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45. 다크로드 교(1).
박애란이 자기 변호사에게 죽었다니 더 충격적이었다.
내가 물었다.
[꼬리 자르기인가?]
[아마도. 지금 조사하고 있는데, 십중팔구 그 영감이 시켰을 거야. 하지만 너무 걱정은 하지 마. 이미 박애란 심문은 끝냈으니까.]
[그건 다행이네.]
[그놈들도 똥줄이 탔겠지. 이번 일로 모르긴 몰라도 귀족 한 놈과 그쪽 가문은 끝장날걸.]
최규환의 말투에 약간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회사가 망하거나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는 그들이 죽는다는 말이었다.
이 말이 다른 사람이 아닌 신귀족 출신이었던 최규환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변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윗분들이 너한테 고마워하더라. 헌터원 체면을 살렸다고.]
[그럼 게이트나 확보해놔.]
[넌 기승전 게이트구나.]
[응!]
[쩝, 한번 알아는 보마. 물론 기대는 하지 마. 그리고 언제 한번 시간 내봐, 윗분들이 한번 보고 싶으시대.]
[야야. 다시 말하지만, 내가 S급 헌터가 되기 전엔 국가 헌터원이든 헌터 협회든 아무 데도 안 들어간다.]
[S급? S급 헌터가 장난인 줄 알아? 나도 A급이 된 지 6년이 지났어.]
[넌 노력을 안 한 거고.]
[허! 말을 말자.]
[아무튼, 새로운 소식 있으면 다시 연락해.]
[야, 잠깐만...]
뚜뚜뚜.
전화를 끊었다.
아직은 어디와도 엮이기 싫은 것이 본심이었다.
박애란이 죽은 거야 인과응보였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죽였을 거란 말에 조금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그들 가문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힘이 없다면 자신도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문밖에서 웃으며 떠드는 조금은 가족 같은? 팀원들이 걱정됐다.
나를 위해서라도, 모두를 위해서라도 어서 강해져야 해.
조금은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했다.
그리고 거실로 나갔다.
“아무래도 당분간 이곳에서 함께 지내는 것이 좋겠어.”
“뭐?”
“왜요?”
수진이는 내심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박애란이 죽었어.”
순간 찬물을 끼얹진 듯 팀원들의 표정이 차가워졌다.
윤상희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쌍년, 내가 죽이고 싶었는데. 누가 죽였지?”
“설마? 꼬리 자르기인가?”
정기용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칠성에서 손을 쓴 것 같아.”
“헐! 자식까지 죽인단 말이야?”
“미쳤네!”
“그리고 이번 일로 칠성 그룹이 박살 날 것 같아. 그러니 잠시 이곳에서 구경이나 하고 움직이자고.”
다들 착잡한 얼굴이었다.
윤상희가 물었다.
“주혁이 데려와도 돼? 언니 집에 맡겨놔서.”
“물론이죠. 그냥 단합대회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나도 집에서 짐 싸 와야지.”
정기용도 들뜬 표정이었다.
“기태야! 아줌마, 집에 가서 아들 데려올게. 여기서 말볼하고 놀고 있어.”
“네!”
“아이, 착하다.”
그렇게 각자, 옷하고 짐을 챙기러 출발했고, 이수호는 수련이 부족하다며 오크들과 밖으로 나갔다.
언제 봤다고 말볼은 기태에게 어리광을 부린다.
그러다 내가 쳐다보자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래도 주인은 알아본단 말이야.
“께겍겍!”
녀석의 목을 간지럽혔다.
“말볼이 아저씨가 좋은가 봐요.”
“응?”
“아저씨와 함께 있으면 기분 좋은 파장이 흘러나와요.”
“그걸 알아?”
“네.”
신기한 일이었다.
띵동!
- 네?
- 식사 배달 왔습니다.
헉.
중국 음식을 잔뜩 시켜 놓고 다들 나갔다.
열 명은 먹고도 남을 음식이 차려졌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식가 말볼이 있으니까.
짜장면을 먹다가 문뜩 아까 기태가 한 말이 떠올랐다.
“기태야. 아까 게이트의 종류마다 파장을 알 수 있다고 했잖아.”
“네.”
기태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동시에 먹으며 대답했다.
“그럼 게이트를 보기만 하면 안쪽에 어떤 자연환경과 어떤 괴수가 나올지 알 수 있는 거야?”
“대충은요. 이번 게이트에서도 78.9% 정도 일치했어요. 게이트가 클리어될 때 파장이 바뀌는 것은 예상 못했지만...”
기태가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 때문에 병사들이 괴수로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가 미안하다. 말 시켜서. 어서 먹어.”
기태도 각성한 걸까?
갑자기 궁금했다.
게이트 파장을 느끼는 천재 소년이라...
나중에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그날 밤, 수진이를 빼고는 모두 펜트하우스에 다시 뭉쳤다.
다음 날 아침.
윤상희가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수진이가 전화를 안 받네.”
“집에서 혼나는 거 아닐까?”
박수무당 정기용의 말이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도 집에 말하지 않고, 나왔다면 내가 부모라고 해도 엄청 혼냈을 거야.”
윤상희가 나를 쳐다봤다.
“태준씨가 나서지 않으니까, 담엔 나라도 찾아가서 헌터라고 말해줘야겠어. 아무리 나이가 성인이라고 하지만, 아직 20살에 고등학생이잖아.”
“에휴! 알았어요. 내일 최규환한테 말해서 헌터 사무관하고 함께 가볼게요.”
“그래. 진작 그랬어야지.”
수진이가 짧게 며칠 정도 집을 비운 적이 있어도 이번처럼 20일 넘게 집을 비운 적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연락이 갔을 테니, 단단히 혼이 나고 있을 것이다.
“무기 수리할 거 있으면, 전부 내놔봐요. 오늘은 혼자 용산에 다녀올 테니까.”
“혼자 괜찮겠어?”
“네.”
이번 게이트 원정은 괴수를 너무 많이 때려잡아서, 레어급 무기도 날이 상하고 손잡이가 휘어진 것도 많았다.
팀원들의 무기를 챙겨서 용산으로 향했다.
***
[용산 헌터 시장]
이곳에 오면 항상 기분이 좋다.
게이트에서 챙긴 것들을 돈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근데 왜 봉인이 풀리지 않는 걸까?’
어젯밤에 큰맘 먹고 포정의 칼에 이번 게이트 보상으로 얻은 봉인해제 주문서를 칼에 붙였다. 하지만 봉인이 풀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주문서를 칼 전체를 감싸도 봤지만,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팀원들한테 물어봤지만, 아무도 이런 경험이 없었기에 알 길이 없었다.
‘김성희에게 물어봐야 하나?’
창수 놈이 있다면, 넘겨줘 살펴보게 했을 텐데, 김성희는 아직 그 정도까진 믿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창수가 올 때까지 그냥 기다리자니 언제가 될지 몰라 고민이었다.
가장 먼저 황노인의 약재상을 찾았다.
“황영감님, 안녕하세요.”
“하도 오랜만에 와서 게이트에서 죽었나, 아니면 다른 거래처를 뚫었나 생각하고 있었네요.”
“제가 그렇게 쉽게 죽을 놈입니까. 그리고 여기가 돈을 가장 많이 쳐주는데, 다른 데 갈 일이 없죠.”
“그렇지?”
“오늘은 물건이 매우 많습니다.”
황노인의 표정에 화색이 돌아왔다.
“그리고 기다리던 물건도 있습니다.”
“뭐지?”
티볼의 쓸개를 내밀었다.
“크! 몇 개나 있나 어서 다 꺼내보게.”
“아무리 급해도 현금부터 준비하세요.”
티볼의 쓸개를 500개만 팔았다.
그리고 다른 괴수의 부산물도 차례로 넘겼다.
백정 헌터 등급도 D등급이 되었기에 인벤토리 슬롯이 270개가 되었다. 무게로 하면 540kg.
이제 웬만한 창고 수준이었지만, 인벤토리는 항상 부족했다. 절반이 항상 돈으로 꽉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약재상을 돌고, 마석 가게까지 들려 마석을 팔고 창수네 가게로 향했다.
“어디 갔나?”
가게 내부는 조용했다.
“아니요. 여기 있습니다.”
창수 후배 김성하는 테이블 아래에서 작업하고 있었다.
“오늘은 수리할 게, 네 개나 됩니다.”
쿵! 쿵!
윤상희와 수호에게 받은 장비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거 수리가?”
“물론 가능하죠.”
“오래 걸립니까?”
“아니요. 이 정도 아이템은 개당 한 시간이면 됩니다. 내일 오시면 깨끗하게 고쳐 놓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수리할 때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말하세요. 사다 놓겠습니다.”
“네.”
그냥 밖으로 나가려다가 말했다.
“저, 한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아이템에 관해서라면 얼마든지요.”
그녀에게 내 칼이 왜 봉인해제 주문서로 봉인이 풀리지 않는지 물었다.
“특이한 경우이긴 하네요. 보통은 봉인해제 주문서가 스치기만 해도 봉인은 바로 풀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칼을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창수 외에는 백정의 칼을 넘겨준 적이 없었다.
슬쩍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흠 이건...”
그녀는 한참이나 칼을 들여다봤다.
“그게 이 칼의 봉인은 이미 풀려 있는 것 같은데요.”
“네? 그럴 리가 없는데요. 풀렸다면 상태창으로 칼의 등급이 보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간혹, 자연적으로 봉인이 풀린 경우. 상태창으로 정보가 늦게 뜨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럼 곧바로 다른 룬을 새길 수 있는 겁니까?”
당장 인벤토리에 귀환의 룬(유니크)도 있었고, 서리 룬(레어)도 있었다.
“글쎄요. 가능은 하지만, 이 경우엔 안전하게 상태창으로 정보가 온전히 보인 이후에 업그레이드하든 룬을 박든, 천천히 작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업그레이드가 끝났는데 칼이 노멀이나 레어 등급으로 나올 수도 있거든요.”
“휴.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그 네 개만 먼저 부탁합니다.”
“네.”
창수 가게를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한수진.
부모님께 엄청 깨졌나 보다. 이제야 전화한 것을 보면.
[어, 수진아.]
[태준 오빠 지금 어디예요?]
[헌터 시장.]
[지금 저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무슨 일인데?]
그녀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제 동생이 납치됐어요.]
[뭐?]
스파크가 뇌리를 스치듯 뭔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수진이가 뭐라 설명하는데, 횡설수설 말이 꼬였다.
[이런 일일수록 서두르면 안 돼, 지금 당장 펜트하우스로 와! 거기서 동료들과 상의하게.]
[네, 부모님도 모시고 갈게요.]
수진이 동생 제니는 아이돌이다.
그리고 그 아이돌 그룹은 다크로드 교가 운영하는 회사의 소속이었다.
그러니 실종됐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느낌이 들었다.
다시 창수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김성희씨. 아무래도 장비를 다시 가져가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장비를 다시 챙겨, 그길로 곧장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한기범입니다.”
수진이 어머님은 계속 울고 계셨고, 아버지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
“제니, 아니 우리 수하가 그 다크로드 교에 납치된 것 같습니다.”
“천천히 상황을 말해 보세요.”
“계약 기간은 많이 남았지만, 아이돌 데뷔하고 지난 3년간 돈을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매일 밤새 공연하고, 애가 몰골이 말이 아니었어요. 이러게 있다간 큰일 날 것 같아서 돈은 필요 없으니 계약을 해지해달라고 했지요. 그런데 그때부터 수아를 빼돌리며, 만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을 대동하고 찾아갔지요. 그런데 수아가 숙소에서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수진이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해도 쌍둥이 동생이 사라졌으니, 마음이 편할 리는 없었다.
“소속사에서는 전날 밤에 갑자기 숙소를 나갔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은 숙소를 한번 뒤져보고는 단순 가출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흑흑. 우리 수아 어떻게.”
수진이 엄마가 옆에서 울고 있었다.
“그만 좀 울어, 이분들이 도와줄 거야.”
수진이는 옆에서 엄마의 등을 다독였다.
사이가 좋은 모녀가 아니라고는 했지만, 수진이가 어머니를 챙기는 걸 보면, 철이든 것 같다.
“그런데 어떻게 다크로드 교가 납치해 갔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여기 문자를 좀 보십시오.”
아버지가 핸드폰 문자를 보여주었다.
“맴버 중에서 우리 수아랑 가장 친한 동생인데, 그 애가 이틀 전에 보낸 겁니다.”
- 큰일 났어요. 매니저와 소속사 사장님이 수아 언니를 게이트에 제물로 바친다고 끌고 갔어요. 빨리 도와주세요.
- 계룡산에 있는 무슨 토굴이래요.
단 두 개의 문자가 다였다.
“그래서 다시 찾아갔더니, 문자 보낸 애도 사라지고 소속사 사장은 잠적했습니다.”
“일단 진정들 하시고, 이제부턴 우리가 찾아보죠.”
먼저 국가 헌터원에 연락했다.
하지만 계룡산과 그 인근에는 현재 신고되거나 활성화된 게이트가 없었다.
윤상희가 말했다.
“불법 게이트인가?”
“아무래도 그렇겠죠. 문제는 계룡산이 보통 큰 산이 아니라서 이른 시일 안에 다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국가 헌터원의 도움을 받을 수는 없는 거야?”
“내일 사람을 보낸다고 하는데, 몇 명이나 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니 암울했다.
수아와 여자애가 실종된 지 이틀째.
빨리 찾지 못하면 게이트를 발견하더라도 이미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었다.
“일단 대전으로 이동하고, 팀을 두 팀으로 나눠 수색하죠.”
“그래 빨리 출발하자.”
팀원들이 발 벗고 나섰다.
지하 주차장에 최규환이 보내준 고급승용차가 있었다.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했지만, 지금은 써야겠다.
다들 짐을 챙겨 나가려는데,
기태가 내 바지를 붙잡았다.
“찾을 수 있는데.”
“뭐?”
“내가 게이트 찾을 수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