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 C급 게이트(1).
최규환은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다.
태준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너무 황당했기 때문이다.
“게이트병 치료제라고 겨우 그딴 풀이?”
“그래 이미 성분 분석까지 마친 상태야.”
“뭐?”
황노인이 스마트폰으로 보낸 분석 자료를 내밀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괴수의 부산물 중에 치료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내 짐작인데, 등급도 없는 약하고 작은 괴수들이 이 풀을 먹고, 큰 괴수들이 그 작은놈들을 잡아먹으면서, 약효가 몸에 축적된 게 아닐까 싶어.”
“그럼 원래 이게 치료제였단 말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 포식자가 등급 낮은 괴수들을 잡아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장기에 축적되고 그것을 헌터들이 잡으면서 운 좋게 치료 약을 찾을 수 있었을 거다.
“약재상에 물어보니 치료제가 나온 괴수의 종류와 그 부산물의 종류도 다르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약효 성분이 말볼초에서 훨씬 많이 나온다고 분석 자료에 나와 있어.”
“허, 이게 사실이면 엄청난 발견을 한 건데.”
최규환은 눈앞에 자료를 보고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게 우리 헌터원의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쇄신할 방법과 무슨 상관이지?”
“내가 가진 말볼초를 전량 국가 헌터원에 팔지. 그리고 너희는 독점으로 치료 약을 만들어 공급하는 거야. 그리고 어려운 사람들한테는 공짜로 나눠주는 거지.”
“뭐? 공짜로?”
최규환이 화들짝 놀라 태준을 바라보았다.
판매하는 거야 독점이니 비싸게 판매한다면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공짜로 나눠주면 돈이 문제였다.
“지금도 게이트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국가 기관에서 장사하게?”
“하지만 예산이...”
“언제까지 헌터 협회에 눌려 이인자에 머물 거야? 이참에 우리 헌터원에서 게이트병 환자들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게이트에서 약을 구해왔다! 이렇게 대대적으로 홍보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 좀 도와주고 그럼 단번에 이미지 급상승이야. 헌터들도 국가 헌터원을 다시 보게 될 테고.”
최규환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리고 누가 전부 공짜로 나눠주래? 돈 많은 사람들에겐 비싸게 팔면 되잖아. 내가 그런 방법까지 일일이 알려줘야 해?”
“아니, 잠깐만 뭔가 그림이 그려진다.”
그래도 최규환은 아직 관료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은 것 같았다.
공공기관이란 게 처음엔 의욕을 가지고 일하다가도 위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보면 점점 타성에 젖게 되고, 자기들끼리 파벌이나 만들고 점점 의욕도 사라져, 오로지 자기 자리만 지키려고 하는 관료주의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최규환은 내 말을 듣더니 두 눈이 불타고 있었다.
그가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인터폰을 눌렀다.
“지금 당장 헌터원장님과 단장님 약속 잡아줘. 긴급이라고 말씀드리고.”
-네.
최규환이 나를 바라봤다.
“아직 조건을 말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일단 특허는 내 이름으로 냈어. 지금 가지고 있는 물건은 현재 팔리고 있는 치료제 원가에 절반 가격으로 너희에게 넘기지.”
“반값으로? 좋아. 양은 얼마나 돼?”
“많진 않아. 일단 급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구할 수 있을 양은 될 거야. 그리고 게이트에 들어가서 구하는 대로 바로 넘기지.”
“그 말볼초라는 거, 다른 게이트에서도 나올까?”
“나오겠지. 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구도 찾아올 수 없을 거야. 믿지 못할 테니, 시험해봐도 좋아. 하지만 허튼짓하면 이 거래는 이걸로 끝이다.”
최규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만약 태준이 네가 게이트 공략하다가 죽으면?”
“재수 없는 소리를! 내가 죽으면, 이 일도 끝이지. 나 외에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흐흐 그러니 내가 잘못되지 않게 비는 게 좋을 거야.”
장래에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말볼 없인 찾기 힘들 거다.
“잠시만.”
갑자기 최규환이 비서관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강민수 서기관, 지금 어디 있지?”
“1년 전에 대괴수 부대 검술 교관으로 파견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당장 복귀하라고 해.”
“네? 당장요?”
“그래.”
“네, 알겠습니다.”
비서관이 나가자 물었다.
“누군데?”
“이젠 귀하신 몸인데 일이 생기면 큰일이지.”
그래, 최규환.
이젠 내 존재를 인정해야겠지?
신줏단지 모시듯 날 지켜야 할 거야. 흐흐...
***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난 견디겠어.
언젠간 내게도 웃음이 돌아오지 않을까?
오르막길...
평소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던 유행가 가사를 윤상희가 흥얼거리며 꾸억꾸억 걷고 있었다.
게이트에서 나온 후로 제대로 쉬지 못하고 계속 움직였다. 온몸이 결리고 쑤신다.
하지만 버텨야 한다.
먹고 단련해야 다음 게이트에서도 살아올 수 있다.
그리고 작은 희망이 생겼다.
전과 달리 치료비를 쓰고도 조금씩 돈이 모이고 있다.
그러니 언젠간 아들에게 먹일 치료제를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결코 쓰러지지 않아.
내 아들, 주혁이를 위해서.
‘어? 태준씨?’
아닌가?
병원 문을 나서는 블랙 슈트를 입은 남자의 뒷모습이 어쩐지 나태준을 닮았다.
하긴, 나태준이 여기 있을 리가.
“선생님! 402호 환자요.”
“왜?”
“그게 빨리 한번 가보셔야 할 것 같아요.”
‘잠깐 402호면 우리 애가?’
병동에 들어서는 순간 들리는 소리, 윤상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제 겨우 숨통이 트였는데.
남편도 잃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까지 잃을 순 없었다.
안돼 주혁아.
제발!
“주혁아!”
드르륵!
“엄마?”
“어?”
아들이 날 보고 있다?
이거 꿈인가?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있다니?
“엄마, 어디 갔다 왔어?”
“주혁이 너?”
“나 배고파.”
“주...주혁아!”
달려가 와락 안았다.
앙상한 몸, 그 작은 몸이 느껴지자, 왈칵 울음이 쏟아졌다.
그녀의 품에서 아이의 작은 심장이 힘겹게 뛰고 있었다.
아직은.
“아흐. 아흐흐흑! 내 새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우리 아들.
네가... 네가 드디어 깨어났구나.
“엄마 울지마. 눈물 나잖아.”
“어디 아들 얼굴 좀 보자. 흑흑흑.”
아들을 안고 서럽게 울었다.
이젠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제발 이게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았으면.
“그런데 어떻게 된 거야. 응? 정말 괜찮니?”
아들에게 5년 만에 죽을 먹이며 물었다.
“어떻게 정신을 차린 거야?”
“아, 태준이 형이 왔다 갔어.”
“태준씨가? 그런데 태준씨를 아들이 어떻게 알아?”
“전에도 엄마 없을 때 한번 왔다 갔어.”
“뭐?”
겉으론 식물인간이었지만, 아들은 의식이 있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태준이 형이 약을 줘서 깨어날 수 있었어.”
“약을 줬다고?”
“응, 그리고 앞으로 엄마 말 잘 들으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라고. 엄마는 널 위해 살고 있다고...”
“그...그랬구나.”
하도 울어서 이제 눈물이 다 마른 줄 알았다.
하지만 또다시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하염없이.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었다.
깨톡이 와 있었다.
태준 - 나 오글거리는 거 싫어하니까. 전화하지 마요.
태준 - 다음 게이트 빡세니까, 단련하는 거 잊지 말고요.
자식, 눈물 나게 하네.
- 고맙다.
그 말 한마디를 남겼다.
다른 어떤 말로도 그 고마움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 아들, 내 아들을 살려준 태준이.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게.
***
며칠 후.
[국가 헌터원]
커다란 회의실에 여럿이 모여있었다.
“아이 착하다!”
윤상희가 말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어여 먹어.”
말볼은 두툼한 최고급 한우를 맛있게 씹고 있었다.
“너무 그 녀석만 챙겨주는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이 녀석 때문에 아들이 살았잖아.”
“약을 준 건 난데, 왜 말볼만 챙기는 거지?”
문득 심통이 난 태준이 작게 중얼거렸다.
말볼과 놀다 그 말을 들은 윤상희는 내심 웃고 있었다.
이럴 때의 태준은 평소와 달리 애들 같았다. 하긴 남자들이 다 애들 같은 면이 있지.
그렇다고 대놓고 뭐라고 하기도 쑥스러웠다.
만나자마자 한번 거하게 안아주었으니까, 그걸로 되었지 뭐.
태준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휴, 어색하지 않게 넘어가서 다행이다.’
도움을 주고 윤상희에게 인사를 받는데, 손발이 오글거려 죽을 뻔했다.
수진이는 화살통에 넣을 화살을 묶어서 인벤토리에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구의 강민수 서기관은 내 뒤에 서 있었다.
“강민수씨, 자리에 앉죠? 의자도 많은데?”
“괜찮습니다.”
앵앵대는 목소리가 들을 때마다 이상하다.
“유사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앉아 있는 것보다는 서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합니다.”
“아, 예.”
강민수 서기관.
최규환이 보낸 헌터로 몸집은 하마 같은데, 목소리는 모기 같다. B급 헌터고, 대괴수 부대 출신으로 타고난 군인이다.
그의 실력이면 대기업이나 웬만한 대형 길드는 그냥 들어갈 실력인데,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군인 정신으로 똘똘 뭉쳐 제대하자마자, 국가 헌터원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똑똑.
헌터원 직원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헌터증 나왔습니다.”
이곳에 온 이유는 헌터 등급 테스트를 다시 받기 위해서다.
C등급 게이트를 공략하려 했더니, 등록자인 내 등급이 낮아 헌터법 위반이란다.
그래서 나는 방금 C급 테스트를 통과했고, 윤상희는 D급, 수진이는 E급을 통과했다.
내가 받은 C등급 헌터증은 전사 클래스로 받은 것이기에 내 백정 클래스의 E등급과는 차이가 제법 벌어졌다.
백정 클래스 등급을 올리기 위해서는 백정 스킬을 많이 사용해야 하기에, 이번 게이트 공략엔 아이템의 힘보다 백정 스킬 위주로 사냥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그만 돌아가도 돼.”
“태준 오빠는 안 가요?”
“난 할 일이 남았다.”
윤상희가 날 쳐다본다.
“왜요?”
“말볼, 하루만 내가 데려가도 돼? 목욕도 좀 시키고, 우리 아들 소개 좀 해주게.”
“네, 그렇게 하세요.”
그놈 목욕시키려면 고생 좀 할 거다.
두 사람은 돌아가고 최규환을 찾아갔다.
사실 헌터 등급 테스트는 부수적인 것이었고, 지금 하는 말이 진짜 목적이었다.
“최근에 C급 통과한 헌터 명단하고, 테스트 영상 볼 수 있어?”
“그건 뭐하게.”
“게이트에 함께 들어갈 헌터 좀 골라보려고.”
“그거라면 내가 뽑아서 보내줄게. 실력 좋고, 뛰어난 헌터 많이 알아.”
“됐어. 넌 한 명 이미 보냈잖아.”
최규환의 사람은 한 명으로 족하다.
“그거 길드 관계자들에게만 보여주게 되어있는데.”
“그럼 안 되는 거야?”
“아니, 헌터원 내에서 보는 거라면 허락하지.”
인터넷에도 헌터 등급 테스트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었지만, 조작된 것도 많았고, 마구잡이로 올라와 있기에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C급 헌터증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보고, 영상을 살펴봤다.
아주 지루한 작업을 시작했다.
“어? 장비도 빵빵하고, 실력도 출중한데 왜 넘기는 겁니까?”
“글쎄요. 내 기준에는 맞지 않아서요.”
옆에 있던 강민수 서기관이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나라에 헌터가 많긴 많은가보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봤는데도 끝이 없었다.
그러다.
드디어 마음에 드는 헌터를 찾아냈다.
“이 사람 주소 좀 주십시오.”
“네? 설마요? 아슬아슬하게 통과했는데, 그런 사람을 뽑아서 뭐합니까? 게다가 C급 헌터가 홉고블린이 뭡니까. 홉고블린이.”
나름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강민수 헌터는 잘 모를 것이다.
이 테스트 영상 속에 헌터는 자신과 같은 처절함이 엿보였다. 하지만 나와 다르게 돈을 버는 일엔 소질이 없었나 보다.
그 길로 그 헌터를 찾아 나섰다.
***
지하 터널 건설 현장.
C급 헌터가 여기서 일한다고?
그리고 얼마후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홉고블린 여덟 마리가 안전모를 쓰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근처에서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 헌터를 발견했다.
“오, 소환수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군요.”
사내는 나를 슬쩍 올려다봤다.
“누구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나태준 헌터라고 합니다. 이수호 헌터시죠.”
“그런데요.”
“이렇게 하면 일당 얼마나 받습니까?”
“여덟 배요.”
제법 짭짤한데?
이수호는 키도 작고 체격도 작았다.
게다가 얼굴이 앳돼 보여 고등학생처럼 보였지만 24살이었다.
“왜 그러시죠?”
“C급 게이트를 공략하려는데 파티원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
이수호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용무로 자신을 직접 찾아온 헌터는 처음이었다.
“조건은요?”
“2억.”
“2억이요?”
“그리고 클리어 보상에 따라 보너스를 드리죠.”
이수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돈이 절실히 필요했다.
C급 소환 계열 헌터라면 적어도 오크 전사나 리자드맨 정도는 소환해야 그쪽 계열에서는 평타였고, 돈이 많은 사람은 트롤이나 버그베어까지 뽑는 헌터도 있었다.
그런데 이수호는 E급 헌터들이나 뽑는 홉고블린을 아직 사용하고 있었고, 홉고블린을 가지고 C급 테스트까지 통과했다.
사실 그것만 봐도 그의 소환사 재능은 매우 뛰어난 것이었다.
다만 소환사란 직업이 초기에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검사는 검 한 자루면 되지만, 소환사는 등급이 오를 때마다 더 강한 소환룬을 사야 했고, 그 가격이 억 단위에서 십억 단위로 오르고, 중상급 소환룬은 백억 단위까지 오른다.
하지만 그는 돈이 너무 없다 보니, 더 강한 소환룬을 사지 못했고, 겨우 홉고블린을 소환해선 길드에 들지도 못했다.
길드에 들지 못했으니, 게이트에 들어갈 기회도 거의 잡지 못했고, 게이트에 자주 들어가지 못했으니, 큰돈을 벌지 못해 소환 룬을 사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태준은 이렇게 소외되어 간절한 눈빛을 가진 자를 찾고 있었다. 이수호는 게이트가 아니라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기세였다.
“게이트가 어딥니까 당장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