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60화 (60/149)

# 60

60. 지하 헌터 시장(3).

김득구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나태준?”

“그래, 나야.”

김득구가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왔다.

TV에서만 보다가 실물로 보니, 어색했다.

그래도 어릴 적 모습이 조금은 남아있었다.

“반갑다.”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내 악수를 받아 줄 것인가?

그 역시 솥뚜껑 같은 손을 내밀었다.

“나태준, 정말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 만이지?”

“정확히 15년 만이야.”

말이 끝날 때마다 오른쪽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모습이 어릴 적 그대로였다.

“얼마 전에 헌터가 됐다는 소문은 들었어. 그런데 벌써 이곳에 있을 정도라니 대단한데?”

“그냥 아는 사람 통해서 들어왔어.”

최규환에게 카드를 받아서 들어왔지만,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넌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빛무리를 보고 온 거지. 몇 년 만에 대장간에서 레전더리 아이템이 떴길래 구경 온 거야.”

김득구는 고개를 돌려 창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둘이 함께 있는 거지?”

그는 나와 창수의 관계를 묻고 있었다.

“창수가 내 일을 돕고 있어.”

“뭐?”

“몇 달 전에 용산 헌터 시장에서 우연히 만났어. 그 이후로는 내 장비와 우리 팀원의 장비를 맡아서 수리하고 있지.”

김득구가 창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너, 괜찮은 거냐?”

창수에게 묻고 있었다.

그러자 창수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난 괜찮아. 보다시피 일도 다시 시작했고.”

“하나만 묻자, 방금 그 빛무리 네가 만든 아이템이야?”

“그래.”

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떨고 있었지만, 또박또박 잘 대답했다.

스스로 이겨내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녀석, 일 시작했구나! 그럼 잘 됐다. 내 장비 좀 봐주라.”

“뭐?”

득구가 서둘러 인벤토리에서 강철 글러브를 꺼냈다.

“다른 도구 헌터들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데, 분명 전보다 힘이 위력이 감소했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어.”

창수가 얼떨결에 득구의 강철 글러브를 받아들었다.

“이거? 내가 만든 걸 아직도 쓰고 있군.”

“사실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이만한 글러브를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리곤 곧 전문가답게 날카로운 눈으로 여기저기 장비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눈이 반짝였다.

뭔가 찾은 거다.

“왜 여기에 서리 룬을 박은 거지?”

“그거야 주먹에 냉기 효과를 더하려고 한 거지.”

“이 서리 룬은 30% 확률로 강한 서리 바람을 뿜어내지. 그래서 네가 공격할 때 간헐적으로 냉기 위력이 더해졌을 거야.”

“맞아.”

“하지만 네 특기는 폭풍 연타잖아.”

“그렇지.”

“그럼 답은 나왔어. 폭풍 연타가 폭발해야 할 타이밍에 서리 바람이 뿜어지면서 아주 짧지만, 연타 기술이 끊겨서 위력이 초기화됐을 거야. 그러니 그때부터 다시 연타가 시작됐고, 위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김득구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럴 수도 있나? 역시.”

“이 서리 룬은 빼버리고, 차라리 무게를 추가하는 무게 룬이나 체력 룬을 늘려. 네 주먹은 어떤 냉기나 화염보다 파괴력이 넘치는데, 굳이 다른 효과를 넣으려 하지 마.”

“아! 잊어버리고 있었어, 넌 역시 최고의 장비 컨설턴트야.”

설명을 들은 김득구의 표정이 환해졌다.

“휴! 사실 이 글러브를 고치거나 대체할 만한 걸 찾으러, 지난 몇 달간 여기 지하 헌터 시장을 수십 번이나 방문했어. 그런데 이렇게 너를 만나서 간단히 해결되다니.”

김득구의 반응을 보니, 창수를 경계하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살짝 창수를 띄워줬다.

“A급 도구 계열 헌터론 창수가 최고인가?”

김득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지금 이 서리 룬을 뺄 수 있을까?”

“미안하지만, 지금은 태준이하고 밖으로 나가려고. 나중에 무게 룬이나 체력 룬을 함께 가지고 와 그럼 한꺼번에 작업해 줄게.”

“하하하, 알았어.”

득구의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그런데 어디로 찾아가?”

창수가 용산 헌터 시장에 자기 가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좋아, 그럼 이제 나가자.”

“나도 같이 가자.”

김득구도 함께 출구로 향했다.

김득구와 앞서 걸었고, 창수와 김성하가 뒤를 따라왔다.

거리가 조금 벌어지자, 득구에게 조용히 말했다.

“득구야, 창수가 복귀했다는 거, 당분간 너 혼자만 알고 있으면 안 되겠냐?”

“그럼 혼자 알지. 누구에게 말할 사람도 없어.”

“넌 헌터 협회 이사잖아.”

“그거 그냥 명함만 있는 거야. 거기 활동 안 한 지 오래야.”

김득구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는 그날 귀족들과 일이 터지고 나서, 헌터 협회는 물론 친구들하고도 연락을 잘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홀로 게이트를 공격하고 괴수를 잡으면서 헌터 등급을 올려 지금은 당당히 S급 헌터가 됐다.

물론 가끔 A급 게이트를 공략할 때면, 서로 얼굴을 마주치긴 하지만, 연희처럼 묵묵히 괴수나 잡고, 게이트 클리어하면 곧바로 헤어졌기에 그 역시 연희와 더불어 헌터 협회의 대표적인 아웃사이더였다.

***

[강남역]

김득구와 헤어지기 전에 한마디 했다.

“언제 술이나 한잔하자.”

“술? 그러고 보니 술 마신 지도 오래됐네.”

“지금 갈까?”

남자들이 오랜만에 만나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의 하나가 술 한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득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다음에 하자, 난 지금 헌터 협회로 가서 맡긴 룬부터 찾아봐야 해. 어서 장비부터 수리해야 안심이 되지.”

득구 역시 안 본 사이에 성격이 변하긴 했다.

오히려 조금 차분해진 것이 더 나아진 면도 있었다.

“알았어, 그럼 다음에 보자.”

득구는 먼저 무시무시한 속도로 용산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는 단련을 위해 웬만하면 차를 타지 않고 서울 근교까지는 그냥 달려서 이동한다고 했다.

창수와 성하, 두 사람과 함께 서울역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뭐야? 다들 벌써 클리어하고 돌아온 거야?”

팀원들이 모두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한 달하고 보름 만에 돌아와서 그게 할 소리야?”

윤상희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오늘이 며칠인데?”

달력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45일이 흘렀다.

“어쩐지 계절이 가을로 바뀌어있더라니...”

지하 헌터 시장의 무서운 점이 이것이었다.

한번 그곳에 들어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특히 도박이나 여자에 빠지면 게이트에서 목숨 걸고 번 돈을 홀랑 날리는 일도 허다했다.

“다들 인사해. 이쪽은 남창수. 도구 계열 헌터고, 내 친구야.”

수진이하고 윤상희는 알고 있었지만, 다른 파티원들은 처음이었기에 다들 통성명을 했다.

창수는 특히 기태를 만나고 싶어 했다.

지하 헌터 시장에서 내가 기태 이야기를 하자, 무슨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게이트 파장에 대해서 특히 많이 궁금해했었다.

“네가 기태로구나. 반갑다.”

“어? 아저씨는 왜 다리가 없어요?”

“아니 있는데.”

창수가 버튼을 누르자, 휠체어가 갈라지면서 두 다리로 일어섰다.

“어때? 더 튼튼한 다리가 생겼지.”

“와! 신기하다.”

창수는 기태와 이야기했고, 나는 최한별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에 관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나머지 다른 C급 게이트를 모두 클리어했다고? 7개를 전부?”

“네, 태준 오빠가 지하 헌터 시장으로 간 후에 나흘 만에 상희 언니와 정기용씨가 나왔어요. 그리고 나까지 합쳐서 다시 수진이와 수호씨가 들어간 게이트로 들어가 그 게이트를 마저 클리어하고, 그다음에는 다섯 명이 게이트 7개를 차례로 공략했죠. 대부분 2, 3일 만에 클리어하고 나왔고, 보름 전부터 이렇게 쉬고 있어요.”

팀원들의 실력을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

다들 그 짧은 시간에 노력해서 실력이 많이 올랐다. 지금 당장 헌터 승급 테스트를 한다면, 다들 가뿐히 B급으로 올라설 것이다.

7개의 게이트를 클리어해 보상으로 유니크 아이템도 두 개나 나왔고, 레어 아이템 두 개와 일반 아이템이 다섯 개나 나왔다.

모두 내가 챙길 것이다.

팀원들 장비 맞춘다고 지하 헌터 시장에서 쓴 돈을 생각하면, 이 정돈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창수는 기태와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저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김성하의 사연을 들은 다른 팀원들은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위로했다.

갑자기 창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 이야기 들었어?”

“무슨?”

“용산 상공에 S급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다는 말.”

“어, 기태한테 들었어.”

“그거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무슨 소리야? 기태는 언제 생성될지 모른다고 하던데.”

“그걸 예언한 헌터가 있었어.”

“뭐?”

창수의 말에 저녁을 준비하던 팀원들까지 모두 집중했다.

“예언이라니?”

“최규환이 이야기 안 해?”

“별 이야기 없던데.”

창수가 그녀에 대해 말해주었다.

정신 계열 헌터로 유명한 유미관이란 헌터가 있었다고 했다. 70이 넘는 나이에 각성해, 큰 활약은 없었고, 등급은 죽을 때까지 D급에 머물렀지만, 남들에게 없는 특별한 한가지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단편적이지만 미래를 본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의 예언으로 총 7번의 A급 게이트가 어디에 떴을지, 미리 알고 대처했기에 큰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었고, 이연희가 가장 처음으로 S급 헌터가 될 거란 것도 맞췄다.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것들까지 연이어 맞추자, 그녀의 예언은 헌터 협회나 국가 헌터원에서도 상당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에 걸렸고,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미래를 봤다면서 충격적인 예언을 하나 했다.

그것이 용산 상공에 초대형 S급 게이트가 열리면서 그 아래로 A급 괴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S급 괴수들까지 그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A급 게이트 안에서도 며칠이나 몇 달에 걸쳐 잡는 S급 괴수들이 용산 상공에서 튀어나온다고 하니, 그 위협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마지막 예언을 그저 노망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녀가 많은 예언을 맞췄지만, 그때까지 S급 게이트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한 번도 뜬 적이 없었고, 그런 게 한국에만 뜬다고 하니 더 믿을 수 없었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어서 믿지 않으려고 했는데, 기태의 말을 들으니, 왠지 거짓말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어.”

“혹시, 그 날짜도 알아?”

“아니 정확한 날짜는 몰라.”

“그럼 언제 뜰지 모르는 거네.”

“아니, 내년에 눈이 아주 많이 내리는 날에, 게이트가 열린다고 했어.”

“뭐? 내년이 확실해?”

창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10월 초니까 내년이 되려면 2개월 남았다.

문제는 그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란 게, 내년 초도 될 수 있었고, 내년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둘 다 시간이 많지는 않았다.

“그럼 어떻게 해?”

“어디 지하로 피해야 하나?”

“지하 헌터 시장 같은데?”

다들 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쉬고 있을 때가 아니야. B급 게이트를 공략하자.”

“뭐? 우리끼리?”

윤상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미 한번 B급 게이트 경험이 있었기에 그 어려움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땐 170명에 가까운 헌터가 함께 참여했기에 그 많은 괴수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이제 여섯이 해야 했기에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리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요?”

평소 반대를 하지 않았던, 이수호마저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들 모여봐. 이번에 지하 헌터 시장에서 구해온 장비를 보여주지.”

팀원들의 장비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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