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37화 (37/149)

# 37

37. 고액 아르바이트(1).

“헉! 헉!”

온몸이 깨지는 느낌이 이런 것이구나.

죽을 것 같았다.

말로만 지옥훈련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태준이 형의 훈련 방식은 인간, 아니 헌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하며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괴수의 인해전술(人海戰術) 막기.

“이수호, 뒤를 막아!”

“네.”

내가 지친만큼 오크도 지친다.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소환수와 자신의 체력관리.

“우르크!”

“우르크!”

검정 오크 네 마리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뒤에서 덮쳐오는 안탈리안 일꾼을 막았다.

하지만 오크의 목소리도 힘이 없다.

“수호야, 기운 내! 이번만 하고 좀 쉴 거니까.”

“네! 가자. 나의 오크들아!”

쇠파이프를 든 오크와 나는 한 몸이 되어 괴수를 죽인다.

꾸역꾸역 밀려오는 개미지옥.

수백, 수천의 안탈리안 일꾼들이 나를 뜯어먹기 위해 달려온다.

이곳은 게이트 입구 바로 아래.

괴수를 찾으러 갈 필요가 없었다.

안탈리안 척후병의 호르몬을 사방에 뿌리면 놈들은 알아서 달려온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아서 탈이지...

“으아아!”

서걱! 서걱!

또다시 옆에서 태준이 형의 칼이 휘둘린다.

같은 C등급 헌터, 하지만 실력은 하늘과 땅 차이.

그의 움직임에서 앞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이 엿보였다.

형의 칼엔 자비가 없다.

아니 머뭇거림이 없다.

괴수를 죽일 때,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머뭇거리게 되어있다. 이를 극복하고, 그 시간을 줄이기 위해 모든 헌터가 단련하고 훈련한다.

소환수 역시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소환자의 성격에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에 내 오크들 역시 괴수를 죽일 때 짧은 시간이지만 멈칫한다.

하지만 태준이 형은 그게 없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 할까?

괴수가 있는 곳엔 어김없이 칼이 먼저 도달하고, 괴수는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쓰러진다.

이 움직임이 궁극적으로 내가 도달할 곳이다.

소환수가 강해지는 것은 얼마만큼 소환수를 잘 컨트롤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홉고블린들 인간처럼, 나 자신처럼 움직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나 자신을 단련해야 소환수도 강해지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로 괴수를 죽일 때 머뭇거림을 줄인다.

파직!

“꾸엑!”

내 검이 안탈리안 일꾼의 머리통을 찌르자, 놈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오크들 역시 쇠파이프로 괴수의 머리통을 부수거나 끝에 달린 단검으로 괴수를 찌른다.

“수호야!”

“헉헉! 네, 형님!”

형이 내 이름을 불러줄 때 기분이 좋다.

“네게 들어간 우르크 오크 소환룬이 얼만지 알지? 그거 뽑아내려면, 아직 멀었다.”

“알고 있습니다. 이 동굴에 괴수 씨를 말리겠습니다.”

형님은 내가 민망할까 봐 저런 농담을 하신다.

역시 사려가 깊으시다.

그렇게 숨 가쁘게 괴수를 잡으며, 지옥훈련을 했다.

이 동굴을 나설 때 내가 얼마나 강해져 있을까?

나는 늘 혼자였다.

게이트와 괴수의 등장은 내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부모님, 형, 그리고 집.

모두 사라지고, 길바닥에 버려진 똥개와 나는 동급이었다.

그래도 헌터가 된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헌터도 돈이 있어야 헌터다운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자신 같은 소환 계열은 좋은 소환수를 뽑지 못하면, 길드에 들어갈 수 없고, 길드에 못 들어가면, 게이트 공략기회가 적어진다. 돈 없는 놈은 그런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렇게 소환수에게 막노동이나 시키며, 혼자 아등바등 일하며 살고 있었다.

“수호야! 나머진 네가 처리해라!”

“네! 형님.”

죽을 만큼 힘들긴 하지만, 형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즐겁다.

이제 나는 혼자가 아니다.

***

C등급 게이트 소멸 2시간 전.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저 헌터, 괜찮은가요?”

심선경 사무관이 초췌해진 몰골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수호를 보며 물었다.

“그저 좀 지친 것뿐입니다. 목욕 한번 하고 한숨 자면, 괜찮아질 겁니다.”

전에는 이런 괴수 지옥을 못 봤을 것이다.

위험한 순간 내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마 100번은 더 죽었을 것이다.

그만큼 지옥훈련은 고되고 힘들었다.

그래도 끝까지 따라와 준 녀석이 대견했다.

‘다음엔 수진이를 단련시켜야겠어.’

휴대폰을 켰다.

평소에 한 번도 없던 문자와 깨톡이 잔뜩 와 있었다.

“다들 같은 병원에 있나 보네.”

모두 헌터 전문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러니 병문안은 한 곳만 가면 될 것이다.

부재중 전화?

이연희!

그녀다.

불과 2시간 전에 그녀가 내게 전화를 했었다.

크게 심호흡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뚜뚜뚜뚜.

신호가 간다.

괴수를 잡을 때보다 더 떨린다.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에 주책없이 심장이 뛴다.

[나야, 태준이.]

[알아. 잘 지내지?]

[그럼, 방금도 C급 게이트에서 나오는 길이야.]

일부러 C급 게이트를 강조했다.

[벌써? 엄청 빠르네.]

[하하, 내가 원래 좀 빠르잖아. 이러다 금방 S급 돼서 널 따라잡을지 몰라.]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너라면 그럴 거야. 혹시 헌터 장비나 돈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어?]

[장비가 좋아야, 게이트에서 안전하니까.]

[아, 그렇긴 하지. 근데 돈은 나도 있어.]

물론 연희에 비하면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 격이지만.

[아참! 이번에 게이트 클리어하면서 전사 계열 아이템이 하나 나왔어. 다음에 보면 줄게.]

이번 게이트면 A급 게이트가 아닌가.

거기서 클리어 보상으로 받은 아이템을 내게 준다는 말이었다.

이걸 받아야 하나...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그래, 네가 직접 준다면 받을게. 그래야 그 핑계로 데이트 한번 하지.]

내가 이렇게 능청스러웠나?

수화기 너머로 연희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지금 가셔야 합니다.]

[잠시만요. 중요한 통화라서요.]

누구와 말하는 거지?

수화기 속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미안해. 게이트에 들어가야 해서.]

[응? 게이트라니?]

A급 게이트는 모두 클리어됐다고 들었다.

[여기 중국이야.]

[중국? 중국 게이트도 공략하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이쪽에 헌터가 많이 부족해.]

중국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헌터 최강국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가 헌터 숫자가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나마 중국은 국가에서 헌터들에게 엄청난 지원을 하고 있었기에 헌터 등급이 가파르게 오르고 있어 사정이 낳은 편이었다.

[거기 혼자 간 거야?]

[아니, 아는 헌터들하고.]

[누구? 6학년 3반 친구들?]

[그 친구들은 아니야. 게이트에서 만난 헌터들이 있어.]

[그렇구나. 항상 조심해.]

S급 헌터에게 조심하라고 하다니...

하지만 진심으로 그녀가 걱정됐다.

C급 게이트도 이렇게 힘든데, 더 높은 등급의 게이트는 얼마나 힘들까. 그녀 대신 내가 들어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알았어. 그런데 태준아, 혹시 무슨 문제 없지?]

[문제라니?]

[누가 접근하거나 게이트 내에서 생기는 이상한 문제들 말이야.]

[어, 아직 큰 문제는 없었는데, 왜?]

왜 이런 질문을 하는 거지?

그녀의 목소리는 약간 불안해 보였다.

[아니야. 혹시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연락해. 내가 못 받으면 번호 하나 불러줄 테니까. 그쪽으로 연락하고.]

[그래, 알았어]

...

[그럼 난 이제 들어가야겠다. 헌터들이 기다려.]

[어서 가봐. 항상 조심하고.]

[그래, 너도.]

뚜뚜뚜.

통화가 끝났다.

너무 짧아 아쉬웠다.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그땐 꼭 차를 마시고, 밥을 먹자고 해야겠다.

그리고 번호를 하나 받았다.

손가인.

무슨 문제가 생기면 이 사람에게 연락하라니, 연희가 상당히 믿는 사람인 것 같았다.

수호가 이제야 정신을 차리고 다가왔다.

“형,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어? 하하하! 그럼 아주 좋은 일이 있지.”

실없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

“일단 좀 씻자.”

[드래곤 사우나]

사람인연은 참 알 수가 없다.

내가 찾아내긴 했지만, 며칠 전만 해도 우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벗고 탕에 함께 누워있다.

“형, 여기 죽이는데요. 몸이 완전히 풀리는 느낌이네.”

“잘 수 있으면 탕 속에서 한숨 자.”

회복의 링을 끼고 물속에 있었다.

그러니 몸이 빨리 회복되는 거다.

혼자 들어가 있는 것보단 여럿이 들어가면 회복속도가 현저히 느려지지만, 큰 부상이 없었으니, 피로 정도는 금방 풀릴 것이다.

녀석과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기에 상당히 친해졌다.

“그런데 다음 게이트에도 강민수씨를 데려갈 겁니까?”

“왜? 마음에 안 들어?”

“당연하지요. 공격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이번에 형이 다 잡은 여왕의 막타까지 노렸잖아요.”

“나도 아쉬워. 이번엔 강민수가 막타를 쳤어야 했는데 말이지.”

“네?”

“그래야 그 핑계로 다음 게이트에선 데리고 가지 않을 수 있었거든.”

수호는 당최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와 최규환의 관계에 대해 잘 모르니 당연했다.

“뭐가 복잡하네요.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요?”

“용산 헌터 시장.”

팀원들 병문안은 내일 가기로 하고, 우선 헌터 시장으로 갈 생각이었다.

할 일이 많았다.

인벤토리에 엄청나게 쌓인 마석도 팔아야 했고, 많진 않지만, 괴수 부산물도 팔아야 했다.

그리고 장비도 수리해야 했다.

‘창수 후배라는 그 여자, 믿을 수 있을까?’

갈고리가 휘어졌다.

이번에 여왕 안탈리안을 상대하면서 다른 동료들의 장비도 많이 망가졌다. 그리고 수호의 소환수가 쓰던 쇠파이프들도 형편없이 휘어졌다. 그렇게 많은 괴수를 잡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헌터 장비는 헌터만 수리할 수 있었기에 도구 계열의 헌터에게 맡겨야 했다.

하지만 아는 헌터가 없었기에 고민이 됐다.

그나마 포정 스승님이 준 칼, 그 백정의 칼만은 언제나 새것 같았다.

봉인만 풀린다면, 인벤토리에 있는 귀환의 룬이나 서리 룬 등 많은 강화룬을 붙여 더 강력하게 업그레이드를 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쉬웠다.

***

[용산 헌터 시장]

“나 헌터께서 우리 보잘것없는 가게엔 웬일이신가?”

황노인은 예상대로 단단히 삐쳐있었다.

내가 말볼초를 다른데 넘겼으니, 기분이 좋을 순 없었을 거다.

“당연히 괴수 부산물을 팔려고 왔죠.”

“싼 건 우리 주고, 정작 큰돈이 되는 건 다른데 주는데 누가 거래하고 싶겠나? 일없네.”

“그래요? 그럼 아쉽지만 다른 데 가봐야겠네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거래한 정이 있으니, 어찌 그냥 보내겠나. 여기까지 왔으니 물건이나 한번 펼쳐보게.”

속으로 웃음이 났다.

괴수의 몸을 해체해 바로 부산물을 인벤토리에 저장하니, 나처럼 좋은 물건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여왕 안탈리안의 몸속에서 꺼낸 부산물과 병정 안탈리안에게 채취한 내장 등을 꺼내 보였다.

황노인의 눈은 금방 반짝였다.

좋은 물건을 볼 줄 아는 것도 재능이었다.

“자 보셨을 테니, 이제 일어날까요?”

“어딜 간다고 하는가. 일단 펼쳐 놨는데, 번거롭게 가져가는 건 아니지. 내가 전부 사겠네.”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역시나 좋은 가격으로 거래를 완료했다.

거래가 끝나고 넌지시 한마디 했다.

“그 게이트병 치료제를 건넨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내가 알게 뭔가.”

“국가 헌터원입니다.”

“뭐?”

“제가 가진 전량을 싸게 넘겼고, 국가 헌터원에서 공익사업으로 무료로 어려운 사람들에게 풀기로 했습니다.”

“뭐? 전부 말인가?”

“네, 돈이 없어서 연명 치료도 못 하고 죽는 사람이 상당하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마세요.”

“허! 자네 돈만 아는 좀팽이가 아니었군.”

황노인이 나를 다른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네. 내가 오해했네.”

“아닙니다. 앞으로 좋은 물건 많이 가져올 테니. 좋은 가격으로 사주십시오.”

“그거야 물론이지. 아 그리고 일전에 내가 말한 친구 말이네. 자네를 한번 만나보고 싶어 하는데, 언제 시간 되나?”

“지금은 좀 어렵고, 조만간 전화 드리겠습니다.”

“알았네. 내 친구라 하는 말이 아니라 만나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황노인과 거래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수호야 가자.”

“네.”

기다리던 수호와 마석 가게를 찾았다.

내가 잡은 안탈리안만 수천 마리가 넘는다. 그러니 마석이 얼마나 많겠는가.

마석을 팔고, 창수네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앞까지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김성하, 여전히 여우 같은 창수 후배가 가게 안에 있었다.

“창수는 아직입니까?”

“네.”

“무기 수리 말입니다. 의뢰하려는데요. 가능합니까?”

“네, 당연히 해드려야죠. 창수 선배가 나태준 헌터님의 장비는 무료로 수리해주라고 말했습니다.”

“창수가요?

“네. 일단 상태 좀 볼까요?”

갈고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냥 보기에도 크게 휘었다.

“가능하겠습니까?”

“흠, 한 이틀 걸리겠네요.”

갈고리를 수리할 수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이틀 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그녀를 시험하기 좋은 기회였다.

어차피 갈고리가 휘어서 쓰지 못했으니 그녀가 수리하지 못하면, 창수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헌터 전문 병원에 왔다.

수호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찍 왔네. 왜 들어가지 않고?”

“형하고 같이 들어가려고요.”

“녀석, 가자.”

특실로 향했다.

“301호면 저 끝방이네요.”

용케도 특실을 잡았다.

특실은 복도 끝에 있었기에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여자가 복도 끝 의자에서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특실로 다가가자,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왔다.

늘씬한 키에 이목구비가 또렷한 것이 보기 드문 서구적 미녀였다.

“나태준씨?”

“그런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전 칠성그룹 연구개발팀에 박애란 팀장입니다.”

박애란이 손을 내밀어 손을 잡았다.

손이 차갑다.

칠성그룹이면 재계 10위의 탄탄한 기업이었다.

과거엔 대한민국 5위 안에 드는 기업이었지만, 게이트가 발생하고 헌터 관련 대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며 현재는 10위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요? 대기업 팀장님께서 무슨 볼일이시죠?”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나태준 헌터를 고용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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