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 B등급 게이트(2).
[보상으로 화룡 헬라카스의 샤먼(레전더리)을 얻었습니다.]
“헉! 세상에!”
“레...전더리다!”
“대박!”
보상 메세지가 뜨자, 헌터들이 경악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레전더리, 게이트에서 나온 아이템 중에서 최고 등급.
A급 헌터도 자신의 클래스에 맞는 레전더리 아이템이 없다면, S급으로 오르기 힘들었고, B급 헌터가 가지고 있으면 곧바로 A급 헌터의 위력을 낼 수 있다는 말 그대로 전설템이었다.
B등급 게이트에서 전설이 나왔으니, 얼마나 아쉽겠는가.
헌터들이 입맛을 다셨다.
“으! 아깝다!”
“한 방에 팔자 고칠 수 있었는데...”
다들 자신들이 레전더리 아이템을 놓친 것 같아 너무 억울하고 아까웠다.
“그런데 저놈들 대단하지 않아? 여섯이 마그투스를 잡았어.”
헌터들이 입을 모았다.
100명의 헌터 팀을 제친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겨우 여섯 명의 헌터가 A급 괴수 마그투스를 단숨에 잡았다. 게다가 최한별을 빼고는 모두 C급 이하의 헌터라고 들었으니, 이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다른 헌터들 모두 거대한 얼음 장벽 때문에 괴수가 마지막에 죽는 모습만 봤지, 어떤 방법으로 그들이 괴수를 사냥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나태준과 팀원들은 A급 괴수 위에서 무기를 들고 환호하고 있었고, 다른 헌터들은 아쉬움에 고개를 숙였다.
‘어? 저놈 살아 있었네.’
최한별이 죽은 마그투스의 귀에서 나오는 말볼을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말볼은 몸에 묻은 피를 털기 시작했다.
작은놈이 매우 용맹했다.
“나태준 헌터, 축하합니다.”
국가 헌터원의 강태산이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이 적은 인원으로 그 짧은 시간에 마그투스를 잡다니 대단합니다.”
“팀원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준 덕분입니다.”
그때였다.
“이건 인정할 수 없습니다!”
블리자드 길드의 B급 헌터 노하연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우르르 길드원들과 죽은 마그투스 옆으로 다가왔다.
“얼음 장벽으로 막고 사냥을 하다니, 이건 반칙입니다.”
“맞습니다. 비겁한 행동입니다.”
길드원들은 말을 하면서 최한별을 노려봤다.
그녀만 아니었다면, 자신들이 괴수를 죽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한별이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반칙이라니?”
나태준이 나섰다.
“다들 내기가 걸린 것을 모르고 있었나? 시작 전에 얼음 마법을 쓰지 말라는 규칙이라도 만들었다만 모를까. 뭐가 반칙이라는 거지?”
“하지만 공평하게 기회를 줘야지, 이게 뭐하는 겁니까.”
고종수도 비난 대열에 합류했다.
나태준이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공평? 그쪽은 100명이고, 우린 6명인데 참 공평한 대결이군요.”
“그거야 내기 전에 이미 알고 있지 않았나.”
블리자드의 B급 헌터 양태섭이 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내기 전에 얼음 장벽으로 괴수를 잡지 못하게 막지 말라고 규칙을 정하던가... 대한민국 10대 길드가 되겠다는 길드의 헌터들이 내기에 지더니 억지나 부리고. 허!”
태준이 비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자, 양태섭의 얼굴이 붉어졌다.
“C급 헌터 새끼가 건방지게!”
그 순간 태준의 팀원들이 모두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양태섭 헌터를 노려보며 블리자드 길드원 앞에 섰다.
“지금 뭐라고 했냐?”
윤상희가 잔뜩 날이선 모습으로 도끼를 겨눴다.
이곳은 게이트 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그때 나태준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 거기, 지금 나한테 건방지다고 했나?”
“그래, C급 헌터 주제에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양태섭은 자신의 뒤에 있는 100명의 길드원을 믿고 있었다.
상대는 여섯이었으니, 웬만하면 꼬리를 내릴 것이다.
하지만.
“후후. 좋아, 이 위로 올라오지, 일대일로 상대해주지.”
“뭐?”
나태준이 주변에 모인 헌터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죽어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가 괴수를 잡은 것에 불만이 있는 헌터가 있다면 아무나 올라와라, 내가 직접 상대해주지.”
그리곤 양태섭을 도살자의 눈으로 노려보았다.
“거기, 뭐하는 거야? 시간이 없어. 빨리 올라와.”
“이 이 새끼가 정말...”
양태섭이 주변 헌터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신은 B급 헌터, C급 헌터에게 질 리가 없었다. 하지만 방금 단 여섯 명이 단시간에 A급 괴수를 죽였다. 자신과 같은 B급 헌터 여섯이 있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이것은 그들이 숨겨둔 실력이 있거나 매우 뛰어난 아이템이 있다는 소리였다.
지금 앞으로 나섰다가 잘못하면 아무런 이득 없는 싸움에 목숨을 잃을 수 있었다.
양태섭이 망설이는 눈빛을 보였다.
“쫄보 새끼! 넌 그래서 안 돼.”
그때 최한별이 옆에서 다가왔다.
“우리 대장이 두려우면, 나는 어때?”
“뭐?”
그녀가 태준을 대장이라 부르고 있었다.
“여기서 나를 죽여도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을 거야. 안 그래?”
최한별이 주변에 모인 헌터들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말로만 떠들지 말고 사내라면 나랑 죽을 때까지 한번 붙자.”
“미...미친년!”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제3자가 나섰다.
“다들 그만합시다!”
국가 헌터원의 전격 마법사 이광옥이 나섰다.
“처음부터 규칙을 정한 것도 아니고, 마그투스를 잡고 게이트를 클리어한 것은 나태준 헌터팀이니 모두 깨끗이 인정합시다.”
주변에 헌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블리자드 길드원들도 패배를 인정한 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게이트 클리어 시간이 1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여기 계속 있을 겁니까?”
다들 상태창에 나와 있는 남은 시간을 봤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잘못하면 이곳에서 게이트와 함께 소멸할 수도 있었다.
“시간이 없다. 일단 나가자!”
태준은 쓰러진 마그투스의 사체에서 뿔만 챙기고 가장 먼저 팀원들과 게이트를 나갔다.
그리고 그런 태준을 바라보는 블리자드 길드원의 눈빛엔 적개심이 가득 들어있었다.
***
게이트 주변 곳곳에 초대형 애드벌룬이 떠 있었고, 바닥에 거대한 풍선이 펼쳐져 있었다.
태준은 애드벌룬에 달린 밧줄을 타고 유유히 내려왔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이 내려오길 기다렸다.
혹시나 안전하게 떨어지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각반의 힘을 사용해 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헌터들이라 이 정도는 쉽게 내려왔다.
“다들 고생 많았어.”
“뭘, 태준씨가 막타를 치지 않았다면, 놈들이 달라붙어서 우리가 이기지 못했을 거야. 정말 대단해.”
윤상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태준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막타는 내가 아닌데.”
“뭐?”
윤상희가 정기용을 쳐다봤다.
“그럼 기용씨에요?”
“어, 나도 아닌데, 오크들이 잡았나?”
이수호도 그렇고, 한수진도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오크가 잡았으면 제 인벤토리에 보상이 들어왔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들어왔는데요.”
팀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최한별은 얼음 장벽을 만들어 다른 팀의 헌터들을 막고 있었으니, 그녀는 분명히 아니었다. 그럼 여기 있는 누군가 레전더리 아이템을 먹고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닌가.
‘흥! 이 팀도 끝났군.’
최한별이 조금은 헌탈한 표정을 지었다.
돈독한 팀워크도 레전더리 아이템 앞에서 무너지는군.
근 20일을 수많은 괴수 상대로 한 몸처럼 싸웠고, 마지막 마그투스를 죽일 때도 그렇게 환상적인 호흡을 보이더니, 전설급 보상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보다.
“앗! 미안.”
갑자기 나태준이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이거 내 인벤토리에 있었네. 하하하!”
“뭐?”
“워낙 인벤토리가 크고 물건이 많아서 이제야 확인했네.”
“에이, 덜렁대기는...”
“그거 한번 보여줘 봐요.”
수진이가 말했다.
“아, 안돼. 이거 비싼 거니까, 나중에 팔아서 다들 보너스 두둑이 나눠줄게.”
“쳇. 알았어요.”
거짓말이었다.
척 보기에도 어색한 거짓말.
최한별이 보기엔 팀원 중에서 누군가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태준은 팀을 지키기 위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팀을 위해서 모른 척하겠다는 건가?’
만약 누군가 레전더리 아이템을 먹고도 계속 밝히지도 않는다면, 이 팀은 오래지 않아 끝날 것이다.
그것을 나태준은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큰 손해가 나더라도 이 팀을 지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모습이 블리자드 길드장인 고종수와 너무 달랐다.
그때 나태준의 배낭이 열리면서 말볼이 고개를 빼꼼 내밀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에이, 아니겠지...’
국가 헌터원의 헌터들이 다음으로 나왔고, 블리자드 길드원들이 마지막으로 나왔다.
그리고 게이트가 공중에서 소멸했다.
“와아아아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벌써 헌터들이 SNS에 올렸는지, 바리케이드 뒤쪽엔 게이트가 소멸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쉴새 없이 셔터가 터졌다. 기자들이 모여들어 나태준과 팀원들을 멀리서 찍기 시작했다.
윤상희가 말했다.
“이제 우리 유명인사가 되는 건가?”
“제길, 나 화장 안 했는데.”
정기용은 사람들의 이목이 싫지 않았다. 과거에 자신은 이런 모습을 꿈꾸지 않았던가.
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안으로 들어왔다.
서윤아였다.
그녀는 먼저 고종수에게 다가갔다. 그에게서 상황을 듣자,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태준에게 다가왔다.
“너희 팀이 이겼다며, 축하해.”
서윤아, 그녀와는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짧은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우리 팀이 이길 거라고.”
“그랬지,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왔나 했더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서윤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B급 헌터는 될 것 같은데, 아니면 나와 같은 A급인가?”
“사실 이번엔 운이 좋았어. 고종수가 버린 얼음의 마법사 덕분에 우리가 독식할 수 있었거든.”
내 대답에 서윤아가 최한별을 쳐다보았다.
“반가워요. 최한별씨.”
서윤아가 갑자기 옆에 있는 최한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서윤아씨.”
“서로 이름을 알고 있으니, 인사할 필요가 없어서 편하군요.”
두 손을 맞잡은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
서윤아가 웃으며 말했다.
“블리자드 길드엔 당신 같은 인재가 필요합니다. 다시 들어오는 게 어때요? 길드장을 시켜드리죠.”
“뭐요?”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그 말을 뒤에서 듣는 순간 고종수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서윤아는 마치 블리자드 길드가 자신의 것인 양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있는 길드장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능력이 없으면 나가야죠. 아니면 길드는 제대로 클 수 없습니다.”
“지...지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를 내보낸다니?”
고종수가 참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서윤아가 고개를 돌려 말했다.
“거기 가만히 있어!”
그녀의 눈빛에 고종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어때요. 내 제안?”
최한별이 미소를 지었다.
자신 앞에서 고종수가 저렇게 수모를 받고 있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다고 할까?
악독한 마녀와 앞으로 함께 살 불쌍한 놈을 보며 말했다.
“매력적인 제안이긴 하지만 거절하죠. 보다시피 전 이미 새로운 팀이 있습니다. 그것도 블리자드 길드보다 훨씬 강력한 팀이죠.”
100명이 6명을 이기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서윤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하긴 떠먹여 주는데도 못 먹는 병신들이니... 그들을 거둘지 다시 고민해봐야겠네요.”
레전더리 아이템을 놓친 것은 그녀 입장으로도 정말 아쉬웠다.
서윤아가 내 앞으로 다시 왔다.
“나태준, 언제까지 운이 좋을진 모르겠지만, 우린 곧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너와의 만남은 나도 환영하지.”
“그래?”
“덕분에 유니크 아이템을 2개나 얻었잖아.”
“훗, 하긴 내가 밀어준 꼴이 됐군.”
서윤아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고종수가 그녀를 따라가며 연신 변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서윤아는 매몰차게 차 문을 닫고 바로 사라졌다.
최한별은 고종수의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흔들며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저런 사내를 좋아했다는 것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자, 우리도 돌아갈까.”
명동에서 멀지 않은 곳.
서울역 앞에 태준의 펜트하우스로 이동했다.
“이거 받아요.”
“뭐죠?”
“끼어보면 압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 태준이 최한별에게 반지를 건넸다.
[마력 회복의 반지(유니크) - 착용자의 마나양이 1.5배 늘어나며, 마나 회복 속도가 1.5배 늘어납니다.]
“내기에서 이긴 보상으로 블리자드 길드에서 받은 겁니다.”
“그런데 왜 이걸 내게?”
“당신 덕분에 내기에서 이겼으니, 그 정도는 받을 자격이 있죠.”
“네?”
“사양하지 말고 받아요. 내가 보기에도 이번 내기는 최한별씨가 없었다면 이기기 힘들었을 거예요.”
윤상희도 최한별이 받기를 바랐다.
“맞아요. 언니 받아요.”
“그거 안 받으면 제가 가질 겁니다.”
마력과 상관없는 정기용이 으름장을 놓으며 말했다.
“그럼 잘 쓰죠.”
최한별의 마력 회복 반지(유니크)를 받았다.
***
펜트하우스의 문이 열리고, 태준 팀이 돌아왔다.
주혁이와 기태가 달려 나왔고, 애들을 보고 있던 아이돌 수아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일행을 맞이했다.
“배고파 죽겠다. 족발하고 보쌈 시켜먹자!”
“오케이!”
“나도 찬성!”
배낭에서 말볼을 내려놓자, 놈도 집에 온 것이 좋은지 거실을 뛰어다녔다.
“어, 이상한데.”
기태가 갑자기 말볼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말볼 아닌데.”
“기태야 왜 그래? 말볼 맞아.”
“이상하고 아주 강한 파장이 느껴지는데.”
“뭐?”
기태가 놀란 표정까지 지었다.
최한별이 다가와 말했다.
“저, 혹시 몰라 말하는데요. 아까 게이트 클리어할 때요. 그러니까 말볼이 전투 중에 마그투스의 귓속으로 들어가는 걸 봤어요.”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