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65화 (65/149)

# 65

65. 난도(亂刀)질(5).

하나하나가 B급 괴수의 위력!

머리에 있는 핵을 박살 내지 못하면 스스로 재생하는 능력까지.

핵을 박살 내, 골렘을 쓰러트려도 뒤를 이어 또 다른 골렘이 달려온다.

이것이 골렘 마스터라 불리는 A급 헌터 서윤아의 힘이었다.

‘정말 끝없이 몰려오는구나!’

머리통에 연거푸 주먹을 날려 핵을 뽑아내 부숴버렸으나, 뒤를 이어 또 다른 놈이 달려왔다.

그래도 이건 계획대로다!

우리는 어느새 언덕 중간을 오르고 있었다.

“다들 힘을 내!”

힘을 내란 말 한마디가 도움될까?

동료들이 슬쩍 나를 바라보며 골렘을 공격한다.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곳은 전장!

근처에 동료가 있지만, 육중한 뼈골렘을 상대하는 것은 혼자였다.

계속된 혼자만의 싸움.

육체보다 마음이 먼저 지치기 마련이다.

그때 소리를 침으로 나는 혼자가 아니다.

옆에 동료가 있다고 일깨워주는 한마디를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전장의 상황과 현재 위치를 한번 확인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왜, TV 대하 드라마에 나오는 장군들이나 판타지 소설의 기사들이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받아라!”

땅을 진동시키며 달려오는 뼈골렘을 향해 갈고리를 던졌다.

퍽! 툭!

갈고리는 골렘의 머리를 맞고 옆으로 튕겼다.

겉으로 보이진 않았지만, 골렘이 속으로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이따위 공격에 내가 쓰러질 것 같아?

하지만 그럴 것 같다.

옆으로 달리며 손을 뻗었다.

“돌아와!”

패앵!

땅에 떨어진 갈고리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리고 갈고리에 달린 쇠사슬이 놈의 다리를 휘감았다.

손으로 돌아온 갈고리를 달리면서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거대하고 육중한 놈이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다.

쿠앙!

“죽어!”

퍼퍽! 퍽!

백정의 칼로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뼈가 박살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손으로 푸른 핵을 꺼내 높이 들었다.

서윤아는 연신 언덕 뒤로 새로운 골렘 핵을 던지면서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년의 군단을 부숴주마!”

콰직!

핵이 깨지자, 골렘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도발이 먹혔나?

서윤아의 얼굴색이 흙빛이 되었다.

사실 체력적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마그투스의 각반을 무리하게 썼기에 다리가 끊어질 듯이 아팠고, 양팔은 혈관이 터졌는지, 소매 바깥으로 피가 배어 나왔다.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지만, 쓰러질 순 없었다.

그것은 죽음을 의미했다.

‘다 왔다!’

그때 이 작전의 핵심인 이수경이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대한 천천히, 그리고 은밀히 우리가 골렘을 상대할 때 이수경은 그녀의 뒤를 친다.

삼국지 소설에서 본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서윤아가 의심하지 못하도록 더욱 소리친다.

“수진아 서윤아를 공격해!”

내 목소리를 듣자, 한수진이 골렘을 피해 뒤로 물러서면서 서윤아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얼마나 화살을 많이 쏘았던지, 그녀의 팔은 눈에 보일 정도로 후들거렸다.

그래도 쏜다.

파아아아앙!

화살은 후미에 거센 회오리를 달고 날아갔다.

하지만.

빠각!

골렘 한 마리가 손을 내밀어 화살을 막아냈다.

놈은 손바닥이 날아갔지만, 주인을 지켰고 아예 몸통으로 수진이의 시야를 막아버렸다.

그사이 이수경은 게이트 앞까지 전진했다.

‘어서 뒤를 공격해!’

이수경이 게이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서윤아와 전혀 상관없었다.

두 사람은 원수진 일도, 우리와 관련된 일도 없었기에 이대로 게이트를 나가면 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믿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우리에게 서윤아의 존재를 알려줬고, 미리 대비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녀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긴 검을 뽑아 들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모두 뒤로 물러서! 후퇴해!”

내 명령에 동료들이 골렘과 싸우기를 포기하고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크하하하! 이제 네놈들의 한계를 알겠지.”

서윤아는 우리가 후퇴하자, 다시 기세가 살았다.

사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더는 뒤쪽으로 골렘 핵을 던지지 않았다.

이것이 후퇴하는 우리가 노리는 것이었다.

골렘이 언덕 뒤에서 뛰어나오다 서윤아 뒤로 접근한 이수경을 공격할 수도 있었기에 후퇴하는 척을 하는 것이다.

“일격필살!”

이수경이 자신의 최고의 스킬을 펼치며 서윤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녀와 이수경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골렘 마스터 A급 서윤아, 하지만 C급 검사인 이수경의 공격을 막을 길이 없었다.

그때였다.

땅속에서 검을 든 인형이 불쑥 솟아올랐다.

카앙!

이수경의 검을 막은 건 그녀의 비서였다.

겉모습은 완벽한 사람에 말까지 할 수 있었기에 골렘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서윤아의 12번째 골렘 인형이었다.

서윤아가 비웃음을 흘렸다.

“멍청한 년! 내가 대비를...”

이수경이 갑자기 몸을 앞으로 숙였다.

그러자 그녀의 등 뒤에 있던 배낭에서 작고 빠른 것이 튀어나왔다.

파팟!

비서 골렘의 머리를 밟고, 서윤아를 향해 날아갔다.

콰직!

“아악!”

서윤아의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말볼이 서윤아의 어깨와 목 사이를 물었다.

녀석이 고개를 젖히자, 서윤아의 살이 한 움큼이 뜯겨나갔다.

“으아아아!”

어깨 위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당황한 그녀가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말볼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말볼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땅에 내려온 말볼은 칼날 같은 발톱을 세웠다.

그리고 서윤아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촤악! 착!

말볼의 날카로운 발톱이 서윤아의 허벅지와 옆구리를 그었다.

“으윽! 멍청한 년아, 나를 도와!”

서윤아가 옆에 있는 그녀의 비서 골렘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골렘은 이수경이 막고 있었다.

“너 따위 티볼에게 내가...”

서윤아가 인벤토리에서 단검을 꺼냈다.

검은빛이 이글거리는 것이 매우 위력적으로 보였다.

“죽어!”

그녀가 단검을 휘두르자, 칼날 끝에 검은 그림자가 말볼을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재빠른 말볼은 그런 것에 맞을 레벨이 아니었다.

녀석은 B등급 고슴도치 형 괴수 히스트릭스의 가시도 피하는 놈이었다.

말볼이 단검에서 뿜어진 검은 그림자를 피하면서 그녀의 종아리에 옆을 스쳤다.

“으악!”

종아리에 피가 흘러내렸다.

말볼의 공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좌우로 움직이면서 칼날 같은 발톱으로 서윤아를 난도(亂刀)질했다.

자신의 주인인 태준에게 악의를 보이는 인간을 참을 수 없어 보였다.

말볼의 주위로 언뜻언뜻 희미한 붉은 형상이 비춰 보였다.

‘저건 뭐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설마, 화룡 헬라카스가 깨어나는 건가?

말볼에게 달려갔다.

서윤아의 뼈골렘은 더는 위력적이지 않았다.

골렘의 핵만으로 저놈들을 조종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마력이 계속해서 핵에 공급돼야 골렘이 움직일 것인데, 지금 그녀는 그럴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말볼!”

말볼이 걱정됐다.

혹시나 화룡 헬라카스가 접신되어 정신을 지배당할 수도 있었다.

“그만해! 멈춰!”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말볼이 공격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놈의 눈이 붉게 물들어있었다.

“말볼, 이리와!”

말볼의 눈동자가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내게 달려왔다.

달려가 말볼을 안아 들었다.

녀석은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었다.

말볼에게 나쁜 짓을 시킨 것 같아 미안했다.

“으허헉!”

말볼의 난도질에 쓰러져 있던 서윤아가 일어섰다.

그녀의 팔과 다리 등에 붉은 피가 범벅이다.

특히 팔로 말볼의 발톱 공격을 막아냈기에 서윤아는 팔을 위로 들 수도 없었다.

그녀가 두 팔을 흐느적거리며 게이트를 향해 달렸다.

자신을 죽이려 한 여자다.

‘달아나게 놔둘 순 없지!’

촤르르르르!

“크헉!”

갈고리가 날아가 그녀의 어깨에 박혔다.

피보라가 뿜어지며 그녀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공포로 물들어있었다.

서윤아의 골렘들은 모두 바닥을 굴렀다.

그녀는 힘을 잃었다.

팀원들이 하나둘 내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게르르르!”

말볼이 으르렁대자, 서윤아가 몸을 심하게 떨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저 괴수는 뭐...지?”

“말볼이라고 우리 동료지.”

“괴수가 동료라고...”

서윤아는 믿기지 않았다.

자신이 놓친 것은 없었다.

태준까지 여섯 명의 파티원, 그리고 자신을 보자마자 안으로 들어간 브로커 중개인까지 모두 계산속에 있었다. 그랬기에 12번째 골렘은 그녀 주변에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작은 괴수가 나타나 자신을 공격할 것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수경씨, 고생했어요.”

“휴! 뭘요. 이 정도는...”

서걱!

뭔가 둔탁한 것이 잘리는 소리가 들렸다.

서윤아의 목에 가는 붉은 줄이 그어졌다.

“어...어?”

툭! 두툭!

순식간에 그녀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서윤아의 뒤로 커다란 낫을 든 망령이 서 있었다.

“다들 고생했어.”

망령 뒤에서 이태용이 모습을 드러냈다.

“개 같은 년 죽어! 죽어!”

이태용은 쓰러진 서윤아의 몸을 몇 번이나 발로 찼다.

“무슨 일이지? 이유가 뭐야?”

네 물음에 이태용이 환하게 웃었다.

“원래 태준이 네가 목숨이 위험하면, 내가 이년을 죽이려고 했어. 그런데 내 도움 없이도 잘하고 있더라고.”

“그래?”

“난 장사꾼이야. 신용이 목숨보다 중요하지.”

“너무 늦은 거 아냐? 신용이 중요하다면 서윤아를 안으로 들여보내지 말았어야지.”

“하하하, 그건 사정이 있었어. 보다시피 내 비즈니스를 간섭하려고 하잖아. 다른 놈들에게 알리겠다고 협박까지 하고, 그래서 게이트로 들어가게 한 거야. 게이트에서 일은 게이트에서 끝나는 법이니까.”

이태용이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튼, 너도 무사하고 서윤아도 죽었으니, 해피엔딩이군.”

이태용의 말을 믿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가 이곳의 상황을 계속 주시한 것은 확실했다.

이태용이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들었다.

그리고 서윤아의 손가락에 낀 반지도 뺐다.

“자, 받아! 마무리는 내가 했지만, 네가 처단한 거니까.”

단검과 반지를 받고, 의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태용이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이래 봬도 계산은 확실해.”

사실 지금 그가 저 뒤에 서 있는 무시무시한 낫을 든 망령을 이용해 우리를 공격했다면, 전원이 죽을 수도 있었다.

그는 A급 네크로맨서. 뒤에 소환된 것은 일반 망령이 아닐 것이다.

“저놈은 뭐야?”

“카론이야. 들어봤지? 지옥의 뱃사공 카론.”

카론은 네크로맨서의 최상급 소환수였다.

“자 그럼 나갈까?”

“좋아, 먼저 앞장서지.”

놈이 뭘 노리는지 알 수 없었다.

게이트 밖으로 나가서도 안심할 순 없었다.

그곳엔 이태용의 부하들이 잔뜩 있었으니까.

내가 눈짓하자, 이수호가 두 마리의 미노타우로스를 앞세웠고, 팀원들 모두가 긴장한 상태로 밖으로 나갔다.

‘뭐지 아무도 없다?’

밖을 지키고 있던 수백 명의 사설 군인들과 복면을 쓴 헌터도 아무도 없었다.

“모두 철수시켰어! 내가 여기 있는데 인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지.”

“서윤아가 죽었는데, 괜찮겠어?”

그를 슬쩍 떠봤다.

“물론, 머리 나쁘고 멍청한 년이 게이트에 들어갔다가 죽은 것뿐이잖아.”

“누가 그 말을 믿어 줄까?”

“솔직히 안 믿겠지만, 어쩌겠어? 이 게이트는 곧 소멸할 거고 증인은 여기 있는 사람들뿐이잖아.”

이태용이 팀원들을 한번 돌아봤다.

“우리 팀은 상관없어.”

들고 있던 백정의 칼을 고쳐 쥐고, 놈을 노려봤다.

“우리에게 책임을 넘기려 한다면 내가 가만두지 않아.”

“많이 변했군.”

“6학년 3반, 너희가 변한 것처럼 나도 예전의 나태준이 아니야.”

이태용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우린 공동체야. 내가 서윤아를 죽였잖아. 그러니 우리는 같은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고. 그러니 너희를 떠벌릴 생각은 전혀 없어.”

놈이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먼저 돌아가지. 난 게이트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갈게.”

“알았다.”

팀원들과 배를 향해 움직였다.

멀어지는 나를 향해 이태용이 소리쳤다.

“다음에 B급 게이트가 나오면 반값에 줄 테니까 꼭 이용해!”

작은 통통배를 타고 육지로 향했다.

그렇게 서윤아를 죽이고 무사히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녀의 아이템과 함께.

***

그리운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실이 온통 공구 천지다.

“이게 다 뭐냐?”

“뭐긴, 작업실이지.”

뻔뻔한 얼굴의 창수.

저놈이 왜 이렇게 변했을까?

“왔어요.”

김성하가 방 안에서 나오며 인사했다. 그런데 손에 작업용 망치를 들고 있었다.

창수가 저렇게 변한 원인은 제수씨가 분명했다.

“거실을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떻게 쉬라고?”

윤상희가 따라 들어오며 한마디 했다.

그때 주혁이와 기태가 달려왔다.

“엄마!”

“아줌마!”

“오냐! 내 자식들.”

40일 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니, 얼마나 반갑겠는가.

창수가 말했다.

“기태가 곧 S급 게이트가 열릴 거래. 그래서 이렇게 대비하고 있다.”

“뭐?”

다들 기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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