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34. C급 게이트(4).
‘내 앞에서 솜씨를 전부 보이지 않은 건가?’
강민수의 표정은 복잡미묘했다.
수천이나 되는 괴수를 따돌리고 무사히 돌아온 태준이 어딘가 달라 보였다. 눈빛이 더 강렬해졌다 할까?
그에게 뭔가 있을 거라는 최규환 국장의 말이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도 있나? 조금 더 지켜볼 필요는 있겠어.’
어둠 속에 있는 태준을 향해 말볼이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지만, 그의 품엔 안기지 않았다. 아직 안탈리안 척후병의 호르몬 냄새가 다 빠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
수진이와 윤상희가 한발 늦었다.
태준에게 말볼 다음으로 달려간 것은 이수호였다.
“어디 다친 데는 없어요?”
“이 정도론 끄떡없어.”
가볍게 이수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리고 윤상희를 보며 말했다.
“식사는요?”
“앗! 잠시만.”
반갑게 손을 들던 윤상희가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컵라면을 꺼내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 사이 수진이가 다가와 내 머리와 몸에 생수 한 통을 전부 부었다.
그 순간 모래밭 위에 있던 정기용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돗자리를 깔고 윤상희가 다들 불러 모았다.
“김치도 있으니까. 많이 먹어요.”
“그런데 누가 인벤토리에 라면이랑 김치를 넣어와요?”
“밥도 있어. 장조림도 있고.”
“에?”
윤상희가 살짝 웃었다.
“내 인벤토리에 넣을만한 게 없어서. 그냥 마트에서 장 봐서 다 꾸겨 넣었지.”
“다른 장비는 하나도 없어요?”
“응, 도끼 두 자루가 전부야.”
나를 만나기 전엔 어떻게 게이트를 공략했는지,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렇다고 반지나 팔지 등 능력을 더해주는 액세서리 아이템을 착용한 것도 아니었다. 이게 어머니의 힘인가...
그녀는 인벤토리를 냉장고처럼 사용했다.
사실 내 인벤토리에도 초코바나 고기, 육포, 생수 등 비상식량이 들어있었다. 게이트에서 며칠이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먹을 식량은 알아서 챙겨야 했다.
그리고 B급 이상의 게이트를 들어갈 때는 공략 기간이 매우 길어서 게이트 공략팀 외에 식량 지원팀과 장비 수선팀, 의료 지원팀 등도 함께 들어간다. 그렇기에 대형 길드가 아니면 상위 등급의 게이트는 공략할 수 없었다.
‘식량은 윤상희에게 맡기면 되겠어.’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게이트에서 장기간 있을 때 식량은 매우 중요했다. 밥에 독이라도 타면 독 내성이 없는 헌터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정기용씨, 이리와 드세요.”
어둠 속에 있던 그가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저, 아까...”
“그 이야긴 일단 먹고 하죠. 라면 불어요.”
사실, 나도 실망감이 컸다.
그가 게이트 앞으로 찾아왔을 땐, 든든한 아군을 얻은 것 같았다. 테스트 영상에서 본 괴수를 단칼에 베여 넘기는 뛰어난 검술 실력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 내가 칼을 쓸데도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싸움에서 그가 보여준 능력은 이제 갓 각성한 F급 헌터의 모습이었다.
아니 그보다 못하려나...
라면을 다 먹자, 어색한 기류가 주변을 매웠다.
다른 헌터들도 정기용의 변명을 듣고 싶어 했다. 누가 봐도 C급 헌터의 움직임은 아니었다.
어색한 침묵을 참지 못하고 정기용이 입을 열려고 했다.
“저...”
“일단 커피부터 한잔하죠.”
“네?”
“식후엔 커피 믹스죠.”
윤상희가 웃었다.
“내가 커피 믹스도 가져온 걸 어떻게 알았데.”
“풍류를 아는 사람은 식후에 커피죠.”
그렇게 커피 타임까지 가졌다.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커피를 거의 원샷으로 비우고 정기용이 입을 열었다.
“그냥 차라리 욕을 해요. 나도 내가 얼마나 병신 같은지 아니까...”
“누가 욕을 한답니까? 이제 배도 부르고 당분도 섭취했으니, 정기용씨 이야기를 들어보죠.”
사람이 배가 고프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적당한 설탕 섭취는 기분을 좋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러 그가 이야기를 정리할 시간을 준 것이다.
모두의 시선이 정기용에게 향했다.
“헌터가 되기 전에도 무당이었습니다. 그땐 아기동자라는 간판을 내걸고 강남에서 제일 잘 나갔지요. 돈도 많이 벌어 평창동에 집도 사고, 건대입구역 쪽에 9층짜리 건물도 하나 샀습니다. 그러다 집 주변에 게이트가 발생했고, 각성했습니다. 휴.”
그의 한숨이 깊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하긴 특별한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무당이라 그런지, 운 좋게 샤먼 클래스로 각성했지요. 게다가 튜토리얼에서 F급 헌터에겐 절대 강림하지 않는다는 영웅급 샤먼을 접신했습니다. 조자룡 장군이었죠.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이제 내 인생은 날개를 달았구나. 무당이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잘돼봐야 무당 아닙니까. 하지만 이연희 헌터 같은 샤먼 클래스 헌터라면, 대우도 달라지고, 사람들도 존경의 눈빛으로 보게 되죠. 그런데... 아...씨!”
정기용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답답해서 한 대 피워야겠습니다.”
다들 기다려줬다.
그가 담배를 빨자, 불똥이 붉게 타들어 가며 곧 백색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올라간다.
“후! 다음날 바로 헌터 협회로 가서 각성자 테스트를 받았죠. 결과는...”
“E급이었지.”
강민수가 끼어들었다.
“뉴스에서 봤어. 슈퍼 루키가 나왔다고, 게다가 점수도 탑이었어. 아, 물론 나태준 헌터가 그 기록을 깼지만.”
“정기용씨 이야기를 더 들어보죠.”
내 지적에 강민수가 침묵의 의미로 식어버린 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계속하죠.”
“강민수 헌터님의 말이 맞습니다. E급이 나왔고, 슈퍼 루키라고 신문과 방송에서 떠들었었죠. 그리고 전 대한민국 3대 길드인 신화 길드에 들어갔습니다. 이때만 해도 내 인생은 쭉 뻗은 고속도로였죠.”
신화 길드는 동창인 김상국이 길드장으로 있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길드였다. 헌터들 대우도 좋았고, 체계적으로 슈퍼 루키를 키우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었기에 헌터 재능충들은 거의 이쪽으로 모여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담배를 연이어 빨았다.
자신도 황당하고 답답한지 계속 말을 잇지 못했다.
“첫 번째 게이트 공략 때 게이트 안에서 접신을 시도했는데, 조자룡 장군이 아닌 무당이 됐을 때 접신했던, 병신 같은 녀석이 튀어나온 겁니다.”
“뭐요?”
“아기동자 말입니다.”
다들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했습니다. 처음이라, 잘못 접신됐을 거라고 믿었죠. 그래서 해제하고 다시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나 검도 잡을 줄 모르는 아기 동자가 다시 튀어나왔어요. 다른 동료 헌터들은 처음이라 긴장해서 그랬을 거라 말했고, 동료들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정기용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다음 게이트에 갔을 때도 또 아기동자가 접신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게 사람 미치는 게 뭔지 압니까? 아 씨발! 게이트 밖에서 접신 스킬을 쓰면 무조건 조자룡만 되는 겁니다. 짜증 나게!”
정기용이 열변을 토하며 자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밖에서 조자룡과 접신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지만, 바로 접신이 풀리고 또다시 접신하면 아기동자가 나왔다.
그 뒤로도 억울한 일이 참 많았다.
결국, 신화 길드에서는 잘리고, 헌터 등급을 오르면 괜찮을 거 같아 국가 헌터원을 찾아서 D등급 테스트를 통과했고, 다시 기회를 얻었지만, 여전히 아기동자만 접신됐다.
그래서 2년간 산으로 들어가 살았다.
접신을 자주 할수록 수호신이나 수호령은 강해지고, 친밀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근 2년을 조자룡과 접신하며, 산에서 살았고 용산 헌터 시장에 조자룡이 썼다던 청홍검(유니크) 아이템이 떴다는 소식에 산에서 내려와 은행에 돈도 다 찾고, 건물과 집도 다 팔고 대출까지 받아 겨우 검을 샀다.
그리고 청홍검을 가지고, C등급 승급 테스트를 받았다. 결과는 3년간 깨지지 않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이때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전부터 알고 있던 신화 길드 관계자에게 사정해, 클리어된 게이트에 잠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씨팔! 아기동자, 그 새끼가 또 나오는 거예요.”
다들 그의 이야기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이제 포기하고, 점이나 보면서 잘 먹고 잘살자고 결심했죠. 그런데 신기한 게 점을 볼 때는 아기동자가 접신되는 거에요. 아기동자의 점괘는 기막히게 잘 맞거든요. 그렇게 3년을 살아 천호동 쪽에선 제법 유명해졌는데, 며칠 전에 나태준 헌터가 찾아온 겁니다.”
이후로는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왜 나를 따라나선 거지?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정기용이 나를 쳐다봤다.
“사람 마음이 또 간사해져서 다른 헌터가 내 기록을 깼다고 하니까. 배가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나태준 헌터에 대해 알아보고 생년월일을 찾아서 점을 한 번 봤습니다. 솔직히 안 좋게 나오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점괘가 안 나오더군요. 여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상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아기동자가 꿈에 나타나 나태준 헌터를 무조건 따라가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마지막 기회라면서...”
강민수 헌터가 인상을 찡그렸다.
“참 대책 없군. 아무리 그렇다고 C등급 게이트를 무작정 따라와? 죽을지도 모르는데.”
“왜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헌터가 절실합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아기동자가 접신이 안됩니다. 이제 무당짓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목숨을 걸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온 겁니다.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게 됐지만...”
그의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했다.
“사실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요. 전 어차피 여기서 죽을 겁니다. 그러니 나를 버리고 가세요.”
“그건 리더인 제가 판단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자,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C급 게이트로 들어온 것은 그로서는 마지막 수단을 강구한 것이었다.
“정기용씨, 체력이 몇입니까?”
“41입니다.”
“진짜 헌터 등급은 몇이죠?”
“네?”
정기용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의 상태창에 나온 등급 말입니다.”
“F급입니다.”
그의 입에서 F란 말이 나오자, 다들 헌터 등급 테스트에 문제가 많다고 느껴졌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F급에 맞춰 임무를 주겠습니다.”
“네?”
“변하는 건 없습니다. 등급이 어떻든 간에 게이트에 나를 믿고 들어온 이상, 끝까지 함께 갈 겁니다. 그러니 정기용씨도 나를 믿고 따라와 주세요.”
“함께 말입니까?”
“네, 정기용씨는 검이 익숙해질 때까지 윤상희씨와 함께 수진이와 수호에게 달려드는 괴수를 막습니다.”
정기용에게 임무를 부여했다.
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왜요? 그냥 따라만 다닐 생각이었어요?”
“그래. F급이면 어때, 함께 싸우는 게 중요하지.”
짝!
제일 큰 누나 윤상희가 다가가 정기용의 어깨를 세게 쳤다.
“윽!”
“어깨 펴요. 내가 옆에서 도울 테니, 잘해봅시다.”
“맞아요. 나도 이번에 E급으로 올랐어요. 싸우다 보면 등급도 올라갈 테니, 함께 게이트를 클리어해요.”
수진이가 아이돌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때 신화 길드원의 눈빛을 기억한다.
경멸과 비웃음.
마지막으로 E급 게이트에 들어갔을 때, 동료들은 나를 버리려고 했었다.
쓸모도 없고, 병신 같은 게 같은 조에 배당되어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 방해만 된다고. 그냥 먼 곳에 버리자고 했었다.
나도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뭐라고 대꾸하지 않았다. 다행히 게이트는 금방 클리어됐고, 살아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나를 동료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 지체할 순 없으니, 일단 안탈리안 알부터 찾으러 갑시다.”
“태준이 형.”
“왜?”
이수호가 나를 불렀다.
“형, 혹시 무기 남는 거 없어요?”
“무기?”
“홉고블린들만 싸우게 할 순 없죠. 나도 도울 테니 무기 좀 빌려줘요.”
이수호도 이번에 느꼈다.
과거에 낮은 등급의 게이트에서는 자신은 싸우지 않아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급 게이트는 그 수준이 달랐다. 자신 역시 단련하지 않으면, 방해만 될 것이다.
“검이면 되겠어?”
“네, 아무거나 빌려주세요.”
공개 게이트에서 나를 죽이려 했던 자가 썼던 무기였다.
노멀 아이템이라 추가 기능은 없었지만, 검이 날카로웠으니, 충분히 괴수를 죽일 수 있었다.
“자, 준비됐으면, 출발하죠.”
“그런데 여길 다시 찾아올 수 있겠습니까?”
강민수가 물었다.
“여긴 개미굴처럼 복잡한 곳입니다. 자칫하단 게이트를 클리어해도 시간 내에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말볼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 녀석이 좋아하는 풀을 이곳에 숨겨놨습니다. 어딜 가더라도 말볼만 따라가면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럼 저 괴수 새끼가 죽으면?”
“그러니 잘 지켜야죠. 말이 나왔으니, 강민수 헌터가 말볼의 호위를 맡아 주세요.”
“뭐요?”
“그만 갑시다.”
일단 안탈리안 알을 찾아 이동했다.
10만 개의 알을 찾아 파괴해야 클리어 조건이 하나 완료된다.
상태창.
[나태준]
- D등급
- 체력 : 202
- 마나량 : 34(38)
- 클래스 : 괴수 백정.
- 특성 : 관찰(lv4), 도살(lv4). 해체(lv8), 감식(lv3).
- 특기 : 비대각(批大卻). 도대관(導大窾)
- 업적 : 티볼 도살자(F). 독 수련자(E).
*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 - 사용 중지.
* 회복의 반지(레어) - 사용 중지.
* 녹음의 링(유니크) - 사용 중지.
정신없이 싸우다가 등급이 올랐고, 동료들과 함께 있으니 이제야 여유가 생겨 상태창을 살펴봤다.
체력 수치가 200으로 많이 올랐고, 해체 레벨이 8로 가장 많이 올랐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새로운 백정 스킬이었다.
[도대관(導大窾) - 칼을 인도해 괴수의 살에 공허한 구멍을 만든다. 이 구멍은 쉬 아물지 않으며 다량의 출혈을 동반한다. 도살 스킬과 해체 스킬이 오를수록 구멍 숫자가 늘어난다. (현재 3개, 최대 17개)
비대각(批大卻) 스킬 연계 시 - 공격력 +50%, 크리티컬(x2) 확률 30%.
소모 마나량 - 6, 시전 시간 - 1.4초.]
C급 이상의 괴수가 나타나면, 도대관 스킬을 한번 써볼 생각이었다.
***
“정지, 여기서 잠깐 쉬죠.”
중간에 도마뱀형 괴수 카나헤(D) 한 마리가 모래 위에서 떨어진 것을 빼고는 괴수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괴수는 없어요.”
말볼도 조용하고, 수진이의 탐색 레이더에도 괴수는 보이지 않았다.
다들 자리에 앉아 쉬었다.
정기용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저...”
“참, 카나헤가 달려들 때 피하지 않고, 용감히 맞선거 잘했어요.”
“그, 그건 다리가 굳어서.”
굳이 칭찬하는데, 안 해도 될 말을 한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 다행인가.
“아깐 고마웠습니다.”
“내게 고마워할 건 없습니다. 처음부터 정기용씨에게 큰 기대를 한 건 아니니까요.”
“그, 그렇군요.”
그를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짰다면,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없던 사람이었기에 큰 지장은 없었다.
“그 접신하는 거요. 써보지 않은 방법은 없습니까?”
“휴! 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해봤습니다. 헌터 커뮤니티도 찾아봤고, 신화 길드의 헌터들도 찾아갔었습니다. 그쪽 샤먼들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연희도 찾아봤나요?”
“네? 이연희씨요? 그런 분은 만나지도 못하죠.”
“이번 게이트에서 나가면 내가 한번 연희에게 부탁해 보죠.”
“이연희 헌터를 아세요?”
“초등학교 동창이에요. 아무래도 샤먼 계열에서는 독보적이니까, 무슨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니... 고맙습니다.”
정기용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확정은 아니에요. 연희가 거절하면 저도 어쩔 수 없고요.”
“네. 그 정돈 알고 있습니다.”
정기용의 표정이 게이트에 들어와서 제일 밝아졌다.
갑자기 한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그런데 그 샤먼을 해제할 순 없습니까?”
“그게 한번 인연을 맺으면 불가능합니다. 보다 상위 등급의 샤먼과 계약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아, 그건 힘들겠죠?”
“네. 영웅급 다음이 전설급이라... 이연희 헌터님 정도는 돼야.”
사람들은 아직도 연희의 현재 샤먼이 정확히 뭔지는 모른다. 그저 접신을 하게 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는 것밖에는.
“그럼 다른 영웅급들과 다시 계약을 맺을 순 없는 겁니까?”
“네. 스킬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아요.”
“아쉽네요. 하나 더 불러서 셋이 되면 다음 게이트에선 다른 게 튀어나올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기본적으로 접신은 하나... 방금 뭐라고 하셨죠?”
“다른 게 튀어나온다?”
“아니 그 전에...”
“셋이 되면?”
내 말을 듣던 정기용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시죠”
“기본적으로 한 등급에 샤먼은 하나입니다. 모든 샤먼 클래스가 동일하죠. 그런데 게이트 안과 밖에서 접신된 신이 다르다는 것은 아기동자 역시 영웅급이라는 말이겠죠. 그럼 전 영웅급 샤먼이 둘이 됩니다.”
“그렇겠죠.”
“그럼 접신을 해제하지 않고, 접신한 상태로 한 번 더 접신하면? 혹시 아기동자가 밀려나지 않을까요?”
그가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혹시 해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지금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