구세요?”
“그러는 댁은 누구세요?”
“난 창수 친군데.”
“전 창수 선배님의 후배인 김성하인데요.”
“후배?”
“네, 헤파스 길드에서 같이 활동을 했습니다. 참 헤파스 길드는 그리스 도구의 신인 헤파이스토스의 이름을 줄여서 만든 이름이랍니다.”
창수가 길드 활동을 했던가?
김성하는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설명했다.
“그런데 주인 없는 가게에서 지금 뭐하는 겁니까?”
“창수 선배님이 돌아올 때까지 가게를 지키라고 했는데요. 나태준 헌터시죠?”
뭐지? 창수가 시켰다고?
게다가 내 이름도 알아?
“그런데요?”
“장비 수리할 거 있음. 맡겨주세요. 창수 선배만큼은 못하지만 이래 봬도 도구 계열의 헌터로 수리엔 자신 있습니다.”
창수가 장비 수리할 일이 있으면, 가게에 가져다 놓으란 말은 했었다. 그게 누구를 부른다는 말이었나?
“창수와 연락은 됩니까?”
“당분간 연락이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창수에게 확인할 길도 없고, 아무튼 수상해 보이는 여자였다.
띠리리링!
황노인에게 전화가 왔다.
가게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대, 대박이네. 이...이거 게이트병 치료 약재와 그 성분이 같아. 아니 훨씬 농도가 진하다고 하더군.”
“확실한 건가요?”
“그럼, 내가 하나밖에 없는 약재까지 건네며 비교 분석해봤네.”
“그렇군요.”
“지금 이럴 때가 아니네. 이거 잘만 하면 우리 엄청난 돈방석에 앉을 수 있어! 지금 어딘가? 이리 좀 오게. 아니, 내가 그리 가지. 어디야?”
“죄송합니다. 이건 따로 쓸 데가 있어서요.”
“뭐? 그걸 어디다가...”
황노인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전화를 끊었다.
게이트 안에서 구한 풀이다.
말볼이 아니었다면, 그저 반짝이는 신기한 풀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게이트는 그저 괴수를 잡고, 보상을 얻고, 마석을 채취하면 끝나는 용도였지, 그 안에 식물이나 자연환경에 대해선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자들에게 목숨 걸고 게이트로 들어가라고 한다면, 누가 들어가겠는가.
창수네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김성하란 여자가 청소하고 있었다.
‘좀, 찝찝하긴 한데...’
하지만 지금은 급한 일이 있었다.
그길로 국가 헌터원으로 달려갔다.
***
[국가 헌터원]
최규환의 표정이 아리송하다.
“뭐? 헌터원의 이미지를 쇄신할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고?”
“그래 먼저 대대적으로 광고도 내고, 참 이름은 말볼초라고 지어야겠다.”
“말볼초? 대체 뭔데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