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42화 (42/149)

# 42

42. 고액 아르바이트(6)

“까아아깍!”

거대 잠자리 괴수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쓰러졌다.

같은 C등급이라도 오도나타는 하늘을 날 수 있었기에 잡기가 매우 까다로운 놈이었다. 수진이가 있었다면, 폭풍의 화살로 쉽게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고...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숨을 구한 병사들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게이트에선 실수 한 번이 목숨과 직결됩니다. 내가 구해줄 거란 생각을 버리고, 최선을 다해 피하고, 공격할 땐 사자처럼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혹독하게 몰아치는 것 같지만, 이게 그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방법이었다. 튜토리얼도 거치지 않은 F급 헌터들은 자신이나 수호 없이는 D등급 괴수 한 마리에도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저기 숲에서 잠시 쉬었다가 이동하겠습니다.”

휴식이란 말에 병사들이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베이스 캠프를 나와 쉬지 않고 백여 마리의 괴수를 잡았다.

그 과정에서 동료 둘이 죽었다.

괴수가 사방에서 한 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태준과 수호의 오크들도 전부를 보호할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죽은 동료들은 무덤도 없이 흐르는 강물에 버려졌다. 이게 비정한 게이트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법이었기 때문에 가감 없이 알려주었다.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지.’

강제로 각성했어도, 그들은 헌터였고, 인간이었다.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고, 그런 태준의 마음이 전달 됐는지, 병사들은 서서히 마음속으로 태준을 따르고 있었다.

***

20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모든 게 순조로웠다.

더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고, 연구원들은 게이트 안에 샘플을 채취해 밀폐 상자에 보관했다.

그리고 병사들은 나를 따라다니며, 괴수를 잡고 경험치를 올렸다. 그중에는 E급으로 승급한 병사도 있었다.

헌터 승급도 가능했으니, 그들 말대로 헌터 각성 기기는 대성공이었다.

“샘플 채취가 끝났고, 클리어 조건도 갖췄다. 이제 남은 건 B급 괴수 줄란마를 잡는 것이다!”

“와아아아!”

병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이제 나태준의 말 한마디에 환호할 정도로 잘 따르고 있었다.

“오늘은 괴수 공략팀을 나눈다!”

이곳 게이트는 너무 넓었다.

보스급인 줄란마를 잡기 위해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근처에 없었다. 그러니 더 멀리, 더 깊숙이 들어가야 했다.

이번엔 원정을 떠나는 마음으로 나와 정기용, 박애란 팀장, 병사 스무 명이 한 조가 되었고, 수진이와 이수호, 30명의 병사가 또 다른 한 조가 되어 둘로 나뉘어 출발할 생각이었다.

베이스 캠프엔 48명의 병사와 윤상희, 그리고 연구팀이 남았다.

“줄란마를 발견하면, 바로 도망쳐. 무리하지 말고.”

수진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내 탐색 스킬이 있으니 괴수를 확인하자마자, 베이스 캠프로 돌아와 화염의 화살로 신호를 보낼게요.”

수진이하고 수호가 힘을 합쳐서 B급 괴수를 잡을 수 있을지 확신을 할 수 없었기에 그들에게 도망치라는 말을 했다.

다른 조가 먼저 출발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반대 방향으로 출발했다.

정기용과 다섯 명의 병사가 선두에 서서 무성한 수풀을 해치고 나머지가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박애란은 내 옆에 붙어서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럴까 봐 베이스 캠프에 남으라고 했지만, 그녀가 한사코 나를 따라왔다.

밥 잘 사주는 이쁘고 악독한 그녀...

“정말 이번에 각성한 헌터 맞아요?”

“신문 기사 보셨다면서요.”

“보기야 봤죠. 그런데 믿기지 않아서요. 어떻게 하면 각성 두 달 만에 C급 헌터가 됐죠?”

“운이 좋았습니다.”

“에이, 비결이 있을 텐데요.”

“그냥 열심히 괴수만을 잡았을 뿐입니다.”

교과서적인 대답에 그녀가 살짝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점점 깊숙한 숲으로 들어가자, 태양 빛이 차단된 거대한 나무숲에 도착했다.

선두에 병사가 몸을 살짝 떨었다.

“뭔가 으스스한데요.”

“왜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칩니다.”

“으앙!”

“헉!”

정기용이 병사를 덮치자, 깜짝 놀란 병사가 소총을 겨눴다.

“휴! 하마터면 쏠뻔했습니다!”

“허. 이 새끼, 진짜 총 쏠까 봐 무섭네.”

“죄, 죄송합니다.”

“난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서운데, 괴수는 무섭다. 그리고 이 녀석은 더 무섭고.”

“하하하!”

병사들이 정기용의 농담에 크게 웃었다.

괴수와 생사를 걸로 함께 싸우자, 헌터들과 병사들은 매우 친해졌다.

“저기! 기용씨, 여기서 뭐 좀 먹고, 잠시 쉬었다 가죠.”

“네. 대장!”

달콤한 휴식시간, 병사들이 한곳에 모여 목을 축이고, 간단히 요기했다. 괴수가 몰릴 수도 있었기에 음식을 해먹을 수 없어 초코바와 말린 육포로 끼니를 때웠다.

잠시 눈을 붙이려는데, 박애란 팀장이 또 옆으로 다가왔다.

“피곤하지도 않으십니까?”

“네?”

“아니요. 체력이 너무 좋은 거 같아서요.”

“어릴 때부터 체력은 남달리 좋았죠.”

그녀가 주변을 살폈다.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은밀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그녀를 따라 잠시 숲으로 들어갔다.

이거 갑자기 덮치면 어쩌지?

살짝 긴장했지만, 어린 기태와 이야기를 나눈 첫날 대화를 떠올리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말씀하십시오.”

“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요?”

“어떤?”

“이번 일이 잘되면 칠성그룹에서 길드를 만들겠다는 것 말입니다.”

“아. 예 기억합니다.”

“지금 당신에게 정식으로 제안하죠. 칠성 길드의 길드장이 되어 주십시오.”

“네?”

황당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을 포섭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C급 헌터가 무슨 길드장입니까?”

“충분합니다. 실력보단 그 배경이 중요하죠. 슈퍼 루키 나태준 신생 칠성 길드의 길드장이 되다. 이런 기사가 전국에 도배가 될 거에요. 우리 칠성그룹에서 매년 수천억원의 돈을 지원할 겁니다. 그리고 길드원은 우리가 얼마든지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저기 있는 병사들처럼 강제 각성해서 말입니까?”

“...역시 눈치채셨군요.”

“물론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뛰어나다곤 하지만 헌터하고는 기본적인 체력과 능력이 다릅니다. 병사들 모두 헌터가 된 것을 첫날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박애란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내가 찾는 분이시네요. 아버지 밑에 A급 헌터와 B급 헌터가 몇 명 있습니다. 그들도 태준씨가 길드를 키우는 데 전폭적으로 지원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저희 길드는 몇 년 안에 다른 길드들을 제치고 탑 3위 안에 들 겁니다.”

“그다음에는 뭘 할거죠?”

“그거야 그때 가서 봐야죠. 그리고 저 여자로 매력적이지 않나요?”

“네?”

갑자기 훅 들어온 그녀의 도발.

“당신이 길드장이 된다면, 나와 결혼해 우리 칠성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어요.”

“이상하군요. 왜 하필 접니까? 다른 등급 높은 헌터들도 많을 텐데.”

“당신은 그들과 같은 6학년 3반 출신이잖아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건 어떻게 알았죠?”

“어떤 기자가 말해주더군요. 그리고 국가 헌터원의 국장하고, 이연희 헌터와도 제법 친분이 있다고 들었어요.”

“......”

나에 대해서 상당한 조사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가 귀족이라 지난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편이 되어 길드를 성장시킨다면, 다른 귀족들도 우리 눈치를 볼 것이고, 우리 쪽으로 합류할 겁니다. 그럼 머지않아 그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큰 세력이 될 겁니다.”

속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너무 지금 상황을 너무 낙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의 팀원들도 모두 업계 최고 대우로 스카우트하겠어요.”

올해 처음으로 반창회에 갔을 때, 반 친구놈 하나가 자기네 회사에 신입 헌터를 천 명이나 뽑았다고 자랑했다. 그건 그만큼 키울 재량이 있다는 소리였고, 규모가 크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런 친구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아무리 그녀가 외부의 방해 없이 길드를 키우고 세력을 모은다고 해도 그들을 따라잡진 못할 것이다.

“대답이 없군요. 나는 당신에게 최고의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당신 인생에 마지막 큰 기회가 될 수도 있죠.”

“언제까지 답을 줘야 하죠?”

“이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전까진 꼭 답을 줘야 합니다.”

“그럼 이 게이트를 나가기 전에 답을 주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조건이 나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녀의 말대로 진행만 된다면, 몇 년 안에 반 친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김상국처럼 대한민국의 3대 길드의 길드장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과 싸우게 될 수도 있었고, 변수가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 변수 중의 하나가 자신이었다.

“으아아악!”

비명?

“어서 나를 따라와요.”

그녀를 데리고 일행이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타탕! 타타타탕!

병사들이 일제히 주변을 향해 마력 소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오셨습니까. 주군.”

정기용이 푸른 안광을 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대답은 박애란이 데려온 이용호 팀장이 대신했다.

“줄란마가 분명합니다. 제가 상태창으로 확인했습니다.”

“피해는?”

“병사 한 명이 화장실을 간다며 숲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방금 외곽에 있던 병사 하나가 줄란마에게 끌려가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순간!

“괴수다!”

타타타탕! 탕탕!

병사들이 머리 위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때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다니는 거대 거미가 보였다.

[줄란마(B) - 높이 3미터 길이 5.5미터의 거미형 괴수. 아라크네(C)의 상위 버전으로 재생능력까지 있다. 우거진 숲이나 동굴에 살며, 나무와 나무를 옮겨 다니기도 한다.

여섯 개의 다리와 등 뒤에 두 개의 날카로운 촉수가 있다. 촉수 끝엔 독이 발라져 있어,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마비된다.]

“조자룡! 전면을 맡아요!”

“네. 주군.”

조자룡이 청홍검을 들고 일행의 앞을 막아섰고, 박애란을 소총수 사이에 밀어 넣고, 후미를 맡았다.

그리고 인벤토리에서 갈고리를 꺼냈다.

이곳에 와서 한번 도 써본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예외다.

그리고.

[흉포한 마크투스의 각반(유니크)을 사용합니다.]

원래 숲에 사는 놈이라 녹음의 링은 소용없었다.

괴수 줄란마는 지리적인 이점으로 나무 위로 옮겨 다니며 우리의 빈틈을 노렸다.

“으악!”

타타타타탕!

눈 깜짝할 사이에 옆쪽에 있던 병사 하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놈의 입에서 거미줄이 뻗어 나와 병사를 데려간 것이다.

‘제길, 이대로라면 희생이 너무 커진다.’

여긴 놈의 사냥터, 놈이 너무 유리했다.

그러면 환경을 바꾼다.

“이야!”

기합과 함께 백정의 칼을 나무를 향해 휘둘렀다.

‘도살!’

서걱!

거대한 나무를 벴다.

나무는 너무 두꺼워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며, 다리에 힘이 솟아오른다.

최근 들어 두 번째로 최대한의 힘을 모았다.

콰앙!

오른쪽 다리에 맞은 거대한 나무가 뒤쪽으로 쓰러진다.

끼이이이이.

쿠아아앙!

숲이 거대한 진동에 울렸다.

어른 셋이 팔을 벌려도 닿지 않을 거대한 나무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태준은 다른 나무를 향해 달렸고, 똑같은 방법으로 베고 쓰러트렸다.

병사들의 그 모습을 경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박애란 역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쿠앙!

다섯 번째 나무가 쓰러지자, 위에 숨어 있던 줄란마가 땅에 떨어졌다.

놈은 숲의 제왕.

모습이 훤히 드러났는데도 달아나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소리였다.

“퀘에에에엑!”

놈이 소리를 질렀다.

병사들은 기가 질려 뒤로 주춤거렸다.

그 순간 조자룡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몸을 날려 검을 찌른다.

검의 위력을 알아봤을까?

줄란마가 두 개의 앞다리를 이용해 조자룡을 공격했다.

캉! 카캉! 캉

놈의 칼날 같은 발톱은 청홍검 검에 잘리지 않았다.

검과 발톱이 만나자, 불꽃이 튀었다.

그때 등 뒤에 있던 촉수 하나가 천천히 아래로 향했다.

촉수는 나무와 풀숲 사이로 은밀하게 조자룡에게 접근했다.

이게 줄란마의 무서움이었다.

정면에서 기습공격, 그리고 은밀한 제2의 공격.

쉐에엑!

풀숲에서 날카로운 촉수가 조자룡의 허벅지를 향해 날아갔다.

“어딜!”

촤악!

놈의 촉수가 백정의 칼에 잘려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네놈은 하나고, 우리는 둘이다!”

내가 놈의 안쪽으로 파고들자, 조자룡도 눈치를 채고 푸른 검을 휘두르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놈이 당황해 몸을 들어 올리며, 조자룡에게 두 다리를 공격했고 동시에 나를 향해 촉수를 찔러왔다.

촤르르르륵!

철컥!

그전에 내가 던진 갈고리가 촉수에 걸렸다.

놈이 나를 찌르는 순간 갈고리가 당겨졌고, 촉수는 허공을 찔렀다.

‘끝이다!’

쇠사슬이 감기자 위로 튀어 올랐고, 백정의 칼을 놈의 입을 향해 찔렀다.

줄란마도 지지 않고, 날카로운 턱을 벌렸다.

[비대각(批大卻) 스킬이 발동됩니다!]

푹! 파파파팟!

백정의 칼이 놈의 입속으로 미친 듯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도대관(導大窾) 스킬이 발동됩니다!]

푸푸푹!

도대관, 칼을 인도해 괴수의 살에 공허한 구멍을 만든다는 백정 스킬.

놈의 입속으로 세 개의 구멍이 뚫리며, 머리 위로 세 개의 녹색 피가 뿜어졌다.

뇌가 뚫린 줄란마는 턱을 다물지도 못하고, 힘없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아직 알림이 뜨지 않았다.

놈이 재생하지 못하게 포정의 칼로 뒤통수에 칼을 찌르고, 휘저었다.

그러자.

[줄란마(B)를 잡았습니다.]

마지막 보스를 잡았다.

현재 카운터가 보이고, 게이트 클리어 메시지와 보상이 연이어 상태창에 떴다.

그 모습을 보고 병사들이 환호했다.

“와아!”

“욱! 우웩!”

갑자기 한 병사가 조금 전에 먹은 음식물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다른 병사들도 구토하기 시작했다.

“뭐야?”

“다들 왜 그래?”

이용호가 병사들을 살폈다.

그 시각 윤상희는 게이트 클리어 알림에 기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텐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아! 파장이... 게이트 파장이 또 바뀌었어요. 게이트가 클리어되면 파장이 바뀌는 걸 몰랐어요. 어떡해. 어떡해...”

“뭐?”

기태가 갑자기 귀를 막더니 몸을 떨었다.

그리고 갑자기 텐트 밖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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