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46화 (46/149)

# 46

46. 다크로드 교(2).

순간 기태가 게이트의 파장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들 잠깐 기다려봐.”

나가려던 팀원들이 멈춰섰다.

한쪽 무릎을 꿇고, 기태와 눈높이를 맞췄다.

“기태야, 게이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니?”

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는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11키로미터 내로 접근하면 게이트 파장을 느낄 수 있어요.”

“11킬로미터?”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탐색 범위였다.

다들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진이가 다가왔다.

“기태야, 누나 동생이 나쁜 놈들에게 잡혀있거든, 찾을 수 있게 도와주겠니?”

“네! 저를 그 근처로 데려다줘요.”

수진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좋아, 데리고 가자.”

다들 다시 밖으로 나가려 했다.

“모두 기다려봐.”

차를 타고 이동했다가 걸어서 산을 수색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엄청 미련한 짓이다.

서둘러 최규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지금 당장 헬기를 보내라고?]

최규환은 태준의 말에 어이없어했다.

이유도 없이 대뜸 헬기를 보내달라고 하니,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대체 이유가 뭔지는 좀 알자.]

팀원의 동생을 구하러 간다는 말을 하면, 아마도 더 어이없어 할 것이다.

[이광섭 알지? 그놈이 지금 계룡산에 있어. 당장 헬기를 보내지 않으면, 놓칠지 몰라.]

[다크로드교 이광섭? 확실해?]

[물론, 이러다 그놈 놓치면 다 너희 책임이다.]

다크로드교 교주 이광섭.

소문으로 들은 그는 B등급 헌터였고, 흑마술에 능했으며 언데드를 소환하는 네크로맨서였다.

이광섭은 수십 건의 납치 용의자였고, 광신도들을 이용해 각종 국가기관을 습격한 전력도 있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수배된 상태였고, 헌터 협회나 경찰, 국가 헌터원에서도 놈을 찾고 있지만, 놈은 항상 결정적인 순간에 사라져 잡히지 않았다.

놈은 벌써 3년째 그 행방이 묘연했다.

[지금 헬리콥터를 보내지. 대신 꼭 잡아야 해.]

[알았어.]

사실 교주 이광섭이 그곳에 있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저 지금 당장 헬기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

투다다다다!

헬기를 타고 계룡산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잘 들어봐! 게이트를 찾으면 들어가지 말고, 먼저 주변을 정리해야 해. 특히 수진이 동생이나 잡혀있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풀어주고.”

듣고 있는 팀원들의 표정이 비장하다.

윤상희가 물었다.

“그런데 헌터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덤비면 어떡하지?”

“이런 곳에서 인간 제물을 바치는데 일조하는 것들은 사람이라고 볼 필요가 없습니다. 다리를 부러트리거나 행동불능으로 만들어요. 그리고 우리가 먼저 진입하고, 위치가 파악되면 인근에 있는 헌터 사무관하고 경찰들이 오기로 했으니, 뒤처리는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오케이.”

헬리곱터가 공주를 지나, 계룡산 자락에 들어설 때였다.

“저쪽, 저쪽이에요.”

기태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기장님,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아주세요.”

기장이 방향을 틀고 조금 더 가자, 기태가 또다시 허공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11킬로미터 밖에서 게이트를 찾을 수 있는 능력.

이건 특별함을 넘어 기이하다고밖에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런 기태의 능력을 이용하면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몇 번 방향을 조금씩 바꿔 게이트를 향해 다가갔다.

“저기요! 저기에요. 아주 가까워요.”

“이 부근인가 봅니다.”

기장이 말했다.

헬기는 8부 능선 부근을 계속 선회하고 있었다.

“고마워, 기태야.”

수진이가 기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누나가 나중에 김밥 맛있게 싸줄게.”

“응. 기태, 김밥 좋아해.”

김밥은 이제 수진이가 유일하게 잘하는 음식이 됐다.

“잘했어, 기태야.”

나도 기태를 칭찬하고,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이곳은 산이었다.

헬리곱터가 착륙할 곳이 없어 정상으로 향했다.

“조심하고, 내 뒤로 바짝 따라와.”

6미터 정도의 높이의 헬기에서 바위를 향해 뛰어내렸다.

기태를 보살필 정기용을 빼고 모두 내렸다.

그리고 조금 전에 선회했던 8부 능선으로 달렸다.

“말볼, 사람을 찾아!”

이 근처인 것은 알았지만, 게이트가 있는 토굴 입구는 숲에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근처에 있을 테니, 이럴 땐 말볼의 코를 믿는 것이 빨랐다.

갑자기 말볼이 고개를 돌렸다.

“게껚게겡!”

그리곤 앞으로 뛰어나갔다.

“모두 말볼을 따라가.”

수풀이 우거진 험한 숲길이었지만, 헌터들에겐 문제 되지 않았다.

***

“에이 시팔, 그 어린년들 어차피 게이트에 넣을 거면 우리에게 먼저 주면 좀 어때서. ”

“맞아, 아이돌하고 한번 할 수 있었는데...”

토굴 입구를 지키던 사내들은 불만에 차 있었다.

그 옆에서 담배를 깊게 빨던 사내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 새끼, 지가 교주면 다야.”

“하지만 부정 타면 안 된다고 하는데 어쩌겠어! 따르는 광신도들도 많잖아.”

“쉿, 너희 너무 목소리가 커. 잘못해서 듣기라도 하면, 네놈들도 게이트로 던져질걸.”

“이래 봬도 내가 E급 헌터야. 게이트가 무서울까.”

“웃기지 마, 이 게이트는 D등급이라고 너 같은 건 1시간도 못 버텨.”

“쳇, 대체 우리 차례는 언제 오는 거야. 우리도 등급 좀 올려야 하는데 말이야.”

푸석!

그때 한쪽 풀숲이 풀썩거렸다.

“응?”

푹!

“억!”

고개를 돌린 사내가 어깨에 화살이 박히며,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께겍켕!”

콰직!

“으악!”

말볼이 담배를 피우던 사내의 팔뚝을 물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사내들은 당황했다.

그때 아무런 공격을 받지 않은 사내가 토굴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그 순간.

파아아아앙!

화살 하나가 매서운 소리를 내며 날아와 안으로 들어가려던 사내의 허벅지에 맞았다.

“크악!”

화살은 한쪽 허벅지를 뚫고 반대쪽 허벅지에 박혔다.

화살에 맞은 사내는 쓰러져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아아악! 그, 그만!”

말볼이 덤벼든 사내는 한쪽 팔이 팔꿈치부터 뜯겨나갔다.

말볼의 이빨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태준이 달려가 비명을 지른 사내의 머리를 칼등으로 때렸다.

그러자 사내는 의식을 잃었다.

“어딜 달아나!”

휘익! 퍽!

윤상희가 던진 도끼가 어깨에 화살이 박힌 채로 산 아래로 내려가던 사내의 뒤통수를 때렸다.

사내 역시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다.

“제길, 죽이지 않는 게 더 힘드네.”

윤상희가 살짝 투덜댔다.

둘은 쓰러졌고, 허벅지에 화살을 맞은 사내만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네 명의 헌터와 오크 네 마리에 둘러싸인 사내는 몸을 떨고 있었다.

“안에 몇 명이나 있지? 소녀들은 안에 있나?”

“씨발! 그냥, 나를 죽여.”

사내는 오히려 발악했다.

그때였다.

수진이가 곧장 토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그냥 들어가자.”

양쪽 허벅지를 다친 사내는 오크가 휘두른 철퇴를 맞고 쓰러졌다.

“누, 누구냐? 으악!”

수진이가 활을 어깨에 메고 대도를 들고 앞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지난 자리에 한 사내가 다리가 잘린 채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과격하네.”

처음 보는 수진이의 거친 모습에 팀원들이 살짝 당황했다.

이런 곳에 있는 게이트를 어떻게 찾은 것일까?

위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깊은 토굴 안에 있는 게이트를 말이다.

달리면서도 그것이 궁금했다.

이 게이트는 이번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에 생성된 것일 수도 있었다.

토굴은 사람이 드나들기 쉽게 통로가 넓혀져 있었고, 나무와 철제 지지대가 받치고 있어 마치 탄광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졌다.

“으아아악!”

“내 동생 어딨어?”

한 사내의 팔이 기형적으로 부러져 있었다.

그는 수아의 소속사 사장으로 일반인이었다.

그리고 말볼이 달려들어 사내의 허벅지를 물고 흔들고 있었다.

“으아, 바로 안쪽에, 안쪽에 있어. 아악! 누가 이 개 좀 치워줘.”

“가자!”

맨 마지막으로 따라오던 윤상희가 발로 사내의 머리를 쳐서 기절시켰다.

모퉁이를 돌자, 상당히 큰 공간이 있었다.

‘게이트가 이런 곳에 있다니.’

한쪽 벽에 검게 이글거리는 게이트가 보였다.

“어서 들어가! 이년들아!”

사내들이 여자들을 게이트 안으로 강제로 밀어 넣고 있었다.

“놈들을 막아!”

내 말에 수진이가 손에 들린 대도를 던졌다.

앞을 막고 있던 한 사내가 대도에 어깨를 찍혀 게이트 안쪽으로 쓰러졌다.

하지만 여자들은 거구의 사내들에게 밀려 안쪽으로 이미 사라진 후였다.

다섯의 사내가 총과 검을 들고 게이트 입구를 지켰다.

모두 헌터였다.

하지만.

퍽! 퍽!

수진이와 윤상희가 놈들을 덮쳐 팔을 부러트리고,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모습에 놀란 남은 세 명의 사내는 몸을 돌려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조심해. 이놈들도 헌터야!”

윤상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진이는 이미 게이트 안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윤상희도 따라 들어갔다.

“수호야! 너도 가서 도와줘!”

“네!”

이수호와 오크들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이 게이트는 D등급 게이트였다.

사실 수진이 혼자서도 얼마든지 클리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을지도 모를 거라 생각했던 이광섭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놈이 게이트 안에 들어갔을 수도 있었으니, 힘을 모아서 대적해야 했다.

“가자, 말볼!”

그런데.

“게르르르르!”

말볼이 시커먼 한쪽 벽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댔다.

게다가 양팔에 달린 두 개의 날카로운 발톱도 잔뜩 세운 상태였다.

말볼이 경계하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저 그림자 속에 뭔가 있다!

백정의 칼을 쥐고 갈고리까지 꺼내 들었다.

“으흐흐흐! 이상하게 생긴 개새끼 때문에 들켰네.”

소름 끼치는 목소리.

분명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목소리는 들렸다.

“내 흑마법까지 간파하다니 보통 개는 아니군.”

“이광섭?”

“역시, 나를 노리고 왔나.”

어둠 속에서 창백해 보이는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서른이나 됐을까?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남자였다.

“말볼, 뒤로 와!”

말볼이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여전히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크로드의 종들이여! 일어나라!”

팟! 팟! 팟!

갑자기 바닥에 푸른 빛이 일렁이더니 붉은 눈을 한 인형 셋이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크흐흐. 보았느냐! 나의 데스나이트다!”

데스나이트,

네크로맨서의 상위 소환수.

이광섭은 역시 B급 헌터가 맞았다.

데스나이트들은 상위 소환수답게 게이트처럼 검게 이글거리는 검을 들고 있었다.

“내 일을 방해한 놈을 살려둘 순 없지.”

“자신만만하군.”

“물론이다. 경험 많은 헌터라면, 내가 소환수를 부르기 전에 공격했겠지.”

놈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맞다. 네놈 말대로 난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험이 별로 없다. 그러니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묻자.”

이광섭이 음침한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좋아, 물어라.”

“왜 여자들을 납치한 거지?”

“죽기 전에 마지막 질문이 겨우 그건가? 대답은 간단하다, 게이트에서 괴수들을 끌어내는 미끼로 썼다.”

“미끼?”

“게이트 안으로 사람을 들여보내면, 괴수들이 사람을 잡아먹지. 그리고 사람 맛에 중독된 놈들은 참지 못하고 게이트를 박차고 나온다. 그럼 내가 밖에서 놈들을 죽이는 거지.”

“미친놈, 여태 그런 식으로 경험치를 올렸단 말이야?”

이광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친놈이라고? 웃기는군. 지금 이 세상 자체가 미쳤는데, 미치지 않은 놈이 누가 있지? 너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크크큭! 하루가 멀다고 게이트가 생기고, 괴수가 튀어나와 사람이 죽어. 어차피 헌터들 말고는 다들 죽을 사람들이야. 그러니 내가 이용 좀 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래서 그 알량한 다크로드 교를 만들었나?”

“아, 그거. 사실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이건 사연이 아주 길지.”

놈은 영화에 나오는 악당처럼 자신의 과거를 읊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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