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58. 지하 헌터 시장(1).
“오래 기다렸죠. 이제 가죠.”
“출입카드는 구했나요?”
김성하의 물음에 주머니에서 황금색 출입카드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
그러자 김성하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지하 헌터 시장에 가는 게 그렇게 좋은가?
“그런데 한 장밖에 없는데 같이 들어갈 수 있습니까?”
“네. 동반 1인까진 가능합니다.”
“자,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강남이오.”
“강남에 지하 헌터 시장이 있나요?”
“그곳에 문이 있어요.”
“예?”
“그냥 가보시면 알아요.”
김성하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인터넷 같은 곳에 보면, 지하 헌터 시장이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정확한 실체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은 들어가지 못했고, 헌터들도 대형 길드에 소속되어 있거나 헌터 등급이 높은 소수만 이용할 수 있었기에 외부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고 김성하가 말했다.
그런데 그곳이 사람 많은 강남에 있다고?
택시를 타고 강남역으로 향했다.
***
[테헤란로]
하늘 높이 솟았던 빌딩 숲은 사라지고, 진짜 숲이 펼쳐져 있었다.
8년 전쯤에 A급 게이트가 발생해 테헤란로 건물들이 무너지고, 게이트에서 튀어나온 괴수들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다.
건물 잔해와 시체가 즐비했던 지상은 도로와 공원을 남기고 싹 정리됐다. 그리고 테헤란로의 건물은 지상이 아닌 지하로 옮겨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하도시, 낮게는 10층부터 시작해 50층이 넘는 곳도 있었고, 지하에 생긴 새로운 거리엔 수많은 젊은이가 오고 갔다.
상대적으로 지하는 안전했고, 헌터들이 오기 전까지 괴수의 침입 시간도 벌 수 있었기에 거부들이 이곳에 많은 돈을 투자했고,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문이 어디에 있다는 겁니까?”
“네. 잠시만요. 먼저 사람을 찾아야 해서요.”
김성하는 거리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기 있네요.”
엘리베이터 앞에 푸른색 중절모자를 쓴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사내가 손을 내밀자 김성하가 자기 출입카드를 내밀었다.
“저, 엘리베이터에 타세요.”
사내가 가리킨 엘리베이터에 김성하와 함께 탔다.
용산 헌터 시장처럼 이곳도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는 엘리베이터뿐이었다. 그렇기에 수백 개의 엘리베이터가 테헤란로 주변에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1층으로 갔다가 거기서 2층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갑자기 한쪽 벽에 푸른 소용돌이가 생겼다.
“헉! 이, 이건 게이트가 아닙니까?”
“게이트는 아니에요. 이건 지하 헌터 시장으로 가는 포털이에요.”
“포털이요?”
“어서 가죠. 지상에 올라가면 사라져요.”
김성하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리 봐도 게이트와 똑같아 보였다.
단지 크기가 작고, 색깔이 검은색이 아니라 푸른색인 것만이 다른 점이었다.
지상에 거의 다 왔기에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포털을 향해 몸을 던졌다.
순간 주변이 어두워지더니 희미한 빛이 일렁였다.
“도착했어요. 여기가 지하 헌터 시장 1층입니다.”
포탈이라고 하더니 순간 이동이라도 한 것인가?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용산 헌터 시장이 화려하고 조명이 가득한 거리였다면, 저 앞에 보이는 도시는 기본적으로 우중충하고 희미한 불빛만이 가득한 사막의 어느 도시 같았다.
그리고 자신의 등 뒤로 푸른색 포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기태라면 이것에 정체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지하 헌터 시장에 대한 소문만 들었을 뿐, 이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아마 다른 팀원들도 모를 것이다.
“저를 따라오세요.”
“네.”
김성하는 이곳이 익숙한지 빠르게 거리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에서 본 것과 다르게 도시 안에는 불빛이 가득했고, 많은 사람으로 활기찼다.
“저곳은 뭐 하는 곳인가요?”
야시시한 붉은빛이 한쪽 거리에 가득했고, 가게 2층 창문과 1층엔 여자들이 속이 훤히 비치는 옷을 입고 있었고, 거리엔 사내들이 우글우글했다.
김성하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환락의 거리죠. 헌터들이 마음 놓고 매춘과 도박,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곳이 여깁니다. 게이나 남창들도 많으니까 조심해야 해요.”
“근데 대낮부터 사람이 많군요.”
“이곳은 시간의 개념도 밤과 낮의 개념도 없어요. 폐인이 되기 딱 좋은 구조죠.”
이곳은 지상과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누가 이런 곳을 만든 걸까요?”
“글쎄요. 저도 거기까진 잘 모르겠네요.”
김성하가 앞서서 한참을 이동하자, 이글거리는 초록색 포털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무시무시한 켈베로스 세 마리가 묶여 있었고, 한 사내가 먹이를 던져주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거대한 켈베로스들이 입구를 막고 이빨을 드러냈다.
사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출입카드?”
“여기.”
황금색 출입카드를 보여주자, 사내는 켈베로스의 목줄을 당겼다.
그는 최소 A급 네크로맨서 일 것이다.
“어서 가죠.”
녹색 포탈을 타고 지하 2층에 도착했다.
‘이건 마치 게이트 안에 들어온 거 같군.’
말이 지하 2층이지, 전혀 지하 같지 않은 곳에 도착했다.
엘프의 도시처럼 뾰족한 첨탑이 사방에 솟아 있었고, 바닥은 모두 대리석으로 깔려있었다.
거리의 상가들은 그 비싼 유니크 아이템들을 수십, 수백 개씩 진열하고 있었고, 멀리 아름다운 성도 보였다.
“헌터증을 보여주십시오.”
포탈 앞쪽에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들이 헌터증을 요구했다.
그들이 뿜어내는 기세가 상당한 것이 최소 B등급 이상의 헌터가 틀림없었다.
김성하가 헌터증을 먼저 보여주었다.
나 역시 국가 헌터원에서 발급한 헌터증을 보여주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저들은 누구죠?”
“지하 2층의 관리자들이에요. 이곳은 이곳의 법이 있어요. 포털을 타고 마음대로 다른 나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는 겁니다.”
“네? 그럼 이곳이 다른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까?”
“맞아요. 다들 자기 나라의 포털을 타고 이곳으로 모이는 거죠.”
쉽게 말해 지하 2층은 귀족들이나 수천억원의 자산을 가진 갑부 헌터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아! 이곳은 변함이 없군요.”
그녀가 추억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전에 와본 적이 있습니까?”
“네, 옛날에 창수 선배와 몇 번 왔었죠.”
창수는 A급 도구 계열 헌터였으니, 당연히 출입카드가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갈까요?”
“일단 소환룬을 파는 곳으로 가죠.”
지나는 사람, 아니 헌터들의 기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곳에서 헌터들은 자신들의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세상에 높은 등급의 헌터는 대부분 여기 모여 있는 것 같았다.
분수가 멋진 광장을 지나 한 상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흑인 상점 주인이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했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그럼요 최고의 고객인데요. 무엇을 찾으십니까?”
“소환룬을 찾고 있는데요.”
“언데드입니까? 아니면 일반 몬스터?”
“미노타우로스 소환룬이 있습니까?”
상점 주인이 인벤토리를 열어 살폈다.
“네. 다행히 하나 있군요.”
먼저 이수호에게 줄 소환룬을 구매할 생각이었다.
“돈은 어떻게 내실 겁니까?”
“혹시, 다른 유니크 소환룬과 교환이 됩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종류에 따라서 차액이 발생합니다.”
인벤토리에서 가고일 소환룬(유니크)을 꺼냈다.
“언데드 소환룬이군요. 이거면 저희가 조금 밑지긴 하지만, 첫 거래고 하니 그냥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김성하가 내 손을 잡았다.
“충분하다니요. 언데드 소환룬 가격이 훨씬 비쌀 텐데요.”
“그게 요즘 언데드 소환룬이 많이 나와서...”
“다른 데로 가죠.”
김성하가 나를 잡아당겼다.
“아, 이거 왜 이러십니까? 10억 드리죠.”
“다른 데로 가자니까요.”
“그래야 하나?”
두 사람 사이에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이번엔 상인이 내 팔을 붙잡았다.
“A급 마석입니다. 한국에선 시가 10억쯤 하죠. 두 개 드리겠습니다.”
“그...그게 난...”
슬쩍 김성하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럽시다.”
미노타우로스 소환룬을 얻고 가고일 소환룬을 넘겼다. 그리고 A급 마석 두 개를 받아서 가게를 나왔다.
“연기 잘하시는데요.”
김성하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대충 말을 맞춘 것이다.
김성하는 아이템 가격에 대해 훤했고, 손해를 보지 않는 선에서 지금처럼 옆에서 조율해줬다.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여기 있겠습니다.”
김성하는 화장실로 향했고, 잠시 광장 벤치에 앉아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있었다.
“오! 권왕이다!”
“어디?”
갑자기 광장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헌터들이 수군거렸고, 광장 주변 상점 주인들도 큰손의 등장에 긴장한 채 가게 앞으로 나왔다.
‘김득구, 오랜만이군.’
떡 벌어진 어깨, 터질 것 같은 팔근육, 커다란 주먹까지 TV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기에 한 번에 그를 알아봤다.
권왕 김득구, 6학년 3반 친구 중에서 3번째로 S급 헌터가 된 사내.
아버지가 복싱체육관 관장이었고, 권투를 매우 사랑해 아들 이름을 김득구라고 지었다고 들었다.
그 역시 어렸을 때부터 권투를 했기에 체격도 좋았고, 실력도 뛰어났다.
내 기억 속에 그는 책임감이 강하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이었다.
하루는 창수가 동네 중학교 형들에게 돈을 뜯기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득구가 그 모습을 보고 달려가 네 명이나 되는 형들을 곤죽으로 만든 사건은 학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가서 아는 척을 할까?’
아니야.
고개를 흔들었다.
오랜만에 본 동창이 반갑기도 했지만, 그가 어떻게 변했을지 모르기에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미노타우로스 룬을 구했으니, 도끼를 사러 가죠.”
전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아이템을 고르는 것이다.
고종수 일당에게 뺏은 유니크급 활과 일본도, 기관단총을 세 자루의 양날 도끼와 교환했다. 냉기 옵션(유니크)이 추가로 붙어 있기에 미노타우로스가 이 도끼로 무장하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윤상희에게 줄 화염 옵션이 붙은 유니크급 도끼를 하나 사고, 마지막으로 내 무기를 사러 갔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갈고리는 없군요.”
하지만 상가를 다 돌아다녀 봐도, 내 갈고리를 대체할 만한 것이 없었다.
창수가 있었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 녀석이 돌아와야 갈고리 문제는 해결될 것 같았다.
“아무래도 직접제작을 의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네. 여기 대장간에 솜씨 좋은 헌터들이 많아요. 물론 창수 선배만 한 사람은 없지만...”
그녀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창수와 매우 친했나 보다.
그녀의 말로는 창수도 한때 이곳에서 고레벨 헌터들의 무기나 장비를 제작한 적이 있다고 들었다.
“대장간에 한번 가볼까요?”
“좋아요. 한번 가보죠.”
상가밀집구역에서 좀 떨어져 있는 대장간 구역으로 이동했다.
***
한쪽엔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고, 그 아래엔 선명한 무지개가 펼쳐있었다.
폭포에서 시작된 큰 시냇물이 아래로 흐르고 있었고, 시냇가 좌우에 대장간들이 쭉 늘어져 있었다.
“여기 어때요?”
“아름답네요.”
소설이나 동화 속에 나오는 세상 같았다.
꼭 아이템을 못 만들더라도 이곳을 볼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림 같은 곳이었다.
김성하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한 걸음 앞서서 종종걸음을 걸었다.
“저기 저곳이 창수 선배가 일했던 대장간이에요.”
그녀가 한쪽 언덕 위에 홀로 떨어져 있는 대장간을 가리켰다.
창수 후배라고 하더니, 김성하는 창수에 대해 나보다 많이 알고 있었다.
하긴 나보다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테니까.
“창수가 이곳에서 오래 있었나 보죠?”
“네, 대장간 그만두기 전까지 한 3년간 이곳에 있었어요. 이곳은 저에게도 참 좋은 추억이 많은 곳이에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언덕 위에 대장간으로 향하고 있었다.
까깡! 깡깡!
“어? 지금은 빈 곳일 텐데?”
그런데 대장간에서 희미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김성하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녀를 따라 대장간으로 향했다.
화아악! 휘이이잉!
푸른 불꽃이 번쩍이고, 거센 바람이 대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안에서 작업이 한창이었다.
먼저 달려간 김성하가 문 앞에서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잠시만요. 내가 먼저 들어가 보죠.”
열린 문으로 들어가자, 거구의 실루엣이 보였다.
설마 아니겠지?
너무나 익숙한 체형.
마치 곰같은...
철컥! 철컥!
한 사내가 불편해 보이는 다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번쩍이는 은색 망치를 들고, 쉴새 없이 망치질하고 있었다.
“창수야!”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사내가 내려치던 망치를 멈췄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 태준아,”
창수였다.
남창수, 저 곰 같은 놈이 이곳에 있었다.
“네가 여길 어떻게?”
“너는 여기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줘야 걱정을 안 하지.”
“너 마침 잘 왔다. 곧 네 무기가 완성된다.”
“뭐? 무기라고?”
그가 자신이 만들고 있는 것을 들어 보였다.
그것은 내가 쓰고 있는 갈고리와 모양이 똑같았다.
“설마, 그거 만들려고 이리 온 거야?”
“그래, 손때묻은 공구와 장비가 이곳에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
정말 미련하다고밖에 말하지 못했다.
지난 공개 게이트를 클리어한 후에 사라졌으니, 거의 3개월이 지났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찾았어?”
“참, 네 후배하고 함께 왔어.”
“후배라니?”
“네 길드 후배 말이야.”
“무슨 말이야 난 길드에 들어간 적이 없는데.”
“뭐? 그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김성하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창수 오빠.”
오빠?
창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서...성하야.”
“기껏 날 피해 도망친 곳이 여기야?”
이게 무슨 일이지?
성하가 창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울기 시작했다.
“엉엉엉, 왜 날 피해.”
“그...그게.”
“더는 떠나지 마. 내게 남은 건 이제 오빠뿐이야.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지. 흐흐흑”
성하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에 그 곰 같은 창수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잠시 자리를 비켜줬다.
설마 저 여자가?
그날 연회장에서 귀족들이 신귀족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던 날, 창수가 귀족 편을 들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사랑하는 여자가 헌터 협회 회장의 딸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저 여자를 살리기 위해 두 다리와 한쪽 팔이 잘리고, 온몸에 화상을 입은 저 몰골이 된 건가...
갑자기 가슴속이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