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살자-67화 (67/149)

# 67

67. S급 게이트(2).

“S급 괴수야. 마그투스의 챔피언급이지. 나도 본 적은 없지만, 키 15미터에 엄청난 괴력을 가진 거인이라고 들었어. 그 괴수의 힘이 담긴 에이션트 마그투스의 각반이 경매로 팔렸단 소리를 옛날에 들은 거 같아.”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

“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을 거야. 하루만 줘.”

“그래, 고맙다.”

자신도 상대해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놈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닐 것이다.

자칫하면 자신과 팀원들의 목숨이 위험했다.

이럴 때 쓰라고 돈을 모은 거지...

아직 인벤토리와 계좌에 상당한 돈이 들어있었다.

지하 헌터 시장에서 갈고리 관련해서 레전더리 아이템을 구매하려 했지만, 창수를 만났기에 해결됐고, 그 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단시간에 폭발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다른 좋은 아이템도 많은데, 왜 그런 힘들고 위험부담이 큰 아이템을 사려고 해? 그거 잘못 사용해서 다리 불구 된 헌터 많이 봤다.”

“나도 알아. 하지만 힘만 늘려주는 아이템을 쓰면, 아이템에 의존하게 되고 게을러지잖아. 이 각반은 사용에 제약도 많고, 부작용도 크지만, 쓰다 보면 내 체력이 많이 올라가는 걸 느껴.”

“빨리 강해지는 데는 역시 이유가 있구나.”

창수 녀석이 쑥스럽게 나를 칭찬했다.

옆에 있던 윤상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애들은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지?”

“아무래도 여긴 위험하죠. 최전선이 될 테니.”

“수유리에 친척이 있어. 그리 데려다줘야겠다.”

수진이가 옆에서 물었다.

“그런데 기태 부모님은 아직 이에요?”

“최규환에게 알아보라고 부탁했는데, 못 찾았나 봐.”

“나도 경찰 동료들에게 부탁했는데, 오래전부터 행방이 묘연하데.”

“기태 부모님들, 헌터였을까요?”

“글쎄. 나도 기태의 과거를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정기용을 쳐다봤다.

그러자 팀원들도 정기용을 쳐다봤다.

“왜?”

윤상희가 말했다.

“유명한 박수무당께서 알아볼 수 없을까?”

“전에 과거를 볼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그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실제로 과거를 볼 수 있는 확률은 10%도 안 돼. 나머진 그냥 때려 맞추는 거지.”

“10% 확률이라고 해도 시도해볼 만하네.”

“문제가 있어.”

“뭔데요?”

내 물음에 정기용이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게이트에서도 조자룡을 계속 접신해서 그런지, 요즘 아기 동자가 내 물음에 대답이 없어. 이제 다시 점집을 차리는 건 불가능할지도...”

“혹시 게이트 밖에서도 두 번 접신해 본적이 있어요?”

“뭐?”

“게이트 안에서도 두 번 만에 제대로 된 조자룡이 나왔으니, 여기서도 제대로 된 아기 동자가 나올지도 모르죠. 그 아기 동자도 영웅급 샤먼이라면서요.”

정기용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잘못해서 게이트에서 다시 조자룡이 안 나오면?”

34살, 정기용의 고민은 하나였다.

이제 헌터로 겨우 자리 잡았는데, 다시 조자룡이 접신이 안되면 낭패였다.

그렇다고 아직 A급 헌터가 된 것도 아니라 전설급 샤먼을 접신할 수도 없었다.

정기용의 말을 듣자,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기용이 기태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칠성그룹의 박애란에게서 기태를 구해냈다.

그들은 게이트의 파장을 볼 수 있는 기태를 이용해 장치를 만들고 일반인을 강제로 각성시켜 헌터를 찍어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우리 때문에 계획은 실패하고, 기태를 구해냈다.

우린 기태의 과거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리고 자폐증이 있었기에 스스로 집을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좋아, 한번 시도해보지.”

정기용의 마음이 변했다.

“어쩌면 이번에 괴수를 막다가 죽을지도 모르잖아. 살아 있을 때 좋은 일 좀 해보지.”

거실의 불을 껐다.

그리고 기태와 정기용이 마주 앉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조금 떨어져서, 그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갈라졌던 두 개의 영혼이여, 원래 하나였던 내 몸에 강림하소서.”

정기용이 몸을 떨었다.

조자룡이 접신되었고, 연이어 다시 한번 접신 주문을 외웠다.

갑자기 침묵이 찾아왔다.

“뭐야? 잘 안됐나?”

그때였다.

정기용의 입에서 아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조용히 해라!”

됐다.

아기 동자가 성공적으로 접신됐다.

정기용은 기태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심연을 바라보는 듯한 깊은 눈빛.

어떤 물음이나, 말소리조차 내지 않았고, 고요하고 낮은 숨소리만 거실을 장악했다.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

그런데 갑자기 정기용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을 켜라! 애가 놀란다.”

아기 동자의 명령으로 불을 켰다.

“뭐가 나왔습니까?”

“참으로 기구하고 불쌍한 운명이로구나.”

아기 동자는 울고 있었다.

그리곤 몸을 크게 한번 부르르 떨었다.

“아기 동자가 스스로 접신을 해제했어.”

정기용이 나왔다.

“그럼 실패한 건가?”

윤상희의 물음에 정기용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과거는 봤습니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기태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다들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정기용이 말을 하려다 말고, 기태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작 기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태도 알아야 하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게 맞아.”

정기용이 고개를 끄덕이며 기태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했다.

기태의 부모님은 게이트가 발생하고 2년 만에 각성했다.

그땐 게이트가 마구잡이로 생기고, 사람들이 괴수를 피해 도망쳐다닐 때였다.

각성 전 두 사람은 신혼부부였고, 괴수를 피해 강원도 철원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곳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갑자기 집 근처에 E등급 게이트가 발생했고, 두 사람은 밭에서 일하다가 각성했다.

그리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여왔지만, 괴수들이 이미 부모님을 죽이고 마을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이대로 게이트를 놔두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F급 헌터 둘이서 E등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건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괴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괴수를 피해 도망을 다녀야 했다.

게이트에서 탈출도 못 하고, 몇 달을 안에서 살았다.

F급 괴수를 죽이고 그 살을 뜯어 먹으며 어떻게든 살았는데, 문제는 아내의 배가 불러온 것이다. 게이트에 들어왔을 때 임신 초기였지만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D등급 보스와 마주쳤다.

남편은 아내와 배 속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싸웠으나 역부족이었다.

남편은 죽고, 아내는 만삭이었기에 도망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죽을 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괴수가 아내를 해치지 않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었다.

작은 괴수들을 잡아다 여자에게 주었고, 여자는 그걸로 연명할 수 있었다.

여자는 며칠 후에 게이트 안에서 기태를 출산했다.

그리곤 D급 괴수에게 잡아먹혔다.

신기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괴수가 기태를 기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도 주고, 젖도 물리며 꼭 늑대가 인간 아기를 키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E등급 헌터들이 게이트를 공략했다.

그들 역시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앞선 부부처럼 약하진 않았다.

힘을 합쳐 D등급 괴수를 죽이고, 게이트를 클리어했다.

다른 헌터들은 모두 죽고, 홀로 살아남은 헌터는 곧 믿을 수 없는 일을 경험했다.

게이트에서 갓난아이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도 괴수의 품속에서 말이다.

사실 그들의 실력으로는 D급 괴수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괴수가 품에 있는 아이를 보호하려고 제 실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다.

그런 기이한 일이었기에 사내는 괴수를 죽이고 기태를 데리고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가 칠성그룹의 박태산 회장이었다.

“그놈이 기태를 자기 회사 실험실에 가두고 온갖 실험을 하면서 키운 거야. 그래서 자폐증도 생긴 것 같아.”

“죽일 놈.”

다들 정기용의 이야기를 다 들었어도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최한별은 고개까지 흔들었다.

어떻게 아이가 배 속에 있는 데 과거를 볼 수 있단 말인가?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어내기엔 너무 이야기가 구체적이었고, 박애란 과의 관계까지 설명이 되었기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확실해?”

정기용에게 물었다.

“그건 나도 몰라, 믿고 안 믿고는 내 몫이 아니지.”

다들 기태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데도, 모르는 눈치였다.

윤상희가 멀뚱멀뚱 서 있는 기태를 뒤에서 꼭 안았다.

“기태야, 이제부터 아줌마하고 살자, 그리고 앞으로 엄마라고 불러.”

“네? 엄마요?”

“그래, 엄마가 우리 기태하고, 주혁이하고 잘 키울 테니까. 앞으로 엄마만 믿어.”

옆에 있던 주혁이가 다가와 그런 엄마와 기태를 꼭 껴안았다.

갑자기 가슴이 울컥했다.

정말 기구한 운명이었다.

조부모님들은 괴수에게 잡아 먹혔고, 부모님들은 게이트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구해지나 싶었는데 13년간이나 비밀 실험실에 갇혀 생활했다.

자신과 기태는 같은 운명이었다. 아니 자신은 그래도 부모님의 얼굴은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럼 기태의 삼촌이 되지.”

내 말을 듣고는 수진이는 기태의 누나가 되기로 했고, 다들 이모나 형, 삼촌이 되기로 했다.

기태는 오늘 새로운 가족을 얻었다.

그리고 말볼까지 윤상희와 기태에게 다가가 몸을 비볐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뭔가 팀원들 간의 유대가 한층 더 단단해진 느낌이다.

“아, 그리고 다들 이틀 후에 국가 헌터원 가서 승급 테스트받아.”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맞아요. 괴수랑 싸울 때 헌터증 내밀 것도 아닌데.”

우리 팀은 국가 헌터원이나 헌터 협회 어디에도 적을 두고 있지 않았기에 헌터 등급이 크게 상관없었다.

“국가 동원령이 발동되면 헌터증의 등급으로 다른 헌터나 군대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하니까. 전투 전에 최대한 높게 받아 놓는 게 유리해. 내가 24일 오전으로 테스트 예약했으니까 늦지 말고.”

“태준씨도 가는 거지?”

“네. 당연하죠.”

오늘 12월 22일이 지나고 있었다.

예언이 맞는다면 S급 게이트 출연은 내년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날.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기태의 말로는 게이트가 생성되기 전 스스로 파장을 응축하는 단계가 있는데, 지금 S급 게이트가 그 단계에 들어섰으니, 머지않아 터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며칠 남지 않았다.

***

다음 날.

용산 헌터 시장에서 창수의 전화를 받았다.

[태준아, 전설급 각반의 주인을 찾았어.]

[그래 어디에 누구야?]

[지하 헌터 시장의 성주야.]

[뭐? 성주?]

[지하 헌터 시장 2층에서 성 봤지?]

기억이 났다.

엘프의 도시처럼 지어진 지하 헌터 시장의 2층.

대리석 길을 따라 그 끝에 화려한 성이 한 채 있었다.

[그래. 봤어.]

[그곳에 지하 헌터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이 있어. 최강해라고 그 사람이 몇 년 전에 경매에서 낙찰받았데.]

[그럼 그 사람을 찾아가야겠네.]

[나랑 안면이 있으니, 같이 가 줄게.]

[그럼 강남역에서 만나. 출입카드 잊지 말고 꼭 챙겨오고.]

[알았어.]

전화를 끊고, 황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럼 물건값은 계좌로 보내주시죠.”

“이미 이체 완료했네.”

“언제나 빠르시네요.”

황노인의 가게 안에 엄청난 양의 괴수 부산물이 쌓여 있었다.

모두 이번에 B급 게이트에서 가져온 것들이었다.

“이거 언제 혼자 정리하려고요? 사람을 쓰시지.”

“천천히 하면 금방 된다.”

“그보다 피난 안가세요?”

헌터들에겐 이미 게이트 발생 소문이 퍼져있었다.

“가긴 어딜? 여기가 내 터전인데.”

“하지만 여긴 위험할 거에요.”

“뭐 입구를 막는다니까, 버텨보지.”

헌터 시장엔 황노인 말고도 1세대 헌터들이 제법 있었다.

그들은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12월 31일부터 엘리베이터를 모두 폐쇄하고 지하에서 버틸 생각이었다.

만약 괴수를 막지 못하면,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게이트 클리어되면 잊지 말고 우리 좀 구해주게.”

“허! 알겠습니다.”

그 길로 흉포한 에이션트 마그투스(레전더리)의 각반을 사기 위해 지하 헌터 시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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