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66화 (66/149)

# 66

66. S급 게이트(1).

우리의 시선을 받은 기태가 고개를 흔들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열리는데, 확실한데!”

“괜찮아 기태야, 아줌마가 지켜줄게.”

“아닌데, 우리 큰일 났는데!”

기태는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팔다리를 위아래로 마구 흔들며 안절부절했다.

흥분한 기태를 윤상희가 안아서 진정시켰다.

그리고 김성하가 따뜻한 우유 한 잔을 가져와 먹이자, 그제야 조금 진정됐다.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용산 상공에 커지고 있는 S급 게이트가 곧 활성화될 거란 말이지?”

기태가 고개는 나를 향하고 눈동자는 창밖을 보며 대답했다.

“이미 확장을 멈추고 에너지를 응축시키고 있는데, 이러면 곧 게이트가 뜨는데!”

기태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일단, 애 좀 진정시키고 나중에 물어야겠다.”

애와 씨름하기엔 다들 너무 녹초가 되어 있었다.

40일을 B급 게이트에서 괴수와 싸웠고, 마지막엔 A급 헌터 서윤아와 죽기 살기로 싸웠으니, 체력이 바닥이었다.

“어, 그런데 이분은 누구?”

“이수경입니다.”

“네. 전 김성하라고 해요.”

김성하는 그녀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수경도 태준일행과 함께 펜트하우스로 왔다.

“남창수씨, 오랜만입니다.”

이수경이 창수에게 인사했다.

그녀와 창수는 서로 아는 사이였다.

태준을 이수경에게 소개해 준 것도 창수였다.

“두 사람, 어떻게 아는 사이야?”

내 물음에 창수가 김성하를 슬쩍 쳐다보더니 말했다.

“사실 옛날에 나도 불법 게이트 좀 이용했지.”

“너도?”

“다들 알지 모르겠지만, 도구 계열은 등급을 올리기가 참 힘들어. 그리고 어떤 스킬은 제작이나 망치를 두드리기만 해서는 절대 오르지 않아, 괴수를 효과적으로 잡아야 하는 눈이 있어야 하고, 자기가 만든 무기를 직접 실험해야 하는 시행착오도 필요하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높은 괴수를 잡는 것이나 낮은 등급의 괴수를 잡는 것이나 스킬은 똑같이 오르기에 F등급하고 E등급 게이트를 주로 이용했어.”

도구 계열 헌터들은 대부분 게이트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괴수를 잡을 필요가 없을 줄 알았다.

“태준씨, 일단 우리 잠 좀 자죠?”

최한별이 반쯤 풀린 눈으로 말했다.

“아, 그래. 나도 더는 못 버티겠다. 내일 당장 S급 게이트가 떠도 오늘은 자야겠다.”

다들 각자 방을 찾아서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나 역시 다리와 팔에 핏줄이 터지고 찢어진 근육들이 많았기에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옷을 입은 채로 목욕탕에 들어가 그대로 뻗었다.

***

눈을 뜬 것은 이틀이나 지나서였다.

내 발아래서 이수호가 웅크리고 자고 있었고, 정기용은 대자로 누워 코를 골고 있었다.

다들 정말 시체처럼 잤다.

회복 관련 아이템이 모두 하나씩 있었기에 잠이 보약이었다.

‘크윽!’

눈을 뜨자, 양팔에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난폭한 디울리스의 팔찌(유니크)는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유니크)과 사용 원리가 같았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힘을 내지만, 단련하지 않으면, 그 데미지가 그대로 후유증으로 몰려왔다.

다리는 그동안 엄청난 단련을 했기에 아무리 오래 각반을 사용해도 하루나 이틀이면 완벽히 회복됐지만, 양팔은 아직 통증이 심했다.

천천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거실도 조용하다.

창수만 한쪽 구석 테이블에서 뭔가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제수씨는 어디 갔어?”

“부품 좀 사러. 용산에.”

여자 친구는 S급 게이트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용산에 보내고, 한가하게 작업이나 하고 있다니...

창수가 대단한 거야? 성하씨가 이상한 거야?

“그런데 뭐 만들고 있냐?”

“무전기.”

“그건 그냥 만들어진 거 사면 되지 뭐하러 힘들게 만들어.”

“일반 무전기는 규모가 큰 대형 게이트 근처에선 사용할 수 없어, 핸드폰도 안되고. 전엔 그 이유를 몰랐는데, 기태를 만나고 나서 알았어. 게이트의 파장이 전파를 막는 거야.”

“그럼 이건 되는 거야?”

“물론이지. 지금은 초기 제품이고, 나중엔 게이트 안에서도 통신이 가능한 무전기를 만들 거야?”

“게이트 안에서?”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가능해?”

“지금은 불가능한데, 기태에게 도움을 받으면 무전기에 파장을 조절하는 장치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럼 게이트 내부에서도 가능할 거야.”

“허.”

만들기만 하면 대박인 아이템이었다.

인벤토리에서 서윤아의 단검을 꺼냈다.

검게 이글거리는 단검을 보자, 창수가 말했다.

“검은 달빛이군.”

“이 단검을 알아?”

“서윤아가 가지고 있었지?”

“어? 어...”

“그 검을 내가 가진 걸 보니 서윤아가 죽었군.”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 단검, 원래 내 것이었어. 그날 일이 터지고, 내 작업실에 있던 모든 장비를 그놈들이 나눠 가져갔어. 그 단검은 평소 서윤아가 탐내는 것이었어.”

돌고 돌아 다시 주인에게 온 것인가.

“자, 가져가.”

“아니, 난 필요 없어. 네가 써.”

“알다시피 나도 양손에 무기가 있어.”

“그건 괴수에게는 거의 쓸모없는 검이야.”

“그래?”

[검은 달빛의 마검(유니크) - 어둠의 마나를 흡수해 검기처럼 쏠 수 있다. 검기에 맞으면 검에 베인 것과 똑같은 효과가 나타나며, 상처에 출혈이 잘 멈추지 않는다. 사정거리가 10미터 이내로 짧은 것이 단점이다.]

“검기를 쓰기 위해선 검은 마나가 필요하기에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에게 검은 마나를 흡수해야 해.”

“번거롭군.”

“맞아. 흑마법사나 네크로맨서가 주변에 있다면 모를까. 쓸모가 없지. 그건 마나를 흡수하는 기능을 연구하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거야. 일단 지금은 검은 마나가 찬 상태니까 앞으로 몇 발은 더 쓸 수 있을 거야.”

언제 쓸지는 모르겠지만, 검은 달빛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띠띠띠딕!

이수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엔 별다방 커피가 여러 개 있었다.

“커피 어때요?”

“글쎄요. 전 달달한 커피 믹스가 당기는데요.”

“그럼 제가 타 드리죠.”

이수경은 창수에게 커피 하나를 건네고, 자신은 세 개를 챙겼다.

그리고 내게 커피 믹스를 타줬다.

“드세요.”

홀짝홀짝 커피를 마셨다.

이수경이 입을 열었다.

“저, 게이트 브로커 일은 그만뒀어요.”

“아, 이태성 그놈이...”

“아니요. 그쪽에선 계속하라고 하는데, 제가 싫어서 그만뒀어요.”

“그럼 앞으로 뭘 할 생각이죠?”

“그래도 배운 일이 헌터니까 게이트를 들어가 괴수를 잡아야죠.”

“어디 들어갈 만한 길드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그럼 당분간 우리와 함께 움직이죠?”

“하지만 제 실력이 제일 떨어지는 데요. 전 방해만 될 겁니다.”

그녀는 C등급 헌터로 몇 달 전만 해도 여기 있는 헌터들보다 더 강했다. 하지만 모두 나를 따라다니며 고생하고 노력하자, 순식간에 역전된 것이다.

“지금 등급은 중요치 않아요. 앞으로 더 노력해 등급을 올리는 게 중요하지. 그리고 당분간 우리팀 매니저로 일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게이트 공략도 함께하고.”

어두웠던 그녀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거라면 저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이라면 누구보다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

그녀의 클래스는 검사. 정기용과 윤상희의 포지션과 살짝 겹치지만, 검사란 정면에서 괴수와 싸우는 클래스였기에 많을수록 든든했다.

게다가 이수경은 브로커 일을 오래 했기에 많은 헌터와 길드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정보 담당으로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띠리리링!

촌스러운 벨소리가 울렸다.

최규환이었다.

“잠시만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요 며칠 계속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고 어디 갔었어?]

[남이사.]

게이트도 소개해 주지 않는 놈에게 잘해줄 필요는 없지.

[쩝, 지금 어디야?]

[왜?]

[헌터 협회로 올래?]

[중요한 일이야?]

[물론이야. 바쁘면 내가 잠깐 들리지.]

[아니, 내가 갈 테니까 맛있는 거나 준비해놔]

“이수경씨.”

“네?”

“나와 어디 좀 갑시다.”

이수경과 헌터 협회로 향했다.

***

[국가 헌터원]

이수경과 안으로 들어갔다.

“누구지?”

“우리 팀 매니저야.”

“뭐? 매니저?”

“안녕하십니까. 이수경이라 합니다.”

이수경이 고개를 숙이자, 최규환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급한 일이 아니면, 여기 있는 이수경씨에게 연락해.”

“나태준이 많이 컸네.”

“키는 원래 내가 더 컸어.”

소파에 앉았다.

“이수경씨, 이리 앉아요.”

“아닙니다. 서 있겠습니다.”

그녀는 내 뒤에 보디가드처럼 서 있었다.

최규환에게 물었다.

“그래 왜 불렀어?”

최규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이수경을 쳐다보았다.

“말해도 괜찮아. 우리 측 사람이야.”

최규환이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용산 상공에 S급 게이트가 뜬다는 말 어디서 들었어?”

“왜? 너도 유미관 헌터의 예언을 믿는 거야?”

“유미관 헌터의 일은 또 어디서 들었데? 아무튼, 난 예언 같은 것은 믿지 않는데, 요즘 이상한 일들이 생겨서.”

최규환은 책상 위에 있던 서류와 사진들을 내게 내밀었다.

“며칠 전에 용산 상공을 정찰하던 우리 헬기가 갑자기 추락한 일이 있었어.”

“뭐?”

“지상에서 찍은 사진인데 한번 봐봐.”

사진엔 헬리곱터가 무슨 벽에 충돌한 것처럼 프로펠러가 먼저 박살 나고 본체가 찌그러지며 땅에 추락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다시 헬기를 보냈는데, 그 헬기도 추락했어. 다행히 헌터들이 타고 있어서 사람은 다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이 일이 그 S등급 게이트와 왠지 관련이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

“그럼 대비하고는 있는 거야?”

“물론, 그리고 헌터 협회와 공조를 통해 만약 S급 게이트가 발생할 때, 지금 우리의 비상 태세로 어떻게 될지 시뮬레이션을 해봤어.”

“결과는?”

“사흘 만에 서울이 사라져.”

“그 정도야?”

최규환이 한숨을 쉬었다.

“나도 결과가 이 정도가 될지는 몰랐어. 그래서 헌터 협회와 새로운 비상 태세를 구축했어.”

“말해봐.”

최규환이 책상을 터치하자, 지도가 펼쳐졌다.

“일단 지도에서처럼 용산을 포위하고, 방어막을 칠 거야.”

최규환이 한 번 더 터치하자, 지도 위에 빨간 선이 그어졌다.

“북쪽은 서울역 앞에서, 남쪽은 한강, 서쪽은 마포, 동쪽은 한남동을 기준으로 병력과 헌터들을 배치할 거야.”

대대적인 방어 계획이었다.

엄청나게 동원되는 군인들과 최신식 마력 탱크와 공격 헬기, 마력 화기들이 총동원되었다.

“그래도 놀고 있진 않았네.”

“서울이 초토화될지도 모르는데 놀고 있을 수 있나. 일단 피난 계획은 세워져 있고, 병력 배치와 게이트 공략팀까지 모든 세부 계획은 세워졌어.”

“공략팀?”

“그래 S급 헌터들을 중심으로 A급 헌터까지 총 100명의 공략팀이 게이트 발생과 동시에 S급 게이트로 투입될 거야.”

“설마 연희도?”

“당연하지 그녀가 공략팀 리더야.”

하긴 연희 말고 누가 S급과 A급 헌터들을 컨트롤 할 수 있겠는가.

“너도 들어가냐?”

“물론이지, 나도 A급 헌터 아니냐. 그리고 해외에서 온 S급 헌터들까지 합류했으니, 게이트 클리어는 가능할 거야. 문제는 클리어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리지 모른다는 것이지.”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하면, S등급 이하의 괴수들이 끝없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래서 너와 네 팀에게 부탁 좀 하려고.”

“말해봐.”

최규환이 본론을 꺼냈다.

“서울역 쪽 전선에 너희 팀 좀 배치해야겠다.”

“...”

“전에 명동에 뜬 B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때 보고서를 보니까, 너와 너희 팀 여섯 명이 우리 팀 60명이나 블리자드 길드의 헌터들 100명보다 낫다고 하더라고.”

우리를 인정해 주는 거야 좋지만, 이번엔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A급 헌터들은 얼마나 남는 거지.”

“많진 않아.”

“그들로 A급과 S등급 괴수까지 막을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봐야지. 그리고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나면, S급 헌터들이 곧바로 나올 테니까 힘을 합쳐 어떻게든 정리해봐야지.”

“이게 정말 최선인 거야?”

“솔직히 나도 모르겠어. S급 게이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으니 얼마나 튀어나올지, 아니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나 있을지...”

최규환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모든 헌터에게 국가 동원령이 떨어질 거야. 물론 그때 모이면 너무 늦어.”

“좋아, 서울역 앞이라면, 우리 펜트하우스가 있는 곳이니. 우리도 합류하지.”

“이참에 그냥 그 펜트하우스를 인수하지그래? 돈도 많이 벌었잖아.”

“아니, 중요한 아이템을 사야 해서 돈이 없을 것 같다.”

그 길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

“제길, 지킬 수밖에 없나?”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잘못하면 서울이 사라지고,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가 사라질지도 몰라요.”

수진이의 말이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엔 모두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우리 팀원들과 함께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거야.”

“까짓거, 죽기 살기로 해 보지 뭐.”

“일단 장부터 봐야겠네.”

해외 고레벨 헌터들까지 온다고 하니, 어쩌면 게이트를 빨리 클리어하고, 지상을 도울 것이다.

다들 말이 많아진 것이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조용히 창수에게 다가갔다.

“창수야. 내가 차고 있는 흉포한 마그투스의 각반 알지?”

“그럼, 왜? 강화해달라고?”

“아니, 이것과 비슷한 기능의 레전더리 아이템이 있는가 해서?”

“레전더리?”

창수가 고민 없이 바로 대답했다.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이 있지.”

“에이션트 마그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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