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32화 (32/149)

# 32

32. C급 게이트(2).

예상대로 이수호는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에게 게이트 공략은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C급 게이트는 공략한 경험이 있습니까?”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 있습니다.”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의 옆으로 홉고블린들이 모여들었다.

“너희 실력을 보여드려.”

“굳이 그러지 않아도...”

홉고블린들이 각자 공구를 들고 움직였다.

톱질하는 놈, 스패너를 들고 나사를 돌리는 놈, 삽질하는 놈, 망치질하는 놈, 줄자로 길이를 재는 놈, 미장공 흉내 내는 놈, 물건 나르는 놈, 마지막으로 감독이 오나 안 오나 망보는 놈까지...

‘여덟 마리를 모두 이렇게 세심히 컨트롤 하다니...’

누가 봤으면 이 모습에 크게 웃었을 것이다.

홉고블린들이 마치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으니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수호를 보고 있었다.

집중해서 소환수를 조종하는 그의 모습에 오히려 가슴이 먹먹하다.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저렇게까지 치열하게 컨트롤 하지 않았으면 홉고블린만으로 게이트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수호의 테스트 영상을 보고 생각난 것이 있어 물었다.

“C급 승급 테스트 영상에선 홉고블린들이 모두 단검을 쓰던데. 다른 무기는 못 쓰는 겁니까?”

“씁니다. 뭐든 가능합니다. 단지 무기 살 돈이...”

그가 말끝을 흐렸다.

소환술사가 돈이 많이 드는 이유가 여기 하나 더 있었다.

상위 소환수가 아니면 이곳에 소환될 때 기본적으로 무기를 들고 나타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맨몸. 그래서 소환술사가 일일이 무기까지 준비해야 하니, 돈이 몇 배로 더 들었다.

“단검도 나쁘진 않은데, 괴수한테는 뭔가 더 강한 무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알겠습니다. 게이트 공략 전까지 전부 새롭게 무장을 시키겠습니다.”

“기대하죠. 게이트 공략일은 사흘 후입니다. 그때까지 컨디션 잘 조절하고, 혹시 모르니 신변 정리도 해 놓으세요.”

“어차피 가족도 없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수호는 나와 처지가 같았다.

그 역시 게이트 발생으로 오래전에 고아가 됐다.

그나마 운이 좋아 5년 전에 헌터가 되었지만, 클래스가 소환술사였다. 검사나 궁수, 마법사처럼 초기에 돈 안 드는 헌터가 됐다면, 훨씬 편했을 것이다.

헌터가 되기 전에는 죽을 고생을 다 했다고 들었다. 사실 말을 안 해도 나보다 어린 그가 부모 없이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나와 닮은 이수호 소환술사를 섭외했다.

***

“오천이나 선금을 주다니 세상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현금으로 주다니요.”

어디서 모기가 앵앵대나?

강민수는 큰 체격과 다르게 잔소리가 많았다.

“뭐, 헌터가 사기를 치겠습니까.”

“몰라서 그렇지, 그런 헌터 많습니다.”

이수호가 소환수 무기 업그레이드하는데, 돈이 필요하다며 대뜸 선금으로 5천만원을 요구했다.

그냥 줬다. 조건 없이.

강민수는 걱정했지만, 이수호는 꼭 올 것이다.

나도 그를 믿는 것은 아니다.

내가 언제 봤다고 그를 믿겠는가.

하지만 그의 상황은 믿을 만했다.

게이트가 간절한 사람이기에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다.

“그런데 여기가 맞습니까?”

[무신 조자룡 장군]

설마 여기가?

붉은색 간판과 대문 앞에 서 있는 검을 든 인형이 기괴하다.

“네, 주소는 분명히 여기가 맞습니다.”

헌터 승급 테스트 기록에는 깨지지 않는 전설이 있었다.

S급, A급, B급, C급 1위의 통과 점수였다.

헌터 협회와 국가 기록원이 통합된 점수에 B급에서 S급까지는 모두 이연희가 세운 기록으로 테스트 프로그램이 생긴 이후로 아직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C급 기록도 마찬가지였는데, 3년 전에 생긴 이 기록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태준은 이 기록을 가진 헌터의 테스트 영상을 보고, 그의 주소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무당집?

“여기 잠깐만 기다리죠. 일단 안에 들어가서 만나 봐야겠습니다.”

“네, 다녀오십시오.”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안쪽에는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곳 박수무당이 제법 용하다고 주변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번호표까지 받고, 3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내 차례가 됐다.

기다린 보람이 있어야 하는데...

“어허! 귀신을 왜 달고 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화장한 사내가 나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호통을 쳤다.

“귀신?”

“자네 뒤에 귀신이 있어. 그것도 하나둘이 아니야.”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가까이 다가가 방석에 앉았다.

“괴수보다야 귀신이 백배 낫죠. 정기용 헌터시죠.”

박수무당이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그런데요.”

“긴말 하지 않겠습니다. 전 나태준이라고 합니다. 정기용씨를 고용하고 싶습니다.”

“뭐요?”

“이번에 C급 게이트를 공략하는데, 당신을 파티원으로 데려가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정기용에게 이번 게이트 공략과 동료 파티원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들은 정기용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미안하지만, 이젠 게이트 안 들어갑니다. 보다시피 위험한 일 안 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어서요.”

그렇게 보인다.

그는 이제 헌터가 아니라 무당이었다.

C등급 승급 테스트 종합점수 1위를 계속 유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이 있음에도 길드나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았고, 최근 게이트 공략 기록도 전혀 없어서 무슨 사정이 있는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박수무당이 되어있었다.

솔직히 그의 실력이 너무 아까웠다.

“게이트 공략에 관심 없다니 아쉽네요. 승급 테스트 영상 봤는데, 실력이 매우 출중하더군요.”

“험! 내가 모시는 신이 무신 조자룡 장군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뛰어날 수밖에 없지요. 자랑은 아니지만, 내가 세운 C등급 테스트 점수가 3년째 깨지지 않고 있습니다. 뭐 앞으로도 깨지지 않겠지만.”

“기록은 이번에 깨졌습니다.”

“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빼앗았으니, 점값은 놓고 가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게이트를 공략하고 싶으면 연락 주십시오.”

전화번호를 남겼다.

아쉽게도 정기용은 영입하지 못했다.

이수호는 영입에 대한 확신이 있었지만, 정기용은 그냥 한번 어떤 사람인지 만나보고 제안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크게 아쉽진 않았다.

나태준이 나가자, 정기용은 바로 헌터 협회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정말 자신의 이름이 있던 자리에 다른 사람의 이름과 점수가 올라와 있었다.

‘뭐? 나태준 헌터라고?’

방금 쪽지를 남기고 간 사내의 이름과 똑같았다.

그는 그 이후로 한참이나 손님을 받지 않았다.

***

[C급 게이트]

바라보기만 해도 심장이 거칠게 뛴다.

아침 햇살도 집어삼키는 괴물.

3층 건물만 한 검은 구덩이가 손짓한다.

나를 공략하라고, 여기엔 부와 명예가 있다고.

C급 게이트 이상부터는 레전더리 아이템이 가끔, 아주 가끔 이지만 보상으로 나온다.

레전더리 아이템 하나만 뜨면 헌터 팔자가 핀다.

A급 헌터 중에서도 레전더리 아이템 하나 없는 헌터가 수두룩하다.

이런 일확천금의 기회에도 헌터들이 머뭇거리는 것은, 목숨이 아깝기 때문이겠지.

이번 게이트에서는 괴수 백정의 스킬을 최대한 올릴 생각이다. 그래야 비대각(批大卻) 같은 새로운 백정 스킬도 배울 수 있고, 백정 헌터 등급도 올라갈 것이다.

“태준씨!”

수진이와 윤상희가 도착했다.

이곳은 도봉산 뒤쪽에 있는 송추계곡 초입이었다.

이곳에 커다란 게이트가 생성되자, 민간인들이 통제되고 군인들과 헌터들만 오갈 수 있었다.

시원한 계곡에서 말볼과 단둘이 있는 나를 보자, 윤상희가 물었다.

“설마, 우리가 전부야?”

“아니요. 한 사람 더 올 거예요.”

이수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략 인원이 부족했지만, B급 헌터도 있고, 소환술사도 영입했다. 그리고 D급 게이트 수십 번을 공략하는 것보다 C급 게이트 한번이 더 경험치와 보상이 컸기에 강행하기로 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에겐 든든한 말볼이 있다.

“태준 오빠, 김밥 싸 왔어요.”

“뭐?”

“우리 먹으면서 기다려요.”

게이트 부근에 있던 강민수가 우리를 슬쩍 쳐다봤다.

그러자 수진이가 가서 강민수를 데려왔다.

“난 괜찮은데.”

“넉넉히 싸 왔어요.”

그는 못이기는 척 다가왔다.

김밥을 본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말볼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윤상희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건 우리 집에서 나와 함께 만든 거니까?”

“아, 그럼 고등어는?”

“고등어는 뺐어, 보니까 수진이가 고등어 비린 맛을 좋아하더라고.”

녀석 특이한 입맛을 가졌다.

음료수를 꺼내던 수진이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김밥을 하나 먹었다.

아, 맛있다.

김밥은 역시 어머니의 손맛이 들어가야 제맛.

옆에 계곡이 흐르고, 시원한 산 바람이 분다.

오랜만에 소풍 온 기분이 들었다.

“이 맴버가 다인가요? 조촐하군요.”

모두의 시선이 돌아갔다.

기다리던 사람은 아니었다.

온통 퍼런색 무당 옷에 머리를 위로 묶고 부채를 들고 나타난 사람.

“정기용 헌터께서 여긴 무슨 일입니까?”

게이트 공략에 관심이 없다던 박수무당이 왜 이곳에 나타난 거지?

“벌써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으면 어쩌나 걱정했습니다. 어제 조자룡 장군께 물어보니, 남쪽에서 온 귀인과 함께하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합류하려고 왔습니다.”

생각도 안 한 사람이 왔기에 조금은 당황했다.

그런데 난 서쪽에 사는데...

“이리 앉으시죠. 식사 안 했으면...”

“오! 김밥이군요.”

정기용이 앉아서 김밥을 집으며 다른 팀원들과 가볍게 인사를 했다. 처음엔 진한 화장한 사내가 이상한지, 분위기가 어색했다.

하지만 그가 여자들의 손금을 봐주며 입을 털기 시작하자, 금방 분위기가 좋아졌다.

친화력 하나는 끝내주는군.

그렇게 식사까지 마쳤지만, 이수호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거 아닐까요?”

강민수의 말에 살짝 초조했다.

갑자기 일이 생긴 건가?

다들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 장비를 챙기고, 몸을 풀고 있었다.

“아, 저기 누가 오네요.”

수진이가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이수호를 발견했다.

그는 홉고블린들과 함께 달려오고 있었다.

“헉헉, 죄송합니다. 무기가 이제야 완성돼서요.”

홉고블린들의 손에는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설마 5천만원으로 겨우 쇠파이프를?”

강민수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 쇠파이프 안에는 단단한 테노도라(C)의 뼈가 들어있습니다. 평소 공사장에서 쇠파이프를 자주 만졌기에 뼈의 질감보단 손에 익은 쇠파이프의 재질이 나을 거라 전체적으로 덮었습니다.”

이수호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고블린들에게 명령했다.

“애들아! 보여드려.”

홉고블린들이 각자 쇠파이프를 들고 공격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착착착!

허리춤에 있던 단검을 쇠파이프 끝에 장착했다.

“상황에 따라 이렇게 단창으로 변화도 가능합니다.”

그의 세심함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게르르르!”

말볼이 옆에서 으르렁대며 다가가 고블린들을 손으로 툭툭 쳤다. 하지만 반응이 없자, 팔을 물었다.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고블린들은 차려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말볼 그거 먹는 거 아냐.”

“께겡?”

맛이 없었나? 말볼이 뒤로 물러섰다.

“자, 모두 모였으니, 이제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렇게 이글거리는 게이트 앞으로 이동했다.

“여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철통같이 지키겠습니다.”

심선경 사무관이 이번에도 게이트 입구를 지키기로 했기에 든든했다.

시커먼 게이트 앞에 섰다.

새로 합류한 동료가 셋이나 있었다.

그들이 어떤 활약을 할지와 게이트 안에서의 모습을 보고 앞으로 C급 게이트를 어떻게 공략할 건지, 어떻게 헌터 등급을 올릴 것인지 계획을 세울 생각이었다.

“가자!”

***

말볼과 가장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나와야 하는데 또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푹신한 땅에 닿자마자, 몸을 앞으로 굴러 충격을 분산시켰다.

“말볼!”

“께껭!”

주변에 다행히 모래가 깔려있었다.

쿵! 쿵! 쿵!

내 뒤를 이어 팀원들이 떨어졌다.

“수진아!”

“윽, 100미터 안에 괴수는 없어요.”

“혹시 모르니까. 다들 주변을 경계해!”

팀원들이 일제히 주변을 살폈다.

게이트 입구가 머리 위에 있었다.

‘돌아가는 길이 쉽진 않겠어.’

천장에서 조금씩 모래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고, 빛도 그곳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긴 통로를 따라 간혹 빛이 들어오는 천장이 있었고, 모래도 떨어지는 것이 이 위는 사막인 것 같았다.

역시 게이트 종류는 다양했다.

태준뿐만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도 이런 모래가 떨어지는 동굴형 게이트는 처음이라고 했다.

[안탈리안 개미굴(C등급)]

[게이트 클리어 조건 : 안탈리안 알을 파괴하시오. 여왕 안탈리안(B)을 죽이시오.]

[현재 카운터 : 안탈리안 알 - 0/100,000, 여왕 안탈리안 - 0/1]

[보상 - ?]

[보상 - ?]

전투 중 게이트 클리어 조건이 떴다.

걱정했던 것보다 클리어 조건은 복잡하진 않았다.

하지만 여왕 안탈리안이 B급 괴수란 것이 살짝 마음에 걸렸다.

“모두 들어온 거야?”

“정기용이 아직인데.”

인원파악을 맡은 윤상희가 말했다.

고블린까지 모두 들어왔지만, 정기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제 와 마음이 바뀐 건가.

그 순간.

“으아아!”

쿵!

수직으로 떨어진 박수무당이 모래에 몸이 절반이나 박히며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그는 붉은색 손잡이에 푸른색 날이 번쩍이는 검을 들었는데, 검날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보는 것만으로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좋은 검 같았다.

그런데 그의 자세는 뭔가 어설퍼 보였다.

“모두 도착했어.”

그때였다.

“게르르르!”

말볼이 어둠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괴수다! 전투준비!”

척척척척!

홉고블린 여덟 마리가 쇠파이프를 들고 말볼 좌우로 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