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 C급 게이트(3).
“괴수가 어디 있다는 거지?”
전방을 노려보던 강민수가 마력 소총의 총구를 내렸다.
이수호와 정기용 역시 잔뜩 긴장했는데 괴수가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진이가 말했다.
“말볼이 으르렁대면 괴수가 오고 있는 거예요.”
“그 똥개, 아니지 괴수 새끼를 믿는 거야?”
“네!”
태준과 수진, 윤상희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와요! 전방 100미터! 숫자가 많아요!”
한수진이 크게 외치며 어둠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자 윤상희는 두 자루의 도끼를 양손에 들고 한수진과 이수호 앞을 막아섰다.
“태준씨, 두 사람은 내가 지킬 테니, 집중해서 싸워!”
뒤를 슬쩍 쳐다보았다.
내가 맡긴 그녀의 포지션.
잘하겠지?
“말볼, 뒤로 물러서!”
백정의 칼을 들고 맨 앞으로 나섰다.
꾸엑! 콰직!
어둠 속에서 수진이가 쏜 화살에 괴수들이 죽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잘 쏘네. 새로운 스킬을 익혔나?’
어둠 속에서도 백발백중이었다.
그제야 강민수가 마력 소총을 쏘기 시작했다.
타탕! 타타타타탕!
예광탄이 중간중간 밝혀지며, 괴수의 몸이 터지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 보통 총은 아니군.’
강민수, B급 헌터에 전사 계열.
그런데 내 뒤에서 마력 소총을 쏘고 있었다.
소총 앞에 황금색 단검이 박혀있었는데, 이게 또 한눈에 봐도 물건이었다.
최소 유니크 아이템쯤 되려나.
판타지에 마검사가 존재하듯이 그는 총과 검을 함께 쓰는 총검술사였다.
“꾸아!”
어둠 속에서 뭔가 시커먼 물체가 달려들었다.
백정의 칼을 수직으로 그었다.
둔탁한 감촉.
벴다.
검은 물체가 두 동강 났다.
“왔다!”
쩍! 화르르르!
윤상희의 도끼가 달려드는 괴수의 이마를 찍자, 불길이 번쩍였다. 그리고 야수의 광기가 새겨진 도끼를 한 번 더 찍어 마무리했다.
‘개미?’
칼로 괴수를 죽이면서 놈들의 구조를 관찰(lv2) 스킬로 살폈다.
[안탈리안 척후병(E) - 선봉대. 주변의 위협을 파악하고, 먹잇감을 찾는다. 척후병이 꼬리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면, 일꾼들은 그 냄새를 맡고 먹이와 길을 찾을 수 있다.]
[관찰 스킬이 올랐습니다.]
[관찰(lv3)!]
척후병을 살펴보다 오랜만에 관찰 스킬 레벨이 올랐다.
하지만 기뻐할 새가 없었다.
동굴은 크고 넓었기에 지킬 곳이 많았다.
“소환수, 좌측으로!”
지시를 받은 이수호가 외쳤다.
“고블린 돌격대, 앞으로!”
“끼긱기끼!”
퍼퍽! 퍽! 퍽!
홉고블린들이 좌측으로 우르르 몰려가 자신보다 배는 큰 거대 개미를 향해 쇠파이프를 부지런히 휘둘렀다.
‘제법 효과가 있네.’
사실 처음에 쇠파이프를 들고 나타났을 땐 반신반의했다.
창이나 칼, 도끼처럼 날카로운 것만이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파이프에 머리와 몸통을 맞은 개미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흐느적거렸다. 그러자 뒤에 있는 고블린 네 마리가 쇠파이프 끝에 단검을 연결했다.
순식간에 단창을 든 고블린들이 정신을 못 차리는 개미를 향해 달려들었다.
푸푸푸푹!
괴수가 창에 찔리는 죽는 순간. 다른 고블린들은 쇠파이프를 들고 다른 괴수에게 달려들어 린치를 가하고 있었다.
역시 컨트롤 하나만큼은 발군이다.
[해체(lv5) 스킬이 발동합니다.]
백정의 칼이 춤을 춘다.
칼이 스치는 곳마다 괴수들의 몸뚱어리가 잘려나갔다.
곤충형 괴수는 이미 공개 게이트에서 실컷 잡아봤다.
기본 구조는 같다. 머리, 가슴, 배.
피부를 감싼 껍데기는 딱딱해 기본적으로 방어력이 좋았고, 주둥이에 두 개의 이빨이 매우 날카로워 한번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다. 하지만 지금 척후 개미들은 방어력이 내 공격력보다 한참 낮다.
“께겍!”
크앙!
말볼이 안탈리안 척후병의 머리와 가슴 사이의 마디를 물고 늘어졌다.
본능적으로 놈들의 약점을 아는 거다.
전체적으로 껍질이 단단했지만, 마디가 얇아 그곳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면,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지금처럼.
투둑!
괴수의 머리가 떨어졌다.
‘허, 이놈 봐라. E급 괴수를 혼자 잡았어?’
F급 괴수가 E급을 잡다니, 게다가 아직 새끼가 아닌가.
“말볼, 잘했어.”
녀석이 대견했지만, 다쳐서는 곤란하다.
“이수호씨, 말볼이 앞으로 달려나가지 않게 잡아요.”
“네? 제가요?”
“어서.”
“네...네.”
이수호가 말볼을 안았다.
안는 자세가 엉거주춤했지만, 말볼이 내 뜻을 알았는지 발버둥 치진 않았다.
그이후로 얼마나 괴수를 죽였을까?
개미 똥구멍에서 나온 시큼한 악취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수진아 아직도야?”
“네, 계속 몰려와요.”
괴수 등급은 E등급밖에 안 됐지만, 그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렇게 40분여 동안 잡은 안탈리안 척후병의 숫자가 수백 마리는 넘은 것 같았다.
“어! 놈들이 물러가요.”
수진이의 말이 들리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던 안탈리안 척후병들이 하나둘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괴수 새끼들! 죽어! 죽어!”
푸른 검날이 번쩍이자, 달아나는 거대 개미의 배가 갈라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정기용이 자신의 손에 죽은 안탈리안을 난도질했다.
더는 달려드는 괴수가 없자, 소리쳤다.
“누구 다친 사람 있습니까?”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다들 실력이 좋았다.
특히 이수호의 홉고블린들은 전장에서 닳고 닳은 용병 느낌이 날 정도로 움직임이 노련했다.
“자, 그럼 물부터 마시고 다음 공격 대비합시다.”
정기용이 검에 묻은 괴수의 피를 닦다가 물었다.
“다음 공격이오?”
“놈들은 척후병입니다, 곧 본진이라 할 수 있는 일꾼 괴수들이 대거 몰려올 겁니다.”
“아...!”
웬일인지 정기용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느낌이다.
일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괴수를 잡으러 다녔을 때보다 지금처럼 팀으로 움직일 때가 몇 배는 더 힘든 것 같았다. 수진이와 윤상희는 실력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믿고 맡길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더 파악해야 했기에 신경이 많이 쓰였다.
“이수호씨, 나 좀 도와주죠.”
“네!”
다른 맴버들은 다음 전투를 위해 쉬고 있었고, 이수호는 홉고블린들을 이용해 괴수 사체를 한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도왔다.
[감식(lv3) 스킬이 발동합니다.]
어둠 속에서 괴수를 해체해 내부를 살폈다.
가슴 부분에 있는 심장과 위 등은 쓸모가 없었다.
안탈리안 척후병의 배를 가르고 감식할 때였다.
순간 손이 따끔했다.
[E급 안탈리안 척후병의 독(호르몬) -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거나 혈액으로 침투하면 마비 증상이 발생한다. 피부에 닿으면 괴저 현상이 일어나고, 눈에 들어갈 경우 실명할 수도 있다. 안탈리안 일꾼들은 이 냄새를 맡고, 먹이를 찾는다.]
‘제길, 독을 손으로 만졌군.’
잠시 팔이 저리며, 전기가 오른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사라졌다.
[하급 독을 이겨냈습니다. 독 저항력이 올랐습니다. -35]
괴수 바이퍼(E)의 독을 이겨낸 후로 두 번째 독이었다.
그때 독 수련자(F)의 업적을 받았기에 독 내성이 생겼다.
그 때문인지 처음 바이퍼의 독에 노출됐을 때는 고통이 심했지만, 두 번째는 금방 사라졌다.
이놈의 독도 바이퍼의 독처럼 어딘가 쓸 수도 있었다.
괴수의 독낭에서 독을 짜서 가져온 병에 담았다.
감식이 모두 끝나고 괴수의 배를 해체해 마석을 찾고, 마비독을 모았다.
짧은 순간 참 많이도 잡았다.
40분 동안 310여 마리를 잡았고, E급 마석 37개를 챙겼다.
내가 엄청난 속도로 괴수의 배를 가르고 마석을 꺼내는 모습을 보자, 이수호가 옆에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눈치가 빠르군.’
그런데 괴수를 해체하면서 보니 한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박수무당 정기용의 검에 당한 괴수가 단 한 마리밖에 없었다.
괴수의 몸에 난 상처는 사람의 지문처럼, 공격자의 무기나 성향 등을 그대로 나타낸다.
수진이가 죽인 괴수는 화살이 여러 개 박혀있어 너무 구분하기 쉬웠다. 그리고 윤상희의 도끼 역시 확실한 그녀만의 상처를 만들었고, 화염에 껍질이 벌겋게 익은 것도 그녀의 솜씨였다.
강민수의 소총은 괴수를 벌집으로 만들었고, 이수호의 홉고블린들은 단체 린치 후 여러 마리가 동시에 단창을 찔러서 죽였다.
정기용의 검날은 바위도 자를 것처럼 예리했기에 상처가 가늘고, 절단면이 깨끗했다. 문제는 그런 괴수 사체는 난도질당한 마지막 한 마리밖에 없었다.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왜 괴수를 한 마리밖에 죽이지 않는 거지?’
정기용은 연희와 같은 샤먼 클래스라 접신(接神) 스킬을 통해 수호신의 힘을 받는다. 그의 말대로 조자룡이 수호신이라면, 매우 뛰어난 검술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푸른빛의 검까지 들고 있었으니, 테스트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C급, D급 괴수들을 무처럼 썰고 다녔을 것이다.
아직 자신이 나설 때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괴수 해체를 끝내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왔다.
다들 괴수가 언제 올지 모르기에 무기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았다.
상태창.
[나태준]
- E등급
- 체력 : 143
- 마나량 : 26(31)
- 클래스 : 괴수 백정.
- 특성 : 관찰(lv3), 도살(lv3). 해체(lv5), 감식(lv3).
- 특기 : 비대각(批大卻).
- 업적 : 티볼 도살자(F). 독 수련자(E).
*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 - 사용 중지.
* 회복의 반지(레어) - 사용 중지.
* 녹음의 링(유니크) - 사용 중지.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을 착실히 사용해 단련했기 때문인가?
체력이 많이 늘었다.
전에 해체 레벨이 5가 되고, 체력이 100이 넘으면서 E등급으로 승급했다.
D등급으로 승급하려면 일단 스킬 레벨이 낮은 도살(lv3)과 관찰 스킬을 중점적으로 올려야 했다.
“저기, 괴수가 몰려온다는데, 다른 곳으로 피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정기용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 전에 수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헌터에요. 사냥감이 온다는데 어딜 가요. 그냥 잡는 거지.”
피식 웃었다.
첫 번째 게이트에 들어가서, 내가 수진이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걸 따라 하다니, 녀석 기특하네.
수진이가 작정하고 모래 위에 화살을 뭉텅이로 꽂으며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정기용에게 말했다.
“일단 이번 괴수를 잡고 어디로 이동할지 생각해 보죠.”
“네.”
홉고블린들에게 둘러싸인 이수호 옆에 앉았다.
“이수호씨, 아직 할 만하죠?”
“네, 아직은요. 그만 말 놓으세요. 계속 존대하시면 제가 어색합니다.”
“그럼 그럴까?”
“그리고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형? 그래.”
“지금 한번 불러봐도 돼요?”
“지금? 그, 그럼.”
“태준이형!”
뭔가 오글거리고 어색했지만, 나쁘진 않았다.
“수호야. 홉고블린들 잘 싸우던데.”
“아니에요. 처음 상대하는 괴수라 아직 반응이 느린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요. 곧 제 실력을 발휘할 겁니다.”
지금도 괜찮지만, 더 괜찮아진다는 말이었다.
순간 수호가 다른 소환수를 뽑으면 어떻게 싸울까 궁금했다.
“다음엔 어떤 소환룬을 살 계획이야?”
“일단은 오크나 리자드맨을 생각 중입니다. 아직은 돈이 많이 부족해서요.”
“오크 좋지. 나중에 S급 되면, 백색의 마녀 최민지처럼 드래곤을 뽑는 거야?”
“아니요. 전 최종적으로 하이엘프 네 마리를 소환할 겁니다.”
“엘프를 넷이나?”
왠지 살짝 부러웠다.
그 순간 쭉쭉 빵빵 엘프를 넷이나 끼고 다니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엘프 소환하면 나도 같이 다니자.”
“네. 형님은 당연히 함께 해야죠.”
왠지 수호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들었는지, 윤상희와 수진이가 뒤에서 고개를 흔들었다.
“쯧쯧, 남자들이란... 준비해. 괴수가 온다!”
윤상희가 말볼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가장 먼저 들었다.
쿠쿠쿠쿠쿠!
땅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쪽 동굴 천장에서 내려온 빛에 반짝이는 검은색 물결이 보였다.
수진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온통 빨간색이에요!”
“이거 조준사격을 할 필요도 없겠는데.”
[안탈리안 일꾼(E) - 그들이 지나는 곳엔 풀 한 포기 남지 않는다. 척후병이 발견한 먹이를 사냥하고 둥지로 끌고 간다. 집을 짓고, 먹이 활동과 육아까지 모든 일을 담당하며, 죽을 때까지 일만 한다. 자기 몸집보다 여섯 배나 큰 먹이를 사냥할 정도로 힘이 좋다.]
“숫자에 기죽지 말고, 오늘 제대로 사냥 좀 합시다.”
해체 스킬을 발동하고, 칼을 겨눴다.
오늘 괴수 웨이브를 제대로 볼 것 같았다.
“온다!”
몰려드는 놈들을 맞아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안탈리안 척후병보단 크기는 작았지만, 놈들 역시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그리고 오로지 돌진밖에 모른다.
베고, 베고, 또 베기 시작했다.
칼이 닿는 순간 괴수가 잘려나갔다.
다른 팀원들 역시 괴수와 치열하게 싸웠다.
B급 헌터 역시 놈들이 E급 괴수라고 우습게 볼 수 없었다.
한번 넘어지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몰려들어 위험했다.
“어딜 지나가려고!”
윤상희가 도끼를 사정없이 휘둘렸다.
아들이 준 장난감 부적이 있어서 절대 죽지 않는다는 그녀.
솔직히 아들의 게이트병이 나았으니, 이제 게이트 공략은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필요할 거라며 적극적으로 게이트 공략에 참가했다.
순전히 나를 위해 참여한 것이다.
그녀의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벽을 타고 넘어온다!”
앞이 막히자, 괴수들이 벽과 천장을 통해 우리를 지나가려 했다. 놈들이 지나가면 앞뒤로 포위되는 셈이었다.
강민수와 수진이가 벽 쪽에 있는 놈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천장으로 올라간 괴수들이 커다란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면서 벽만 막으면 포위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으악! 저리 가!”
정기용의 비명이 들렸다.
그는 겨우 괴수 하나 때문에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정기용이 검을 겨눴다.
그러자 괴수가 날카로운 검에 달려들어 스스로 찔려 죽었다.
“뭐하는 겁니까? 어서 접신 스킬을 쓰세요.”
“에이 시팔, 한번 해보자.”
정기용이 입술을 깨물며 스킬 주문을 외쳤다.
“갈라졌던 두 개의 영혼이여, 원래 하나였던 내 몸에 강림하소서.”
신내림을 받는 모습인가.
정기용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곧 떨림이 멈췄다.
순식간에 그의 눈에서 붉은 안광이 뿜어졌다.
그런데.
여전히 괴수를 공격하지 못하고, 검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겨누고 있었다.
“크윽! 몸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져.”
어찌 된 일인가?
붉은 눈과 몸에서 뿜어지는 기세, 분명 영상에서 봤던 대로 접신에 성공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무신의 실력은 어디 가고, 잔뜩 몸이 굳은 얼뜨기 하나가 검을 휘젓고 있었다.
그나마 검이 좋았기에 달려들던 괴수가 알아서 죽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한심하다 못해, 처량했다.
“정기용씨, 뒤로 가세요.”
정기용이 엉성한 자세로 수진이와 이수호가 있는 자리로 이동했다.
정기용이 트롤러였다니...
오히려 접신하기 전이 더 나았다.
정기용이 빠졌지만, 밀리진 않았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E급 괴수에게 밀려서야 되겠는가.
하지만 놈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자, 한쪽 벽에 작은 반원을 그리며 방어진을 구축했다.
강민수는 총을 쏘기도 하고, 총검술로 가까이 다가오는 괴수들을 찔러 죽였다.
그리고 윤상희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필사적이었다.
“끼껙!”
그런데 가장 먼저 고블린들이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졌다.
이수호가 열심히 컨트롤하고 있었지만, 홉고블린 한 마리에 괴수 두세 마리가 붙자, 도저히 컨트롤로 극복할 수준이 아니었다.
“다들 괜찮아?”
“아직 괜찮아!”
윤상희가 가장 먼저 대답했다.
다른 맴버들도 괜찮다고 말은 했지만,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괜찮진 않아 보였다.
“내가 놈들을 유인할 테니까. 조금만 더 버티고 있어.”
“안돼 위험해!”
윤상희가 만류했다.
“맞아요. 죽더라도 여기서 함께 싸워요.”
수진이 역시 고개를 흔들었다.
“죽긴 누가 죽어. 누구를 지키면서 싸우는 게 쉽지 않아서야. 그리고 나 몰라?”
강민수가 말했다.
“그럼 내가 길을 열지요.”
“아닙니다. 강민수씨는 여길 지켜요. 이건 리더로서 명령입니다.”
인벤토리에서 안탈리안 척후병의 독을 꺼내 온몸에 뿌렸다.
그러자 괴수들이 괴성을 지르며 미친 듯이 달려든다.
쇠사슬은 놔두고 갈고리만 꺼냈다.
그리곤 걱정하는 윤상희와 수진이를 보며 말했다.
“곧 돌아올 테니, 식사 준비나 해 놔.”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을 사용합니다.]
“간다!”
다리가 부풀어 오르며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내 발에 밟힌 일꾼 안탈리안 괴수들이 터져나갔다.
10톤 힘으로 눌렀으니, 버틸 순 없을 거다.
내가 달리자, 놈들이 방향을 바꿔 나를 추격한다.
내 몸에서 나는 지독한 척후병의 호르몬이 놈들을 유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한쪽 벽에 기댔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척후병의 독을 더 꺼내 몸에 부었다.
시큼한 향이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졌다.
괴수들을 떨쳐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죽이려는 것이다.
최규환의 사람에게 내 실력을 전부 보일 순 없었다.
눈앞에 괴수들이 새까맣게 몰려왔다.
“좋아, 이제 시작해 볼까.”
[해체(lv5) 스킬이 발동됩니다.]
백정의 칼과 갈고리를 휘두르며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
[해체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체(lv6)!]
[해체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체(lv7)!]
[도살 레벨이 올랐습니다.]
[도살(lv4)!]
[해체 레벨이 올랐습니다.]
[해체(lv8)!]
[관찰 레벨이 올랐습니다.]
[관찰(lv4)!]
[괴수 백정 등급이 올랐습니다.]
[D등급!]
[백정 스킬 - 도대관(導大窾)을 익혔습니다.]
***
“태준씨가 너무 안 오는데...”
“찾으러 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윤상희와 한수진이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태준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지만, 괴수의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걱정이었다.
게다가 벌써 3시간이 지났다.
‘이 정도에 죽을 사내라면, 최규환 국장님께서 사람을 잘 못 본 거겠지.’
강민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이 임무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괴수를 상대할 헌터와 군인들을 가르치고 있던 자신을 겨우 한 사람의 경호를 맡겼다.
그것도 겨우 C등급 헌터를 말이다.
사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펼쳤다면, 나태준이 홀로 괴수를 유인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나태준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 혼자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탈출하면 그만이었다. 최규환 국장에게 욕은 좀 먹겠지만, 게이트에서 일어난 일은 게이트에서 끝내는 법이니까.
“께게겍!”
갑자기 말볼이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어둠 속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