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41. 고액 아르바이트(5).
박애란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무슨 말이야! 게이트 안에 들어가면 네가 만든 기기로 각성할 수 있다고 했잖아.”
“하지만 게이트 파장이 약한걸요.”
“게이트 파장? 그건 인공적으로 올릴 수 있잖아. 이 기계로 파장을 증폭시켜!”
“그건 그렇지만, 여긴 게이트 밖과 환경 자체가 달라요. 어떤 변수가 있는지, 연구를 더 해야 해요.”
안기태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안돼. 시간이 없어. 어서 파장을 증폭시켜서 실험을 계속해.”
“하지만...”
“여기에 돈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알아? 이번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너나 나나 모두 죽어!”
박애란이 안기태를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당장 증폭시켜!”
“못해요. 그러다가 사람이 다쳐요. 안돼요. 안돼요...”
“이 새끼가, 감히.”
그녀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왔다.
“김박사.”
“네, 팀장님.”
쥐죽은 듯 가만히 서 있던 여자가 대답했다.
김박사? 그 여자로군.
연구원들을 통솔했던 연구소장의 목소리였다.
“이 기계 조작할 줄 알아?”
“네, 옆에서 자세히 지켜봤습니다.”
“이 애새끼, 헌터들이 오기 전까지 다른 텐트에 가두고, 병사를 들여보내.”
“네.”
“아, 안 되는데. 그럼 사람이 다치는데...”
안기태가 흥분된 상태로 끌려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병사가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설마 강행하려고?’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기계 안으로 올라서요.”
“네!”
긴장한 병사의 숨소리가 들렸고, 발판 위로 올라서는 소리가 들렸다.
“파장 올려요.”
“네, 파장 최대치로 올리겠습니다.”
파지지지직!
“으윽! 으아악!”
병사의 비명과 신음이 들리고,
잠시 후.
“헉! 가, 각성했습니다.”
“확실해?”
“상태창이 보입니다.”
“등급은?”
“F등급입니다. 그리고 계열은 궁사입니다.”
“튜토리얼은?”
“그건 모르겠는데요?”
“자연 각성이 아니라서 튜토리얼은 안되는 건가?”
“그래도 이 정도면 성공이 아닙니까?”
연구소장의 말에 박애란이 입맛을 다셨다.
“좋아. 넌 나가보고, 병사들을 차례로 들여보내.”
“예!”
박애란의 목소리가 들떠 있었다.
뭐야? 성공했잖아!
헌터 강제 각성기기를 만드는 데 성공한 것 같았다.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한 음모 수준이 아니었다.
세기의 발명품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터 판을 뒤집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걸 어디에다가 쓰려는 걸까?’
헌터 강제 각성기기만 있다면, 일반인도 헌터로 만들 수 있다.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 극도로 위험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 국민을 헌터로 만들어도 S급 헌터 한 명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헌터가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헌터 등급을 올리는 것이 중요했다.
‘병사들을 100명이나 데려온 이유가 헌터 각성 실험에 참여시키기 위한 것이었나...’
차례로 병사들의 비명이 들리고, 새로운 헌터가 탄생했다.
테스트도 필요 없이 박애란은 인간을 바로 실험체로 사용했다.
이제 저들의 음모를 알아냈다.
문제는 그들이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란 점이다.
천막 안에서 헌터들이 하나둘 각성하고, 박애란은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목소리에 좀 더 집중했다.
“박애란 회장님, 축하드립니다.”
병사들의 대장인 이용호 팀장의 목소리였다.
“회장님이라니 무슨 말이지?”
“이제 여길 나가시면, 차기 회장님이 되실 것이 아닙니까.”
“아직 축하받을 단계는 아니야. 실험이 많이 남았어.”
“그래도 회장님의 후계자 중에서 이 정도 진전을 이룬 것은 팀장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제 여길 나가면 차기 회장 자리는 당연히...”
“물론이지. 하지만 내가 거기서 만족할 것 같아?”
“예?”
“그 신귀족 새끼들을 모두 찢어 죽이고, 대한민국을 장악해 세계를 지배하는 것도 꿈이 아니야. 저 기계만 있다면 말이지.”
“맞습니다. 그러고 보면, 올해에 안기태를 영입하신 것이 정말 신의 한 수였습니다.”
허무맹랑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실제 지금도 내가 몰래 듣고 있지 않은가.
저들은 게이트 안에서 어떤 특이한 아이템이 나오고,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다. 능력치가 오픈된 아이템이나 장비는 전체의 절반 수준도 되지 않았고, 특이한 스킬을 가진 헌터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럼 다음 실험은?”
“나태준과 헌터들을 쫓아다니면서 병사들의 경험치를 올려봐. 강제 각성한 우리 병사들이 등급을 올릴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저, 그러다 헌터들이 병사들의 상태를 알아챌 수 있지 않습니까?”
박애란이 잠시 침묵했다.
“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어. 어떻게 각성했는지만 모르면 상관없지. 그리고 게이트에서 나가기 전까진 절대 그들과 충돌하지 마. 병사들 입단속이나 잘 시키고.”
“네. 알겠습니다.”
두 시간쯤 지나자, 병사들이 모두 각성을 끝냈다.
“모두 인벤토리에 탄약 챙기고, 괴수 사냥 준비해.”
일단 시간이 꽤 지났으니, 캠프로 돌아가야겠다.
그리고 당분간 그들의 비밀은 혼자만 알고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
먼저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나태준 헌터님, 수색은 잘하셨나요?”
박애란이 요염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군복을 벗고, 황토색 티 하나를 입었을 뿐인데,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고, 허리가 잘록한 것이 섹시해 보였다.
남자를 홀릴 줄 아는 여자였다.
“다행히 북동쪽엔 괴수가 없었습니다.”
“뭐, 괴수가 나타나도 두렵진 않아요. 나태준 헌터님께서 지켜주시겠죠.”
신귀족들을 다 찢어 죽이고, 세계정복을 떠들던 여자가 코맹맹이 소리를 내다니.
이 얼마나 가식적인가.
전에는 몰랐지만, 그녀의 속마음을 알고 보자,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고개를 돌려 일행들이 돌아오는지 살피자, 그녀가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다음 일정이 정해졌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연구원들이 주변 식물들의 샘플을 채취하는데, 경호를 부탁드리고요. 우리 병사들과 함께 괴수를 사냥해주세요.”
“경호야 당연한 일이지만, 괴수를 사냥하는데 병사들을 데리고 가란 말입니까?”
“네. 병사들에게 실전 감각을 익히게 하려고요. 모두 뛰어난 병사들이니 방해는 되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어차피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면 괴수를 잡아야 하니, 함께 움직이죠.”
이제 각성한 헌터들의 경험치를 올리려는 수작을 엿들었지만, 모른척했다.
박애란이 옆에 딱 달라붙어서 자꾸 개인적인 것을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 수진이와 수호가 먼저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소환수인 오크들이 무언가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수호야, 뒤에 뭐야?”
“모두 수진이가 잡은 겁니다. 전에 게이트에서 맛있게 먹었다면서요?”
우르크 오크들이 끌고 온건 화살에 목이 뚫린 육중한 쏠라돈(D) 세 마리였다.
수진이가 나를 보고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칭찬해 달라는 뜻이었다.
너도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했구나.
하기나 나도 가끔 밖에서 삼겹살이나 고기를 먹을 때면 쏠라돈이 생각나긴 했다.
인벤토리에 있던 쏠라돈 고기는 모두 말볼의 먹이로 줬기 때문에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좋아, 오늘 솜씨 좀 발휘해보지.”
백정의 칼을 들었다.
그리고 괴수 해체 쇼가 벌어졌다.
칼이 번쩍이면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단칼에 배를 가르고, 뼈와 살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병사들과 연구원들이 그 모습을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와! 괴수가 분해되고 있어.”
“설마, 저걸 먹을 건가?”
“뭐? 괴수 고기를?”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최대한 천천히 괴수를 해체한다고 더 힘들었다.
어느새 돌아온 윤상희와 정기용도 함께 식사 준비를 했다.
게이트 안에서 첫 식사를 맛있는 고기와 함께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치익! 치이이익!
삼겹살 굽는 소리와 냄새가 베이스 캠프 주변으로 퍼졌다.
“거기 오크들 경계 잘 시켜.”
“네! 대장!”
수호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소환수도 입맛은 있는 걸까?
아까부터 오크들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쏠라돈의 몸에서 나온 내장을 수호에게 건넸다.
“오크들 던져줘! 그리고 오크가 먹을 때까지 네가 경계하고.”
옆에서 수진이가 한마디 했다.
“탐색 스킬을 켜 놨는데, 같이 먹어도 되지 않아요?”
“샤칸 라팍스 기억 안 나? 100m를 6초에 주파하는 괴수도 있어.”
“하긴...”
수진이가 나를 보며 작게 속삭였다.
“태준 오빠, 아니지 대장, 나 이제 125m까지 탐색 범위가 넓어졌어요.”
“벌써, 스킬 레벨이 올랐단 말이야?”
수진이의 스킬 레벨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게이트 내에서 계속 스킬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소환수의 주인인 수호는 주변을 경계하고, 오크들은 괴수의 내장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놈들이 쩝쩝거리며 먹는 소리에 주변에 있던 연구원들과 병사들이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소환수라지만 그 본능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자, 이제 우리도 먹어볼까.”
즐거운 식사시간.
식사를 준비하는 도중에 윤상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기태 데려오게.”
그녀가 텐트 안에서 안기태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시작된 점심시간.
우리는 고기에 쌀밥, 된장찌개, 고추장, 각종 반찬에 채소까지 먹을 것이 넘쳤다. 반면에 베이스 캠프 안에서 식사를 시작한 병사들과 연구원들은 전투식량과 통조림을 먹고 있었으니, 자꾸 우리 쪽을 쳐다보았다.
“여, 이리 와 봐요.”
윤상희가 가까운 곳에서 이곳을 쳐다보던 병사를 향해 손짓했다.
병사가 다가오자, 한판 가득 구워진 괴수 고기 몇 점을 병사에게 건네주었다.
그는 이것을 먹어야 하나 망설이는 눈빛이었다.
“안 죽으니까 먹어봐요.”
윤상희가 먼저 먹어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병사가 용기를 내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병사는 너무 맛있다며 바닥에 앉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도 한두 명씩 다가왔다.
“대장, 고기 더 썰어봐요. 병사들 좀 먹이게.”
“에?”
황당했지만, 오지랖이 넓은 윤상희를 말릴 순 없었다.
갑자기 식사하다 말고, 난 고기를 쓸고, 윤상희와 수진이는 열심히 고기를 구워 병사들에게 주었다.
‘사람 참 좋단 말이야.’
게이트에 들어와서 다들 긴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병사들은 이제 막 강제 각성한 상태로 뭐가 뭔지 모를 때였다. 그런 병사들과 함께 앉아서 웃으며 식사를 하자, 다들 긴장이 조금은 풀어진 것 같았다.
이게 경험의 차이였고, 선배의 여유였다.
연구원들에게도 권했지만, 그들은 괴수 고기를 어떻게 먹냐며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이고 우리도 식사를 끝냈다.
“상희씨와 정기용씨는 여기서 기태하고 베이스 캠프를 지킵니다.”
“오케이.”
“수진이는 병사 20명을 데리고, 식물을 채취하는 연구원들을 따라가.”
“네.”
“너무 멀리는 가지 마. 그리고 괴수가 보이면 잡지 말고, 베이스 캠프로 곧장 돌아와.”
“넵! 대장.”
다들 임무를 정해주었다.
“그리고 수호는 나와 병사들을 데리고 괴수 사냥을 간다.”
“네!”
그렇게 해서 병사 서른 명이 나와 수호를 따라 괴수 사냥을 출발했다.
***
“이봐, 거기 긴장 풀지 마!”
“네? 네!”
“발사!”
타탕! 타타타탕!
마력 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태준이 소리를 질렀다.
“머리를 집중 사격해!”
한 병사가 곤충형 C급 괴수 오도나타를 보고 완전히 몸이 얼었다.
공격 스킬 레벨도 낮은 상태에서 F급 마력 소총을 아무리 쏴봐야 오도나타의 피부를 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옆으로 물러서!”
태준이 소리쳤다.
잠자리 모양의 거대 괴수 오도나타가 날카로운 앞발을 휘두르며 병사들을 항해 날아왔다.
하지만 몇몇 병사들은 몸이 얼어 미처 피하지 못했다.
그때 한 검은 그림자가 오도나타를 향해 달려갔다.
다다닥! 팟!
서걱! 서걱!
공중에서 백정의 칼이 휘둘리자, 오도나타의 다리 두 개가 순식간에 잘렸다.
“수호야!”
“네!”
오크 한 마리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갔다.
그 앞에는 오크 두 마리가 손을 모아 달려오는 오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파앗! 탁!
동료 오크의 도움을 받은 오크가 몸을 날려 앞을 지나가던 오도나타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달려온 또 다른 오크가 위로 뛰어오르더니, 동료 오크 다리에 매달렸다.
육중한 오크가 2마리나 매달리자, 오도나타가 위로 솟아오르지 못하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그 순간 남은 오크 두 마리가 달려가 오도나타 위로 올라탔다.
“쿠오오크!”
퍽! 퍽!
한 마리는 철퇴를, 다른 한 마리는 도끼를 괴수의 등을 향해 사정없이 휘둘렀다.
거대 잠자리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이수호가 괴수가 추락하면서 바닥을 구른 두 마리 오크에게 달려가 대도를 던졌다.
오크들은 대도를 받아들고 이수호와 함께 오도나타에게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