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44화 (44/149)

# 44

44. 배신자의 말로(2).

손가락을 움직이자, 병사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탕!”

입으로 소리를 냈지만...

“어? 탕! 탕! 안 나가네.”

연거푸 뻘짓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박애란과 중무장한 병사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뒤를 돌아보았다.

팀원들조차 민망한지 시선을 외면했다.

“젠장, 그럼 플랜 B로 가야 하나?”

플랜 B, 게이트 안으로 다시 들어가 시간을 벌고 작전을 다시 짠다.

그 순간.

쾅! 쾅! 쾅!

굉음이 들리며 건물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천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잔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투다다다다!

“진입!”

“진입하라!”

헬리곱터에서 한 헌터가 밧줄을 타고 안으로 내려왔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상황에 의기양양했던 박애란의 표정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헌터는 바닥에 착지했다.

“저놈을 잡아!”

파지지지직!

천장에서 내려온 헌터가 손에서 백색의 번개를 쏘았다.

“으악!”

“으아아!”

순식간에 십여 명의 감전되며, 바르르 몸을 떨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꼼짝하지 마! 움직이면 진짜 통구이 될 줄 알아!”

하지만 병사들은 일제히 총구를 겨누며 저항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어리석긴.”

쾅!

건물 옆구리가 뚫리며 거구의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충격파!”

쿠앙!

사내가 주먹으로 땅을 때리자, 땅이 파도처럼 물결치며 충격파가 병사들을 덮쳤다.

“으악!”

병사들이 일제히 쓰러졌다.

“씨벌넘들! 무기 안 내려놓냐!”

“진압해!”

“고고고고!”

대괴수 부대 군인들과 국가 헌터원 소속 헌터들이 순식간에 천장과 문 쪽에서 몰려들었고, 쓰러진 경비원들을 제압했다.

“수고하십니다. 헌터 이광옥입니다.”

온몸에서 스파크가 번쩍이는 것이 전격 마법사임이 틀림없었다.

“왜 이렇게 늦었습니까?”

“아시다시피 요즘 도로 사정이 안 좋아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 헬기에서 내려왔으면서 도로 사정?

“안녕하십니까!”

거구의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강태산이라 합니다.”

온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사내가 손을 내밀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나태준입니다.”

강태산이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힘 하나는 자신 있다는 건가?

“호! 검사라고 하더니 제법 아귀힘이 좋군요.”

“그쪽도 대단합니다.”

그때 문을 통해 한 사내가 걸어들어왔다.

“강태산 서기관 뭐하는 건가? 어서 모두 연행해.”

최규환이었다.

규환이를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왔냐?”

“고생 많았다. 이제부턴 우리가 처리하지.”

그때였다.

“이거 안 놔!”

박애란이 빽빽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들이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최규환이 손짓하자, 군인들이 박애란을 데리고 왔다.

“당신을 게이트 불법 소유 및 헌터법 위반으로 체포하겠습니다.”

“웃기지 마, 무단침입을 한 건 네놈들이야.”

“당신의 진술은 법정에서... 그다음이 뭐였지?””

최규환이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나머진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지.”

“나 칠성그룹의 막내 박애란이야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아? 칠성그룹의 변호사들이 곧 내 무죄를 증명해줄 거야. 게이트? 난 오늘 처음 본 거고, 저놈들도 오늘 처음 봤어.”

박애란은 모든걸 부인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녹화는 다 했냐?”

“아쉽게도 들어갈 때 영상은 지워져서 못 건졌고, 네가 나올 때부터는 여기 최첨단 감시 CCTV가 많아서 영상은 물론, 목소리까지 깨끗하게 확보했다.”

“그래야지 내가 살해 협박까지 받았는데, 그리고 이런 비슷한 시설이 칠성 그룹 내에 2, 3개가 더 있을 거야.”

“또 있단 말이야?”

“그래 이용호 팀장이란 분이 공익 제보를 했어. 이건 그 위치와 관련자들 명단이야. 그리고 저 여자를 잘 심문하면 더 많은 게 나올 거야.”

게이트 위치가 적혀있는 지도를 건넸다.

그 순간 최규환이 박애란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심문 전문가라면 우리 헌터원에도 제법 있지. 아마 5분이면 오줌을 지리고, 아는 거 모르는 거 죄다 불을걸.”

박애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신 계열 헌터의 심문을 일반인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죽은 병사들을 생각하면, 박애란을 게이트 안에서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용호 팀장의 부탁 때문에 살려두었다. 지금도 또 다른 실험실에서 자신들의 동료들이 죽어갈지 모르니 구해달란 말이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증거물을 넘겼으니, 이젠 국가 헌터원에서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변, 변호사를 불러줘!”

“당장 끌고 나가.”

박애란은 끝까지 발악하면서 끌려나갔다.

“응? 저 꼬마는 누구야?”

최규환이 윤상희 뒤에 있는 안기태를 발견했다.

“제 아들입니다.”

“아들? 아, 그 게이트병에 걸려서 나았다는... 그런데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순간 윤상희의 얼굴이 빨개졌다.

아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게이트에 아들을 데려가는 미친 엄마는 없을 것이다.

“박애란 저년 짓이지. 우리 팀원들을 협박하려고 아들까지 몰래 납치에 게이트 안에 몰래 데려왔더라고.”

게이트에서 나오는 영상만 확보했으니, 그 진위는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완전히 미친년이군.”

“정말 게이트 안에서 죽이고 싶은 거 많이 참았다. 그러니 철저히 조사해서 다른 곳에 있는 게이트도 꼭 밝혀.”

“물론이지. 그리고 이번 기회에 국세청하고, 검찰, 경찰 합동으로 칠성그룹, 전체를 조사할 예정이야.”

다행히 기태는 운 좋게 넘어갔다.

최규환도 돌아가고, 우리도 국가 헌터원 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

일행은 모두 용산에 내렸다.

“휴, 다행히 기태는 모르고 넘어갔네. 이제 어디로 가?”

“일단 내 펜트하우스로 가죠.”

“거기, 국가 헌터원에서 빌려준 곳이잖아? 도청장치 같은 거 없을까?”

“혹시 몰라 도청방지장치를 잔뜩 깔아놨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그렇게 팀원들을 전부 데리고,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와! 집 죽이네.”

처음 방문한 정기용이 신기한 듯 집안을 둘러봤다.

“대장, 여기 한 달에 얼마죠?”

“글쎄요, 보안 때문에 아래층도 모두 빌렸다고 했으니까, 꽤 비싸겠죠.”

“헐!”

그때 말볼이 저쪽 구석에서 달려왔다.

“이 녀석! 잘 놀고 있었냐?”

말볼이 달려와 내 다리에 딱 달라붙어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미안했다. 이번에 못 데리고 가서.”

그래도 최규환 부하들이 먹이는 잘 챙겨줬는지, 체격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 체형도 조금 변한 거 같고...

뭐지?

자세히 보니 거의 배가 땅에 닿을 정도로 짧은 다리도 길어졌다.

“와! 신기해요.”

기태가 말볼에게 다가왔다.

윤상희가 물었다.

“뭐가 신기하다는 거니?”

“이 강아지 말이에요. 여러 가지 게이트 파장이 흘러나와요.”

“응? 게이트 파장이라니?”

“게이트는 등급별로 고유의 파장이 흐르고, 종류별로 특이한 파장이 있는데, 이 강아지의 몸에선 수십 가지 게이트 파장이 흘러요.”

무슨 말인지 알 순 없었지만, 말볼이 특이하다는 소리였다.

“종류별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지?”

내 질문에 기태가 대답하기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너를 도와줬던 아저씨야.”

윤상희가 말하자,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게이트 등급은 총 7개로 나눠요. 그리고 등급에 따라 종류가 다른데, 게이트 안쪽에 지리적인 특징이나 환경, 안에 있는 괴수의 종류에 따라 겉에서 흐르는 파장이 조금씩 달라요.”

뭐? 그런 걸 이 꼬마가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잠깐, 게이트 등급이 7개라고?”

정기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숫자를 셌다.

“F, E, D, C, B, A 어? 여섯 갠데?”

“S급 게이트도 있어요.”

“뭐? 꼬마야 네가 뭔가 잘 모르나 본데, S급 게이트는 발생한 적이 없단다.”

기태가 창밖을 보면서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기요.”

“응?”

다들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저, 하늘에 S급 게이트가 생기고 있어요.”

“뭐?”

다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게이트가 생기고 있다니 누가 믿겠는가.

“거대한 파장이 느껴져요. 이 S급 게이트는 크기가 엄청 클 거에요.”

“그게 느껴지니?”

“네!”

“네가 볼 때 언제 생길 것 같으냐?”

내 갑작스러운 물음에 팀원들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음, 언제 확장을 멈추고 모습을 드러낼진 저도 몰라요. 하지만 분명히 저기 있어요.”

소년이 가리킨 곳은 용산역 상공이었다.

다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지금 자신들의 실력으론 C급 게이트를 공략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S급 게이트가 생기고 괴수가 튀어나온다면, B급, A급이 기본이고, S급 괴수가 튀어나올 수 있었다. 게다가 게이트 클리어 보스가 SS급 괴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S급 헌터들이 모두 달려들어도 이길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땐 세상의 멸망인가?

“그걸 언제부터 알았니?”

“3년 전에 처음 봤어요.”

소년의 말대로라면 3년 전부터 커지고 있단 말이었다.

“에이, 그럼 뭐 당장 생기는 것도 아닌데, 고민하지 맙시다.”

정기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말대로 내일 당장 생길 수도 있었고, 5년 후에 생길 수도 있는 문제였다.

언제 움직였는지, 기태는 말볼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참 신기한 꼬마로군.”

태준뿐만 아니라 다들 기태가 게이트 파장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소년의 말을 무시할 순 없었다.

“전 이 강아지가 더 신기한데요.”

“왜?”

“몸에서 뿜어지는 게이트 파장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게이트에서 나오는 파장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잖아요. 그럼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변하다니?”

“이번에 군인 아저씨들을 각성시킨 것이 게이트 파장 때문이거든요. 그것과 원리가 비슷해요.”

기태는 혼자만 알고 있는 게이트 이론에 대해 계속 설명했다.

하지만 소년의 생소하고 어려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말볼이 게이트 파장에 영향을 받고, 어떻게든 변한다는 것이었다.

기태의 입에서 나오는 어려운 말에 머리가 아픈지 윤상희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이번에 게이트에서 보니까, 태준씨 리더기질이 상당해.”

“예? 이번만 그랬나요? 원래 제가 반장 출신이라 그런 걸 좀 잘합니다.”

“태준씨 지금 밥맛없는 거 알아? 초등학교 때 반장 한번 못해본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냥 하는 말이죠. 민감하시기는.”

“아무튼, 이번에 병사들 다루는 거 보니까 정말 길드장 같은 거 하면 아주 잘하겠던데. 나중에 길드 하나 만들지그래? 우리가 도와줄게”

“글쎄요. S급 헌터되면 생각해 볼게요.”

“뭐, S급?”

지이이잉!

간만에 전화 진동이 울렸다.

연희인가?

아쉽게도 최규환이었다.

“나 전화 좀 받고 올게요.”

“잠깐, 태준씨 저녁은 중국집에서 시켜먹자.”

“전 좋아요. 아무거나 시켜주세요.”

“나도 좋아요. 난 짜장면!”

“난 짬뽕!”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쏠 테니까 비싼 것 좀 먹어.”

“그럼 탕수육도 시키자.”

“난 간짜장 곱빼기.”

고개를 흔들었다.

매일 중국집을 통째로 전세 낼 수도 있을 만큼 돈을 버는 사람들이...

이번 게이트 공략으로 최소 20억씩은 나눠줄 생각이었다.

잡은 괴수도 엄청났기에 마석도 잔뜩 수확했고, 티볼의 쓸개까지 1,000개 넘게 인벤토리에 들어있었다.

[어 규환아, 말해.]

방에 들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방금 박애란이 죽었어.]

[뭐?]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어떻게?]

[변호사가 한 번에 목을 꺾어 죽였어.]

[변호사?]

[칠성 측에서 보낸 변호사인데, 헌터였어. 그놈이 박애란을 죽이고, 달아나다 우리 측 헌터의 검에 목이 떨어졌어.]

[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