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59화 (59/149)

# 59

59. 지하 헌터 시장(2).

김성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일부러 속이려고 한 건 아닌데...”

“압니다. 말하지 않아도.”

창수가 또 도망칠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고마워요. 오빠를 찾게 해줘서.”

그렇게 울었음에도 또다시 눈물이 남았는가.

김성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동안 두 사람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창수는 괜찮습니까?”

“네, 들어가 보세요.”

안으로 들어갔다.

“태준아, 미안하다. 너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서...”

“그런 말 하지 마. 우린 친구 아니냐.”

덩치는 커다란 놈이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다 퉁퉁 부었다.

“전에 네게 하지 못한 말, 이제 다 털어놓을게. 이 일은...”

“다 알아.”

“뭐?”

창수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규환이에게 다 들었어, 어렸을 때 너와 친구들이 겪은 일도, 그날 귀족들을 모두 죽인 일도, 그리고 네 몸이 그렇게 된 것도 다 들었어.”

“들었구나...”

“미련한 자식, 미리 말하지 그랬어.”

“사실 그럴 경황이 없었어. 그날 연희가 아니었다면, 난 이 자리에 없었을 거야.

잠깐 그날 생각이 떠올랐는지, 창수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예상대로 연희가 창수를 도와줬구나.

그녀 역시 그때 귀족들을 모두 죽이는 데, 동의 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또 도망칠 거야?”

“응?”

“또 성하씨를 피해 도망칠 거냐고? 너 때문에 성하씨가 그 퀴퀴한 창고 같은 가게에서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아?”

“...”

창수는 미안함에 고개를 떨궜다.

녀석의 어깨는 처지고 표정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동안 당해왔던 것이 몸에 밴 것이겠지.

“성하씨의 목숨을 구해준 것으로 네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 마. 앞으로 네가 계속 보살펴줘야지.”

“하지만 성하가 내 옆에 있으면 더 위험해질 거야. 그날 내가 그들 편을 들어서...”

“그런 말 하지 마. 6학년 3반, 그 녀석들 모두 너 때문에 산 거야. 네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그날 다 죽었어!”

사실 그들은 창수를 배신자라 낙인 찍었지만,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은 창수였다. 그리고 헌터 협회장인 아버지와 귀족들의 계획을 몰래 듣고 창수에게 말해준 것은 김성하였다.

김성하는 아버지와 가족, 아니 그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창수를 택한 것이다.

그런 여자를 어찌 목숨 걸고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창수는 진정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그럼 싸워!”

“뭐?”

“병신 같이 도망치지 말고, 죽더라도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싸워! 그런 마음으로 몸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그녀를 구한 거잖아. 다른 새끼들, 누구도 상관하지 말고 둘만을 위해 살아, 그게 너와 네게 모든 걸 바친 성하씨에게 보답하는 거야.”

창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지금은 힘이 약하지만,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돕겠어. 그러니까 눈물을 보이지도 말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겨도 도망치지 말고 정면으로 부딪쳐.”

창수가 눈물을 훔치더니 내게 말했다.

“고맙다! 태준아, 네 말대로 앞으론 절대 도망치지 않겠어.”

마침 김성하가 안으로 들어왔다.

창수가 그녀를 보며 외쳤다.

“앞으론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나와 성하만을 위해 살겠어!”

그 말에 또 감동했는지, 김성하가 눈물을 흘렸다.

참 눈물이 많은 커플이다.

“자, 이제 돌아가자.”

“아니. 네 장비를 완성해야 해.”

창수가 고개를 흔들며 반대했다.

“난 지금 장비로 충분해, 그러니 그건 나중에 만들고 어서 돌아가자.”

“아니야. 얼마 남지 않았어. 지금 만들고 있는 이 갈고리를 완성해야 해. 이건 내 평생의 혼을 담은 거야. 그리고 이걸 완성해야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아.”

창수는 진지했다.

이는 장인으로서 고집이기도 했다.

그러자 김성하가 말했다.

“창수 오빠 말대로 이건 완성하고 가요. 어차피 갈고리가 필요하잖아요.”

그녀 말대로 B급 괴수만 잡아도 당장 갈고리가 휘고, 상처가 났기에 오래 쓰지 못했다. B등급 이상의 게이트에 들어가려면, 튼튼한 갈고리가 필요했다.

C급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는 팀원들이 살짝 걱정이긴 했지만, 그들 실력이면 고전은 해도 클리어는 문제없을 것이다.

“좋아! 그럼 완성하고 가자.”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창수는 갈고리를 화로에 넣었다.

김성하가 한발 물러섰다.

“작업 중에는 떨어져 있는 게 좋아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모양이다.

“근데 저 화로는 뭡니까?”

“게헤나의 불꽃을 소환하는 용광로에요. 이를 유지하기 위해 붉은 마석이 끝없이 필요하죠.”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돈이 없을 텐데 어디서 구했을까.

잠시 후.

주변 대장간에 있던 대장장이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조용히 테이블에 붉은 마석과 백색 마석을 놓고 돌아갔다.

대장장이들이 그러는 이유는 김성하가 설명해 주었다.

주변에 있는 대장장이 대부분이 한때 창수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대장장이들이었다.

창수는 이쪽 분야에 선구자로 가장 먼저 도구 계열에 A급 헌터가 되었고, 그 기술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창수는 실력 있는 도구 계열 헌터들이 많아야 괴수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더 많은 헌터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김성하가 말했다.

“저, 인벤토리에 있는 장비들 좀 줘봐요.”

“네?”

“창수 오빠가 저렇게 일하는데 저도 가만히 있을 순 없죠.”

“하지만 이건 이미 옵션이 붙은 것들인데요?”

김성하 역시 도구 계열에 C급 헌터이긴 했지만, 그녀의 실력으론 유니크 아이템을 업그레이드하기엔 부족했다.

“아, 저 B급 헌터에요.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어쩐지 무기를 수리하는 기간도 짧았고, 창수가 만든 갈고리를 똑같이 복제하는 것이 상당한 실력이 있었다.

김성하는 주변에 대장간 하나를 빌려 내가 산 팀원들의 무기를 하나씩 업그레이드했다. 그리고 업그레이드 재료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헌터 시장이었으니까.

내가 부지런히 발품을 팔았다.

***

명작, 명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들었다.

금방 된다던 창수의 말과 달리,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대장간에선 망치질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며칠이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이곳은 시간의 구분도, 밤낮의 구분도 없었기에 졸리면 자고, 눈뜨면 망치질 소리를 들어야 했다.

창수의 생활 패턴에 맞춰 나도 대장간 옆에서 스킬을 익히며 백정의 칼과 갈고리를 휘둘렀다.

팀원들의 무기도 전부 업그레이드가 끝났고, 김성하 역시 창수의 패턴에 맞춰 대장간 주변에서 수진이에게 줄 화살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인근에 있는 대장장이들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하나둘 언덕 위에 모여들었다.

캉! 캉!

화륵! 화르륵!

영롱한 푸른 불꽃과 붉은 불꽃이 대장간 주변에 번쩍였다.

“오오오!”

“저 빛깔 좀 봐. 최소 유니크야.”

“아니, 이건 뭔가 더 대단한 물건이 나올 것 같은데?”

다들 창수가 만든 새로운 아이템의 탄생을 구경하기 위함이었다.

뜨거운 바람이 불 때도 있었고,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것 같은 한기가 몰려올 때도 있었다.

망치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대장간 주변에 풍기는 기운도 점점 강해졌다.

카앙!

큰 소리와 함께 대장간에서 뿜어나오는 빛이 지붕을 뚫고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우와! 세상에!”

“성공이다!”

“이건 분명 레전더리급이야!”

곧이어 창수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손에는 은빛 갈고리가 들려 있었는데, 칼날에 은은한 붉은빛이 보이는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날카로웠다.

창수가 갈고리를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대장장이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지?’

“에이 퉤!”

“퉤!”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대장장이들이 돌아가면서 갈고리에 침을 뱉는 게 아닌가?

“지금 뭐하는 거죠?”

김성하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 물건을 만들며 고생했을 대장장이를 위로하는 거죠. 한마디로 고생을 시킨 물건에 욕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러움을 털고 새롭게 태어나라는 의미도 있죠.”

참 희한한 방식으로 축하를 해주는구나.

맨 마지막으로 김성하가 다가가 침을 뱉었다.

창수는 침이 한가득한 갈고리를 내게 내밀었다.

몇몇은 가래침을 뱉었는지, 노란색도 보였다.

순간 욕지기가 나올 뻔했다.

“자 받아. 네 거야! 완성했어.”

내가 받으려고 손을 내밀자, 김성하가 웃으며 만류했다.

“오빠 그만 놀리고, 닦아서 줘요.”

“하하, 그럴까?”

장난도 치고, 창수가 많이 변한 걸 느끼겠다.

그리고 녀석의 말에 의하면 물건을 만들 땐 한번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했다.

천상 녀석은 대장장이 일을 하며 살 팔자라고 말해줬다.

잠시 후 창수가 갈고리를 물에 씻고, 깨끗이 물기를 닦아서 가져왔다.

갈고리를 건네받았다.

[냉염(冷焰)의 갈고리(레전더리) - 신화 전설에 나오는 매우 단단한 물질인 아다만트(adamant)를 게헤나의 불꽃과 얼음 지옥의 냉기로 담금질해 만든 갈고리.]

아이템 등급이 유니크가 아니었다.

레전더리라는 글자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인벤토리에서 백정의 칼과 쇠사슬 배낭을 꺼냈다.

그리고 냉염의 갈고리를 티탄의 사슬에 연결했다.

[백정의 칼과 함께 사용 시 완벽한 조화 발동. 기본 공격력 2배]

[갈고리 포획 시 공포 +50]

[갈고리 공격 성공 시 20% 확률로 스턴 효과 발생.]

[출혈 시 혈진(hemoconia)발생. 운동능력 저하 -50]

갈고리 능력치가 대폭 상승했다.

거기에.

[괴수의 살에 박히면 그 주변에 마비 증상 발생.]

[20% 확률로 냉기 공격.]

[30% 확률로 화염 공격.]

새로운 능력도 더해졌다.

“아! 너한테 귀환의 룬이 있었지.”

“어? 그걸 다 기억하냐?”

첫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받은 유니크 룬이었다.

“그거 냉염의 갈고리에 새겨줄게.”

창수에게 귀환의 룬을 건네줬다.

[귀환의 룬(유니크) - 주로 무기에 새긴다. 귀환의 룬이 새겨진 아이템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주인이 부르면 돌아온다. 단 소환된 몬스터나 살아 있는 생물엔 새길 수 없다.]

귀환의 룬까지 새겨진 냉염의 갈고리, 최초로 그것을 한참 동안 쥐고 있자 팔뚝에 갈고리 문신이 새겨졌다.

“이게 끝이야?”

“그래, 이제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 거야. 어디서든 손에 쥐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네게 날아올 거야.”

오늘은 아주 기분 좋은 날이었다.

보조 무기였지만, 난생처음 레전더리 무기를 들었다.

들고 있는 것만으로 뭔가 힘이 생긴 느낌이었다.

“창수야, 그리고 내 칼 좀 봐줘.”

“칼은 왜?”

“제수씨가 그러는데, 봉인이 풀린 것 같다고 하던데 상태창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아서.”

제수씨란 말에 김성하는 얼굴이 빨개졌다.

창수는 백정의 칼을 들고 자세히 살폈다.

“이거 봉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은데.”

“뭐?”

“일부 풀린 것 같기도 한데, 완전하지 않아.”

“그래서 봉인 해제 주문서도 안 먹혔나?”

“주문서가 안 먹혔다면, 봉인이 풀리고 있는 게 맞아. 언제 풀릴진 모르지만.”

차라리 봉인이 풀리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면, 단번에 풀렸을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특이한 기능만 없었다뿐이지, 포정 스승님께서 주신 칼은 아직도 그 날이 상하지 않았고, 날카로움은 창수가 만들어진 갈고리와 차이가 없었다.

휘이이잉!

갑자기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렸다.

“뭐지?”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사람이 무서운 속도로 곧장 이리 달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는 속도를 줄이더니, 우리 앞에 섰다.

떡 벌어진 어깨와 큰 체격, 그는 권왕 김득구였다.

“어? 남창수, 네가 여기 웬일이야?”

그는 창수와 김성하를 번갈아 보더니, 과거가 생각났는지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수는 갑작스러운 김득구의 등장에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창수를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오랜만이다. 김득구.”

“응?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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